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鳥 - 2 - 개구리와 늑대

비타짱하얘 2018-01-02 0


小鳥 - 2 - 개구리와 늑대

  실험체 9번의 일과는 매일 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어나서 앉아 점호를 받고 통제에 따라 식당동에 가서 밥을 먹는다. 잠시 개인 근육 트레이닝 시간을 가진 다음 장시간에 걸친 신체검사를 받는다. 피를 뽑고, 소변을 채취하고, 혈압을 재고, X-ray 사진을 찍은 다음 심장 투시 검사를 받는다. 
  9번은 아침 일과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았다. 트레이닝은 애초에 개인적인 취미라 저녁식사 이후에 가지는 자유시간마저 거의 체육관에서 보낼 정도로 매진하는 일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신체검사를 통해 본인의 강건함을 확인하는 것 또한 나름의 즐거움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설에서는 위상력의 강약 여부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신체능력 또한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 깡말라 보이는 11번도 성별이 여성이라 그런 것이지 전반적인 스테이터스가 하위 랭커들보다는 뛰어나다. 9번이 위상력 뿐만 아니라 신체 단련에 힘쓰는 이유는 본인의 강함에 대한 욕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시설에는 규칙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중요한 세 가지만 꼽자면-

  첫째. 대결 외 실험체 간의 폭력 금지
  둘째. 필요 외의 취식물 섭취 금지.
  셋째. 시설 외부로 이탈 금지.

  첫째 규칙이나 둘째 규칙을 어겼을 경우의 벌칙은 주로 일정 기간 독방에 감금당하는 것이다. 독방은 약 2평 남짓의 창문도 아무것도 없는 방에 홀로 갇혀 매 끼 식사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곳으로, 항상 자극이 부족한 실험체들에게 있어서는 피하고 싶은 벌칙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지라, 참지 못 하고 쌈박질을 하거나 식당에 몰래 들어가 식재료를 훔쳐 먹는 경우도 있으므로 보기 드물긴 하지만 독방 감금은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셋째 규칙인데, 9번도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만일 바깥으로 나간 실험체, 즉 탈출을 시도한 실험체는 실적, 평가 혹은 랭킹 그 무엇도 불문으로 부치고 ‘폐기 처분’시킨다고 한다.

  폐기 처분.

  그것은 모든 실험체들이 극도로 두려워해야 마땅한 일이다. 문자 그대로 청소업자가 쓰레기를 처분하듯이 세상에서 지워버린다는 의미이며 간단히 말해 살해당한다는 소리다. ‘사형’이나 ‘사살’이란 단어를 잘 모르는 실험체들에게 있어 ‘폐기 처분’은 그와 완벽하게 같은 의미였다. 이 세 가지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가 각자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실험체는 13번처럼 책을 많이 읽거나 공부에 흥미가 있는 소수의 실험체들뿐이었다.

  셋째 규칙을 어기는 경우가 아니라도 ‘폐기 처분’당하는 경우는 있다. 별로 이해하기 어려운 조건도 아니다. ‘성능’이 좋지 않으면 폐기된다. 이 시설의 과학자들이 실험체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강해지고, 잘 싸우면 된다. 너무 약해서 써먹질 못 하겠다고 판단되거나 체질이 허약해서 병치레가 잦거나 하면 어김없이 그 실험체는 어느 날부터인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된다. 공개적으로 아무개가 폐기되었다고 공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상 틀림없다고 9번은 생각했다.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낮은 순위에서 발전을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되기만 해도 처분당하는 경우도 있다.

  9번은 폐기 처분을 걱정한 적이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에겐 재능이 있었고 거의 대부분의 다른 실험체들보다 항상 앞서왔다. 항상 칭찬받으며 살아왔다. 능력이 부족하거나 실적이 따르지 않아 폐기 처분 당하는 실험체들도 수없이 봐왔다. 시설의 과학자들은 자비심이 없다. 자신의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10년을 넘게 여기서 지내면서 별로 똑똑하지 않은 그의 머리로도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사육되고 있다.

  무슨 목적으로, 왜 그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서부터는 9번이 생각할 바가 아니었다. 어찌됐든 자신은 우수하니까. 다른 열등한 녀석들과는 다르다. 자신만큼은 절대로 폐기당할 일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처분당하는 쪽이 잘못이다.
  그런 그에게도 절대로 앞질러 ** 못 한 상대가 단 둘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현재의 오후 대련 파트너인 ‘11번’이다. 그녀는 특별하다. 그가 아예 고전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탑랭커라고 따로 대접받기는 하지만 적어도 15위 내에 드는 실험체들이라면 서로간의 역량에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 발만 삐끗해도 패배할 만한 대결도 9번은 셀 수도 없이 경험해봤다. 그러나 11번은 다르다. ‘고전’이라는 단어에 미안할 만큼 언제나 압도적으로 패배당하기만 할 뿐인데다 최근에는 그녀가 교관과 개인적으로도 친근하게 지낸다는 것을 숨기지도 않게 됐다.

  ‘언니’라니? 농담이지?

  시설의 실험체들은 1동이고 2동이고 10동이고를 떠나, 모두가 교관을 ‘괴물’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교관은 자기 기분에 따라 비정기적으로 실험체들에게 ‘테스트’란 명목으로 일대일 대결을 요구하고는 하는데, 그 누구도 교관에게 일격조차 먹인 적이 없다. 9번이 알기로는 그 11번도 교관에게만큼은 단 한 번도 유효타를 낸 적이 없다. 그런 괴물이, 11번이 말도 안 되는 기행을 벌이거나 어처구니없는 부탁을 한다 해도 언제나 눈감고 덮어주는 것이다. 9번 본인도 그러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대놓고 감싸주는 것이 좋게 보일 리는 없었다.

  그런 11번을 향한 교관의 편애가 이번만큼은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눈엣가시인 ‘13번’을 합법적으로 도륙낼 기회를 주지 않았는가!

  13번.

  만년 최하위인 열등종자다. 시설은 그가 속한 ‘제 1 동’부터 ‘제 12 동’까지 있다. 최초에는, 그러니까 그들이 처음 위상력 주입 수술을 받았을 당시에는 한 동에 20명씩 있었으나 현재는 각각 10명 전후로 줄어든 상태이다. 대결 중 역량이 부족해 사망하거나, 강화 시술을 받다가 사망하거나, 전술한 이유로 폐기 처분 당하거나 줄어든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결론적으로 정확한 수는 모르지만 현재 전 시설의 실험체는 약 120명 정도 있다는 소리다.
  13번은 그 중에서 단 한 번도 중하위권으로도 올라온 적이 없었다. 제 1 동에서는 항상 꼴등인 것은 물론이고 다른 실험체들이 하위권과 상위권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와중에도 13번은 한결같이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상식대로라면 진작 폐기 처분 당했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열등종자가 살아있든 말든 관심 없던 9번이 그토록 13번을 신경쓰기 시작한 것은 사실 별 것도 아닌 이유였다.

  ‘뇌까지 근육으로 차있으니 이런 것도 모르지.’

  어느 날 번호도 기억 안 나는 어떤 실험체가 무슨 변덕인지 식사시간에 책을 한 권 들고 온 적이 있었다. 그 날 따라 대련 평가가 안 좋아서 울적한 그 녀석에게 담당관이 준 것이라고 기억한다. 상당히 어려운 책이었는지 식사를 하면서 주변의 실험체들과 책의 내용에 대해 토론했던 것도 기억난다. 9번은 가만히 그 당시를 회상했다.

                                         ∴

  9번은 인기가 많다. 같은 1동의 11번과 5동의 99번이 각각 탑1과 탑2를 지키고 있어서 치고 올라가본 적은 없지만 탑3라는 위치도 동경하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5동의 99번은 평소에 볼 기회 자체가 없었고 1동의 11번은 워낙에 소통이 힘든 광년이 기질이 있는 터라 자연스레 1동의 인기몰이는 ‘비교적’ 차분하고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한 9번 차지였다.
  9번은 그 사실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는 편으로,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고 관심 받는 것을 즐겼다.

  “담당관이 너 기분전환 하라고 줬다면서? 괴롭히려는 거 아냐?”
  “아니, 기분이 안 좋으면 일기 같은 걸 써보라더라고.”
  “일기라고? 굳이 이런 작문법까지 필요한가? 뭐야, 간결체? 만연체?”

  아무래도 글쓰기에 관한 책인가 보다. 9번은 언제나 그렇듯 약자들의 푸념이겠거니 하고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실험체들에게 둘러싸여 전투기술에 대한 잡담을 나누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대의 좌상단 공격이 페이크라 판단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열변을 토하려던 무렵 글쓰기 집단 쪽에서 톤이 높은 발랄한 목소리가 들렸다.

  “13번은 책을 엄청 많이 읽어! 그런 거 잘 알걸!”
  “야야…….”

  아-. 13번? 많이 들어봤는데, 누구더라. 아 그렇지, 만년 꼴찌! 옆에 있는 건 15번인가. 13번보다는 낫지만 마찬가지로 기억에도 별로 남지 않은 열등종자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싸우는데 도움이 돼?”
  “냅두셔. 내 취미다.”
  “됐으니까 잘 알면 이것 좀 설명해줘. 괜히 어렵게 쓰여있단 말야. 뭐야 이거? 설명적인 어구를 많이 써서 문장의 호흡이……, 뭐래는 거야?”

  자기도 모르게 하려던 말을 멈추고 대화를 엿듣던 9번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글을 쓰기는 고사하고 책과도 담을 쌓고 사는 주변의 다른 실험체들도 평소와 전혀 다른 대화 주제에 흥미를 보였는지 조용히 13번의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뭐야, 왜 저기만 쳐다보는 거야?

  “아 왜 다 쳐다보고 **들이야. 후딱 예를 들어줄 테니까 잘 들어. 너, 싸움 좋아하냐?”
  “응. 이길 때 말이지만.”
  “그래, 나도 그렇지. 자, 내가 ‘나는 싸움을 좋아한다.’라고 말하고 싶다고 쳐. 참고로 이쪽이 먼저 말한 ‘간결체’라는 거다. 이걸 만연체로 바꿔**. 시작한다. ‘무릇 싸움이란, 인간 개체 하나의 생존과 직결되는 본능적 행위이며 개인과 집단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으로 나 또한 그 행위를 통해 쟁취할 수 있는 유형적, 무형적 전리품이 있으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어때. 똑같은 개소린데 긴 개소리로 바꿀 수 있지. 이게 만연체라는 거다.”

  ‘참고로 쓸 데 없이 길어서 나는 싫어하는 문체다.’라고 덧붙인 13번에게 집중된 눈동자들에는 곧 놀라움이 번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 하는 녀석들, 대단하다며 동경심을 가지는 녀석들, 저런 게 알아서 어디다 쓰냐며 비웃기 시작한 녀석들 가지각색이었지만 9번은 그 어느 쪽과도 달랐다.

  “우와! 굉장해! 13번! 저기, 우리 담당관이 말해준 적이 있는데, 바깥에는 하늘이란 게 있대. 하늘이 뭐야?”
  “멍청아. 나도 본 적 없어서 몰라. 하늘이 하늘이지 뭐. 사전적 정의로는 ‘지표를 둘러싼 공간 중 우리 눈에 보이는 범위.’ 정도이긴 한데.”
  “지표? 지표가 뭐야?”
  “지금 우리 시설이 세워져 있는 땅. 아니 **, 그런 것도 모르냐?”
  “13번! 별이란 게 뭐야?”
  “너 태양이 뭔지는 알지? 그게 별이야.”
  “아니, 태양이 뭔데?”
  “으아아! 거기부터냐?! 귀찮아! 귀 후벼파고 잘 들어처먹어라. 태양이란 말이지. 우리 태양계의 중심부에 있는 항성으로서 지구가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불덩어리다. 태양계 전체 질량의 98% 이상을 이루고 있지. 여기서도 겨울에 히터 켜주잖아? 그거랑 똑같아. 그 태양이란 게 없어지면 우린 다 얼어 죽어.”


  순식간에 식당은 13번에게 쏟아지는 질문공세로 떠들썩해졌다. 질문에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항성이 뭔지, 지구가 뭔지, 심지어 질량이란 것이 무슨 뜻이지 물어보는 실험체들에게 13번은 짜증을 팍팍 내면서도 은근히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겨우겨우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한 설명으로 과학적인 주제가 마무리될 무렵은 9번에게 달라붙어 열심히 전투와 전법에 관한 잡담을 하던 무리들도 어느샌가 13번의 주위로 몰려든 이후였다.

  “이번엔 나! 나 질문! 겨드랑이에 털은 왜 나는 거야?”
  “한 번 밀어봐라. 땀띠나서 뒤지게 아플걸?”
  “눈은 왜 두 개야?!”
  “눈 하나만으로는 사물의 거리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지. 한 쪽 눈 감고 실험해봐.”
  “우린 왜 밤에 졸리는 걸까?”
  “낸들 아냐. 평생 공부만 했다는 과학자님들도 모른다는데.”

  똥 씹은 표정으로 ‘귀찮아’를 연발하던 13번도 어느 순간부터 재미를 들리기 시작했는지 표정이 완전히 풀려있었다. 사실 그런 것은 9번에게 아무 상관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이 받던 주목을 13번, 그것도 1동 최약체 쓰레기가 빼앗아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저 구석에서 흥얼거리며 혼자 식사를 하던 11번도 13번 쪽을 바라보며 즐겁다는 듯이 킥킥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11번은 단 한 번도, 매일 하는 오후 대련 때조차도 9번에게 관심다운 관심을 보인 적이 없는데!

  “그만!!!”

  9번은 분노를 담아 식탁을 쾅 내려치면서 외쳤다. 순간 식당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누가 뭐래도 9번은 시설 내 탑랭커, 그것도 3위의 초강자다.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쓰레기 주제에 쓸 데 없는 건 많이 알고 있구나. 그런 게 전투에 무슨 도움이 되지?”
  “……?”

  13번은 무심한 표정으로 9번의 붉으락푸르락 하는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약한 것은 죄가 아니지만 말야. 혹시 여태까지 네놈이 폐기되지 않은 것도 그 화려한 입놀림 덕분인가? 담당관을 구워삶는 것도 누워서 떡 먹기였나**?”
  “야.”
  “눈에 거슬린단 말이다, 13번. 여태까지 너 같은 쓰레기들은 하나같이 처분 당해왔어. 그런 네놈이 대결장도 아닌 식탁위에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떠들어대면 뭐라도 된 줄 아나**? 기분 좋냐?”
  “야야.”
  “기억해둬라. 입만 산 네놈은 만일 최강인 나랑 대결하게 되면 묵사발이 날 줄…….”
  “그건 알겠는데, 나랑 만나면 다행이겠지만, 11번이나 99번이랑 만나면 어떡할래?”
  “뭣……?”
  “내가 너한테 못 이기는 건 확실히 사실이지만 말이다. 방금 최강이라고 했지? 나 말고 다른 나머지도 네가 다 박살낼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당연하지! 난 언젠가 이 시설에서 1위를 차지할 남자다! 저기 있는 11번도 반드시 쓰러트리겠어! 99번도 마찬가지다! 그 녀석들 뿐만이 아니지, 언젠가는 그 괴물, 교관도 내가 반드시 이긴다! 어떠냐, 너같은 열등한 것과 나는 목표하는 것조차 격이 달라!”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9번의 눈에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앞의 13번. 이 녀석의 기를 죽여 놓지 않으면 버틸 수가 없을 뿐이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았다. 본인을 쓰러뜨리겠다는 말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은 채 싱긋 웃고 있던 11번의 얼굴이 ‘교관도’란 말에 차갑게 식어버린 것을.

  “너,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 알고 있냐?”
  “뭐? 무슨 소리야?”
  “모르겠으면 나중에 알아봐. 내가 얼마 전에 무작위 대결에서 99번한테 된통 깨졌거든?”
  “자랑이냐!”
  “들어봐. 순식간에 당하고 나서 우연히 네가 싸우는 걸 구경하게 됐지. 그런데 이게 웬걸. 수준차가 엄청나지 뭐야. 교관? 캬하핫, 웃음을 참기 힘들군. 넌 교관은 커녕 11번, 99번한테도 못 이겨. 그 인간들은 문자 그대로 괴물이거든. 그래서 넌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거다. 뇌까지 근육으로 차있으니 이런 것도 모르지.”

  13번은 그렇게 말한 뒤 다 비운 죽그릇을 들고 퇴식대로 향하더니 평소와 같은 움직임으로 그릇을 반납하고는 식당을 뒤로했다. 기를 죽이려다가 되려 얻어맞게 된 격에 처해버린 9번은 분노에 찬 얼굴로 한참 동안이나 13번이 나간 문을 노려봤다. 다른 실험체들은 휘말리기 싫은 건지 슬금슬금 식기를 반납하고 식당을 나가기 시작했고, 곧 그곳에는 둘만이 남았다.

  “9번이라고 했지?”
  “?!”

  등 뒤에서 들린 가느다란 목소리에 소스라친 9번은 본능적으로 거리를 벌리며 뒤돌아섰다. 살기는 물론이고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소름이 돋은 9번은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넌 매일 대련하는 상대도 기억 못 하는 건가?”
  “아아 그렇지 참! 미안해! 내가 얼굴을 잘 기억 못 하거든!”
  “크읏……! 그래서, 나한테 할 말이라도?”
  “응! 할 말이 있지, 물론!”

  잠시 동안 11번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금방 다시 얼굴을 보였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개구리가 늑대한테 이길 리가 없잖아?”

  그 때 보여준 섬뜩한 미소의 의미를 9번은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

  그리고 그 때 느낀 모욕감을 씻어 없앨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중요한 것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13번을 철저하게 박살낼 절호의 찬스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
  특별 대결의 날짜와 장소, 시간 등의 준비는 11번의 사주(?)를 받은 교관이 흥미를 보이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많은 시간도 기다릴 필요 없다. 실행일은 3일후, 오전 개인 트레이닝 시간에 제 6동의 제 1번 대결장으로 정해졌다. 자비로운 교관은 관리자들과 교섭해 이 날 만큼은 개인 트레이닝 시간에 모든 실험체들이 둘의 대결을 견학하는 것을 허가받았다. 굳이 제 6 동으로 정한 것은 단순히 6동이 전 시설에서 가운데에 위치해 각 동의 모니터룸과 연결하기 수월하다는 이유였다.

  아주 잘 된 일이다. 다들 똑똑히 지켜봐라. 네놈이 쓰레기란 것을 모든 이 앞에서 다시금 증명해주마.

  “9번! 살살할 생각은 없겠지?”
  “쭉 의문이었다고. 만년 최하위인 그 녀석이 왜 폐기가 안 되는지.”
  “봐줄 필요 없어! 죽여버려!”
  “11번은 성가시긴 해도 재밌는 일을 벌인다니까.”
  “난 널 응원할거야!”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있는 9번은 식당이건 체육관이건 복도건 간에 지나가는 실험체들에게 받는 응원 메세지에 흡족하고 있었다. 그렇다. 이게 올바른 시설의 모습이다. 늘 어딜 싸돌아다니는지 모를 11번이나 소식도 듣기 힘든 99번이 아니라 내가 바로 이 시설의 진정한 대장이다. 13번 같은 쓰레기를 응원할 녀석 따위 어디에도 없다.

  “기대하라고. 시설에서 하지 않겠다면 그 놈의 폐기 처분은 내가 직접 해주지.”

  시간이 지날수록 쌓이는 고양감을 즐기면서 9번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

  “그러니까! 슈루룩 하고 몸 속에 흐르는 기운을 후루룩! 하고 끌어낸 다음 휘리릭! 하고 조물조물 해서 쇽쇽! 하는 느낌이야!”
  “하아……. 그래.”

  충격적인 정보를 전해들은 다음날 오전 개인 트레이닝 시간. 13번은 또 다시 11번에게 이끌려 문밖으로 끌려왔다. 물론 엄밀히 말해 ‘개인’ 트레이닝 시간이므로 이것은 일탈 행동이다. 13번이 평소와 같이 규칙을 들먹이며 딴지를 걸었지만 11번도 평소와 같은 대답을 들려줬다.

  언니한테 말하면 괜찮아!

  사실 일탈이든 규칙 위반이든 13번으로서는 마다하지 않을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어제 조언한 것으로는 본인의 성에 차질 않았는지 11번이 자진해서 위상력 컨트롤 특훈을 제안한 것이다. 다만, 지금 그 특훈이 성과를 보이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너, 그 위상력 컨트롤이란 거 교관이 그런 식으로 가르쳐주디?”
  “응 교관? 언니 말하는 거지? 언니는 적당히 대련 상대만 해줬어. 나머지는 내 감!”
  “그런 걸 보고 재능이라고 한단 말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르쳐준다고 되는 게 아니란 거잖아. 13번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솟아올랐던 의욕이 어깨와 함께 축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누가 그랬냐. 천재와 범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거짓말 하지마라. A4용지 1000장도 부족할 정도로 차이가 막심하다.

  “아이 참. 13번은 너무 필사적이라고 어제도 말했잖아? 좀 즐겨봐! 즐겁게! 기분좋게! 익사이팅하게!!!”
  “야. 난 여기서 태어나서 평생을 죽어라 노력해왔어. 이제 와서 그걸 즐기라니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잖아.”
  “어렵지 않아! 돈 워리, 비 해피!”

  특훈을 시작하고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느낀 11번에 대한 감상은 ‘막무가내’ 그 자체였다. 애초에 슈루룩하고 후루룩이 뭔가. 마치 스파게티 조리법을 칼로 탁탁탁 냄비에 쏴아 하면 완성 요리 끝! 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딱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싸움을 즐긴다’라는 경험 자체가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 13번이라고 해서 100전 100패는 아니다. 때로는 요행으로 13번보다도 싸움에 서투른 녀석이 걸릴 때도 있던 것이었다. 전 시설 꼴등을 면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러나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런 녀석들 대부분은 싸우다 죽거나, 수술하다 죽거나, 폐기 처분 당해 시설에서 사라져갔고 그런 식으로 13번의 등수는 완만하게 하강곡선을 그려왔다. 분명히 13번도 그 옛날 훨씬 어릴 적, 좀 더 만만한 실험체들이 많을 때는 제법 대결을 즐겼던 기억이 있다.

  “어느 정도 수를 주고받는 게 성립이 돼야 즐길 텐데 말이지.”
  “그럼 주고받으면 되지?”
  “안 되니까 이러는 거 아냐! 그리고 너 대체 그 설명은 뭐야! 우리나라 말이 맞긴 한 거냐?”
  “그냥 내 감대로 설명해 준건데? 어려웠어?”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니라! 으아아! 나랑 안 맞는다고!”
  “흐음~, 그래? 그럼 너한테 맞춰서 해볼까?”

  확실히 사람마다 감각은 다른 법이지- 라며 11번은 진작 꺼냈어야 할 말을 이제야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낼 기운도 없어진 13번은 별 기대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그녀가 다음에 할 말을 기다렸다.

  “13번은 분명 위상력을 보라색 불꽃으로 만드는 게 특기지?”
  “그렇지. 왜 그런 흉흉한 색깔이 나오는 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보라색은 죽음을 상징하는 색. 13번은 그런 자신의 불꽃의 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황색이어도 좋고, 푸른색이어도 좋으련만 어울리지도 않게 보라색이 뭐람.

  “부럽단 말이지~. 난 특기라고 할 만한 건 없거든.”
  “부러워 할 걸 부러워해라. 난 그 위상력 컨트롤이란 게 전에 없이 탐나거든 지금?”
  “그거 말이지~? 이것도 언니가 말해준 건데, 난 다른 사람들보다 능숙할 뿐이지, 위상력 컨트롤이란 건 누구나 쓰는 기술이래. ‘바깥’의 능력자들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거라고 했어. 참고로 언니같은 경우에도 별다른 특수한 능력 없이 위상력 컨트롤만으로 겨우 그 수준에 도달했다니깐 말이지. 그걸 보완하기 위해 검술을 단련한거고.”

  또 다시 터져나오는 폭탄 발언에 13번은 머리가 지끈지끈해지기 시작했다. 그 괴물같은 교관도 바깥에 비하면 ‘겨우 그 수준’이라는 것처럼 들린 것은 착각인가? 아니, 그것보다도 그 중에서도 절대로 간과할 수 없는 발언이 있었다.

  “‘바깥’의 능력자들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간다고?”
  “응. 이것도 할 줄 모르면 반 푼 어치로도 안 쳐준다나봐. 자,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건 ‘바깥’이 어떤가가 아니야. 지금부터 베리베리 중~~요한 걸 전수해주겠어!”

  맞는 말이다. 바깥의 수준이 어찌 됐든 13번에게 있어서 현재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것은 ‘9번’이라는 정신 나간 전투광 실험체이다.

  “그 화염을 내는 감각을 몸에 흘린다고 생각해봐.”
  “후우……알았어.”
  “몸 바깥으로 내뿜는 것과 몸 안에 가두는 건 효율 자체가 달라. 좀 더 내 감각으로 말하자면~ 몸을 딴딴하게 만든달까?”

  11번의 어휘력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은 이미 익숙해져 있다. ‘효율’ 씩이나 되는 단어를 사용해준 것이 고마울 정도다. 13번은 그것을 해석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사고력을 동원해 이해해보기로 했다. 말인 즉슨, 위상력을 외부로 발산하는 것과 내부로 순환시키는 것의 위상력 소모차가 심대한 것은 명백하다는 것. 몸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은 내부로 순환하는 위상력을 신체에 고정시켜 강화시키라는 뜻이다. 아까 전의 슈루룩이 어쩌고 후루룩 휘릭하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나은 설명이므로 13번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면 몸이 딴딴해지는 효과도 있지만 힘이 세지는 건 당연하고 몸도 무진장 가벼워져. 그런 만큼 눈도 좋아지고! 날아오는 총알을 보고 피할 수 있을 정도야! 스바라시하지!”

  그건 일본어잖아! 어디서 배웠어!

  마음속으로 한 번 성대하게 태클을 거느라 집중이 끊긴 13번은 한숨을 한 번 내쉰 뒤에 다시 집중하기로 했다. 하나하나 신경 쓰면 지는 거다. 신체 강화를 하면 근력 향상으로 인한 전반적 운동 능력 증가, 동체 시력의 강화, 반응 속도 증가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머릿속으로 번역해 해석했다.
  첫 번째 과제로 돌아가서, 화염을 몸속에 흘린다는 감각. 사실 이게 가장 큰 과제다. 도무지 몸속에 존재하는 위상력이란 것을 오감으로 느낄 수가 없다. 11번이 굳이 ‘화염을 내는 감각’이라고 한 것은 그녀의 직감적인 판단일까? 13번이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위상력의 근원을 더듬기 위해서는 확실히 직접 눈으로 존재를 확인해온 그의 화염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내 불꽃은 어디서 나오지?
  애초에 왜 불꽃인 거지?
  위상력이 보랏빛 불꽃으로 실체화하는 것에 어떤 이유가 있지?

  13번은 전에 없이 고요한 모습으로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만큼은 ‘바깥세상’, 아니 그의 신체 외의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을 거둘 때이다. 시설, 주위의 실험체들, 과학자들, 교관 그리고……, 바로 앞에 서있는 11번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자신의 힘의 근원을 생각한다. 보라색은 죽음의 상징. 그는 자신의 불꽃의 색깔을 싫어했다. 왜 하필 죽음의 색인 것일까. 죽기 싫다. 살아남고 싶다. 더 바랄 수 있다면 ‘바깥세상’에 나가서……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
  잠깐 기다려봐라. 그렇다면 왜 ‘불꽃’이지? 불꽃은 무엇을 의미하지? 왜 여태 이쪽은 생각해** 않았던 걸까? 그가 보라색을 죽음의 상징이라 여기는 것처럼, 불꽃의 상징은…….

  여기까지 생각한 순간 그는 뭔가 뇌 속에 번개가 치는 감각을 느꼈다.

  “알겠어.”
  “응? 응응! 뭔데? 뭔데? 뭘 알았어?”

  어울리지 않게 인내심을 가지고 가만히 기다리던 11번이 콧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기 시작했다. 13번은 엷은 미소를 띠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깨달음을 얻은 듯한 만족감이 가득 차 보였다. 10년을 넘게 끌어안고 있던 고민거리가 일순간 해소된 그는 이제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해방감에 휩싸여 있었다.

  “11번.”
  “으응?”
  “너 ‘프로메테우스’라고 들어봤어?”
  “아니? 그게 뭔데? 먹는 거야?”

  어떻게 그런 발상이 튀어나오는 거람?
  13번은 달관한 기분으로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의 이름이야. 추위에 떨어 죽어가는 인간들에게 불을 훔쳐다 가져다줬지. 뭐 본인은 나중에 그것 때문에 벌 받았지만 말이지. 인간은 프로메테우스 덕에 생존할 힘을 얻었어.”
  “후잉, 불쌍해라. 그래도 고마운 사람이네?”
  “기억이 나는군. 꽤 전에 식당에서 태양에 대해 말한 적이 있었지. 그 태양도 불덩어리거든. 지구의 모든 생명의 근원 같은 존재지. 불이란 그런 거야. 불은…… 생명의 상징이다.”

  13번은 그렇게 말하면서 가만히 오른손을 들어 펼쳐보였다. 순간 그의 상징인 보랏빛 불꽃이 확하고 피어올라 손을 감쌌다. 언제나처럼 제어가 안 되어서 온 몸에 전력전개 하다시피 한 격렬한 불꽃과 달리 고요하고, 조용한 불꽃이었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참 예쁜 불꽃이야.”
  “……헛소리마.”

  13번은 얼굴을 홱 돌리고는 새침하게 쏘아붙이면서 불꽃을 거둬버렸다. 절대 빈말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그녀임을 알기에 더욱 똑바로 쳐다보기가 어려워졌다.

  “에~? 더 보여줘!”
  “나중에 실컷 보여줄게.”
  “칫. 약속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의 위상력을 제어하는 감각 제대로 기억했지?”
  “어, 뭐……, 그렇지. 이젠 느껴져. 내 위상력이.”
  “그럼…….”
  “!!”

  퍼엉!

  공기가 터져나가는 듯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11번과 13번은 충격과 함께 일어난 먼지구름 속에 휩싸여 보이지도 않게 됐다.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간 돌멩이들이 떨어지고 이내 먼지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며 움푹 파인 지면부터 모습을 드러냈다.
  11번이 예고도 없이 위상력을 담아 영거리 펀치를 날린 것이었다. 걷혀나가는 먼지구름 사이로 보인 13번은 두 손바닥을 겹쳐 11번이 뻗은 오른쪽 주먹을 감싸듯이 막아내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렇다. 막아낸 것이다.

  “잘했어!! 놀라운데!! 원더풀!!!!”
  “원더풀 같은 소리 하네!!! 하마터면 죽을 뻔 했잖아! 이 망할 년아!”
  “막아낼 거라 믿었거든! 에헷♡”
  “에헷♡- 이 아냐!!!!!”

  반사적으로 성질을 박박 냈지만 놀란 것은 13번 본인이었다. 당연히 전력을 낸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냥 펀치가 아니다. 다름 아닌 11번, 탑랭커 1위의 펀치였던 것이다. 10분 전의 그였다면 그대로 가슴에 바람구멍이 뚫려 즉사했을 것이 분명한 위력이었다.

  “경사났네! 경사났어! 솔직히 특훈을 하자곤 했지만 이렇게 금방 배울 줄은 생각 안 했거든?! 못 해도 9번하고 싸우기 전에 신체 강화라도 가능하게 해야지 싶었거든?! 13번 혹시 천재 아냐?! 어머어머 어떡해 이제 랭킹 갈아치우는 것도 시간문제겠어! 아니, 나도 언니한테 가서 단련메뉴 좀 강화시켜달라고 해야겠는데?!”

  자기 일처럼 꺄아꺄아- 하고 기뻐하면서 방방 뛰어다니는 그녀를 보면서 13번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애초에 과장이 심하다. 겨우 장난에 가까운 펀치를 가까스로 받아낸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대니 이쪽이 민망할 정도다.

  “야.”
  “으응~?”
  “고마워.”
  “어? 으, 응…….”
  “좀 있으면 점심이다. 빨랑 들어가자. 누가 보면 변명하기 귀찮아.”
  “그, 그건 괜찮아! 언니한테 말하면 다들 입 다물게 만들 수 있으니까…….”
  “어? 뭐 그렇긴 하겠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1위에게 개인교습을 받았다고 하면 난리도 그만한 난리가 아닐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13번은 서둘러 식당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분명히 쓰레기 주제에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느니 하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교관이 11번의 어리광을 듣고 압력을 넣어 무마한다고 해도 말로만 안 나올 뿐이지 다른 실험체들에게 불만이 쌓일 것이 눈에 훤했다. 특히 모 만년 3위 탑랭커 자식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 오후 대련은 기대가 좀 되는군.”
  “그래! 반드시 이길걸! 아 그리고 13번!”
  “엉?”
  “이건 내 개인적인 감상인데, 너는 늑대 같아. 꼭 말해주고 싶었어.”
  “늑대? 그 개과 동물 말하는 거 맞냐? 내가 개 같다는 거냐?”
  “어, 아마 맞을걸? 늑대는 말이지. 사냥감을 사냥할 때 그냥 막 하질 않거든.”

  분명 악의 없는 거겠지 이 녀석……?

  “어떤 동물이든 생각 없이 사냥하진 않아.”
  “으응~ 그런 얘기가 아냐. 훨씬 계산적이고 치밀하다고나 할까? 매일 네가 대련하는 걸 지켜봤다고 했지? 그런 인상을 받았어. 겉으로 보기에는 막 짐승처럼 덤벼드는데 속으로는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막! 막! 머리를 굴리는 게 보이거든? 언니도 그랬어. 보기 드문 타입이라고. 적절한 힘만 갖추게 되면 상대하기 힘들 거라고 했어.”
  “허어……. 그래. 칭찬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그러니까! 오늘은! 이길 거야! 적절한 힘을 갖추게 됐잖아?!!! 그러니까 파이팅!”
  “하하, 그래 그래.”

  그 날 13번은 처음으로 15번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다.

                                         ∴

  실험체 9번 대 실험체 13번의 특별 대결의 날이 왔다.
  13번은 특별 대결 전까지의 3일 모두 15번을 상대로 연승했다. 15번은 당황스러워 하긴 해도 13번의 성장에 솔직하게 기뻐해줬다. 좋은 녀석이다. 이 사실은 9번의 귀에도 당연히 들어갔으나 그는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15번도 어차피 쓰레기야. 그거 좀 이겼다고 달라질 건 없어.”

  말할 필요도 없이 9번은 근 3일 내내 달라질 것도 없이 11번에게 연패중이다. 사실 대련 파트너 교체 권유를 시설 관리 측에서 수도 없이 했으나 절대로 바꾸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9번 본인이었다. 그가 11번과 페어가 되고 나서 약 반 년이 지났다. 11번의 대련 파트너가 바뀌는 경우는 그녀의 파트너가 어떠한 이유로 사망하거나 본인이 교체를 희망했을 경우 뿐인데, 반 년 씩이나 11번의 파트너를 유지한 실험체는 여태까지 없었다. 사실 11번의 파트너 자리는 공석이었던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던 것이다. 반 년 이상이나 하루도 빠짐없이 패배하면서 파트너 자리를 지키고 있는 9번은 그것만으로도 경외시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따라서 13번이 3일 동안 15번에게 이겼다 한들,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수준 차이가 다르다. 9번이 11번에게 패배하는 것과 13번이 15번 따위에게 승리하는 것은 아예 비교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어, 죽을 준비는 다 되셨나? 다음 생에는 힘센 고릴라로 태어나게 기도는 드렸고?”
  “글쎄다. 거지가 돼도 사람이 나을 것 같은데.”

  여전히 주둥이만 산 놈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13번 녀석에게서 이유모를 여유가 느껴진다. 주관적으로 보나 객관적으로 보나 9번의 생각에 13번에게 승산이란 눈꼽만치도 없었다. 그것은 실제 데이터가 증명해주고 있다. 그렇게 느끼는 것은 9번만이 아니었다.
  대결장에 딱히 관중석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다른 실험체들은 각각 제 6 동 제 1 대결장으로 일시적으로 연결시킨 모니터링 룸들에 흩어져 견학을 하고 있었다. 본래 관리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이것도 교관이 강권을 발동해 허락을 받아냈다. 그런 실험체들도 초조해 하는 15번을 제외하면 다들 13번이 어떤 식으로 괴롭힘 당할 것인가, 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점치고 있었으나 여유가 넘치는 걸음걸이로 대결장에 등장한 13번을 보고 의아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요새 15번에게 3판 연속 따냈다지? 고작 그런 걸로 자신감이 치솟다 못해 천장을 뚫을 기세인 거냐? 가소롭기 그지없군.”
  “뭐래냐.”

  하품을 하며 **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파는 13번을 보면서 드디어 9번의 뭔가가 뚝 끊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이……, 낙오자 쓰레기 **……!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가나 한 번 시험해주마!”
  “예예~, 그나저나, 심판은 있는 거냐? 11번! 네가 하는 거냐?”
  “11번이라고?”

  11번은 가만히 대결장 구석에 서서 그들의 대화를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9번은 온 신경이 13번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전혀 눈치를 채지 못 한 모양이다. 그는 혀를 차면서 자신의 불찰을 곱씹었다. 13번은 알고 있었는데……!
  11번은 13번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씨익 웃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해주지.”

  그 때 대결장에서 메인 라운지로 통하는 자동문이 특유의 금속음을 내면서 열렸다. 그곳에는 그 누구도 상상 못 한 인물이 서있었고 9번과 13번은 물론 모니터를 통해 대결을 견학하는 다른 실험체들마저 얼굴의 핏기가 싹 가셨다.

  “이런 재밌는 이벤트를 준비해준 귀여운 아가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노동을 좀 해줘야겠지?”

  ‘위상능력 발생유도 프로젝트 시설’의 유일무이하고도 정진정명 누구나 인정하는 괴물.
  교관이 거기 서있었다.

  “말 한대로, 내가 심판을 맡는다. 룰은 간단하다. 내가 곧 룰이다. 대결을 개시하는 것은 내가 결정한다. 멈추는 것도 내가 결정한다. 승패도 내가 결정한다. 모든 게 내 주관이지. 어때 쉽지? 내 말만 잘~ 들으면 되는 것이야. 불만이 있다면 지금 말해라. 얼~ 마든지 들어주지.”
  “어, 없어…….”
  “없다…….”

  불만이 있을 턱이 없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간 대결이고 자시고 그 순간 누워서 힐링 팩터 행이다. 9번은 더 이상 입을 놀리지 않게 됐다. 하품을 하거나 귀를 파면서 여유를 부리던 13번도 자세를 잡고 싸울 준비를 했다.

  “좋아. 내 검이 바닥을 치는 것이 신호다. 그 때부터 싸워라.”

  교관은 조용히 자신의 애검을 스릉- 하고 뽑아서 천장을 향했다.


  “준비.”

  방금 전까지 쑥덕대면서 모니터를 바라보면 실험체들도 교관이 등장함으로써 긴장일색이었다. 오직 11번만이 웃는 표정으로 대결장의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리 말해두지. 교관이 있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넌 여기서 폐기 처분이다.”
  “노력해보시지.”

  마지막으로 두 남자가 주고받은 대화와 함께-
  교관의 검이 바닥을 내리쳤다.






2024-10-24 23:18:0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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