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이제 새겨둘 차례야

루이벨라 2017-10-23 8

※ 전편 『새겨둘 수 있어』 : http://closers.nexon.com/board/16777337/12413/

※ 몇몇 설정 날조주의

※ 엔딩까지 1~2편, 고로 엔딩 추천받습니다.(① 해피 ② 노멀 ③ 절망ver.01 ④ 절망ver.02)











부제 : 천천히, 하나씩, 새겨져간다






 "세하야~~!!"


 저 멀리서 깡총깡총 내 이름을 부르면서 깡총깡총 뛰어오는 건 분명 서유리였다. 조심하라고, 그러다가 넘어지면 어쩌냐는 꽤나 저 아이의 부모님과 같은 소리를 내뱉을 걸 간신히 참았다. 괜찮았다. 지금 서유리가 넘어진다고 해도 그에 대한 상처는 얕고 금방 치료할 수 있다. 다시는 재회하지 못할 상처를 입고 내 앞에 있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그래도 나름 운동신경은 있다고 불안정한 움직임으로도 서유리는 내 앞에 잘 도착했다.


 "나 오늘 어때?"

 "괜찮아."

 "에에...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안돼? 예쁘다거나, 아니면 귀엽다거나!"


 그런 말, 내 입밖으로 안 꺼낸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리고 원래부터 난 그런 말을 잘 안 하던 족속이었다. 게다가 지금의 난 겉보기에는 19살 무렵의 이세하와 비슷하지만, 안에 있는 의식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겪을 순응적이어야할 운명이 또 다가온다면, 지금 이렇게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또 후회를 할 수 있었다. 난 괜히 헛기침을 내뱉었다.


 "...예쁘네."

 "...의외로 순순히 말하네?"


 먼저 요구를 했음에도 정작 내가 입을 열자 서유리는 쑥쓰러운지 뭐라고 중얼거렸다. 대충 나도 보답을 해야겠지?! 라는 내용인 거 같았다.


 "세, 세하도 오늘 꽤...멋져..."

 "..."


 자기가 그렇게 말을 하고 저 혼자 어쩔 줄을 몰라한다. 난 그 모습마저 경이롭게 쳐다보았다.


 유리가 이렇게 부끄러움을 많이 탔던 아이였던가. 그 부분의 기억은 흐릿하기만 하다.


 저절로 눈쌀이 찌푸러졌다. 너와 같이 있는 한순간 한순간을 깊게 생각하지 않는 나의 어리석음이 보일때마다 화가 났다. 애써 얼굴을 풀고 그 불쾌한 감정에서 떨어지기 위해 서유리의 손을 붙잡았다.


 "가자."

 "어딜?"

 "어디긴. 데이트하러 만난거 잖아?"

 "데, 데, 데, 데이트???!!!"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다. 그에 대한 답은 당시에는 못 들었지만 며칠 후 전해들었다. 서유리의 대답은 Yes. 그에 따라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도 되었다. 그러기에 이런 휴일에 개인적으로 불러서 하게 되는 건 역시 데이트이지 않나.


 내 대답에 서유리는 또 저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다. 분명 뛰어가는 중인데도 왜 그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만 유독 크게 들렸는지...서유리가 변명하는 바는 다음과 같았다.


 "데, 데이트라니! 난 그냥 너랑 밥 먹고, 영화 보고 그런 건 줄 알았다고!"

 "그게 데이트야, 서유리..."

 "아..."


 그리고 빠른 수긍. 이런 서유리의 태도를 한두번 본 거 아니라 이젠 자연스레 넘어간다.


 처음 사귀기 시작했을 때, 연애에 대해서 우리 둘은 초심자 수준이었다. 예전에 있었던 '첫 데이트' 때에도 비슷한 걸 겪었던 거 같았다. 데자뷰? 데자뷰라고 해도 되겠지. 나한테는 이게 두번째로 일어난 일이 맞으니까.




* * *




 무난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1차적 위기가 찾아왔다. 때는 영화를 보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을 때였다. 그제서야 또 묻혀있던 기억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서유리가 이런 아이였음이.


 "세하야."

 "왜?"

 "너, 조금 이상해진거 같아."


 뜨끔- 이 아이는 어쩜 이럴까. 어느 면에서는 너무 무디면서, 다른 면에서는 날카로웠다. 이 시간 되돌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던 나는 일단 비밀을 지키는 쪽으로 나아갔다. 내 비밀을 밝히는 순간, 하물며 당사자에 가까운 서유리에게 밝혀도 모든 것이 없던 것처럼, 난 내가 원래 있어야할 미래로 돌아갈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면 이 꿈에서 깨어날까봐 두려웠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뉴욕 사태 끝난 직후부터...세하 완전 이상하게 굴었어."

 "...내가?"


 일부러 티 안내려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이세하' 를 연기했는데 그게 어딘가 어설픈 모양이었다. 하긴 19살 무렵의 이세하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서유리와 관련된 기억이 흐릿한 것처럼, 그 시절의 이세하도 같이 흐릿한 게 가장 큰 문제점인 모양이었다.


 "역시...그 때 이상한 꿈 꾼거지?"

 "...응?"

 "그 때 완전! 완! 전! 악몽 꾸고 온 사람의 모습이었어. 너 설마 그 때 꾼 꿈에 대해서 아직도 켕기는 게 있어?"

 "..."


 이제 내 기준에선 어떤 것이 '꿈' 일까. 서유리가 죽어버리고서 몇 년이 지나 피폐해진 내가 있는 그곳이? 아니면 지금 이렇게 서로 마주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이곳이? 어쩌면 둘 다 꿈일지도. 난 계속 꿈을 꾸고 있는건지도.


 눈앞에 있는 피클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나는 반론했다.


 "난 악몽 꿨다는 이야기 한 적 없는데?"

 "아, 그랬지..."


 유연하게 넘어갔다. 평온한 척하며 마저 음식을 먹는 나를 빤히 보며 서유리는 다시 질문 공세를 펼쳤다.


 "세하가 원래 이런 분위기였던가?"

 "..."


 2차적 위기.


 "그럼 네가 생각하는 내 분위기라는 건 뭔데?"

 "음...과묵하고, 어딘지 모르게 장난기 좀 가미되어있고, 어딘지 무심해보여도 어떨때는 좀 믿음스럽기까지 한? 뭐 그 정도야~"


 과거의 나는 그러했구나. 지금의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인물상이었다. 그리고 서유리가 보기에는 내가 그렇게 보였구나...두가지 사실을 알고 간다.


 다시 반론 제기. 다분히 감성적인 반론이었다.


 "그게 싫어?"

 "싫은 건 아닌데...뭐라고 해야할까."


 턱을 괴며 곰곰히 생각하는 서유리는 촌철살인(寸鐵殺人)적인 말을 하나 꺼냈다.


 "왠지 필사적으로 보여서."

 "...콜록!"

 "괘, 괜찮아?!"

 "...어, 잠시 사레 들린것 뿐이야."


 정말 놀랐다. 난 최대한 숨겼는데도 이렇게 가까이 다가와서 어느새 퍼즐 조각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다행히 살짝 들린 거라 기침은 금방 잦아들었다. 서유리는 나의 마지막 말을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손뼉을 짝! 마주쳤다.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냥, 어려운 수수께끼를 혼자 힘으로 맞춰 기쁜 듯한 표정으로.


 "그럼 역시 당황했단 말이네?"

 "..."


 ...생각보다 많은 걸 들켜버렸다.




* * *




 그리고 내가 예전의 이세하가 다르다라고 괴리감을 느끼는 건 비단 서유리뿐만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눈치를 깠다고 한다.


 심지어 내가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존재 또한 당연하다는듯이 알고 있었다.


 "꺄핫! 너 이세하 아니지?"

 "...더스트."

 "왜 그렇게 노려보는거야? 혹시 미래의 '나' 에게 볼꼴 안볼꼴 당하기라도 한거야? 꺄륵!"


 그렇다. 이 차원종이 미래에 어떤 악독한 짓을 저지르는지 다 보고 와서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짧은말만 하며 거의 대꾸를 하지 않고 검을 겨누는 나를 보며 더스트는 자신에게 검을 겨눈 상대를 향해 조롱을 한껏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이쁜 나에게 그런 무시무시한 살기라니...혹시 내가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어?"

 "..."

 "혹시, 내가 누굴 죽이기라도 한거야?"

 "...!"


 내 작은 반응만 봐도 더스트는 모든 걸 깨달았다며 저 혼자 웃어제꼈다. 그리고 저 혼자 추리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런가 보네. 그게 누굴까? 알파퀸 서지수? 그것도 아니면..."


 제발, 그 이름이 입에 올려지지 않길...


 "서.유.리?"

 "..."


 한계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라는 감정이 치솟아올랐다. 금방이라도 찌를 기세로 더스트에게 다가가자 더스트는 그 스릴이 마음에 들었는지 더욱 크게 웃었다.


 "꺄하하하핫! 그렇구나! 미래의 나는 서유리를 죽였구나! 그래서 넌 날 증오하는거고."

 "입 **..."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보니 왠지 모르게 꼬리가 내려지는데?"


 겁이 난다는 사람이 그렇게 잔뜩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면 앞뒤가 맞지 않잖아...녀석은 지금 엄청 즐거워하고 있다. 미래의 자신이 펼친 일과, 그걸로 인해 감정적으로 엉망진창되어지는 내 모습을 보는게.


 "미래의 너는 모르지만, 지금의 너는 나를 죽일 수 있을거 같아? 무리야, 무리!"

 "..."

 "미래에서 왜 여기로 온거야? 나를 죽이려고? 단순히 복수가 목적이라면 '그걸' 쓸리가 없었겠지. 리스크가 크니까. 그렇다면..."


 더스트가 객관적으로 매력적이지만, 내 눈에는 그보다 더 한 악마는 없을거라고 생각되어지는 미소를 지었다.


 "서유리를 구하기 위해 온거야?"

 "...!!"


 서유리를...구한다? 그건 내가 선택한 사항이 아니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이상이 어디있을까. 근데 난 어째서 그건 생각하지 못한걸까. 멍청하게. 아니, 그런 선택을 일부로 모른 척 했던 이유가 뭘까.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보며 더스트가 살풋이 웃었다.


 "그나저나 <지고의 원반> 이 네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원반 그 녀석...의외로 까탈스러운데."

 "..."

 "그럼, 다음에 봐, 이.세.하! 다음 일도 기약하고 있으라고~"


 다음 일을 기약하라는 게 설마, 너도 미래의 너와 같이 똑같은 일을 저지른다는 뜻이야...?


 부쩍 실감이 갔다. 내가 있던 미래와 지금 내가 있는 현재, 어느 쪽도 꿈이 아니었다.


 둘 다 뼈아픈 현실이었다. 게다가 지금 그 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붙잡은 사람은 서유리였다. 지금, 서유리 얼굴을 볼 낯은 없었다. 피곤하다며 뿌리치는데 그럴수록 내 손을 잡은 서유리의 손아귀는 억세졌다.


 "...진짜 무슨 일 있었던거야?"

 "유리 넌 상관없..."

 "상관 있어! 이런 말까지 들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을 거 같아?!"


 서유리는 주머니에서 작은 기계 하나를 꺼내더니 찰칵, 하며 작동시켰다. 더스트가 말했던 그 킬링 포인트 부분이었다.


 -그렇구나! 미래의 나는 서유리를 죽였구나! 그래서 넌 날 증오하는거고.

 -입 **...


 덤으로 잔뜩 격앙된 내 목소리까지 들렸다. 내 목소리가 저렇게 호흡이 흐트러진 건 오랜만에 들었다. 감정이 격앙되는 일이 근래에 거의 없었다. 애초에 내가 그 감정 소모를 죽여왔다. 그렇게라도 억지로 감정을 막지 않으면 난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정말이야? 더스트 말처럼 네가 미래에서 온 거야?"

 "증거가 없잖아."

 "그럼 너랑 더스트가 30분 전에 나눈 대화 녹음한 거 풀로 들려줄까?"

 "..."


 아, 증거 거기 있었네.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어느 누구도 믿어지지 않을거란 것도 아니었다. 꿈에서 깨어날까봐하는 걱정 때문도 아니었다. 서유리가 이렇게까지 알고 있던건 분명히 들었다. 자신이 어느 시점의 미래에서 죽는다는 걸. 자신이 죽는 미래를 알고 싶어하는 이가 누가 있을까. 보통은 격분하고 부정하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서유리는 그렇지 않았다. 올곧은 눈빛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닥칠 불행보다 지금 현재의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나를 더 걱정하고 있었다.


 서유리는 언제나 그랬다. 자신보다 남을 더 먼저 챙겼다. 그래서...


 "말해줘."


 저렇게 간절하고 단호하게 부탁하는 서유리의 부탁을 난 절대 거절할 수 없었다.


 "지금의 '세하' 넌...정말 미래에서 왔어?"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46757


참고로 유리를 누가 죽였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는데 최종보스가 더스트라서 자연스럽게 더스트로 정했습니다...!

2024-10-24 23:17:3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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