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꿈속에서

꽃보다소시 2018-01-19 14

지금 여기 이 곳은 온 세상이 깜깜하고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 앞에 점하나 찾을 수 없는 이 곳에 가만히 서있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여기 가만히 있어봐야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걸어갔다. 그렇게 몇발자국을 걷자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곳에 새하얀 길이 펼쳐졌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려 했지만 저 멀리 누군가 보였다. 그 사람은...

"이세하..?"

그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사람의 이름을..

"어...?"

그가 뒤를 돌아봤다. 별과 유사하게 빛나는 금색의 눈동자와 그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슬비야..?"

약간 놀란 표정이지만 세하는 내 이름을 불러줬다. 나를 부르던 그 부드러운 목소리도 변하지 않았다.

"너.. 지금 어디가는거야?"

하지만.. 그렇게 부드러웠던 세하의 목소리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지금 어딜 가는 지 잘 모르겠어.."

내가 생각해도 좀 이상하고 혼란스러운 대답이다. 왜 이렇게 대답했지? 그냥 이 길따라 가고 있었다고 말했으면 될 것을.. 

"가면 안돼."

"어..?"

"여기로 가면 안된다고."

"무슨.. 소리야?"

"너 지금 이 길 따라서 걸어가려고 했잖아. 안돼.. 절대."

세하의 표정이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마치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그렇게 빛이나던 세하의 눈동자가 떨리기까지 한다. 

"왜..그래?"

"제발.. 이 쪽으로 가지마.."

"근데.. 난 여기로 가야하는데.."

"마지막 부탁이야.. 제발 가지마.."

눈물이 흘려내리기 직전이었다. 세하가 울상 짓거나 울어본 적 한번도 없었는데.. 내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세하야, 왜 그러는데.."

"지금 너가 갈 곳이 아니야.. 나랑 같이 가자."

내가 갈 곳이 아니라는 세하의 말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하얀색의 도로일뿐인데..

"내가 미안해.. 슬비야. 그러니까 나랑 같이가. 제발.."

"넌 내가 지금 어디로 가는건지 아는거야..?"

"너 지금 그 쪽으로 가면.. 우리 다시는 만날 수 없어. 나도, 팀원들도.."

"그런건..."

그런건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입이 열어지지 않을뿐.. 지금 내가 세하의 말을 무시하고 가버린다면 정말로 영원히 그와 다른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게 무섭고 고통스러웠다. 

"한가지만 물어봐도 되?"

"..."

"내가 저 쪽으로 가면 정말 아무도 못만나..?"

"..."

세하는 묵묵부답했다. 난 이 두 갈래 중 마지막 선택을 하기전 세하에게 다시한번 질문을 했다.

"나 너 따라가도 괜찮을까..?"

".. 내가 너 지켜줄게."

"..."

"그 땐 미안해.. 이젠 무슨일이 있어도 널 지켜줄게. 제발 떠나지마.."

그 때...? 언제를 말하는걸까..? 왜 미안하다고 하는걸까.. 세하 너가 왜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그리고 난 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

"너가 왜 미안한데.."

잠시 몇초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아무 말 없던 세하가 갑자기 나를 폭 안았다. 

"세하야.."

"이렇게 널 보내고 싶지 않아."

나를 안고 입을 연 세하의 한 마디에 나는 선택권이 사라졌다. 이 곳이 어딘지 저 곳은 무엇인지 몰라도 내 앞에서 한 번도 운적 없는 세하를 눈물 흘리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 어디 안가.. 세하야."

-세하의 곁에 있기로..

내 나지막한 한마디에 세하는 나를 껴안은채로 내려다보며 마지막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젠 너 다치지 않게 내가 지켜줄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세하는 나를 꼭 안고 있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따스한 세하의 품 안에서.. 

.
.
.

"...!"

--삑  -- 삑


다시 눈을 떴더니 하얀색 길이 아닌 하얀 천장이 보여졌고, 나의 오른쪽에선 내 바이탈 수치를 체크하고 있는 기계가 삑삑 하고 울려대고 있다. 분명 세하랑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꿈이었을까...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내 왼쪽 손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던 고개를 살짝 왼쪽으로 돌렸더니 세하가 내 손을 잡고 엎드려 자고 있다. 

"세하야..."

들릴 듯 말듯 한 작은 목소리로 세하의 이름을 불렀다. 
여기서 계속 같이 있어줬던 걸까..?

그리고 한 순간에 갑자기 생각났다. 차원종에게 공격 당할 뻔 한 세하를 구해주다가 쓰러졌던 일.. 지금 세하를 보니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는 것 같다. 내 손을 잡고 있는 세하의 한 손에 상처가 많긴 하지만.. 역시 그 날 다친걸까? 

"아얏.."

아직 일어나면 안되는거였나.. 다친곳이 엄청 쓰라린다. 머리에 붕대도 감겨있는 걸 보면.. 나 심하게 다친걸까? 

"..."

세하가 깨어난 모양이다. 쓰레기통에 삼각김밥 포장지만 몇개인지 바라보면 여기서 얼마나 같이 있어줬는지 대강 예측이간다. 바보. 영양가 없는 음식만 얼마나 사다 먹은거야.

"아.. 잠들었었나... 어..? 슬비..야. 너 일어났어?!"

세하랑 눈이 마주쳤다. 별처럼 빛나는 세하의 눈동자는 꿈이나 현실에서나 변함이 없었다. 나 때문에 얼마나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여기 앉아있었을까. 

"세하야."

꿈이 아닌 현실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슬비야, 너.. 괜찮은거야? 다친 곳은?"

세하의 목소리가 많이 떨렸다. 꿈에서 떠나려고 했던 나를 잡았던 그 목소리와 정말 비슷하다. 

"난 괜찮아. 근데 너 설마 저 삼각김밥만 먹으면서 여기 있었던거야..?"

"..."

맞네. 바보. 자기 건강도 챙기면서 있어야지.. 괜스레 내가 더 콱 막히는 기분이다.

"나 때문에 다쳐서 5일을 못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밥이 넘어가냐.. 너 어젠 큰일날 뻔 했다고."

"어..?"

"너 어제 상태가 갑자기 안좋아서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다시 일반실로 옮겨진거야. 진짜, 사람 걱정시키는데 뭐 있다 너도.."

아, 설마 그래서 어제 그런 꿈을 꾼건가?

그 꿈.. 내가 세하를 따라오지 않았더라면 여기가 아니라 저승으로 갔을까..? 

에이, 설마.. 그냥 꿈일거야.

"너, 지금은 괜찮냐?"
"어.. 응. 나 괜찮아."

내 괜찮다는 한 마디에 밝게 웃어주는 세하였다. 

그런데.. 손... 아직도 잡고있었네.

"어, 왜그래?"
"어? 아..아니 그게.. 손.."

"아.."

부끄러워서 붉어진 세하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내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인 것도 처음이지만. 나의 왼쪽 손이 따뜻해질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내 손을 잡고 기다려줬을까.. 많이 힘들었을텐데..

"슬비야."
"어.."

아무 말 없던 세하가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더니 나를 자신의 품으로 데려가 꼭 안았다. 

"저.. 세하야?"
"진짜 다행이야.."

"나 진짜 멀쩡해. 괜찮아.. 살아있잖아."
"이젠 이럴 일 없을거야."

"무슨 소리야..?"

"이젠 너 다치지 않게 내가 지켜줄게."

지금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인데...
...

아 뭔지 기억났어. 분명 이건 너가 꿈에서 나한테 했었던 말이야. 나를 안아주는 것도.. 배경이 예쁘게 펼쳐져 있던 하얀 길이 아닌 병원이라는 것만 다를뿐. 

넌 여전히 꿈속에서나 현실에서나 다를게 없구나. 세하야.




"너무 무리하진 마, 세하야. 너 다쳐."
"그러는 너는.."

"풉.."

그렇게 우리는 부드럽게 껴안은채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 세하는 그 어느때보다 환하게 웃어줬다. 
세하야 끝까지 나와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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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2번째 명전이네요.. 명전 보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려요..ㅠㅠ(감덩) 
2024-10-24 23:18: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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