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鳥 - 1 - 제 1 동의 낙오자

비타짱하얘 2018-01-01 0


  小鳥 - 1 - 제 1 동의 낙오자

  실험체 13번의 일과는 매일 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어나서 앉아 점호를 받고 통제에 따라 식당동에 가서 밥을 먹는다. 잠시 개인 근육 트레이닝 시간을 가진 다음 장시간에 걸친 신체검사를 받는다. 피를 뽑고, 소변을 채취하고, 혈압을 재고, X-ray 사진을 찍은 다음 심장 투시 검사를 받는다. 이런 것을 매일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있는지 알 리가 없는 13번은 ‘귀찮다’라는 생각 외는 하지 않는다.

  ‘위상능력 발생유도 프로젝트 시설 제 1 동’의 모든 일과는 관리자의 통제에 따라 진행된다. 오전 검사가 끝나면 식당동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 물론 영양 밸런스를 중시하기 때문에 맛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다. 음식이라 불러도 될지 의문스러운 단백질 블럭과 온갖 영양소를 때려넣은 죽, 그리고 물. 그것이 여기서 ‘식사’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맛없다며 불평하지 않는다. 애초에 맛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다. 그 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점심 식사가 끝나면 각 실험체는 자신의 파트너와 대련을 한다. 말이 대련이지 그야말로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는 간단한 룰 아래 치열하게 싸우게 된다. 높고 잘나신 과학자 분들이 만든 힐링 팩터 덕분에 어지간한 중상은 다음날이 되기 전에 완치가 가능하다. 물론 잘려나간 손발까지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당한 쪽 잘못이다.


  “오늘도 기합이 별로 안 들어가 있던데. 13번.”
  “…….”

  오후 대련이 끝나면 각자의 담당관과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다. 그 날 대련을 데이터 삼아 반성회를 하는 것이 기본이고, 그 날 따라 담당관의 기분이 좋다면 단순하게 잡담을 나누거나, 평소에 비해 신체 운용에 향상이 보였다면 칭찬을 듣기도 한다. 물론 13번은 늘상 그래왔듯이 ‘반성회’다.

  “솔직히 말해 13번, 너는 위상력이 이 시설에서 가장 약하게 발현됐지. 그건 부정하지 않으마. 하지만 조금은 노력해보는 게 어떠냐?”
  “…….”
  “애초에 수술을 받고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단 말이다. 강화 시술은 벌써 17번째 받았지. 이건 기적이라고 생각해도 돼. 곧 있으면 18번째 시술이다. 좀 더 자신감을 갖고 해보면 어떨까?”
  “…….”

  아- 귀찮다.

  라는 것이 13번이 지금 생각하는 모든 것이었다. 위상력 강제 주입 수술이 개발된 것은 13번이 대충 7살 즈음 됐을 무렵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지 알 바 아니었다. 다만 소체에 굉장한 위험부담을 안기는 수술인 것은 알고 있었고 수술을 받을지 말지 결정할 권리가 없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다. 지금이야 ‘13번’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지만 당시에는 그와 같은 어린애들이 수두룩해서 이름은 고사하고 따로 불러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그 때 같이 있던 어린애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설에서 태어났거나, 그게 아니면 전쟁고아였다는 것과 수술을 받은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이성을 잃어 사살처리 됐다는 것. 그 정도가 어린 시절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이다.

  강화 시술은 반년에 한 번씩 받는다. 사실 그 강화 시술이란 것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 간혹 버티지 못 하고 발작을 일으키거나 심하면 사망하는 실험체가 있지만 신기하게도 13번은 최약체라 불리면서도 단 한 번도 이상증세를 일으킨 적이 없었다.

  다시 담당관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다음이 18번째 시술이란 것은 13번이 9년 가까이 문제없이 생존해왔다는 뜻이 된다. 사실 그의 능력을 생각해보면 폐기 처분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으나, 13번 본인도 모르지만 이상하게도 여태까지 처분당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너에게 기대하고 있다. 뭐, 그렇게 말한다 해도 탑랭크로 올라간다던지 거창한 걸 바라진 않아. 너의 파트너인 15번만큼만 열심히 해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
  “후우……. 뭐 질문하고 싶은 건 없니?”
  “방에 있는 책, 다 읽었어. 더 갖다줘.”
  “변함없이 독서광이구나. 우린 널 구속하지 않아. 자유시간에는 다른 아이들과 뛰어보는 건 어때? 저번에 축구에 대해서는 가르쳐줬지? 재밌을 것 같지 않아?”

  구속하지 않아- **하고 ****.

  애초에 축구란 건 널찍한 공간에 22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야 성립하는 스포츠다. 싸움밖에 모르는 멍청이들은 모르고 있겠지만 최소한 그 놈들이 그 코딱지만한 체육관에서 서로 공을 차서 주고받는 것은 축구가 아니다.

  “흥미가 생기면 해**.”
  “좋아, 좋아. 곧 있으면 저녁시간이구나. 무슨 책을 가져다줄까?”
  “……. 재미*** 없는 과학책이나 수학책만 아니면 돼. 하다못해 백과사전으로.”
  “그래, 알았다.”

  담당관은 안경을 고쳐쓰며 만족한건지 아닌지 모를 얼굴로 면담실을 나갔다. 13번도 작게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널 구속하지 않아.

  물론 거짓말은 아니다. 돌발적으로 정신에 이상이 생겨 폭력적이 된다던지 하는 게 아닌 이상에야 범죄자처럼 수갑을 채운다던가, 일거수일투족 감시자가 따라붙는다던가 하는 성가신 짓은 하지 않는다. 특히 저녁식사 이후 자유시간에는 시설 안에 있는 한 무엇을 하든 자유다.

  그래, 시설 안에 있는 한이다. 바깥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13번이었지만 그 사실 자체가 막연한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애초에 바깥이란 뭐지? 나가면 무엇이 있지? 

  13번이 처음부터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낸 것은 아니었다. 위상력 강제 주입 수술로 인해 발현하는 힘의 정도는 재능과는 별개의 문제다. 몸이 잘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것 또한 재능이라고 하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나 약한 발현을 했으면서도 눈에 띠는 이상증세가 나타나지 않는 13번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 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13번은 노력했다. 주어진 힘이 약하다는 것 때문에 뒤쳐지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인정받기 위해 ** 듯이 노력했다. 천성적으로 가진 끈기와 인내심. 그것이 관리자들이 그의 평가서에 써놓은 유일한 장점이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를 따라오는 꼬리표는 ‘낙오자’이다. 얼마만큼 노력을 한다 해도 그 이상으로 다른 실험체들이 앞질러 가버린다. 상식적으로 그런 생활이 9년 가까이 이어지면 벌써 절망감에 사로잡혔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번은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았다. 놀릴테면 놀려보라고. 언젠가 다 거꾸러뜨려주지!

  하지만 어느 날, 담당관이 별 생각없이 준 수필집 하나가 그의 근본을 바꿔버렸다. 13번이 읽은 그 책에는 ‘자유’에 대한 찬양이 빽빽히 쓰여있었다. 하고싶은 것을, 하고싶은 때에 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는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깥’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였다. 관리자들과 다른 실험체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에 ‘바깥세상’과 ‘자유’라는 미지에 대한 기대감과 동경, 그리고 공포, 두려움. 온갖 애증이 섞인 ‘바깥’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기 시작한 이후로 13번은 아예 열심히 하는 것조차 그만두고 싶어져 버렸다.

  열심히 해봤자 뭐해? 어차피 여기서 못 나가는데.

  어찌됐든 담당관의 말대로 저녁식사 시간이 됐으므로 현실로 돌아오기로 했다. 13번도 잡념을 거두고 식당동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독서 말고는 할 일이 없다고 여기는 그에게 있어 식사는 그나마의 낙이었다. 맛을 즐긴다는 의미의 낙이 아니다. 꼬르륵 거리는 배를 채운다는 포만감 그 자체만을 하루의 낙 중 하나로 삼는 것이다.

  “13번!”
  “어?”
  “같이 가자.”
  “그래.”

  13번의 파트너인 15번이다. 15번은 능력도 그저 그렇고 전투 센스도 그저 그렇지만 성격은 서글서글한 좋은 녀석이다. 그저 그렇다고는 했지만 13번에게 있어서는 아직도 넘기 힘든 벽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특유의 붙임성 덕분에 13번과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면담은 어땠어?”
  “다를 것 없었어. 아니, 기합이 좀 부족해보였다던데.”
  “응, 그래? 그 자식은 대체 뭘 본거야? 오늘 너 최고로 무서웠는데.”
  “아는 대로 보이는 거지. 신경 안 쓰니까 너도 신경 꺼.”

  평소보다도 더욱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니 오늘은 칭찬받은 것이 틀림이 없다. 그 원초를 제공해 준 것이 본인이라는 생각을 하니 씁쓸해지는 13번이었지만 굳이 자랑하지 않는 15번이기에 볼쾌하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은 13번도 이겨볼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최근에 의욕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지고만 있을 생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5번은 주무기인 쌍검 중 하나를 투척한다는 과감한 기술을 선보여 결국 13번을 패배시키고야 말았다. 생각도 못 한 전법을 눈앞에 둔 13번은 반응도 못 한 채 옆구리에 검이 꽂혔고 그대로 KO판정을 받았던 것이다.

  “너도 무기를 써보는 게 어때? 언제까지고 맨손으로 싸울 거야?”
  “손에 맞는 무기가 없어. 게다가 내 특기는 화염이라고. 뭘 들고 싸우란 거야.”
  “그건 그렇지만 너, 계속 화염에 고집해서 위상력이 먼저 바닥나잖아?”
  “그건……. 그렇지만.”

  13번은 늘 마음에 드는 무기가 없다며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잘 다룰 자신이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게 진짜 이유이다. 게다가 13번의 주무기는 수술 직후 발현한 보랏빛 화염이기에 무슨 무기를 들어도 효율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낙오자’니 뭐니 해도 13번의 화염공격은 사실 화력만 따지고 보면 딱히 누군가에게 뒤질만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위상력의 총량인데, 아무리 강한 공격이어도 빗맞힌 이후에 다시금 공격하지 못 하면 아무 의미 없지 않은가? 10번 빗맞춰도 괜찮은 것과 1번이라도 빗맞추면 안 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 시시콜콜한 싸움이야기를 하며 식당동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렇듯 배식대에는 정성스럽게 비닐포장된 단백질 블럭이 산처럼 쌓여있었고 직원 한 명이 국자로 영양죽이 든 커다란 냄비를 휘휘 젓고 있었다. 직원은 13번과 15번을 보자마자 환한 미소로 반겼다.

  “오, 13번과 15번이구나. 오늘 대단했어. 둘 다.”
  “뻥치지 마. 이 녀석만 대단했어.”
  “아니, 빈말이 아냐. 13번 오늘 출력은 최고기록이었다고 들었어. 직후에 당했지만.”
  “그래요. 깜짝 놀랐다구요. 최근에 힘이 없어보여서 걱정했는데 그 커다란 불덩이는 섬뜩했단 말이죠.”

  -놀기만 한 건 아니란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오늘 진 것이 분하다. 나름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연습실에서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기술- ‘연옥구’의 출사표를 던진 것이 바로 오늘이었다. 근접해서 화염으로 공격하는 것이 전부였던 그에게 원거리 공격수단을 얻은 것은 조금의 자신감을 심어줬지만 마찬가지로 원거리 공격을 구사한 15번에게 또 다시 맛본 패배의 쓴 맛은 평소보다도 더욱 쓰디 썼다. ***.

  “뭐, 그렇게 서로 발전해나가는 거지. 자자 이거 먹고 힘내.”
  “감사합니다.”
  “감사.”

  나란히 죽그릇과 단백질 블럭을 들고 빈 테이블에 앉는다. 13번은 블럭 한 개, 15번은 세 개다. 단백질 블럭의 섭취 갯수는 제한 따위 없다. 식사 시간만 지킨다면 1개든 100개든 원하는 대로 먹어도 좋다. 다만 블럭이 제공하는 포만감이 장난이 아니기에 보통 한 개 반만 먹어도 물리게 되지만 15번은 제 1 동에서도 유명한 대식가였다. 그래도 두 개 정도 먹는 게 보통이었는데 요즘 들어서 15번의 섭취량은 이상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죽 또한 13번에 비해 두 배 정도는 되어 보인다.

  “그 쪼그만 몸에 대체 어디에 그게 다 들어가는 거냐. 위장이나 터져죽어라.”
  “그게 말이지. 이상하게 요즘 더 배가 고프더라고. 먹어도 먹어도 금방 꺼지고 말야.”

  분명 이 녀석이 이상한 거 맞지?

  본인의 약함의 원인이 먹는 양은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 13번은 묵묵히 블럭을 베어물었다. 변함없이 아무 맛도 안 난다. 그래도 몸은 솔직해서 굶주린 위장이 이것을 먹으라고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죽과 함께 꾸역꾸역 씹어 먹었다.

  “이야, 꼴등님 식사하시네?”

  거슬리는 소리가 났지만 쳐다**도 않았다. 볼 것도 없이 랭커 중에서도 ‘탑3’인 9번이다.

  시설은 이곳 제 1 동부터 제 10 동 정도까지 있다. 정확히 몇 동이나 있는지는 13번의 관심 밖이기 때문에 모른다. 한 동에 몇 명씩이 있는지도 물론 모른다. 아무튼 그 모든 동의 모든 실험체들이 한 달에 한 번 무작위로 결정된 상대와 실전에 준하는 대결을 펼치게 되는데, 그 실적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그것을 랭크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상위 15위까지를 소위 ‘랭커’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서도 상위 5명을 ‘탑랭커’라고 부른다.

  “말 똑바로 해, 13번은 꼴등이 아냐. 뒤에서 5등 정도라고.”
  “더 쪽팔리니까 **…….”
  “봐봐~, 본인도 부끄럽대잖아. 하지만 사과는 하지. 1동 꼴등씨~?”
  “너도 그만 닥치고 밥이나 처먹어라.”
  “예이, 예이, 15번한테 깨지는 건 일상일텐데 왜 이렇게 저기압이실까?”
  “그러는 넌 11번한테 일상적으로 깨지는데 꽤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피학증인가?”

  ‘11번’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9번의 얼굴이 순간 실룩대는 것이 보였다. 그럼 그렇지. 자기가 진 것이 분해서 괜히 최하위에 속하는 13번에게 화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주위의 모든 실험체들이 알 수 있었다.
  ‘11번’이란 다름이 아니라 전 시설 내 최고 랭커, 즉 ‘탑1’을 가리키는 말이다. 단순한 1위가 아니라 부동의 1위. 무작위 대결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한 적이 없는 무적의 실험체. 그것이 이 건방진 9번의 대련 파트너이다. 사실 11번에게 진다는 것은 전혀 부끄러울 것 없는 일이지만 쓸 데 없이 자존심이 있는 9번에게는 충분히 역린이었다.

  “피하아악증? 뭔진 모르겠지만 욕이란 것은 알겠다. 너, 다음 대결 때 만나면 진짜로 죽을 줄 알아라. 대결 중 사망은 사망자 책임이란 것 쯤 알고 있겠지?”
  “어련하겠어.”
  “이 자식이, 꼴등 주제에 뭘 믿고 그딴……!”

  다만 그 ‘11번’과는 가능한 엮이지 말자- 고 13번은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결코 좋은 느낌이 들지 않는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돌아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이쪽을 보면서 씩 웃지 않는가.


  “네~~~!!!! 잘 들었습니다! 9번이 13번에게 선전포고!! 빅 뉴스네!!!!!”

  망했다.

  11번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언행으로 또한 유명하다. 기본적으로 언제나 목소리의 톤이 높고 가만히 있을 줄을 모르며, 시설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과장해서 소문을 낸다. 소위 ‘확**’라 불리는 존재이다. 소문만 낸다면 다행이지만 이상하게 일을 벌리는 것을 좋아해서 허가받지 않은 ‘블럭 많이 먹기 대회’나 ‘축구 대항전’같은 것은 귀여운 수준이고, 대련을 일찍 끝마친 실험체들을 모아서 승패 내기를 하거나 자유시간에 몰래 대결장에 침투해 토너먼트 대회를 개최한다든지 배틀로얄을 벌인다든지 이 시설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기행을 벌이는 존재이다. 참고로 이 배틀로얄의 벌칙은 ‘최후의 승자를 제외한 전원 교관에게 덤비기’였다. (전원 죽지 않을 만큼 교관에게 당했다.)
  말 할 것도 없이 혼자 조용히 독서하는 것을 선호하는 13번으로서는 절대로, 네버, 죽을 때까지 눈빛이라도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상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심했는데 잘 됐다! 9번!”
  “어? 어어? 아니, 아, 응!”
  “언니한테 말해서 특별히 둘은 반드시 매칭 되도록 해줄게. 다음 무작위 대결이 언제였더라? 아니지. 그냥 특별히 둘만의 대결 날짜를 정해볼까? 승패 맞추기 내기를 해도 되겠고!”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다. 저 텅텅 비어보이는 머리에 ‘매칭’이라는 영단어는 어떻게 들어가 있던 걸까? 아니 애초에 내기에 무엇을 걸겠다는 걸까? 여태까지 뭘 걸어왔을까?

  “기다려봐라. 난 아무 말도 안 했……”
  “13번도 선전포고를 받았는데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사나이로서 도전은 받아 줘야하는 것이야! 암 그렇고 말고!”
  “별로 사나이가 아니어도 괜찮……”
  “아아! 피가 끓는 남자 대 남자의 자존심 대결! 어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으랴! 소녀가 이 한 몸 다 바쳐 둘의 운명을 건 싸움의 장을 마련해 드리겠사와요!”

  어느새 운명까지 걸게 돼버렸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불만 없다. 이놈을 족칠 수 있다면야.”
  “예! 좋은 각오입니다, 9번 선수! 자 13번 선수, 그쪽도 각오 한 마디!!!”
  “……어어…….”

  각오는 얼어 죽을 각오!

  13번은 싸워서 이길 리가 없다며 혀를 차면서도 이미 분위기를 타버린 11번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슬쩍 쳐다보니 15번도 휘익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저 망할 년이?

  “최, 최선을 다 하지…….”
  “최선을 다 하겠다고 하시는군요! 이거 기대되는데요!!! 질 생각은 전혀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질 생각 만만이다.

  어디서 배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11번은 숟가락을 마이크 대신 들고 의자에 올라 식탁 위에 발을 얹은 채로 인터뷰를 흉내 내고 있었다. 13번은 지금이라도 말로 어떻게든 넘겨볼 요량으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지만 그 눈빛이 워낙 똘망똘망 기대에 차있어서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음. 내 목숨은 여기까진가.’

  뭐가 어찌됐든 9번은 진짜로 13번을 죽일 생각으로 가득인 것 같다. 주저하지 않고 급소를 노릴 것이다.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실력은 탑3라는 위치에 걸맞게 대단하다. 매일매일 행하는 오후 대련에서 패하는 것도 상대가 11번이니까 그런 것이지 그가 약한 것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그건 그렇고 대체 무슨 수로 대결을 주선하겠다는 거지? 또 자유시간에 대결장에 몰래 침투하자는 건가?”
  “응? 아까 말했잖아? 언니한테 부탁할 거야.”
  “언니?”
  “아, 너네들이 교관이라 부르는 언니.”

  그 괴물년을 언니라고 부른다고? 아니 애초에, 그런 호칭을 허락해주는 것 자체가 기겁할 만한 사실이며 통제 외의 일탈행동을 ‘부탁하겠다.’라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다. 과연 랭킹 1위. 13번은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11번과 엮여서는 안 되었다는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9번은 기분이 좋은지 팔짱을 끼고 성격 더러워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13번을 흘겨보는 중이었다.

                                         ∴

  “13번, 미, 미안해…….”
  “이 **아. 나 죽을 거라고?”
  “진짜 미안해! 나도 그만 분위기를 타서…….”
  “사과하지마라. 소용없으니까. 게다가 따지고 보면 네 잘못도 아니고. 제삿밥 준비나 해.”
  “제…… 뭐? 그게 뭐야?”

  이래서 책과 담을 쌓는 놈들은 안 되는 것이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15번을 무시한 13번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식당에서 9번을 도발한 것은 어디까지나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시설 내 규칙 상, 대결 외에 서로 위해를 가하면 안 된다. 이 규칙을 어기게 되면 최소한 독방 1주일 감금이므로 어지간해서는 말싸움이 생기더라도 몸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없다.
  혹시 모르는 새에 11번의 미움이라도 산 적이 있었나?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미움을 사기는 커녕 눈조차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고 지내왔다. 11번이 그 어떤 이상한 일을 시끄럽게 벌이더라도 요령껏 잘 피해왔다고 생각한다. 아마 최소한 제 1 동에서 13번만큼 조용히 지내온 실험체는 달리 없을 것이다.

  “에라이 **…….”

  13번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연신 욕을 뱉어댔다.

  아직 바깥세상은 구경도 못 해봤다. 어떻게든 살아서 바깥에 나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말 몇 마디 했다고 끝나게 됐다. 누굴 원망해야할까? 뇌근육 9번? 등을 떠민 11번? 아님 분위기에 편승해 말려주지 않은 15번?
  그 누구도 아니다. 약한 13번 자신이다. 그는 자신이 왜 이렇게 약한 건지 새삼스럽게 한탄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강하기만 했으면 그런 일이 일어날 리도 없었고, 만일 일어난다 해도 죽을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13번 자니~?”

  그 때 노크도 울리지 않고 웬 여자애의 목소리가 문 밖으로부터 들렸다. 익숙한 목소리다. 바로 방금 실컷 듣지 않았던가.

  “뭐야.”

  13번은 짜증 200%란 느낌의 벌레 씹은 얼굴로 방문을 열었다. 볼 것도 없이 거긴 가증스런 얼굴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존재했다.

  “안녕!”
  “안녕 못 한다.”
  “왜? 어디 아파?”
  “아플 예정이지.”
  “왜? 왜??”
  “아 시끄러! 죄다 네년 때문이잖아!”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11번의 얼굴 때문에 13번의 이미 끓던 속은 끓다 못 해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곧 뒈질 사람을 일부러 괴롭히러 온 건가? 게다가 장본인이? 마음 같으면 목이라도 **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안 그래도 얼마 안 남은 인생이 당장 끝나버릴 거 같아 가까스로 참는 13번이었다.

  “질 것 같아서 그래?”
  “지는 게 문제가 아냐. 죽을 거라고.”
  “안 지면 되잖아? 안 죽으면 되는 거고.”
  “너 장난하냐 지금? 난 전 시설 뒤에서 5등에 1동 꼴등 최약체라고. 그 놈은 탑3인 거 잘 알고 있을 텐데?”
  “아니 몰랐어. 9번 걔가 3등이야? 넌 꼴등이고?”
  “…….”

  진심으로 패고 싶어졌다. 랭크 관계없이.

  “뭐 그런 건 상관없어. 좀 따라올래?”
  “상관없긴, 자, 잠깐!”
  “이길 수 있게 해줄게! 아니, 당연히 이겨야지!”

  ‘따라올래?’라는 말은 분명 권유가 아니었음이 틀림없다. 13번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목이 잡혀 끌려가기 시작했다. 11번은 지금 위상력까지 동원해서 13번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단순 완력으로는 매일 하드 트레이닝을 하는 13번이 얄상한 몸을 가진 11번에게 뒤질 리가 없다. 하지만 13번은 끌려가면서도 그녀가 한 말이 머리에 박혀 저항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길 수 있게 해줄게.

  “야, 기다려봐! 이 앞은 출입 금지 구역-”
  “언니한테 허락 받았어.”

  또 언니냐.

  13번은 태어나 한 번도 열어** 않은 문 앞에 서서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어안이 벙벙한 게 아니라 당혹스러워서 어찌할 줄 몰랐다. 왜냐하면 이곳을 연다는 것은 시설 내 규칙 중에서도 최고로 엄중하게 지켜야하는 그것을 어기는 일이 된다. 랭크에 관계없이 폐기처분 당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가 기억하는 대로라면 이 앞은 분명-

  “아 상쾌하다!”
  “어어…….”

  바깥이다.

  어두컴컴했다. 저게 하늘인가? 새까맣다. 머리 위로 새까만 장막이 펼쳐져 있는 것 같다.
  깊이 숨을 들이쉬어 본다. 이것이 바깥공기인가? 차가운 것이 굉장히 기분이 좋다. 11번이 상쾌하다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번에는 바닥을 바라본다. 책에서만 봤던 흙과 잔디가 있다. 말없이 덜덜 떨면서 그것들을 어루만져본다. 무기질적인 시설 안에서는 느껴** 못 한 묘한 촉감. 13번은 눈도 깜빡하지 못 하고 비둘기눈이 된 채 그것들을 계속 요리조리 만져봤다.

  “이게……, 바깥……?”
  “음~ 바깥이긴 한데 바깥이 아니지. 시설 밖으로 나온 건 아니니까. 부지- 라고 하면 알아듣겠어?”
  “당연히 알지. 요컨대, 건물에서 나왔을 뿐, 완전히 바깥세상에 나온 건 아니란 뜻이렸다?”
  “우와~ 맨날 책만 읽는다고 들었는데 진짜로 똑똑하네?”

  모르는 게 바보 아닌가?

  아무튼 13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본적으로 ‘시설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라는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다. 11번이 그 괴물의 비호를 받는다고 해도 과연 규칙을 어길 수는 없는 거겠지.
  이제야 평정을 되찾은 13번은 물어봐야 할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왜 여기로 데려왔지? 무슨 꿍꿍이야?”
  “응!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지 참!”
  “…….”

  역시 엮여서는 안 되었다고 13번은 다시 생각했다. 어떻게 된 사고회로인 걸까?

  “언니가 말이지. 너를 요주의 하라고 했어.”
  “요주의?”
  “응. 언젠가 나를 뛰어넘을 만한 인재라고.”
  “이건 또 무슨 헛소리지…….”

  이번에는 11번이 아니라 그 괴물, 교관조차 눈이 삐었음이 틀림이 없다. 뒤에서 5등인 13번이 랭킹 1위 탑랭커 11번을 뛰어넘어? 웃기려고 시도한 거라면 실패했다. 13번은 핏기가 가신 얼굴로 11번의 생글생글한 얼굴을 지긋이 쳐다봤다. 전혀 거짓말하는 얼굴이 아니다. 애초에 이 11번이라는 인물은 마음에 있는 말을 있는 대로 바깥으로 꺼내는 타입이다. 그 정도는 평소 그녀의 언행을 관찰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가능한 속내를 감추고 사는 13번과는 정반대의 성격인 것이다.

  “너는 네가 약하다고 생각하나본데, 난 아니거든?”
  “넌 아닐지 몰라도 날 포함해 전부 내가 약하다고 생각해.”
  “아냐.”
  “아니긴……, 잠깐!”

  11번은 13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얼굴을 가까이 대기 시작했다. 13번은 필사적으로 그녀의 이마를 손으로 눌러가며 제지하려 했지만 11번은 그 얄상한 몸 어디에 있는지 모를 괴력을 발휘하며 13번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근접시켰다. 13번은 이마에 핏줄을 세워가며 그녀를 밀어내려 하면서 그 두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자신도 모르게 이글이글 하는 눈빛으로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본 것 같다.

  “역시, 언니 말대로야. 눈빛이 달라.”
  “눈빛?”

  11번은 13번의 얼굴에 약 3센치미터까지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했을 무렵 휙 다시 거리를 벌렸다. 13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식은땀을 훔쳤다.

  “실험체들은 말야. 하나같이 눈이 죽어있다고 언니가 그랬어.”
  “눈이 죽어?”
  “그 중에서도 나만큼은 눈빛이 살아있다고 했어.”
  “…….”

  더 이상 대꾸할 기력을 잃은 13번은 가만히 11번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사람의 눈은 말야. 꽤나 솔직하거든? 나는 다른 애들과 싸우거나, 이야기하거나 할 때마다 눈을 봐. 그럼 그 아이의 마음을 알 수 있어. 뭔가 먹고 싶다, 싸우고 싶다, 이기고 싶다, 두렵다, 혼나기 싫다, 칭찬받고 싶다……, 여러가지가 있지.”
  “…….”
  “그런데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마음이 하나 있어. 그게 뭔지 맞춰볼래?”
  “죽기 싫다?”
  “어머.”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딱히 오늘 일 때문에 나온 말은 아니다. 13번은 최근에 생긴 ‘바깥’에 대한 잡념 때문만이 아니라 본래 끈기와 인내심을 평가받은 실험체이다. 그 평가의 근원이 된 것은 13번의 죽기 싫다는 어마어마한 집념일 따름이었다.

  “반은 맞췄네. 정답은 ‘살아남겠다.’야. 언니는 내 눈빛에서 그것을 강하게 느꼈대.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개인적으로 단련을 받았어. 내가 무패로 1위를 지키고 있는 것도 언니 덕이 커.”

  탑랭커 부동의 1위의 비밀이 그것이었나.
  아니, 비밀이랄 것도 없다. 숨긴 적도 없으니까. 아마 개인 트레이닝 시간을 이용해왔겠지. 아무도 모를 법도 하다. 교관의 단련이라면 13번이 다른 실험체들에 비해 행하는 고강도 트레이닝보다도 더욱 초고강도일 것이다. 그것을 받아내는 것 자체가 11번의 강함의 이유라고 그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교관이 11번을 대놓고 편애하는 것도 이제 이해가 갔다.

  “언니가 그러더라고. 나와 같은, 혹은 그 이상으로 ‘살아남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담긴 눈빛을 가진 실험체가 하나 있다고. 그게 너야. 사실 지금의 상태로 네가 9번을 이길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어. 9번이랑 너의 정확한 랭킹까지는 모르고 있었지만. 하지만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그래서 이번 대결을 강행했어. 자각시켜주고 싶어서 말이지.”

  13번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작 그 이유로 본인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말인가? 아니면 어쩔 건데?!

  “하아……,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지?”
  “맞다, 나도 참. 그 얘기를 하려고 했지?”

  야 이 년아…….

  “너는 지나치게 필사적이거든. 언니한테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매일 9번을 일찍 때려눕히고 너와 15번의 대련을 보러갔지. 너 진짜 요령 없더라? 너는 위상력이 약한 게 아냐. 제어가 전혀 안 되는 거지.”
  “위상력이 약하지 않아? 제어가 안 돼? 무슨 소리지?”
  “과학자 아저씨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 관측하니까 아무것도 모르지. 나는 느낄 수 있어. 사실 이 시설에 있는 실험체들의 위상력 총량은 다들 거기서 거기야. 9번도, 나도 포함해서. 그도 그럴게, 똑같은 수술을 받았는걸?”

  13번은 뭔가 엄청난 사실을 들은 것 같은데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벙찔 수 밖에 없었다. 기억이 났다. ‘인지부조화’라는 현상이다.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과 직시한 현실 간에 괴리가 생길 때 뇌의 인식이 혼란을 일으킨다고 하는…….

  “너는 출력 조절이 전혀 안 돼. 기껏 무시무시한 화염공격이 있는데 한 두 번에 다 쏟아내버린다니, 엄청 아깝더라고? 그게 공격에 들어가면 또 모를까 필요하지도 않는 위상력을 상대방이 아니라 주변에 흩뿌려버리잖아? 과학자 아저씨들이 총량이 적다고 오해해도 이상할 것이 없겠지? 게다가 무슨 고집인지 무기도 들지를 않잖아? 굳이 맨손으로 계속 하겠다면 위상력 컨트롤을 완벽하게 해서 효율을 높여야해. 그럼 같은 위력의 화염이어도 사용할 위상력의 양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어. 너는 쓸 데 없이 많은 위상력을 담아버리거든. 그러니까…….”
  “……어어……, 잠깐!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은 알겠다. 말하자면 지금 나는 연비가 안 좋다는 건가?”
  “연……비?”
  “왜 그건 모르는 거냐고…….”

  사람이 바뀐 듯이 속사포처럼 퍼부어대는 11번의 설명을 13번은 간신히 따라잡아 이해했다. 요는 그것이다. 위상력의 총량을 100이라고 가정하면, 13번의 경우, 1만 써도 되는 공격에 50씩 퍼부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50을 썼다고 해도 50배 만큼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49만큼이 공중분해 되고 있었다는 지극히 간단한 이야기이다.
  물론 말만큼 썩 해결이 쉬운 이야기는 아니라고 13번은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연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필요 없는 위상력을 너무 펑펑 쓴다는 거지! 이해했어?”
  “그래, 완벽하게 이해했고, 그리고……, 충격 받았다.”

  충분히 충격 받을 일이다. 13번은 이 날 이 때 까지 철썩같이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해왔다. 태어나서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픈 위상력 주입 수술을 받고 또 다시 더럽게 아픈 강화 시술을 여태 17번이나 받았다. 그런데도 약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고? 말도 안 된다. 만일 이 이야기를 15번이 했다면 코웃음을 치거나, 장난치지 말라며 패버리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부동의 탑랭커 1위를 지키며 교관의 개인지도를 받고 있는 11번.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다행이고! 이제 9번한테 이길 수 있겠지?”
  “있을까보냐! 위상력 컨트롤하면 됩니다- 하면 뭐 하루아침에 되냐 그게?!”
  “음- 어려운 건 아닌데?”
  “난 난생 처음 들은 이야기라고!”

  11번은 씩씩대며 화를 내는 13번을 보더니 바보 같은 웃음을 다시 한 번 지었다.

  “헤헤~, 그렇구나. 확실히 하루만에는 힘들지도?”
  “날 갖고 노냐?”
  “하지만 딱 하나 당장에 고칠 수 있는 건 있어.”
  “뭔데?”
  “내가 아까 말했지? 너는 ‘너무’ 필사적이라고. 그게 위상력 낭비의 최대 이유야.”
  “…………?”

  필사적인 것이 뭐가 나쁜가. 제 1 동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여태까지 대결 중 사망하지도 않고 폐기처분도 당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그 ‘지나치게 필사적인 노력’ 덕분이다. 만일 그것도 하지 않았다면 13번은 진작 죽어서 황천을 떠돌고 있었을 것이다.

  13번이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11번은 웬일인지 슥- 하고 그에게 등을 보이며 뒤돌아섰다. 그녀의 이상한 행동에 13번은 의문이 들었지만 당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을 보인 적이 거의 없는 그녀다.

  말없이 그대로 서있기 시작한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13번에게는 왠지 그것이 매우 길게 느껴졌다. 이렇게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고 말도 없는 11번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언제나, 언제나 질릴 정도로 발랄하게 뛰어다니며 웃음을 흘리는 그녀가, 11번이 조용하게 서있다.

  참지 못 하고 뭐라 말하려던 13번은 갑자기 오한이 치미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레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등을 보인 11번에게서 이유모를 공포감을 느꼈다. 위상력인가? 아니다. 그런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건 단순히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어떠한 종류의 위화감이다.
  이내 11번이 몸을 살짝 돌려 13번을 보며 씩 웃었다.

  “싸움을 즐겨봐.”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사악한 미소였다.




2024-10-24 23:18:0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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