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팩, 잊혀진 어금니 (8)

벨리에나 2018-01-20 2

 독일 베를린지부 습격이 마무리된지 사흘 째 되는 날.


 습격이 있던 뒤로 베를린지부의 경계는 '비상'까지 올라가며 요원들로 하여금 밤낮으로 지키게 했다. 맥스는 더스트의 침범까지 알렸다간 '비상'이 아니라 '전투'까지 올라갈 것 같아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참모장도 생각이 있다면 내가 있는 독일에 오지 않겠지. 홀로 고성의 밤길을 걷던 맥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달 하나가 은은한 빛을 보이고 있다. 밤하늘 가운데 고고하게 서있는 자태가 아름다웠다. 과거의 달이나, 지금의 달이나 변한 것은 없다. 굳이 꼽자면 주변에 별이 없다는 정도. 발전한 세계는 너무 밝았고 별들은 이 세계에서 빛을 잃었다. 순간, 맥스의 눈에는 다른 곳이 겹쳐 보였다.


 맥스는 과거를 향해 걷고 있었다. 과거의 흔적들이 찬란하다못해 눈부실 정도로 맥스의 눈을 찔러온다. 고통스럽다? 이 표현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고통스러운 과거가 없는 인물은 없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픔을 견디지 못한 자신이 스스로 망각한 것.


 태생부터 고통 받으며 살아왔다. 길가에 버려진 채,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죽어도 아무도 상관 없을 정도로. 구정물에 젖은 상자를 덮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 맥스에게도 잠시 고통이 아닌, 치유가 되는 과거가 있었다. 자신을 구해준 과학자 브루노.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맥스의 삶은 십대를 넘기지 못했을 것이다. 옷과 먹을 것과 지낼 곳과 배울 수 있는 의지까지. 브루노는 맥스에게 있어서 신과 같았다. 매 순간마다, 그는 행복했다.


 촤악!


 맥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손가락을 모아서, 누군가의 심장을 관통했다. 어째서일까. 소중한 사람일 텐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아아, 그래. 소중한 사람이 모두를 죽이고, 나까지 죽이려고 했으니......, 내가 죽였지. 이 손으로, 브루노의 심장을, 찢어버렸어.


 "아저씨?"


 철컥, 파아앗!


 맥스의 양팔에는 순식간에 건틀릿이 생성되면서 자신에게 다가온 목소리를 향해 휘둘렀다. 루나가 눈치 채기 전에 맥스가 먼저 정신을 차리며 건틀릿을 해제했다. 루나는 갑자기 몰아친 바람에 주춤거렸다.


 "...... 왜 이 시간에 나온 것이지? 오늘 경비 임무를 맡은 건 나 혼자다."

 "아, 그, 그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서요."

 "감사인사라면 할 필요 없다. 동료를 구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루나는 헛기침을 하며 당황했다. 맥스는 루나의 모습이 누군가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괜히 무리하는 모습. 오늘따라 상태가 이상하군. 맥스가 고개를 저으며 뒤돌아서자 루나는 그를 붙잡았다.


 "저, 아, 아저씨! 저랑 훈련해요!"

 "...... 뭐?"

 "저번에 훈련도 빠지셨잖아요? 마침 고성이기도 하니...... 제가 같이 훈련해드리죠!"


 루나에게 끌려가면서 맥스는 또 다시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가 정신을 차릴 쯤엔 이미 훈련장에 도착해있었다. 루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아이기스를 꺼내들어 맥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나를 어떻게 말릴까 생각해보던 맥스는 생각을 뒤집어보았다. 오히려 루나를 훈련시켜서 자신의 몸을 지키게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볼프강은 상황대처가 훌륭하니까...... .


 "루나. 그 방패를 검처럼 무언가를 벤 적이 있나?"

 "네? 어, 네. 기술 중에 그런 게 있긴 해요."

 "그 방패는 원래 하나가 아니었다. 안나가 실험 마지막 단계에서 목숨을 잃자, 과학자들이 하나로 합친 것이다. 네 안에는 안나가 있으니 그 방패를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루나는 아이기스를 들어보였다.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아이기스를 살폈지만 도저히 두 개로 나누어질만한 흔적이 없었다. 결국 루나는 안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루나의 깊은 곳에서 올라온 안나는 한숨을 쉬었다.


 '에휴. 이거 비밀이야? 아주 급할 때만 사용해. 알았지?'

 '응. 조심해서 사용할게.'

 '아이기스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어봐. 그럼 알아서 조정될 거야.'


 루나는 안나의 말대로 아이기스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었다. 순간, 루나의 몸에서 청록색, 동시에 노란색 빛이 발광하면서 주변의 위상력이 루나에게 집중되었다. 잠시 후, 루나의 양손에는 검의 손잡이가 각각 들려있었다. 두 검은 크고 작은 격노를 상징하며, 각각의 크기와 무게도 달라 사용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해보였다. 맥스는 어리둥절한 모습을 하고 있던 루나에게 다가가면서 말했다.


 "모랄타, 베갈타. 유명한 두 자루의 검이 안나의 무기였다. 휘둘러보거라."


 루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안나와의 공유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그녀가 눈을 뜨자, 그녀의 눈동자는 하늘색으로 변해있었다.


 팔을 교차하면서 자세를 잡았다. 두 자루의 검으로 정면을 가르면서 루나는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가볍고 날렵한 베갈타로는 섬세하게 찌르는 공격과 적의 중요 부위를 베어버리는 공격을, 무겁고 강력한 모랄타로는 휘두를 때마다 정면의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공격을. 그리고 안나의 특기였던 무기를 하나로 만드는 기술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결전기: 뒤랑달



 루나가 힘겹게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리자, 하나의 검이었던 뒤랑달은 하나의 방패인 아이기스로 돌아왔다. 맥스는 바닥에 쓰러질 것 같던 루나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다.


 "헉헉...... 저, 저만 훈련한 것 같은데요?"

 "뭘 새삼스럽게. 그보다...... 이 훈련장, 고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맥스의 손을 잡고 일어난 루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맥스가 정면을 가리키자, 루나는 입을 쩍 벌리며 자신이 저지른 광경을 바라보았다. 뒤랑달에 의해 공간이 뒤틀린 훈련장의 바닥은 바다가 두 갈래로 나누어진 것처럼 쓸려나간 상태였다.


 "안나는 우수한 아이였지. 순수한 모습 뒤에 이런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루나를 돌려보낸 맥스는 이번엔 볼프강의 부름을 받았다. 관리국장 슈타인이 두 사람을 불렀기 때문이다. 볼프강은 방금까지 루나와 함께 있던 맥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루나와 함께 계시던데, 뭘 하고 계셨습니까?"
 "훈련을 하자고 하더군. 결국 루나 혼자 훈련했지만."

 "하하, 루나가 선배님을 조른 것 아닙니까? 새로운 기술이라도 알려줬다거나......?"

 

 맥스는 눈을 감았다가 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가 좋군."

 "감사합니다."


 슈타인이 두 사람을 부른 장소는 연구실이었다. 자동문이 열리면서 연구실 내부가 보였다. 과학자들은 없었으며, 대신 두 사람만이 서있었다. 한 사람은 슈타인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볼프강이 잘 아는 사람이었다. 볼프강은 그녀를 반갑게 불렀다.


 "흑지수?"


 코트를 입고 있던 흑지수는 고개만 돌렸다가 다시 돌아왔다. 맥스 때문이었다. 볼프강은 두 사람이 어색한 사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먼저 흑지수 옆으로 갔다. 그럼에도 맥스는 두 사람과 떨어진 채로 섰다. 피곤해보이는 모습인 슈타인은 세 사람에게 말했다.


 "이번 베를린지부 습격 때문에 많은 요원이 빠른 속도로 복귀하고 있다. 아마 그 아이도 곧 올 테지. 허나 상부에선 새롭게 요원을 파견하려고 한다."


 슈타인은 몸을 비키면서 정면에 홀로그램을 띄웠다. 세계지도가 펼쳐졌는데, 무분별하게 빨간점이 찍혀있었다. 그 수가 30개는 넘어보였다.


 "베를린지부의 습격 이후에 이번 습격만큼의 규모가 발생한 지역을 나타낸 것이다. 사흘,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이 정도의 차원종이 우리 세계에 쳐들어온 것이다."


 슈타인은 맥스에게 말을 걸었다.


 "맥스. 그 날, 누구를 만난 건가?"

 "...... 참모장을 만났다."

 "더스트...... 말인가?"

 "그래."


 볼프강과 흑지수는 놀란 표정으로 맥스를 바라보았다. 슈타인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둘 사이에서?"

 "별 일 없었다. 날 습격하려 했기에, 그걸 막은 것 뿐이다. 독일에 오지 말라는 말과 함께."


 슈타인은 고민하는 표정으로 잠시 연구실을 걸어다녔다. 그의 구두 소리가 연구실에 퍼지면서 묘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발걸음을 멈추면서, 슈타인의 입이 열렸다.


 "맥스. 그리고 흑지수 요원. 두 사람은 내일 출발할 준비를 하도록."


 흑지수는 눈을 크게 뜨며 자신을 말리는 볼프강을 밀쳐냈다. 그녀는 슈타인에게 다가가면서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출동하라고? 저 사...... 저 요원이랑 같이?"

 "현재 총본부에서 내려온 명령이네. '각 지부는 최고의 전력으로 현 상황을 대처하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상황을 지켜보던 볼프강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관리국장님. 그럼 전 왜 부르신 겁니까? 두 사람만 보낼 생각이라면 절 부를 이유가 없을 텐데요."

 "자네는 두 사람이 만약의 상황에 처했을 때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불렀네."

 "...... 차라리 절 보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습격 당한 각 장소에는 이미 총본부의 요원이 파견 나와있다. 자네의 기록 정도는 알고 있어. 빠져있도록. 볼프강 요원."


 볼프강은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슈타인은 가장 중요한 맥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알 수 없던 맥스는 팔짱을 낀 상태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맥스. 자네가 필요하네. 이미 사냥터지기 팀에 정식으로 발탁된 이상 물러날 길이 없어."

 "알고 있다. 한 가지만 물어보도록 하지. 총장은 날 알고 있나?"

 "모든 기록은 총장에게 간다."


 맥스는 팔짱을 풀었다.


 "몇 시에 출발인가?"

 "오전 7시다."

 "그럼 내일 보도록 하지."


 맥스는 그대로 뒤돌았다. 다만 그의 고개는 흑지수에게 잠시 향했고, 흑지수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맥스는 다시 한 번 말했다.


 "내일 보도록 하지."


 맥스가 떠나간 자리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슈타인은 두 요원에게 연구실의 정리를 부탁한 뒤 맥스를 따라 연구실을 나갔다. 볼프강은 연구실에 남은 흑지수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착잡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지수. 괜찮아?"

 "앞으로 저......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지내라는 거야?"

 "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맥스 선배님, 꽤 괜찮은 사람이야. 뭐, 나도 고생하면서 익숙해지긴 했지만. 힘내라고."


 흑지수는 볼프강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너, 그걸 말이라고......! 자기 일 아니라고 그러는 거야?"

 "자기 일이 아니긴. 나도 선배님이랑 같은 방 사용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경험자의 조언이라고 생각해."


 볼프강은 엄지손가락을 세워주며 빙긋 웃었다. 결국 흑지수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2024-10-24 23:18:2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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