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겨울

제로딘이셀라 2018-01-14 2


클로저스 사계절 합작 공개됐다고 해서, 함 올려봅니다. 은이가 메인이었지만 흐지부지되어버린 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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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눈이 올 것 같은데.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렸던 게 한참 전 순찰을 돌기 시작할 즈음이었던가? 어느새엔가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를 얇게 덮는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긴 하지만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에 섞여 내리는 눈은 밖으로 내놓아진 그녀의 얼굴에 닿았고, 바깥바람에 얼었음에도 불구하고 눈보다는 차갑기에. 눈송이는 그대로 녹아내려 물이 되었다. 으 차거, 마스크를 끼고 나올걸 그랬나 하는 뒤늦은 자책을 해 보며 총을 붙잡았던 손을 떼어서는 그대로 뺨을 문질러 닦았다. 거칠한 군복 소매로 뺨을 쓸어내리니 꽤 쓰린 것 같아서. 상처라도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그럴 리가 없단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말이다.

당연하지만 겨울 바람은 참으로 차가웠다. 풍경 때문인지 그것이 더욱이 크게 느껴져왔다. 12월 말, 방학을 했을 수도 있겠지만 고등학교이니 조금 늦을 터. 원래라면 방학 직전의 학생들의 왁자함으로 가득 차 있어야만 할 학교에 학생들은 없고 고요만이 들어찬 채의, 부서진 흔적들이 곳곳에 남은 채로 예전의 사건만을 곱씹게 해 주는 모습이란. 멀쩡한 부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간 볼품없는 것이 아니었다. 복구작업을 하루빨리 마쳐야 이 학교도 원래대로 돌아갈 터인데 말이다.

 

"... 하아.“

 

묘하게 착잡한 기분에 한숨이 터져나오는 것을 어찌 할 수 없었다. 신서울이 한번 크게 흔들렸던 그때의 사건을 잊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임이 분명했다. 제가 속한 특경대 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조차도. 하기사, 그 큰 일이 어찌 잊히겠는가?

신강고등학교. 이 곳도 그 잊히지 않는 흔적 중의 하나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신서울의 시내 곳곳에서 차원종이 출현하는 것을 많이 봐오긴 했지만 학교에 그런 일이 일어나니 새삼 많이 충격적이었던그런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도 남아 있었다. 저희들이 열심히 했더라도 무어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특경대라고는 하나 급이 높은 차원종들을 처치하기 위해서는 웬만해선 위상력이 있어야 한다. 특경대가 가진 위상 관통탄으로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클로저였다.

이 신서울에도 클로저는 있었다. 세계 곳곳에 유니온의 지부가 있으며 한국도 마찬가지인 이상, 클로저의 존재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이 신서울의 사태를 제압한 클로저가, 조금 특별했을 뿐이었다. 어린 아이들. 그녀가 보기에도 까마득히 어린. 물론 성인들 또한 있었다고는 하나, 어째서인지 모르게 대부분은. 학교에 다니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야 할 아이들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도 위상력에 관한 지식은 있었다. 위상력이 발현된 사람들은 책무를 지닌다고 했다. 일반인들과는 신체능력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위상력을 가졌다. 그것 하나만으로 클로저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선택의 권리조차 없이. 그것은 일종의 속박과도 같은 것이라고 해야할까. 군인이어보았고, 지금도 군인이나 다름없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리 느껴지기만 했다.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단 것은, 외치는 것이 닿지 않는다는 것은 꽤나 기분이 나쁜 일이었다.

상념을 떨쳐낸 그녀는 이내 고개를 한번 휘 젓고는 주변을 훑었다. 뺨을 스치고 고동빛 머리칼을 뒤흔드는 바람은 변함없이 차가웠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녹지 않은 채 쌓여있던 눈이 바람에 부스스하게 이는 광경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금 걸음을 떼었다. 다시 보아도 참으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학교 풍경이었다. 겨울이라 그런가.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멈춰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이러는 중에도 학교를 안 나와 좋다고 말을 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때엔,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학교를 안 나서는 게 좋다고 할 때이지. 그 마음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 다닐 때가 좋은데 말이야. 그런데, 뒤에는 누구? "

" ... 뭐야, 은이 누나. 언제부터 있는 거 알았어요? "

" 그걸 모를 리가 있나! 내가 누구야, 내가 바로... "

" 알아요 알아. 그 말 지금 들으면 백번이겠어요. “

 

그러면 놀랄 게 뭐 있어? 그녀는 그리 말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유니폼, 그리고 더 익숙한 머리색. 종전부터 뒤를 쫒던 기척이 있다는 것 정도야 알고 있어 놀라지는 않았었다. 더군더나 그 기척이 무슨 위험한 기색을 풍기지도 않아 그냥 가만히 두었고. 그런데 그 대상이 의외라는 점에서 놀랐다고나 할까. 확실히 놀랄 만도 하지 않던가. 어떤 장소에서, 그와 연관된 사람이 떠올랐는데 그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 아무튼 간에, 오랜만이야 세하야! 여긴 웬일이야? "

" 간만에 와 보고 싶어서요. , 별 이유 있겠어요? “

 

그러는 은이 누나는 여기서 뭐 해요? 세하라고 불린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간단하게 순찰 중이라고 대답했고 그는 그 간단한 대답에 납득했다. 그의 임무, 즉 클로저 활동으로 이동하는 곳에서 그녀가 속한 특경대가 많이 보였다 뿐이지 결국 특경대의 본 업무는 신서울과 그곳이 속한 이 나라를 지키는 일일 터였다. 더군더나 이곳은 이미 한번 거하게 난리가 났던 곳. 다시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것이었다.

말을 마친 그는 이내 시선을 돌려 이곳저곳을 훑었다. 그때에 비해서는, 조금 분위기가 달라졌다 싶기도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바뀐 것이 그리 없어보였다. 하늘을 엷게 흐리는 눈발 사이의 본관 건물은그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듯 했다. 부서졌던 것이 어디더라. 눈으로 그 흔적을 쫒다가, 이내 다시금 입을 열었다.

 

" 그보다 예전에 비해 그렇게 나아진 게 없네요. "

" 빨리 다시 열렸음 하는거야? "

" 그런 셈이라고 해 둘까요... “

 

그런 셈이라니. 뭐 그리 말이 애매해? 그녀는 그리 말했다. 그러는 중에 사람 마음은 결국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라는 말이 문득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가 답으로 내민 말이 방금 제가 하던 생각이었기에.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한다는 것 말이다.

 

" 그러면 세하는 이대로 학교 한번 돌아보고, 다시 가겠네? "

" 그러던가 해야겠죠. 잠깐 짬 내서 나온 거기도 하니까... 은이 누나는 순찰, 계속 하는 거에요? “

 

그래야지. 안 그러면 누구누구가 닦달을 해 댈걸? 그녀는 유달리 누구누구- 라는 부분을 강조해서 말을 해 보였다. 그는 그 대상채민우 경정이라고 단박에 떠올려내고는 하하, 하고 작은 웃음을 흘렸다. 직급은 같아졌으면서도 관계는 바뀌는 것이 없는 듯 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이내 그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 따라가도 되나요? "

? 그녀는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물론 안 될 것이라면, 없을지도 몰랐다. 눈 앞의 그는 우선 클로저였다. 둘째로 특경대인 그녀 본인이 동행하는 것이나 다름 없으니 괜찮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도 그가 이상한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보장된 일이었기에. 그렇기에 짧은 고민 후에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그래, 안 될건 뭐가 있겠어? 그러겠다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건 걸으며 물어도 되는 이야기였다. 총을 제대로 고쳐잡았고, 따라오라는 듯이 걸음을 떼었다. 바깥은 대충 다 돌아보았으니. 이제 본관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허물어진 흔적이 아직도 눈에 선할 정도로, 본관 내부의 한 쪽은 황량한 분위기였다. 개중애는 교실로 보이는 곳도 있었다. 천장이 내려앉아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박살이 난 곳.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인가. 참으로 끔찍한 일만 있었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 감히 짐작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부서진 벽으론 겨울의 찬 바람이 들이닥쳤고, 그나마 안이라고 눈이 날려들어와 녹아서 남은 물의 흔적도 곳곳에 있었다. 멀쩡한 복도로 간간이 넘어온 시멘트 조각을 발로 걷어 차 넘어가며 두 사람은 학교 내부를 돌아보기를 계속 해 나갔다.

오간 대화는 적은 편이었다. 시작은 그녀가 맺었다. 그녀는 자길 따라 왜 순찰을 나섰느냐고 물었고, 그에 대한 답은 학교를 돌아보는 김에 겸하여서였다. 적당히 납득하기 쉬운 이유였고, 적당히 넘어가는 투가 담긴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래? 하는 반응으로 그 말을 그대로 넘겼다. 다른 이유가 있으면 있는 것일 터였으니. 그 이후로 이어진 것은 침묵이었다. 복도를 울리는 걸음소리만이 계속해서 나는 침묵.

 

" 있지 세하야. 안 힘들어? "

" ... 은이 누나. 앞이 있어야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 해 주면 안될까요. "

" 클로저 일 말이야. “

 

그녀가 그 질문을 던진 이유는. 종전에 했던 생각이 머리에 조그맣게 남아서였다. 그들이 겪은 일은 전부 정말로 중대한 사건들 뿐이었다. 그 이야기들이 전해져오지 않을 이유는 없었고 들은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헉 소리가 날 만큼 격한 것들이었다. 클로저이기 이전에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는 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오는 것들. 가끔은 그게 신경이 쓰였다. 쓰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 ... , 힘들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인거죠. 충격적인 것도, 실망스러운 것도 참 많이 봤어요. 클로저가 된 덕분에. 그래도,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고... 지금 와서는 후회는 않는 것 같아요 적어도. “

 

그러니까,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3차 승급까지 했으니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달까? 그는 멋쩍다는 듯 작게 웃고는, 말을 마쳤다. 열심히 할 생각 이라는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 잠시 맴돌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녀에게는 그 말이 멈추지 않고 달려가겠다는 말로 들렸다.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서가 아니라, 자기 의지로 일어서서 가겠다는.

그래? 그녀는 다시금 그런 답을 꺼내들었다. 이번에는 넘기려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 자체로 말을 마무리짓는 것이었다. 대신, 한 가지 말을 덧붙였다. 나도 열심히 해야겠네? 하고 말이다. 늘 다잡고 있던 마음이었다. 열심히 하겠다는 것, 자기 의지로 총을 잡아 지키겠다는 것. 늘 굳건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의 입에서 이 말을 듣고 조금 놀라는 기분이 들었다니. 자기도 해이해진 모양이었다.

 

" 그 기세면 명성 높은 클로저가 될 것 같은데? 그때 되면 이 누나 잊지 말기다? "

" 잊지 말란 그 말, 3차 승급 심사 이야기 해 주실 때 했던 거 알아요? “

 

알아도 한번 더 새겨 들어! 크게 웃으며 그녀는 그리 말을 마쳤다. 무장은 그대로였건만, 걸음이 조금 홀가분해진 것 같았다. 마음을 먹는다 하여 이곳이 금세 바뀌진 않는다. 신서울이 금세 평화로워지지는 않는다. 차원문이 열리지 않는 일도 없다. 다만, 그 긴 시간이 겨울이라고 한다면 언젠가 봄은 반드시 오는 법이다. 제 손으로 겨울을 밀어내지는 못해도, 어쩌면 봄을 가까이 오게끔 할 수는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 길 위에 있는 겨울이다. 춥고 힘들지만, 결국은 그조차도 맞서고 말 시기인 것이다. 멈추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녀는 문득 눈을 창 바깥으로 돌렸다. 눈발은 멎었고, 어느 새 개여 겨울에는 드문 나름대로의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2024-10-24 23:18: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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