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32)

벨리에나 2018-04-23 2

 조금만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이 어떤 공간에 서있는지 알 수 있었다. 차원 세계, 원래는 하나였던 원반들이 서로 다른 힘을 내뿜으며 공간을 뒤트는 곳. 균열이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며 공간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두 존재의 싸움을 말리지 않고 바라보는 더스트의 입장에서 이처럼 살이 떨리는 싸움은 처음이었다.


 아자젤은 원반을 독점하고 있는 차원종답게 유연한 원반 사용이 가능했다. 원반을 체내에 집어넣어 자신의 힘을 극대화시키면서도 맥스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강제적으로 원반을 꺼낸다. 균열을 열어버릴 뿐만 아니라 열린 균열을 깨뜨리면서 인간 세계로 오염을 흘려보내 맥스가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행동은 오히려 맥스에게 빈틈을 보이는 행동이었다.


 유연한 사용이 가능하다고 해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자젤이 맥스의 주의를 끌기 위해 균열을 깨뜨린 것은 좋은 시도였다. 다만 맥스가 아자젤의 방해를 예상하고 있던 것이 문제였다. 맥스는 두 세계 간에 이상 차원 균열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반차원막을 펼쳐두었다. 오염 물질은 넘어오지 못하고 균열이 스스로 닫히게 만드는 반차원막이었다. 맥스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정신이 없던 아자젤은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애꿎은 차원 세계의 공간만 부수고 있었다.


 수많은 촉수를 피하거나, 반대로 일부러 촉수에 붙잡힌 다음 불안정한 위상력을 역류시킨다. 촉수 몇 개에 묶인다고 해서 맥스의 돌진이 멈출 리가 없다. 끊어지지 않고 무한히 늘어나는 촉수에 서로가 연결되자 불리해진 것은 아자젤이다. 아자젤이 원반의 힘으로 맥스를 이상 공간에 보내버려도 연결된 촉수는 끊어지지 않는다.


 긴 공방전 끝에 맥스의 공격이 아자젤에게 먼저 직격했다.


 맥스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체력이 많이 빠졌던 아자젤은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수많은 세월 동안 흘려본 적 없던 피가  온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손과 몸을 적시는 피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자젤. 맥스는 잠시 공격을 멈췄다.


 "원반에게 선택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처참하단 말인가."


 쿨럭 거리며 가슴을 움켜쥔다. 원래의 모습이나 인간의 모습에서도 동일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아자젤은 덩치가 커다란 본체 대신 타격 범위가 작은 인간의 모습을 선택했다. 다만 그가 흘리는 피는 인간의 것이 아닌, 이 주변 공간과 잘 어울리는 새까만 피였다.


 "더 할 생각인가?"


 힘으로 촉수를 끊어버린 맥스의 질문이 들려온다. 군단의 총사령관인 자신을, 모든 군단을 통솔할 수 있는 자신을, 인간이 내려다보고 있다.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자신의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이 놀라웠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아자젤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원반 장악: 다차원 개방



 아자젤의 피가 주변 공간을 향해 빠른 속도로 퍼졌다.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 수많은 균열들이 개방되었다. 맥스는 투구 안에서 당황한 표정을 보였다. 인간 세계와 연결된 균열은 없었다. 하지만 몇 안 되는 차원이 원반의 힘으로 강제 조작되면서 수많은 차원들이 만들어졌다. 조작된 차원에서 흘러나오는 오염 물질은 어떠한 피해를 받지 않는 아자젤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에게 대단히 위험했다. 아자젤은 맥스를 노려보았다. 기분 나쁜 미소와 표정을 보이며 자신의 손에 죽을 존재가 맥스라는 것에 기뻐했다.


 맥스가 움직였다.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진 맥스. 온 몸의 힘을 끌어내 다차원을 개방하고 있던 아자젤은 눈으로만 맥스를 찾았다. 그때, 차원 개방으로 들어오던 막대한 양의 오염 물질이 비정상적으로 어떤 곳을 향해 역류하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맥스는 모든 오염 물질을 흡수하고 있었다.


 아자젤은 경악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하나의 차원 정도는 가볍게 삭제시킬만한 규모의 오염을 단 한 명의 인간이 받아들이고 있다. 맥스는 극도로 위험한 오염으로 인해 각성하게 된 자신의 기술 중 하나를 발동시켰다.


 각성: 공간 제어


 공간이 경직되면서 아자젤의 다차원 개방이 중단되었다. 모든 공간을 헤집으며 적의 무적을 해제시킨다. 공간을 수차례 뒤집으며 적의 육체를 붕괴시킨 뒤 적의 정신에 오염으로 한층 더 강화된 불안정한, 극한의 위상력을 주입시킨다.


 아자젤이 쓰러졌다. 육체와 정신이 동시에 소멸하고 있었다. 오염이 그의 몸을 좀먹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맥스를 올려다보았다. 그 정도의 오염을 받아들인 이상 맥스도 무사할리가...... .


 

 정식 결전기: 찬란한 생명



 맥스의 흑색 갑옷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한다.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찬란한 빛이 쏟아진다. 동시에 그의 몸에 스며들던 오염이 깨끗하게 정화되었다. 다차원이 닫히고, 차원 세계의 공간이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갑옷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생명의 기운이 만나자 강렬한 힘이 생성되었다. 맥스는 융합된 하나의 힘을 손에 쥐고, 허탈한 웃음을 보이는 아자젤의 앞에서 터뜨렸다.



 베를린지부, 연구동.


 다급한 발걸음이 복도 전체에 울린다. 에릭, 2분대 아이들을 살리려는 에릭의 발걸음이다. 에릭은 사냥터지기 성 주변에 실패작이 돌아다닌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감시 카메라를 관리하는 모니터실에서 경비시스템이 발동하여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연구동으로 내려가던 길에 모니터실이 있었기에 에릭은 감시카메라를 살펴볼 수 있었다. 육체가 기절한 루나와 소마를 업고 달아나는 1분대 요원들, 성 뒤편에 있는 샛길을 통해 베를린지부로 오고 있던 김재리.


 그리고 자신들이 완성작이 되기 위해 2분대에게 달려드는 실패작.


 에릭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동문이 옆으로 스르르 열리면서 에릭이 연구동으로 들어왔다. 연구동에선 이미 수많은 연구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도 현재 상황을 알고 있던 것이다. 워낙 바쁜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에릭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루드비히!"


 주름으로 가득한 이마, 대충 깎은 수염에 하얀 머리카락. 인공 클로저의 제작에 가담한 대표 연구원이자 현 베를린지부 연구동의 최고 책임자, 루드비히 크로이처. 오로지 루드비히만이 움직이지 않는 연구원이었다. 루드비히는 바깥의 상황을 볼 수 있는 모니터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죄인이야...... ."


 에릭은 루드비히의 어깨를 강하게 돌렸다. 힘 없이 늘어진 팔, 죽어있는 눈동자. 에릭은 버럭 화를 냈다.


 "당장 아이들의 코드를 멈춰야합니다!"

 

 눈물을 글썽이는 루드비히.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뒤늦게라도 실험체를 아껴주었다.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좋으니 사람답게 대하고 싶었다. 그러나 연구동에는 수많은 연구원이 있었고, 루드비히는 한 사람의 목소리에 불과했다. 그는 아이들을 구원할 수 있는 행동으로 실천할 수 없었다.


 "어떻게 말인가? 저 아이들의 코드는 철저하게 조작되었어. 다 부질 없는 짓일세."

 "맥스 요원의 기계의수와 지금까지 그에게서 추출한 위상력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이용해야합니다!"

 "...... 이론적으로 가능하겠지만 완성된 의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위상력자가 필요하다."


 에릭은 바깥에 있던 강력한 위상력자 트레이너를 떠올렸다.


 "있습니다. 설득해야겠지만,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루드비히, 당신이 연구원들을 모아주십시오."

 "...... 나 같은 놈도, 아이들을 구할 자격이 있는 건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후회할 생각입니까?"


 루드비히는 에릭의 말에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연구원들은 내가...... ."
 "그만두게. 에릭, 루드비히."


 연구동의 자동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연구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현재 사냥터지기 팀 최고 관리자인 베를린지부 지부장. 에릭은 망설임 없이 지부장에게 다가갔다.


 "지부장님, 지금 당장 2분대 요원들의 코드를...... ."


 퍼억!


 에릭의 몸이 붕 뜨면서 일정거리를 날아갔다.


 루드비히는 지부장의 뒤에서 나타난 세 명의 존재를 발견했다. 손목과 발목 부분의 구속이 뜯겨진 구속복에, 입에는 구속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던, 실패작 중에서도 그 위험성이 극에 달하던 자들이었다. 힘의 규모로만 따져보면 사냥터지기 팀의 요원들을 가볍게 뛰어넘지만, 폭력성이 너무 강해 최하층─맥스가 갇혀있던─의 윗층에 갇혀 있던 완성된 실패작들이다. 루드비히는 연구원들에게 에릭을 부탁한 다음 앞으로 나섰다.


 "지부장님, 어째서 그들을 꺼내신 겁니까?"

 "메리에게 연락이 왔다. 이 '실패작'들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군."


 루드비히는 메리라는 이름이 언급되자마자 눈을 부릅 뜨며 주먹을 쥐었다.


 "...... 당신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 '아이'들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때문에 지하에 가둬둔...... ."


 지부장은 몇 걸음 앞으로 나섰다.


 "난 말일세. 슈타인과 함께 총본부를 타도하겠다는 목적은 같았지만 방법은 달랐지. 내가 인공 클로저를 만들기 시작하자 슈타인이 말렸던 것이고, 난 결국 몇 안 되는 인공 클로저를 완성시킨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지부장의 움직임에 따라 완성된 실패작들이 움직였다.


 "현 상황을 한 번 볼까. 내가 사용하려던 2분대 아이들의 코드를 쥐고 있는 총장은 검은양-늑대개 팀을 먼저 없애려고 하지. 메리? 호오, 이 대단한 스파이를 보라고. 총장과 힘을 합쳐 베를린지부 전역에 방해 전파를 퍼뜨렸지만 베를린에 모인 클로저를 죽이기 위해 모든 실패작을 깨웠지. 그 실패작을 깨우는 건 내 도움을 받았고 말이야."


 지부장이 멈췄다.


 "적대 관계이기도 하고, 협력 관계이기도 하다. 난 메리와는 다르게 2분대 아이들은 죽이고 싶지 않단 말이야. 그들에게 남아있는 코드, 절대적인 명령권은 정말 유용해. 이 실패작들에게 남아있는 맥스의 힘을 이용해 아이들의 코드를 해제시킨 뒤, 다시 내 것으로 만들면 그만이지."


 슈타인이 관리국에서 일할 때, 베를린 지부장은 클로저의 가능성을 위해 약간의 인체 실험을 진행한다고 미리 알려주었다. 슈타인은 차원종 무기 실험과 약품 관련 실험인 것을 확인한 뒤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실패작이 나오게 되면서 실패작의 처리가 점점 늦어졌다. 결국 관리국의 귀에 인공 클로저 제작이라는 말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슈타인은 지부장을 꾸짖으며 그를 말렸지만 이미 몇몇 인공 클로저가 탄생한 뒤였다.


 "완성된 실패작들을 조종하는 걸 대가로 메리가 조건을 걸어오더군. 아이들을 다시 '교육'하겠다고 말이야. 물론 1분대는 그대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복부를 쥐고 에릭이 일어났다. 갈비뼈가 몇 개나 부러진 걸까. 움직이는 것이 힘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에릭은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루드비히 옆으로 다가갔다.


 "지부장님......, 크윽, 제, 제발 멈춰주십시오. 대체,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지부장은 자신이 했던 말에 추가로 설명했다.


 "말했잖나. 난 총본부를 타도하겠다고. 나의 방법은 다른 이가 따르지 않을 테니, 조종해서라도 해낼 것이다."
 "타도가 목적이라면 슈타인 국장님을 도...... ."


 콰직.


 에릭은 목과 입에 힘을 주어 목이 돌아가지 않도록 했다. 완성된 실패작에게 몸이 비틀어질 만큼 강하게 걷어차인 에릭은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주름 위로 핏줄이 생긴 지부장은 표정에서 분노를 엿볼 수 있었다.


 "아아, 한 가지 더. 맥스가 사라진 지금, 슈타인을 없앨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루드비히는 에릭이 기절한 것을 확인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본부 타도? 이런 당신이 총본부를 대신하겠다는 겁니까! 우리는......?"
 
 루드비히의 말 끝이 흐려졌다. 지부장의 반응이 이상했다. 고개까지 갸웃거리던 지부장은 조금씩 웃음을 보였다.


 "그게 이상한가? 아아, 혹시...... 내가 총본부를 무너뜨린 뒤 유니온을 바로 잡을 목표를 가지고 있을 것 같나?"


 지부장의 웃음이 연구동을 가득 채웠다. 무서울 정도의 감정 조절을 보여주었다. 넘어갈 정도로 크게 웃다가도 금새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면서 표정을 굳혔다.


 "그것도 나와 슈타인의 다른 점이다. 타도의 방법뿐만 아니라, 타도 후의 행동까지. 독일 지부는 총본부를 대신할 것이다. 모든 클로저가 나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전제로."



 사냥터지기 성.


 볼프강과 미스틱은 불안정한 땅 위에서 실패작들이 막는 길을 뚫고 있었다. 등에 메고 있는 소마와 루나가 그들의 행동에 제약을 주었다. 김재리는 에릭을 홀로 보낸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볼프강과 미스틱이 정리해준 샛길을 통해 베를린지부로 달려갔다. 다행히 샛길이나, 베를린지부 건물 근처에는 실패작들이 없었다.


 사아악!


 실패작의 날카로운 공격이 미스틱의 다리를 스쳤다. 미스틱은 아픔을 참으며 자신을 공격한 실패작의 몸을 강하게 짓밟고 검으로 찍어버리려고 했다.


 "미스틱...... ."


 미스틱이 검을 멈췄다. 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왜 저를 공격해요? 왜 저를 공격하는 거예요?"


 아이의 목소리가 머릿속 깊숙하게 스며들어왔다.


 혼란스러워하는 미스틱을 향해 루나를 닮은 실패작이 달려든다. 볼프강은 뒤늦게 외쳤다.


 "미스틱!"


 미스틱은 자신의 어깨를 내주면서 달려오는 실패작을 베었다. 거의 동시에 자신이 밟고 있던 실패작까지 찔렀다. 그녀는 검을 옆으로 흩뿌리며 피를 뿌렸다.


 등에 있던 소마가 등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낀 볼프강. 그는 벨리알과의 연계 공격으로 주변을 정리한 다음 미스틱에게 손을 내밀었다.


 "미스틱, 마취약이 필요해. 아이들이 깨어나려고 하고 있어."
 "여...... 응?"


 루나가 꿈틀거리며 미스틱은 꺼내던 마취약을 떨어뜨렸다. 마취약은 바닥에 닿자마자 깨졌고, 두 사람은 입과 코를 가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아이들이 눈을 떴다.


 후우우웅!


 깨어난 아이들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볼프강과 미스틱은 아이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이들이 하늘 위로 올라가면서 실패작들이 짐승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명령 변경. 명령 내용,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의 지도자 김유정과 트레이너를 죽여라.'


 아이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울리는 새로운 명령. 검은양-늑대개 팀 전체를 상대하라는 예전 명령을 삭제하고 새로운 명령을 전신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명령...... 실행."


 루나와 소마는 앞쪽으로 떨어지다가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그곳에 있던 실패작들은 몸이 짓밟히면서 터지고 말았다. 사라진 소마와 루나를 찾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던 볼프강과 미스틱. 그때, 저 멀리 소마의 몸 주변에 전격이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눈에 띄였다.

 


 램스키퍼.


 "...... 내 친구들을, 사냥터지기 팀을 구해줘...... ."


 흑지수는 실패작들을 뚫고 오면서 늑대개 팀과 만났다. 그녀를 알아본 늑대개 팀 대원들이 그녀를 램스키퍼에 데려왔다. 트레이너는 김유정에게 흑지수를 부탁한 후 다시 전투 현장으로 나갔다. 김유정은 흑지수와 마주보며 대화하고 있었다.


 "조금만 진정해주세요. 우리도 그들을 구하고 싶지만 그 사람들은 코드를 발동하고, 우리를 공격했어요."

 "볼프강은 속은 거야. 그래, 볼프강이 코드를 발동한 것은 맞아. 하지만 그는 아이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못해."

 "그럼 소마 요원이 구로역에서 늑대개 팀을 습격한 것은 뭐죠?"

 "그, 그건...... . 나도 그건 모르겠어. 소마는 코드가 발생하기 전부터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었어."

 

 김유정은 상체를 뒤로 빼면서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김유정은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김유정은 김가면에게 무언가를 부탁했고, 김가면은 녹음된 장비를 꺼낸 뒤 그것을 틀었다. 흑지수는 귀를 기울였다.


 '여긴 오퍼레이터 앨리스. 사냥터지기 팀의 오퍼레이터 앨리스. 이 통신이 들리십니까? 현재 사냥터지기 팀은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총장과 메리, 그들이 사냥터지기 팀을...... .'


 녹음은 이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김가면은 녹음 장치를 가져갔고, 김유정은 흑지수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방해 전파를 뚫고 어떻게 전달된 건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여기까지예요. 이 내용은 방금 전달 받았어요. 위치는 관리국 쪽이라고 하더군요. 사냥터지기 팀이 총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추측해보자면, 볼프강 요원이 코드를 발동했음에도 명령을 내리지 못하는 건 총장이 개입했기 때문이죠. 이 말이 맞다면 코드에 관한 건 볼프강 요원이 속았다고 할 수 있죠. 그럼 이 메리라는 사람은 누구죠?"


 흑지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램스키퍼를 지키던 쇼그가 김유정에게 메리에 관한 것을 알려주었다.


 "메리 셀리 브리지스톤, 전(前) 사냥터지기 팀 오퍼레이터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인공 생명체들에 대한 학대로 퇴출당했다고 합니다."

 "아, 고마워요. 음......, 좋아요. 우선 한 가지 결정은 내릴 수 있겠네요."


 김유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지수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안심시켰다.


 "녹음으로는 확정 지을 수 없어요. 다만 속초에서 우리와 함께 싸워준 당신이 말해주면서 확신했어요. 사냥터지기 팀을 구해내서 이 상황을, 그리고 늑대개 팀과의 오해를 풀어내겠어요."

 "고, 고마워......! 아, 한 가지만 더 부탁할게. 지금 빅터와 김도윤이 고립되어 있어. 그 바보들, 내가 홀로 가는 게 빠를 거라고 자신들이 시간을 끌어준다고 했어."


 김가면은 김도윤의 이름에 반응하여 흑지수에게 다가왔다.


 "도윤이가 어디 있다는 겁니까?"

 "아마도...... ."



 베를린지부 남부, 버려진 오솔길.


 "빅터 씨."

 "편하게 불러라."

 "빅터, 짧았지만 당신이 좋은 차원종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군요."

 "늑대개 팀의 그 차원종이 첫 번째인가?"

 "네. 레비아 대원라고 해요. 미소가 참 아름다운 분이에요. 소마 요원이 좋아할만한 미소지만, 소마 요원은 차원종을 극도로 싫어하죠."

 "그렇군...... ."


 김도윤은 빅터의 몸을 토닥거리고 있었다. 흑지수를 램스키퍼로 보내기 위해 실패작들을 유인하던 중 김도윤은 빅터에게서 떨어졌고, 빅터는 김도윤을 구하다가 실패작들의 공격을 받고 말았다. 그 뒤로 빅터는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실패작들을 상대하다가 베를린지부의 남쪽, 이곳 버려진 오솔길까지 오게 되었다. 따라오는 실패작은 없어졌지만 빅터는 무리했기 때문에 상처가 심해졌다.


 빅터는 피를 토해냈다.


 "쿠, 쿨럭...... ."

 "빅터!"

 "...... 거긴 귀니까 조금 뒤로 가줬으면 좋겠군."

 "...... 미, 미안합니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관리되지 않던 오솔길이라 나무들이 햇빛을 가리는 것 같았지만 그들에게도 따스한 빛이 다가왔다. 새벽이 넘어가고 있었다. 빅터는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태양을 보며 눈물 같은 것을 흘렸다.


 "차원종에게도...... 영혼이라는 게 있나...... ."


 김도윤은 빅터의 몸에 머리를 박고 조용히 흐느꼈다.



 10초 뒤.


 "서, 서지수 님은...... 치료 능력도 있으신가요?

 "뭐, 어느 정도. 너도 노력하면 치료 능력 말고도 다른 능력을 배울 수 있어. 도와줄까?"

 "정말요?"

 "지금은 말고. 너희 병대를 옮겨오느라 피곤해."


 김도윤은 귓가에 들려오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김도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유, 유, 유, 유하나 양?"


 김도윤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유하나와 카밀라 옆에 서있던 서지수를 보고 뒤로 넘어갈 뻔했다.


 "서...... ."


 서지수는 김도윤의 손을 붙잡아주었다. 그를 몸 쪽으로 당기면서 자신은 슬쩍 피해주었다. 김도윤은 그대로 장미숙 요원에게 날아갔다. 장미숙은 김도윤을 붙잡아주었다. 서로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보며 서지수는 피식 웃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치료한 빅터를 깨웠다. 죽다 살아난 빅터는 주변에 가득한 병력을 보며 잠시 멍한 상태가 되었다.


 "당신들은......?"

 "좋아, 혼란스럽겠지만 당장 현재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
 "...... 사냥터지기 팀 아이들이 코드에 조종당하고 있다."

 "와, 말이 잘 통하네. 도와줘서 고마워. 잠깐 쉬고 있어."


 서지수는 빅터의 몸을 두 번 두드려주고 다시 잠재웠다. 피곤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움직여야했다.


 검은양-늑대개 팀과의 연락이 닿지 않아 서지수는 직접 한국에 들렸다. 그곳에서 만난 건 잔류 군단을 처치하던 칼바크 병대와 장미숙 요원이 이끄는 감찰 요원들이었다. 고위급 감찰 요원 장미숙은 서지수에게 두 팀이 독일로 향한 것을 알렸다. 서지수는 그들과 함께 군단까지 처리한 다음 혼자 독일로 향하려고 했다.

 

 홀로 가려는 서지수를 말린 것은 유하나와 카밀라였다. 그녀들은 자신들도 돕겠다며 간절히 부탁했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서지수는 고민 끝에 장미숙이 이끄는 감찰 요원들까지 독일로 데려갈 것을 결정했다.


 베를린지부의 특정 위치로 이동시키는 것은 소모되는 힘이 많아 불가능했다. 서지수는 베를린지부 근처로 위치를 설정한 다음, 도착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자신의 위상력으로 조금씩 연결시켰다.


 병대들은 갑작스러운 공간 이동에 잠시 흐트러진 상태였다. 공간 이동에 실패한 병사들은 없었지만 몸져누운 병사들은 꽤 보였다. 장미숙과 카밀라는 요원들과 병사들을 진정시키며 전투를 준비시켰다. 유하나는 지쳐보이는 서지수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괜찮으신가요, 서지수 님?"

 "나는 조금 쉬고 나서 움직일 테니, 저것들은 너희 병대가 상대하는 걸로."

 "네......?"


 유하나는 서지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구름처럼 몰려오는 실패작들. 서지수는 표정이 어두워지는 유하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다.


 "일할 시간이야."




 이야기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습니다. 재미삼아 생각해본 캐릭터로 30화 넘게 적을 줄은 몰랐습니다. 초창기에는 세이브를 따로 만들지 않고 그 날 즉석에서 적었기 때문에 지금 스토리와 비교해 봤을 때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제가 조금씩 수정해 나가고 있습니다.


 추가된 인물이나 설정에 대한 설명은 편이 끝날 때 종종 적어두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은 이야기 안에서 찾길 바라는 마음에 따로 편을 나누어 올리거나 하진 않겠습니다.

 

 항상 부족한 실력에도 재미있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24-10-24 23:19: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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