<Parallel World> - 3화

초코파이가나파이애플파이 2018-11-14 2

"뭐? 그게 정말이니?!"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그 이슬비가 말하길 아마 본인이 이 세계로 오면서 지나온 이동 경로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그 이동 경로를 따라 그녀를 추적했고 이 세계로 넘어온 것일 거라고 하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대체 무슨 수로...?! 만에 하나 이동 경로를 파악했다고는 해도 당장에 그럴 수 있는 수단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뒤쫓아 온 거지?!'

그 이슬비는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과거로 넘어가서 서지수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아있는 모든 과학자들, 그리고 한 명의 특별한 위상능력자의 도움으로 힘들게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라는 장치를 만들게 되었다.

그런데 장치를 작동시키는 도중 그들의 갑작스러운 습격을 받게 되었고 심각한 부상을 입으며 자신과 동행할 예정이었던 동료들과 흩어지면서 홀로 장치가 생성한 차원문을 통해 어째서인지 자신이 있던 세계의 과거가 아닌 그 세계와 격리된 평행 세계인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된 것이었다.

이렇듯 우연히 발생한 오류 때문이기는 해도 그 이슬비는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라는 장치를 이용하여 이 세계로 넘어올 수 있었다. 덧붙여서 그 장치는 일종의 구조물 형식처럼 지정된 장소에 설치하는 형식의 장치가 아니라 휴대폰처럼 필요할 때 에너지를 충전하여 어디에서든 사용할 수 있는 형식의 장치로써 당연히 그 이슬비가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같이 들고 왔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그 세계에서 이 세계로 넘어올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 장치와 비슷한 것을 만들어 이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이 되는데,  이 장치를 만드는 데에는 인류의 남아있는 모든 과학자들이 불철주야로 약 한 달을 피나도록 노력해서 겨우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장치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희귀한 능력을 가진 한 사람의 특별한 위상능력자가 없었다면 그 장치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단기간에 쫓아온 것은 둘째치고 그런 장치를 만들어서 이 세계로 넘어온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설마... 그 녀석이?!'

그래서 그 이슬비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 초월적인 존재가 자신이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지나온 이동 경로를 파악한 뒤에 그 이동 경로를 따라 자신의 힘으로 양쪽 세계를 완벽하게 격리하고 있는 평행 세계의 벽을 강제로 허물어버리고 뒤쫓아온 것이라고.

차원종들이 차원문을 열어 지구로 넘어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이것은 수준부터가 다른 것이었다. 

차원종들이 차원문을 열어 지구로 넘어오는 것은 그저 같은 세계에 속한 두 차원을 약간의 힘을 사용해서 넘나드는 것에 불과했지만 이건 서로 평행하여 결코 맞닿지 않는 두 세계의 경계를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 같은 특별한 장치 없이 본인의 순수한 힘만으로 말이다.

이게 어떤 말이냐 하면 일반인의 기준으로 비유했을 때, 전자는 지구상의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에 입국하는 격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우주선 같은 특별한 이동수단 없이 육체만으로 지구에서 달로 이동하는 격이었다.

'그 녀석이라면 가능해... 그런 괴물이라면...!'

"어쨌거나 지금은 그들을 막는 게 중요해! 다들 서둘러서 독일로 출동할 준비를!"

김유정은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 그 외에도 총본부에서 현재 출동이 가능한 정예 클로저 요원들을 공중전함 램스키퍼를 타고 독일로 출동해 독일에서 그들에게 맞서고 있는 다른 클로저들의 지원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신서울의 총본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지부에도 앨리스가 따로 지원을 요청했으니 독일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알 수 있었기에 총본부의 정예 클로저들은 서둘러서 준비를 갖추었다.

또한 그들이 자신들에게 있어서 미지의 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잘 알고 있는 그 이슬비에게 부상을 당한 상태이니 전투 행위는 제외하고 그들의 정보를 알려주고 이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식으로 자신들에게 협력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들은 불구대천의 원수와도 같았고 자신이 이 세계로 온 탓에 그들이 이 세계로 추적해왔고 이로 인하여 이 세계의 인간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격이었으니 협력하는 것을 오히려 부탁할 정도였다. 

곧 이들은 램스키퍼를 타고 전속력으로 독일을 향해 출동하였다.

그런데 독일을 향해 출동하기 시작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램스키퍼의 통신망으로 통신 하나가 걸려왔다. 통신을 걸어온 것은 바로 이세하였다. 지금까지 연락도 없었던 이세하가 이제서야 연락을 해오자 이슬비가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이세하! 어디 있다가 이제서야 연락을 하는 거야!? 지금 상황이 어떤지는 알고 있기나 해?!"

자신이 잘못한 것을 자각은 하고 있었는지 이세하는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상황은 대강 들었어. 독일에 왠 인간형 차원종들이 무더기로 나타났다며? 그래서 나도 지금 독일로 향하는 중이야. 아무래도 먼저 도착할 것 같으니까 그때 가서 보자. 그럼 끊을게."

그리고 이세하는 통신을 일방적으로 끝마쳤다.

"잠깐, 이... 하아, 내가 못 살아 정말..."


**********


<같은 시각>
<독일, 베를린>


갑작스레 나타난 인간형 차원종 무리들, 정확히는 저쪽 세계에서 지구를 침공한 세력들은 어느새 유럽 대륙 전체로 넓게 퍼져서 이곳저곳을 무차별적으로 유린해갔다.

사냥터지기 팀을 포함한 유럽의 정예 클로저들이 분투하며 맞섰으나 수적으로도 그렇고 힘에서도 열세에 밀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끝이 없군."

사냥터지기 팀의 1분대 멤버 중 한 명인 [볼프강 슈나이더]는 자신이 가진 검은 책에 봉인된 차원종들의 사념을 전부 해방시켜 전력을 다해 그 세력들에게 맞서고  하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차원종들의 사념을 전부 해방하며 싸웠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이러한 행위는 그만큼 많은 힘을 소모하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선배! 괜찮으신가요?"

한편 마찬가지로 사냥터지기 팀의 1분대 멤버인 [파이 윈체스터]가 볼프강의 상태를 보고 걱정이 되었는지 급히 그의 곁으로 달려와 전투를 보조하였다.

볼프강은 쓸데없는 걱정이라며 자신을 도와줄 시간에 다른 곳에서 힘을 쓰라고나 하였다. 하지만 가장 많이 적들과 홀로 싸우고 있고 체력까지 바닥을 치려고 하는 볼프강을 차마 혼자 놔둘 수 없었던 파이는 볼프강의 지시를 정중하게 거부하고 볼프강의 곁에서 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공격에 임하였다.

"하여간 답답한 후배라니까. 뭐, 그게 나쁘지는 않지만."
'그나저나 꼬맹이들은 잘 싸우고 있는지 걱정되는군. 그래도 앨리스에게서 특별히 통신이 안 들어오는 걸 보니 아직은 잘 싸우고 있는 모양이야.'

한편, 다른 지역에서는 사냥터지기 팀의 2분대에 속한 2명, [루나 아이기스]와 [소마]가 마찬가지로 다른 클로저들과 협동하며 그들에게 맞서고 있었다.

루나는 자신의 방패로 동료 클로저들을 보조하면서도 여차할 때는 정면으로 나서서 싸웠고, 소마는 여전한 차원종 혐오자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정을 지으면서 사정없이 전력을 쏟아붇고 있었다.

"으아아! 짜증나, 이 망할 자식들! 대체 얼마나 쏟아져 나오는 거야!"

"진정해, 소마! 너무 무리하고 있잖아! 잠시 동안 휴식이라도 취하고 있어. 나랑 다른 사람들이 맡고 있을 테니까."

"아니야, 괜찮아! 이런 때일수록 더 힘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아직 팔팔하거든!"

"정말이지...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진짜로 힘들 때는 휴식을 취하면서 싸워야 해. 알았지?"

"응! 알았... 앗! 루나! 위험해!"

소마에 대한 걱정으로 루나에게 잠시 빈틈이 생긴 그 순간에 차원종 하나가 그 틈을 노리고 루나에게 기습을 가하였다. 루나는 다급히 방패를 들어 방어하려고 하였지만 차원종의 공격은 이미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루나는 피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최소한 받는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이를 악물고 전신의 방어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화아아악!)

그런데 그때, 루나에게 공격을 가하려는 차원종의 정수리로 하늘 위에서 뜨거운 열기를 사방으로 발산하는 푸른 화염의 폭풍이 그 차원종과 주변의 다른 차원종들까지 집어삼키며 단숨에 불태워 버렸다.

 "이건...!"

"휴우, 늦지 않게 도착한 것 같네."

"세하 씨!"

그 화염 폭풍은 다른 멤버들보다 한 발 앞서 도착한 이세하가 일으킨 것이었다. 아슬아슬했던 순간에 루나를 구한 이세하는 두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현재 상황이 어떠한지 간략하게 알려달라고 하였다.

현재 상황은 여전히 모든 면에서 열세에 밀리고 있었고, 아직 민간인들의 대피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거야 원, 간만에 만났는데 제대로 대화를 나눠볼 틈도 없겠네. 그럼 이 일대 부근은 나 혼자서 맡고 있을 테니 루나랑 소마, 너희 둘은 다른 요원 분들이랑 같이 아직 대피하지 못 한 사람들을 도와주러 가줘."

"네, 그럼 부탁 드릴게요!"

"에엣?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는 힘들 텐..."

(콰아아아아앙!!!)

이세하는 여긴 자신한테 맡기고 그냥 어서 가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차원종들을 향해 강렬한 폭발을 일으켜 정면에 있는 모든 적들을 단번에 쓸어버렸다.

"... 다녀오겠습니다!"

그 광경에 소마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뒤도 돌아** 않고 루나와 함께 아직 대피하지 못 한 민간인들을 구조하러 갔다.

"그럼 어디... 간만에 빡세게 일해야겠는걸."

이세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본격적인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그 차원종들 무리 중에서 한 명이 마치 이세하에게 대화를 하기 위한 것처럼 무방비 상태로 천천히 이세하의 앞으로 다가왔다.

무방비 상태로 다가오니 이를 의아하게 여긴 이세하는 바로 요격하지 않고 그 차원종이 무슨 속셈인지 확인하려고 하였다. 얼마 안 가 엎어지면 코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온 그 차원종은 갑자기 이세하에게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왕자]님, 어째서 여기에 계신 겁니까? 그리고 왜 동족에게 해를 가하는 것입니까?"

"뭐?"

그 차원종은 이세하에게 왕자라느니 왜 동족에게 해를 가하는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세하는 그 차원종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 고개를 갸우뚱 거릴 뿐이었다.

"...! 아니, 잠깐... 왕자님이 아니잖아! 칫, 단순히 그 분을 닮기만 한 인간인가!"

그러다가 잠시 그 차원종은 이세하의 모습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돌변하여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잠깐 당황하였던 이세하였으나 그 차원종이 어떻게 나올지 몰라 항상 주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차원종의 기습적인 공격은 가볍게 막혀버렸고 바로 이어진 이세하의 반격에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냥 나를 다른 차원종으로 착각한 건가?'

그 차원종이 했던 말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저 그들을 몰아내는 데에 집중하려 하였다.

잠시 후에 루나와 소마를 비롯한 다른 클로저들이 민간인들의 대피를 거의 끝마치고 루나와 소마가 아직 싸우고 있을 이세하에게 가세하기 위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였다.

"세하 씨! 민간인들의 대피는 끝났어요! 그러니 저희들도 다시... 어라?"

그러나 돌아왔을 때는 이미 이세하가 그 주변 일대의 차원종들을 전부 해치워버린 뒤였다.

"버, 벌써 다 해치운 거에요?"

"우와아~ 역시 굉장해!"

"감탄은 나중에 하고, 다른 곳에 가세하러 가자!"

"아, 네!"

그렇게 이세하가 합류하여 다른 곳에서 그 차원종들과 맞서고 있을 클로저들을 도우려고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데, 갑자기 상공에서 무언가가 음속을 돌파한 속도로 이세하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세하는 그것을 간파하고 건블레이드를 휘둘러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든 물체를 튕겨냈다. 

'이건... <레일건>의 탄환?'

레일건, 주변 사물에 염동력과 자력을 집중시켜 음속을 돌파한 속도로 마치 탄환처럼 발사해 충돌하는 것들을 전부 관통시켜버리는 이슬비의 주특기였다. 문제는 바로 그 레일건의 탄환이 어째서 이세하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냐는 것이었다. 튕겨낼 때의 위력으로 봤을 때, 만약 무방비 상태였던 그대로 직격 당했다면 죽기까지는 안 했겠지만 적어도 뇌에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이는 아무리 봐도 살의를 담아서 발사했다고밖에 설명이 안 되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루나와 소마도 그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세하는 레일건의 탄환이 날아왔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방향을 바라보니 이슬비, 정확하게는 평행 세계에서 온 이슬비가 살기를 가득 담고 있는 표정을 적나라하게 보이며 이세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당연히 이세하, 루나, 소마, 이 3명은 그 이슬비를 본인들이 알고 있는 이 세계의 이슬비라 착각하고 그녀가 왜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오고 있는 건지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저만 슬비 씨가 엄청 화가 난 것처럼 보이나요...?"

"아니~ 완전 뿔 났는데?"

'설마 오늘 아침에 늦잠 잔 것 때문에 저러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까지는 안 할 텐데. 아니면 설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런 식으로 아직까지는 크게 심각함을 느끼지 못 하고 있었지만, 곧 이어진 이슬비의 공격으로 심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슬비는 자신의 주변으로 커다란 빌딩 2채를 떼어내서 분해한 다음 하나로 합쳐 더욱 커다란 빌딩으로 만들더니 거기에 염동력과 자력을 집중시켜 레일건... 아니 이미 건(총)이라고 할 수 없는 미사일이나 다름없는 수준의 탄환으로 날렸다. 여태까지 이슬비가 버스를 내리찍거나 대기권 밖의 위성을 떨군다던지 지하철을 날린다던지, 그런 광경은 틈틈이 봤지만 이번에는 그만한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이런 미X... 저 녀석 지금 제정신이야?!"

이세하는 웃어 넘길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즉시 건블레이드를 힘껏 휘둘러 거대한 화염의 검기를 날렸다. 양쪽의 공격은 충돌하자마자 강렬한 폭발과 함께 후폭풍을 일으켰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

"죽어어어!!!"

"?!"

후폭풍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틈을 타 그 이슬비는 어느새 땅으로 내려와 괴성을 지르며 이세하를 향해 덤벼들었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건물의 파편을 염동력으로 정밀하게 가공하며 일반인이라면 닿는 순간 즉사할 수준의 높은 전류를 두른 전격검을 만들어 빠른 속도로 이세하에게 휘둘렀다. 이에 깜짝 놀란 이세하는 다급히 건블레이드를 치켜들어 종이 한 장 차이로 이슬비의 검격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검에 둘러진 전류까지는 완전히 막아낼 수 없었던 모양인지 전격검과 맞닿은 건블레이드를 통해서 이세하의 몸으로 전류가 계속 흘러들어와 지속적인 전격을 가하였다.

"크으윽!"
'이거... 장난 수준이 아니잖아? 힘 빼고 상대했다가는 몸 성히 끝나지는 않겠어...!'

"교관님의...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원수...! 죽이겠어!"

"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게다가 몸은 또 왜 그렇게 다쳤어?"

이세하는 그 이슬비가 당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우선 진정하라고 말을 해봤지만 이미 그 이슬비는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까지 흥분해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 힘으로 제압하기로 한 이세하는 맞닿아 있는 전격검을 쳐내고 힘을 실어 수도로 이슬비의 뒷목을 쳤다.

"커윽...!"

뒷목을 맞은 이슬비는 짧은 신음소리를 내면서 의식을 잃었다. 이세하는 그 이슬비를 조심스럽게 땅에 눕히는 것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아... 뭣 때문에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세하야! 괜찮아?!"

마침 그때 도착한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이 그 자리로 부리나케 달려왔고, 이슬비가 이세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이세하는 이슬비를 보고 잔뜩 열 받은 태도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괜찮기는! 완전히 나를 죽일 기세로 덤벼들었었잖아! 얼마나 식겁했는... 응? 잠깐만... 슬비가 두 명?!"

홧김에 소리를 치기는 했는데, 정작 자신에게 덤벼든 이슬비는 방금 막 기절시켜서 땅에 눕혀놨었다. 그런데 눈앞에는 멀쩡한 몸 상태로 평소처럼 말을 거는 이슬비가 서 있었으니 잠깐 어리둥절 하다가 다시 땅에 눕혀놓은 그 이슬비와 자신의 앞에서 말을 거는 이슬비를 한 번씩 번갈아보더니 이세하는 물론이고 옆에 있던 루나나 소마도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슬비 씨가 두 명?!"

"으에엑?! 뭐야뭐야! 설마 도플갱어라는 건가?!"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 실은 램스키퍼 안에서 카메라를 통해 너를 보더니 갑자기 부리나케 뛰쳐나가더니 너를 공격해서 말이야. 얼마나 놀랐는지... 아무튼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다."

"아니, 그것보다 왜 네가 두 명인지..."

"어쨌든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 테니까 지금은 차원종들부터 섬멸하자!"

"무시냐!"

차원종들부터 섬멸하자고 대충 넘어가며 이세하는 어차피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지 자세히 얘기할 생각이나 그럴 틈도 없다고 생각해 이슬비가 두 명이라는 사실이 계속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일단은 동료들과 함께 차원종들의 섬멸에 전념하였다. 

그렇게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독일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럽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갔던 차원종들이 다시 처음 나타났던 장소로 모여들더니 자신들이 통과하여 왔던 차원문을 통해 철수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철수하는 이유를 단정짓기는 어려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는 차원문과 그에 따라서 철수하는 모습을 통해서 아마 그 차원문이 완전히 닫히게 되었을 때는 자신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갈 수단을 잃기 때문에 서둘러서 철수한 것이 아닐까 하고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일부 클로저들은 남아있는 민간인들의 구조 및 복구 작업에 들어갔고 검은양, 늑대개, 사냥터지기, 이 3팀은 몇 달 만에 다시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간만의 재회였다면 서로 반갑게 인사하며 담소를 나누었을테지만 이번에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우선 아직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있는 이세하, 그리고 사냥터지기 팀은 먼저 또 한 명의 이슬비에 대해 물었다.

김유정은 그 이슬비가 이 세계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평행 세계에서 넘어온 또 한 명의 이슬비이며, 이번에 독일을 포함한 유럽 대륙을 침공한 차원종들은 그 평행 세계에서 지구를 침곡한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속하여 이끌고 있는 세력의 차원종들이라고 설명하였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이렇게 눈앞에 또 한 명의 이슬비가 있는 것을 보면 그저 부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그렇다치고 그럼 저를 완전히 죽일려고 덤벼든 이유가 뭐죠?"

"그건... 잘 모르겠구나. 우리도 거기에 대해서는 듣지 못 했거든. 일어나서 얘기를 듣는 수밖에."

"후우, 일단 그렇게 세게 친 건 아니니까 금방 정신을 차릴 거에요."

이세하가 말한 것처럼 그 이슬비는 몇 분 안 가서 금방 의식을 되찾았다. 그런데 그 이슬비는 의식을 되찾자마자 눈앞에 있는 이세하를 보고는 또 다시 죽일듯이 덤벼들려고 하였다.

"으아아!"

하지만 그녀가 의식을 되찾기 전에 이런 상황을 미리 예상하여 미리 그녀의 사지에 위상력 억제수갑을 채워놓고 구속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금방 제압되었다. 그나마 현재 그녀가 가장 순종적인 태도로 대하는 트레이너가 다가와서 진정하고 왜 그렇게 살의를 가득 담아 이세하에게 덤벼드는 것인지 설명해달라고 하였다.

"... 어?"

트레이너의 말에 조금씩 흥분을 가라앉힌 그 이슬비는 잠시 동안 이세하를 살펴보다가 갑자기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이내 완전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야... 닮았지만 틀려... 무엇보다 그 녀석은 인간이 아니라 차원종이고..."

"?"

"아, 죄송합니다... 제가 상대를 착각 했었나봐요..."

"착각? 상대가 이세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약 아무런 힘도 없는 일반인이었다면 너는 단순한 살인자가 되었을 거다. 여태까지 겪은 일들 때문에 많이 힘든 상태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항상 무슨 일을 할 때에는 신중을 가하도록. 그쪽 세계의 나는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그 이슬비가 지금까지 겪었던 일에 대해서 들었던 상태였는지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해졌기 때문에 이런 짓을 벌였을 거라 생각하여 트레이너는 자기 나름대로 조금씩 부드럽게 타이르듯이 꾸짖었다.

"하하... 정말 똑같이 말씀하시네요. 아무튼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알면 됐다. 이세하, 너도 괜찮겠나?"

"저는 괜찮아요. 따져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그렇다면... 이전에 하던 얘기를 계속 이어서 하지. 앞으로 너는 어떻게 할 셈이냐?"

트레이너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제대로 과거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에는 이미 되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밖에 남지 않았으며 에너지를 충전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이동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 이슬비는 잠시 깊게 고민을 했다가 결론을 내렸는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부탁하였다.

"염치가 없는 줄은 알지만...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희를 도와주세요...!"

물론 이 부탁이 얼마나 되도 않는 부탁인지는 본인 스스로도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우연한 사고로 인해 이 세계로 넘어오게 되었다고는 해도 그로 인하여 자신을 추적해 온 그 세력들에 의해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들의 세계를 도와달라고 부탁까지 하는 것이니...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은 그 세계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도움이 절실한지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사정은 딱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결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각자 의견을 내놓으며 의논해보았다. 제일 먼저 트레이너의 의견이었다.

"합리적으로 따졌을 때, 우리가 저쪽 세계를 도와줘야 할 이유는 없다. 비슷한 세계관을 가진 세계라 하여도 결국 어디까지나 이쪽과는 격리된 완전히 다른 세계, 그런 세계에 굳이 간섭하여 협력하는 건 아무런 이득도 없다. 그리고 다들 이미 알듯이 그 차원종들은 저 이슬비를 추적해서 이 세계까지 쫓아왔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저쪽 세계로 가서 그 세계의 인류를 돕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가만히 놔둘 것 같나? 그러기는커녕 늘어난 대항세력을 줄이고자 다시 이 세계를 침공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자진해서 그런 리스크를 짊어질 수는 없다."

지극히 냉정한 의견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지극히 합리적인 의견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몇몇 멤버들은 이 의견에 반발하였다. 가장 먼저 반반하며 나선 것은 파이였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위험에 놓인 사람들을 못 본 척하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 저희 클로저들의 의무가 아닙니까?! 당신이 하는 말이 맞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파이의 말에도 트레이너는 의견을 굽히기는커녕 더 강하게 밀고 나갔다.

"그럼 예를 들어서 저 멀리 떨어진 우주 어딘가에 큰 위험에 처한 종족이 있고 그 종족이 우연히 지구에 와서 인간들에게 도와달라고 한다면 너는 무조건 돕겠다고 할 수 있겠나?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멋대로 간섭했다가 스스로에게 되돌아올 수 있는 리스크가 어떨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음에도 말인가?"

"그, 그런 말장난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말장난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비슷한 경우를 든 거다. 방금 한 말 그대로 저쪽 세계로 넘어간 후에 무사히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 멋대로 간섭해서 그쪽 인류를 도왔다가 이쪽 세계에 미칠 악영향이 어떨지는 이미 말했는데도 모르는 건가? 그런 것들을 다 뒤로 제쳐두고 그저 무작정 돕자고만 하는 것은 앞뒤 상황을 적절히 분간하지 못하는 얼빠진 자의 위선이나 다름없다."

"으윽...!"

파이는 뭐라고 반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이상 계속 얘기해본들 트레이너의 말이 옳다는 생각만 더 들 것 같아서 파이는 더 이상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에는 볼프강이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트레이너의 의견에 동감이야."

"선배!?"

볼프강은 트레이너의 의견에 동감이라는 의사를 밝혔고, 이에 사냥터지기 팀의 3명은 적잖게 당황하였다. 그러나 볼프강은 어디까지나 트레이너의 의견에 '동감'한다고 했을 뿐이지 의견은 따로 있었다. 그 의견을 지금 말하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트레이너의 말은 맞는 말이고 그 의견에 어느 정도 동감하기는 해. 하지만 동참까지는 못 하겠어."

"어째서지?"

"당신은 하나같이 맞는 말만 했지만 딱 하나, 짚고 넘어가지 못한 부분이 있지."

"그게 뭔지 말해주겠나?"

"좋아, 그럼 그 전에 이 아이에게 잠시 질문을 하지. 이봐, 그 녀석들은 왜 너희 세계를 침공했지?"

볼프강은 그 이슬비에게 대뜸 그들이 왜 그쪽 세계의 지구를 침공한 것인지에 대한 이유를 물었다.

"그건... 처음에는 저희들도 그 이유를 몰라서 그들이 그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침공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날 저희 인류를 침공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들을 통솔하는 우두머리인 차원종이 혼잣말을 하는 것을 우연히 들은 거에요. 그 차원종은 이렇게 말했죠."


- 인간들은 깨달아야 한다. 자신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악랄한 종족들인지... 이런 인간들은 살아있을 자격이 없다. 그러니 전부 없애야만 해. -


"그 차원종은 저희 인간들에 대해 엄청난 혐오감과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저희 인류를 침공한 건 아마 그런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좋아, 여기까지만 들어도 답이 나오는군. 아무튼, 이제 내 의견을 말하지."

볼프강은 가볍게 헛기침을 한 번 하고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방금 들었다시피 그 녀석들의 우두머리 차원종은 인간에 대해 강한 혐오감과 증오심을 품고 있다고 하지. 그러니 그 녀석들은 단순히 인간들을 없애버리는 게 목표인 거야. 간단히 비유하면 녀석들에게 있어서 인류는 무조건 박멸해야만 하는 해충이나 다름없다는 거지. 우리 인간들도 유해한 해충 소굴 같은 걸 발견하면 굳이 나서서 박멸하고 그러잖아? 그런 거야. 즉, 이 세계에 인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시점에서 이미 우리가 있는 이 세계도 녀석들에게 있어서 안전하지 않다는 얘기라고. 나의 주장이 확실하다면 녀석들은 늦든 빠르든 언젠가 우리 세계로 대대적인 침공을 해올 거야. 결국 이러나 저러나 우리 세계와 저쪽 세계는 이미 한 배를 타게 된 운명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지."

이러한 볼프강의 의견도 나름대로의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었다. 볼프강이 말한 대로 그들의 목표가 단순하게 인간이라는 종족의 멸망이라고 한다면 이쪽 세계에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에서 이쪽 세계의 인류 또한 침공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다... 아니, 금방 철수해갔다고는 해도 이번 유럽 대륙 침공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확실하게 침공해 올 것이 분명하였다. 결국 그쪽 세계를 돕지 않는다고 할 지언정 인류의 멸망을 바라는 그들을 그저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아이를 따라서 저쪽 세계의 인류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어차피 언젠가 싸우게 될 녀석들인데, 아군은 조금이라도 많을 수록 좋잖아?"

"선배...!"

볼프강의 의견을 다 듣고 나서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전부 그의 의견에 동참한다는 입장을 표하였다. 겉으로는 볼프강의 주장이 옳았기에 이에 동참할 뿐이었지만, 속으로는 모두 하나같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클로저로써의 의지에 의해서 저쪽 세계의 인류를 돕자고 결정한 것이었다.

"트레이너 씨, 저희들은 이렇게 결정했어요. 당신은 입장을 바꾸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뭐라고 한들 내 생각은 바뀌지 않소. 하지만, 볼프강 요원의 주장이 나의 주장보다 더 옳고 확실하다고 생각하오."

"그럼...!"

"나도 그 뜻에 따르도록 하겠소."

결국 트레이너도 저쪽 세계의 인류를 돕는다는 의견에 동참하게 되었다. 모두의 뜻이 이렇게 결정되자 그 이슬비는 감격스러운 나머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였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유정은 먼저 이 사실을 유니온 상층부의 사람들에게 간결히 알리고 이에 대한 승인을 받으려고 하였다. 물론 승인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절차를 위함이었으며 설령 승인을 받지 못 한다고 해도 모두는 그걸 무시하고 저쪽 세계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사실을 듣게 된 상층부의 사람들은 다소 믿지 못 하는 반응들을 보였지만 그 이슬비가 함께 나서서 자세한 사정을 설명과 간곡한 부탁, 그리고 이에 응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하였던 볼프강의 의견 등을 통하여 다소 시간이 걸리기는 하였어도 상층부의 사람들은 이에 대해 승인을 하고 정식으로 그쪽 세계의 인류를 지원할 것을 결정하였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를 이용해 그쪽 세계로 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 장치로는 많이 잡아봤자 스무명 정도의 인원까지만 이용할 수 있어요. 이동하는 것과 양쪽을 이어주는 통로를 유지할 때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죠. 만약 많은 인원이 이동을 하려고 하면 이동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많이 소모될 뿐더러 한 번에 통과할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되어 있으니 그만큼 통로를 오래 유지해야 해서 결국 이건 이것대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되죠. 그래서 지금 있는 에너지로는 20명 정도까지가 최대에요."

유니온 상층부는 많은 지원 병력과 물자를 보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은 보급 물자는 고사하고 소수의 인원만이 그쪽 세계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쪽 세계의 인류를 지원하겠다는 결정이 취소될지도 모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에 김유정이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바로 모든 클로저들 중에서도 정예 중의 정예인 클로저들만을 선발해서 소수 정예로 지원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자칫 잘못하면 이쪽 세계에서 중요한 전력이 되는 클로저 요원들을 한꺼번에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위험한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실이 이러하니 상층부의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망설이게 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정예 중의 정예인 클로저들만으로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지원은 20명 안으로 한정된 소수, 게다가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에는 그쪽 세계로 돌아가기 위한 에너지만이 남은 상태라 그 지원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십 분을 고민하던 끝에 한 가지 희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유니온의 기술연구 개발팀에서 들려온 소식이었다. 상층부의 사람들이 이 문제로 잠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동안 그 와중에 김유정이 기술연구 개발팀의 일부 사람들에게 그 이슬비의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를 보여주도록 하고 한 가지 가능성을 물어보았다. 그 가능성이란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를 휴대용이 아니라 구조물 형식의 장치로 개조한 다음 작동하면서도 계속해서 에너지를 충전하여 그쪽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의 가능 여부였다.

대답은 'YES'였다. 작동에 필요한 근본적인 부분은 온전히 유지하면서 그 외의 부분만을 따로 개조한다면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어디까지나 외적인 부분만을 개조하는 것일 뿐이니 오늘 안에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로써 소수의 인원만으로 지원을 보내야만 한다는 걱정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상층부의 사람들은 드디어 고민을 떨쳐내고 지원을 보낸다는 결정을 확고히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3팀은 우리 유니온 내에서도 최정예나 다름없는 팀이에요. 그러니 무조건 저쪽 세계로 가게 되겠죠. 뭐, 다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겠지만. 어쨌든 출발 예상 시간은 대략 오늘 밤 10시쯤이니 다들 그때까지 마음의 준비를 끝마치고 와주세요. 그럼 다들 그때 보죠."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의 개조의 완료는 대략 밤 10시, 그때까지 3팀의 멤버들은 각자 돌아가서 마음의 준비, 그리고 각오를 다지게 되었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오렴, 우리 아들! 오늘은 한바탕 큰일이 있었다며? 그래도 해결되서 다행이야. 어쨌든 이제 곧 저녁 될 테니까 저녁 준비하자."

"저... 엄마, 실은 말이죠..."

집으로 돌아온 이세하는 아직 자세한 사정을 모르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 서지수에게 어떤 사정이 있고 앞으로 자신이 동료들을 포함한 다른 클로저들과 함께 어디로 갈 예정인지에 대해 숨김없이 서지수에게 얘기하였다. 얘기를 들은 서지수는 방금까지만 해도 표정에 만연했던 웃음기가 사라진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 세하야, 그 차원종들한테 공통적으로 꼬리가 달려있지 않더니? 길고 가느다란... 뭐랄까, 도마뱀 같은 꼬리?"

"아, 그러고 보니 그 녀석들한테 그런 꼬리가 달려있긴 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으세요?"

'설마...!'
"그건... 이제 너한테도 털어놔야겠구나."

"네? 뭐를 말이에요?"

서지수는 한껏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며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실은... 네가 오기 전에 네가 먹을려고 냉장고에 놔뒀던 푸딩을 내가 먹어버렸어!"

"... 네에? 아니, 그걸 왜 드신... 게 아니라! 설마 털어놓는다고 하신 게 그거에요?!"

"그런데?"

"뭐에요, 그게! 괜히 긴장하고 얘기를 들은 저만 바보가 된 기분이잖아요!"

"자자,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고~ 어서 저녁 준비나 하자. 나 배고프단 말이야~"

서지수는 그런 식으로 대화를 얼렁뚱땅 마무리를 지어버리며 이세하에게 빨리 저녁 만들어달라고 애처럼 **댔다.

'미안, 세하야. 아직 확실히 알게 된 것도 아닌 사실로 너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사실을 얘기해주지 못 하는 엄마를 용서해줘.'

"정말이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출발 예정 시간이었던 밤 10시가 되었다. 각자 각오를 다지고 온 클로저들은 한 명 한 명이 여느때보다 더욱 비장한 모습들이었다. 이번에는 지금까지의 평범한 임무와는 수준이 틀린, 인류가 멸망 직전까지 몰리게 된 다른 세계로 가서 그 세계의 인류를 유린했고 여전히 그러는 중인 초월적인 존재와 그 세력들에게 맞서는,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수 있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임무였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누구든지 이 임무가 클로저로써의 마지막 임무,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마지막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도 한 가지 위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현재 유니온 내에서 최정상에 위치한 3팀인 검은양, 늑대개, 사냥터지기 팀의 전원 참전, 그리고 과거 차원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지금도 모든 클로저들의 우상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는 알파퀸 서지수의 참전이었다.

"엄마는 꼭 안 오셔도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나도 가만히 있을 일이 아니잖니? 같이 싸울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잖아? 그것도 아니면 이 엄마가 같이 가는 게 불편하니?"

"그런 건 아니에요."

"후후, 그래도 지금은 우리 아들이 나보다 더 강하니까 여차할 때는 이 연약한(?) 엄마를 지켜줘야 한다?"

"......"

한편, 서지수가 참전한다는 소식을 들은 한 사람은 사냥터지기 팀에게 자신도 데려가달라며 부탁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서지수의 클론이자 지금은 사냥터지기 팀의 조력자로써 틈틈이 활동하는 흑지수였다.

"서지수도 참전한다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건데? 나도 예전보다는 더 강해졌고, 충분히 너희들의 도움이 되어줄 수 있다고! 그런데 왜 안 된다는 거야?"

비록 클론인 탓에 오리지널인 서지수보다는 힘이 약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서지수의 클론이라는 기본적으로 높은 스펙과 지금껏 사냥터지기 팀의 곁에서 함께 싸워온 경험으로 인해 예전보다 강해졌기 때문에 아군으로써 싸운다면 무척이나 든든할 것이었다. 하지만 사냥터지기 팀은 어째서인지 흑지수를 이곳에 남아서 기다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방해가 되는 거야...?"

"그렇다는 뜻이 아니야. 다만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다시 그 녀석들이 이 세계로 침공해 올 가능성이 없지 않아 있다고. 그것에 대비해서라도 몇 명쯤은 강한 사람이 남아있는 편이 좋아. 그러니까..."

"그건 그냥 표면적으로 말하는 것 뿐이잖아! 본심을 말해줘..."

볼프강이 그렇게 말하였지만 흑지수는 그 말은 그저 단순히 표면적인 이유에서 말하는 것이라는 걸 간파하고 볼프강을 비롯한 사냥터지기 팀 멤버 모두에게 본심을 얘기해달라고 하였다. 이에 볼프강이 잠시 조용히 흑지수를 바라보다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었다.

"우린 너랑 처음 만났을 때 너를 위험에서 계속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었지. 이번 일은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보다 더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몰라. 우린 너를 그런 위험한 곳으로 데려가고 싶지 않아서 그래."

"바보... 위험한 건 너희들도 마찬가지인데..."

"미안해,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부탁할게. 우리들을 믿고 기다려줘."

"... 무사히 안 돌아오면 그때는 모두 성층권... 아니, 우주 밖으로 날려버릴 테니까 꼭 돌아와야 해! 알았지?!"

"이거야 원, 무서워서 꼭 무사히 돌아와야겠군. 그래, 알았으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이로써 클로저들이 모든 준비를 끝마친 것을 확인하고 그 이슬비가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를 작동시켰다. 그 와중에 혹시 문제가 생겨서 이상한 곳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도 제기되긴 했었지만, 그 이슬비가 말하길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는 자신이 지나온 이동 경로에 해당하는 통로를 똑같이 개방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이쪽 세계로 넘어올 때와는 달리 불안 요소는 없다고 하며 안심하라고 하였다.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저희 세계의 인류를 도와주실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언젠가 꼭 갚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가 통로를 개방하기 전에 이슬비는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클로저들에게 큰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전하였고, 간결하게 들었던 것이지만 아직 이렇게나 어린 소녀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며 이런 말까지 들은 클로저들은 사기가 한껏 충만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게 되었다.

그 이슬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공간 워프 디바이스가 이쪽 세계와 그쪽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개방하였고, 클로저들은 본부에서 준비한 물자들을 가지고 차례대로 그 통로 안으로 진입하였다. 드디어 평행 세계의 인류를 해방한다는 전대미문의 큰 임무가 시작된 것이다.


---------------------------------------------------


2024-10-24 23:21: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