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세하] 거울 같은 + 작은 공지

루이벨라 2018-03-28 4

※ 서술자는 모브입니다.
※ 여기서 나오는 천사라는 아이는 지고세하





 처음 그 아이를 본 건 사람이 복작이던 어느 횡단보도 교차로에서였다. 이 도시에 익숙하지 않다는 듯이 멍하게 서 있으면서 하늘을 보는 그 아이를 난 차마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내 손에 이끌려 온 그 아이는 나를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얘, 이 도시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니?
 -...도시?
 -횡단보도 가운데에 있었잖아! 자칫했다가는 교통사고 날 뻔 했다고.
 -교통사고...?

 모르는 게 엄청 많다는 듯이, 내가 하는 말마다 토를 달던 그 아이를 이대로 방치할 순 없었다.

 그 아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아이 같았다. 하는 행동도 그렇고, 말투도 그렇고, 도저히 현실에 있을 수 없을 거 같은 외모도 그렇고...어쨌든 그 아이와 나는 금방 친해졌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염색 특이한 색깔로 했다.
 -염색 아니야. 날 때부터 그랬는데.
 -천연?

 그 아이는 남자치고 곱상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옆에 땋아진 머리를 매만졌다. 아이를 오랫동안 보았지만 아이의 모습은 처음 그대로였다. 더운 여름날에도, 추운 겨울날에도 아이는 언제나 반팔티에 봄 전용 자켓과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 옷들은 물론 아이의 모습은 언제나 티 하나 없이 깨끗했다. 대충 사정을 들어보니 노숙을 하는 거 같은데 그런 것 치고 너무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의 짙은 하늘색 눈을 보면 어딘지 모르게 빨려들 거 같은 신기한 느낌도 들었다.

 -너 정체가 뭐야?
 -음...

 너무도 신기한 분위기라 짓궂은 장난으로, 어느 날 한번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을 잠시 하더니 뭐, 너라면 괜찮겠지? 라며 자신의 속사정을 밝혔다.

 -나 사실은 여기 인간 아니야.
 -그럼 외국에서 왔어?
 -외국보다 더 먼, 어쩌면 더 가까울지도 모르는, 요즘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잠시 내려온 거야.
 -네가 무슨 천사라도 된다는 거야?

 아이의 말투라든가 성격이라든가 독특한 편이지만, 세상에 천사라니...내가 생각해도 정말 어이없는 반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진지했다. 내 물음에 쿡,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어?
 -...?
 -운이 좋네. 천사를 만나는 인간은 드물거든. 게다가, 이런 인간의 모습으로 강림한 천사라면 더더욱.

 뭐지? 아이의 목소리에 잔뜩 노이즈가 낀 것처럼 들린다. 어라...? 아이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뿌연 거울 너머의 어느 형체를 보는 느낌이다. 어...이 아이가 남자아이였던가, 여자아이였던가...? 아니, 그 와중에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더라? 코는 어떻게 생겼고, 눈은 또 무슨 색이었고, 보조개가 있었던가...?

 그런 혼란이 오던 중에 갑자기 아이의 모습과 목소리가 내 뇌에서 인지되기 시작했다. 뭐지? 아이는 내가 알고 있었던 모습 그대로 - 내가 그 모습을 잊어버렸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 나를 보고 싱긋 웃고 있었다.

 -인간들 사이에서 천사가 강림한다는 거, 가끔 있는 일이야.
 -방금 그건...?
 -아, 걱정 마. 네가 천사 강림한 걸 보는 게 처음이라서 그래. 두어번 지나면 익숙해질 거야.

 정말...천사였던거야? 난 신앙심이 그렇게 두터운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데...? 진짜...천사라는 거 있었던 거야?

 -천사의 몸과 인간의 몸은 달라서 천사가 지상계에 오래 있을 수는 없어.
 -그럼 네가 천사라면, 어떻게 몇 달 동안...

 여기에 나랑 같이 있는 건데?! 아이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거, 만들어진 인간의 몸이야.
 -만들어진 몸?
 -내 진짜 육체와 영혼은 지금 천계의 어느 거울 방에서 거울을 보고 있는 채로 가사수면 상태지. 진짜 같지만, 진짜가 아닌 몸.

 오히려 거울과도 같은 몸. 아이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인간계의 모든 감각이 거짓이라는 말을 했다. 자신은 무엇보다 인간이 아니었고, 인간이 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이 몸은 순찰을 위해 만든 임시방편적인 몸. 약한 충격에도 깨질 수 있는 거울 같은 몸.

 -그럼 지금 나랑 대화 나누는 것도...?
 -나한텐 거울 너머의 일인 것처럼 아늑하게 느껴지지. 그렇다고 못 살 정도는 아니야. 뭐, 타천사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제서야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횡단보도 교차로 가운데에서, 아이는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아이는 배고픔도 목마름도 피곤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건, 인간들에게나 필요한 감각이기에.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 교차로에서 그냥 날 놔두어도 되었어.
 -하지만! 가짜 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네 몸이잖아!
 -언젠가는 사라지는 몸이야. 그리고 또 만들 수 있는 몸이지.

 나에게 죽음 따윈 없어. 그냥, 난 다시 내가 있을 자리로 돌아가는 거야. 그것뿐이야. 아이의 말은 충격 그 자체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난 이런 아이의 태도에서 내가 이 아이와의 이별의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 * *



 "너, 어디야!?"
 -글세, 어디일 거 같아?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잘 있어, 나는 올라갈게, 라는 아주 짧은 문자였지만 누가 보낸 지 바로 감이 갔다. 뒷번호가 1004인 것부터 짐작은 가고 있었다. * 표시가 가득한 기상천외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을 때, 그 아이는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없을 줄 알았는데 받았다는 게 놀라웠고, 아이가 천하태평한 것에 더 놀라웠다.

 나는 지금 있는 힘을 다해 아이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올라간다니, 그거...이제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져서 '자신이 있어야할 곳' 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이지?! 물론 잘 되었다. 아이의 입장에서 따지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이 불안감은 무얼까?

 "너, 어떻게 올라가?! 나한테 인사도 없이..."
 -인사했잖아.
 "고작 그 짧은 문자로?"
 -아, 그거야? 인간계에 강림한 천사가, 어떻게 다시 천계로 올라가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이야?

 그게 아니잖아! 그냥 이상하게 불안하다고! 천사의 강림이라든지, 거울 같은 몸이라든지, 진짜 육체는 거울 앞에서 가수면 상태라든지,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는 몸이라든지...!

 잠...깐만?

 "너...설마..."
 -12시 되기 20초 전이군. 잘 있어. 너와 같은 인간을 만나서 즐겁긴 했어.
 "잠깐만!"

 다른 몸에 빙의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간단하게 따지면, 깨어나는 방법도 간단했다.

 그냥 그 몸을 부숴버리면 된다. 그 말은 즉...




 -이제, 꿈에서, 깨어나도록.




 와장창--!! 거대하게 무언가가 깨진 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렸다.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하자 이제 막 초침이 12시를 지나고 있었다.

 건너편은 이 대도시의 빌딩 중에서도 가장 높은 빌딩 중 하나로 손꼽히는 건물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몰려드는 걸 간신히 비집고 들어갔다.

 "거울?"
 "왠 거울이 떨어졌지?"
 "사람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네..."
 "..."

 다른 사람들 눈에는 '거울' 이라고 부르는 저것...내 눈에는 완전 다르게 보였다. 아니, 분명 내 뇌에서는 거울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난 저게 무엇인지 안다.

 역시 그런 방법이었구나...정말...정말 거울 같은 몸이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버렸어...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일으켜 세워주었다. 도저히...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사람이 죽는 장면' 을 목격했다.




* * *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고서 깨어난 곳은 내 방이었다.


 어랏...내가 언제부터 잠이 들었더라...? 벌써 날이 밝았다. 어젠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 그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 같은데...뭐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나도록.




 무슨 목소리를 들은거 같은데 뭘까...


 그래, 꿈인가 보다. 원래 꿈의 내용은 일어나면 잘 기억나지 않지 않은가.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내리쬤다. 오늘 날씨는 아주 맑았다.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루이벨라(애쿼머린)입니다.

심각한 공지는 아니고 요즘 새로운 소재로 새 글을 쓰는 것보다 예전에 썼던 제 글 리메이크하는 걸 더 선호하게 되어서요.

아마도 단편이나 시리즈 같은 중편을 위주로 리메이크할까 싶은데, 이왕 한다면 공홈은 아니고 다른 곳에서 투고했던 클로저스 장편도 리메이크할까 싶은데...양이 어마어마하더군요.(3년 연재하면 분량이 이리 방대해지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현실에 치이는 현재 상황에서 장편 리메이크는 무리더라도 아마 단,중편 리메이크나 새로운 단편으로 가끔씩 얼굴 내비칠 거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여기 처음으로 글을 올렸을 때 글 쓰시는 분들이 얼마 없으셨던 거 같은데 요샌 새로운 분들 많이 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슬슬 새로운 글을 도전해보고 싶은데 전투씬 묘사...는 3년이나 지났지만 왜 여전히 어려울까요. 전투씬 잘 쓰시는 분들 보면 참으로 부럽기 그지 없습니다 ㅠㅠ

피드백은 언제나 받는 부분입니다~그럼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2024-10-24 23:19:0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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