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24)

벨리에나 2018-03-20 1

 두 사람 사이에는 강한 기류가 흘러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사람은 현재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기 위해 하늘로 날아가는 중이다. 어색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모든 클로저의 존경 대상이라고 불리는 서지수, 그리고 그녀를 포함해 울프팩 팀을 육성한 클로저의 시초 맥스 엘트라.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서로에게 놓인 상황이 그들을 어색하게 만들었다.

 

 십 수 년 전, 아직 앳된 소녀의 모습이지만 엄청난 잠재력이 깃들어있던 서지수와 엄격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누구보다 아낀 당시 최강의 클로저 맥스. 그리고 현재, 영웅이라 불리지만 그녀의 인격을 무시 당하며, 한 아이의 어머니이자 모든 클로저의 빛이라 불리는 서지수와 육체의 일부분을 잃은 채 온갖 실험을 당했고, 자신이 전범인 기억을 잃어 목적 없는 행동만 반복, 주변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맥스.


 파아아아...... .


 맥스의 영역이 펼쳐지면서 주변 공간은 마치 땅을 밟고 있는 것처럼 공기가 안정되었고 주변 소리가 정상적으로 들렸다. 서지수는 고개를 돌렸다.


 "하실 말씀이 있나요, 교관?"

 

 이미 그녀에겐 자신의 기억이 돌아온 것을 밝혔다. 자신이 차원 전쟁의 전범인 것을 밝혔고, 그녀가 궁금해하던 것을 알려주려고 했으나 서지수는 우선 자신과 함께 유니온으로 가자고 말했다. 슈타인은 아무리 명령이라도 맥스를 데려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서지수는 개의치 않았다. 과거의 서지수와 현재의 서지수가 바뀐 점이 있다면 그녀는 모두를 이끌고 있다. 또한 모두는 그녀를 신뢰하고 있다.


 "내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음껏 해도 좋다. 난 너에게, 아니 너희에게 대답할 의무가 있다."

 

 서지수는 묵묵히 맥스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정면으로 옮겼다.


 "전범이라는 기억을 잃은 것. 전부 양보해서, 일단 넘어가죠. 그럼 기억을 잃기 전,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거죠? 슈타인 국장님에게도 직접 알린 게 아니라면서요?"

 "말하려고 했다. 내가 유니온에만 있었다면 말이지. 상층부와 불화가 생기면서 너희에게 알릴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면 난 모든 차원 균열을 닫고 세계에 용서를 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기억을 잃었고, 너희에게는 고통만 안겨주었다. 너희를 볼 수 없었다."

 "그럼 지금 모든 차원 균열을 닫을 수 있다는 건가요?"

 "난 지금 원반의 위치를 모르고, 무엇보다 아자젤과 참모장이 한 편이 되어 나를 막는다면 불가능하다."

 "...... 다른 질문을 해보죠. 제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한 건지 설명해보세요."

 "말 그대로다. 이세하의 선택에 의해 주변 인물들의 목숨이 움직인다. 너, 심지어 나까지. 난 사전에 그걸 막기 위해 이세하에게 말해두긴 했지만......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군. 너라도 그 아이들의 곁에 있어야할 텐데."

 "그건 걱정 마세요. 총장과의 대화가 끝나면 곧장 함께 돌아갈 테니까. 강제로라도 교관을 움직이게 하겠어요."



 화이트팽의 블랙 박스를 해석 하는데 성공하면서 유니온의 비밀을 알게 된 검은양 팀은 김가면과 함께 좋지 않은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특히 김유정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유니온 요원증을 꺼냈다. 임시긴 하지만 지부장의 자리까지 올라간 그녀는 갑작스러운 진급이 그녀를 옭아맨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데이비드를 떠올렸다. 자신의 욕심으로 몰락하긴 했지만 그는 유니온을 개혁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가 가진 개혁이라는 이름은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이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쾅.


 김유정은 요원증을 탁자 위에 올려두면서 손바닥으로 쳤다.


 "단순한 변화. 그것만으로 부족해요. 유니온은 다시 시작하는 게 맞아요. 모든 체계를 바꿔야 해요. 데이비드가 옳다고 하진 않겠어요. 하지만, 그가 유니온을 개혁하려고 한 건 바뀌지 않아요. 우리에겐 유니온의 모든 이를 끌어내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더 이상 모른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모른다면 배울 것이고, 안다면 실천할 테니까. 처음으로 실천하려는 건 모든 차원종을 적으로 만들지 않겠다는 거예요. 레비아 씨가 그렇듯이, 우리는 그들과의 적대 관계를 끊을 수 있어요. 구로역으로 가서 난민들을 구하고, 그 뒤로 더스트를 찾아갈 생각이에요. 트레이너 씨와 함께 말이죠. 여러분. 절 따라올 건가요?"


 검은양 팀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제이는 팔짱을 끼면서 후배들이 어떻게 대답할지 기다렸다.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이세하, 그리고 이슬비였다.


 "더스트를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더 이상의 싸움을 멈추고,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면 전 따르겠어요."

 "저, 저도 확실하진 않지만...... 사람들을 구하고 싶습니다!"


 망설이는 서유리. 그녀는 너무나 많은 정보에 의해 머리가 정리되지 않았다. 미스틸테인은 서유리를 대신해 먼저 나섰다.


 "레비아는 제 친구예요. 둘도 없는 친구죠. 더스트는 모르겠지만, 전 다른 차원종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 형 누나들을 따라갈래요."


 미스틸이 쪼르르 달려가자 서유리도 결심 했는지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솔직하게 말해서 화가 나요. 사람들을 지키면서 돈도 벌고, 전 유니온은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몇몇 사람들만을 위한다니...... . 클로저라는 것도, 결국 이용하려는 거잖아요? 세하, 슬비, 테인이 그리고 제이 아저씨와 유정 언니까지, 다 제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인데...... ."

 

 마지막까지 말을 아끼던 제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서유리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빙긋 웃었다.


 "구하고 싶으면 구해. 망설일 필요 있어? 우리의 적이 차원종, 맞는 말이지. 근데 우린 사람을 구하잖아? 사람을 공격하거나, 버리거나, 배반하는 그 어떤 존재도 우리의 적이라는 말이지."


 제이와 김유정의 눈이 마주쳤다. 김유정은 제이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소마의 치유능력 덕분에 볼프강은 심각한 부상에서 빠르게 치료 받았다. 베를린지부의 기지가 박살나면서 그들은 고성에 머물러 있었다. 부상 당한 사람이나, 연구원들이나, 그 외에 사람들까지. 모두 맥스에게 구해진 사람들이었다.


 앨리스는 사냥터지기 팀에게 내려온 명령을 직접 알리기 위해 어떤 사내와 함께 오고 있었다. 그는 피부가 하얗다 못해 창백할 정도였고, 머리카락도 회색이라 분위기가 음침했다. 앨리스는 딴청을 피우고 있는 사내를 집중시켰다.


 "저, 저기, 연구도 좋지만 집중해시길 바랍니다."

 "......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 집중해주십시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연구하던 게 꽤나 흥미로워서 말이죠. 이거 보십시오. 이번에 새로 개발한 약품입니다. 소마 요원의 체내에 있는 '소마'를 개량하여 만든 건데, 부작용이 적은 게 장점이고, 효과도 줄어든 게 단점입니다. 하하하!"

 "소마 요원님을 잘 아시나 봅니다?"
 "소마 요원을 포함해, 루나 요원, 미스틸테인 요원, 그리고 그 아이까지. 인공으로 만들어진 요원들의 신상은 제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앨리스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멈췄다.


 "저, 전 단지 사냥터지기 팀의 능력 각성 및 회복을 전담하시는 분이라고...... ."

 

 사내는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세웠다.


 "누구든, 비밀은 있는 법이죠. 하지만 전 알려드렸잖아요? 그러니 비밀을 감추는 유니온을 신뢰하지 마세요.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무엇이든 포기하거나 버릴 자들이니까. 어서 가시죠, 오퍼레이터 앨리스."


 회색머리의 사내는 멈춰있는 앨리스를 뒤로 하고 홀로 사냥터지기 팀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앨리스는 입술을 조금 깨물다가 다급히 사내를 쫓아 사냥터지기 팀에게 다가갔다.


 사냥터지기 팀은 김재리 요원과 함께 있었다. 김재리는 맥스의 기억을 찾아주기만 했지, 그의 기억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김재리의 기억을 읽은 슈타인은 안심하며 흑지수가 있는 성 지하로 갔다.


 "여러분, 여기 계셨군요."


 앨리스는 친근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루나와 소마에게 시달리던 볼프강은 재빠르게 앨리스에게 다가와 숨을 몰아쉬었다.


 "아, 앨리스. 정말로, 몹시, 진심으로 반가워. 무슨 일이야?"

 

 볼프강은 앨리스 옆에 서있던 연구원 복장의 사내를 발견했다. 루나와 소마를 김재리와 함께 천천히 다가왔다. 모두가 주변에 모이자 앨리스는 정식으로 사내를 소개했다.


 "여러분, 소개드리죠. 각종 약품 연구를 담당하던 에릭 칼리스 요원님입니다. 이번에 유니온에서 여러분의 능력 각성 및 회복을 위해 약품을 연구하고 있는데, 이쪽 에릭 요원님은 여러분에게 직접 약품을 투입하는 역할입니다. 연구원들 내에선 실력이 좋다고 하니 믿으셔도 됩니다."


 에릭은 직접 나서서 볼프강 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반갑습니다. 사냥터지기 팀. 기록을 통해서, 혹은 실험 일지를 통해서 본 분들이군요. 특히 소마 요원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체내에 있는 액체를 말이죠."


 에릭은 소마를 향해 씨익 웃었다. 그의 웃음은 다른 이들이 보기엔 소름 끼쳤지만 소마는 그가 해맑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소마는 볼프강 옆으로 끼어들어 에릭의 손을 낚아챘다.


 "헤헤, 뭔가 특이한 웃음이네요. 전 소마라고 해요. 약 소마가 아니라, 클로저 소마. 이젠 구분해주세요?"

 "네, 당연하죠. 클로저 소마."


 에릭은 볼프강과도 악수했다.


 "볼프강 슈나이더. 이 두 명의 선생님 역할이지. 굉장히 힘들었어. 혹시 피로회복제 같은 건 없나?"

 "아, 볼프강 요원님을 위한 피로회복제라. 잠시만요."


 에릭은 빠르게 작고 얇은 두 개의 유리관을 꺼내들었다. 하나는 빨간색, 하나는 파란색이었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각각의 엄지와 검지를 활용해 뚜껑을 열었다. 두 관 모두 액체로 가득했지만 에릭은 파란색 액체를 빨간색 액체에다가 부었다. 놀랍게도 액체를 넘치지 않고 빨간색 액체에 그대로 흡수되면서 보라색을 띄기 시작했다. 그리고 볼프강에게 넘겼다.


 "드시죠. 전 이걸 게보링이라고 부릅니다."

 "...... 뭔가 먹기 싫어지는 이름인데."

 

 볼프강은 그를 의심하며 보라색 액체를 마셨다. 순간, 볼프강의 눈이 번뜩이며 그의 어깨가 펴졌다. 볼프강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뭐, 뭐지? 갑자기 기운이 넘쳐?"

 "다행이군요. 그게 게보링의 효과입니다. 원하신다면 더 만들어드리죠."


 에릭은 관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빨간색 액체와 파란색 액체로 채워지는 관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다.


 "언제든지 만들어드릴 수 있습니다."


 에릭의 시선은 루나에게 향했다. 루나는 그의 생김새가 부담스러운지 멀찍이 떨어져있었다. 에릭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루나에게 다가가 허리를 굽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루나에게 속삭였다.


 "안나와의 합동 기술은 잘 봤습니다."

 

 루나는 깜짝 놀랐다. 에릭은 다시 형식적인 인사로 말했다.


 "반갑습니다, 루나 요원. 에릭입니다. 워낙 완전무결하여 제가 챙겨드릴 게 있나 싶네요. 혹시 약해지는 약이라도 드릴까요?"

 "그, 그런 걸 왜 들고 다니죠?"

 "어...... 제가 만들 수 있는 겁니다. 하하하!"


 루나도 에릭의 손을 잡아주었다.


 김재리와의 가벼운 인사가 끝나자 앨리스는 사냥터지기 팀에게 내려온 명령을 설명했다.


 "이번에도 클론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서지수 요원님과 흑지수 요원님의 활약으로 클론의 폭주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자신들의 실수라는 표현이 있더군요. 현재 흑지수 요원님은 슈타인 국장님과 함께 계시며, 제가 조사하여 알아볼 테니, 여러분은 사람들을 구해주십시오.

 볼프강 요원님과 김재리 요원님은 이곳 베를린지부를 보호하고 있으라는 명령입니다. 흑지수 요원님 홀로 베를린지부를 지키기엔 무리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또한 다시 한국으로 가야하는 상황입니다. 지하철 부근에 고위급 차원종 아자젤과, 더스트가 싸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이 그곳에 있으니 그들을 지원하라는 명분인 것 같습니다. 루나, 소마 요원님과 에릭 요원님이 함께 가실 겁니다."


 앨리스 뒤쪽에서 외눈 안경을 살짝 들면서 김도윤이 튀어나왔다.


 "물론, 저도 함께 갑니다. 잘하면 칼바크 병대와 미숙이가 합동해서 도우러 올 수도 있거든요."

 

 루나와 소마의 합동 작전. 볼프강이 따라가지 않는 것이 조금 섭섭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응원했다. 볼프강은 에릭과 김도윤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네고, 앨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는 앨리스에게도 코드에 관련한 명령이 내려왔는지 궁금했다.


 "앨리스. 혹시 당신에게도 별개의 명령이 내려왔어?"

 "예? 아뇨. 그런 내용은 없습니다만."

 "그럼 됐어. 아이들을 잘 부탁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앨리스를 뒤로 한 채 볼프강은 자신의 두 제자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 모두 몇마디 조언밖에 하지 않은 자신을 잘 따라주었고, 훌륭하게 성장해주었다. 볼프강은 팔을 펼쳤다.


 "자, 잠시 안아도 좋아. 대신 약하게, 알...... 끄어억!"


 소마가 달려든 것은 예상했기에 볼프강은 굳건하게 버텼다. 여러 차례 겪다보면 하지만 루나가 다리를 안으면서 볼프강은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소마는 계속 볼프강을 안고 있었고, 루나는 황급하게 일어나 소마를 말렸다.


 "킁킁, 선생님 냄새!"

 "소, 소마! 빨리 내려와!"

 

 사냥터지기 팀의 유쾌한 모습에 에릭은 크게 웃으며 그들에게 호감을 보였다. 처음에 에릭을 봤을 때 경계했던 김재리는 그가 보기와는 다르게 괜찮은 사람 같았다.





 이번 편에선 시즌3에 새롭게 등장하는 캐릭터, 앨리스 뒤에 서있던 남성을 가명 에릭을 붙여 등장시켜봤습니다.


 개인적으로 겉모습은 창백해도 유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네요.


 다음 편은 울프팩 팀 결성 전에 한 쌍의 콤비로 활동한 맥스와 슈타인의 외전, 과거 얘기를 다룰 생각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2024-10-24 23:19:0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