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스 팬픽] 10년 후 Episode. 3 (3)

Contrasto 2017-08-24 10

이 팬픽의 마무리를,  제게 많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신 루이벨라 님과 영원한 저의 유리링인 부건 님께 바칩니다.











세하는 감기 걸린다면서 나에게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덮어주고, 편의점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두 잔을 가지고 나왔다. 세하가 건넨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니, 따뜻한 기운이 몸속 곳곳을 채워주었다.


내가 벤치에 앉으니, 세하도 말없이 내 옆에 따라 앉았다. 그렇게 나와 세하 사이에선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저기 말야...”


침묵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들이키고 말을 이어갔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


세하가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언제부터, 였을까나...”


세하는 내 말을 되뇌이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나도 세하를 따라 하늘을 쳐다보니, 짙은 보랏빛의 하늘에 몇몇 별들이 하얗게 떠 있었다.


“아마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을 거야. 그보다 더 중요한건...”


세하는 잠시 말을 끊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말하지 않아줬음 했지만, 동시에 꼭 세하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네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거지... 조금도 말이지.”


내 마음속 깊이 담긴 또 다른 나의 심장조차 꿰뚫는, 그가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걸 알려준 날카로운 한마디가, 비수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아아, 진짜... 알고는 있었지만 아프긴 아프네...


“...그래 맞아. 나는 널 좋아해. 10년 전에도, 지금도, 네가 지금 옆에 누가 있든 없든,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았어. 아니, 바꾸고 싶어 하지 않았어.”


내 목소리가 점점 갈라져갔다. 그럼에도 나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가며 조금씩 내 안에 있던 추악한 감정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난 슬비가 싫어. 슬비가 널 가져갔다는 게 너무 싫어. 슬비가 없었으면 했어. 그러면, 네가 나를, 나만을 봐 줄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나만을 원하길 바랐어!”


팅, 티팅.


내 새까만 본심을 가두고 있던 쇠사슬이 하나씩 끊어져갔다. 검은 물감이 새하얀 캔버스에 물들듯, 조금씩 그 어둠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세하 너의 결혼식에서도... 결국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했어. 하고 싶지 않았어. 넌 내가 아닌 슬비를 선택했으니까! 너에게 보낸 건 가식만 차있던 거짓말과 슬비에 대한 질투심이었어!”


-대단한걸?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완전히 악당 다됐군...


-시끄러. 저리가. 저리  꺼지라고.


또 다른 내가 조롱하며 불쾌한 소리로 웃어젖혔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 웃음을 무시하려 애썼다.


“유리야...”


세하는 나에게 손을 뻗었지만, 나는 그의 손을 강하게 쳐내며 소리 질렀다. 순간이지만 내 손에 닿은 그의 온기가 나쁘지 않다고 느낀 나에게 강렬한 혐오감을 느꼈다.


“건들지 마! 가장, 가장 위로받고 싶지 않은 사람인 너한테 위로받고! 넌 얼마나 날 더 비참하게 만들려는 거야?!”


“나를 봐주지 않은 너도 미웠어! 넌 항상 슬비뿐이었어! 슬비, 슬비, 슬비!! 왜 슬비였던거야?! 왜냐구! 나로는 모자랐던 거야?! 그럼 왜 나를 기대하게 만들었던 건데! 왜 나를 설레게 만들었던 건데! 왜 내가 마음을 주게 만들었던 건데!!”


“…….”

하염없이 내지른 고함 때문에 목소리도 갈라져 꼴사나운 모습이 되어버렸지만, 세하는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런 모습 때문이었을까, 검은 것이 내 마음을 뒤틀고 비틀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거야? 왜 나를 더 봐주지 않았던 건데? 왜 나를 더 알아주지 않았던 건데?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던 건데...?”


-크큭, 이제 좀 시원해졌어? 이거 봐, 이게 진짜 네 모습이야.


또 다른 내가 내 귓속에다 속삭였다. 결국 전부 다 말하고 말았다. 내가 남몰래 사랑하는 단 한명의 남자에게, 추악하고 검은 면을 낱낱이 보여주고 말았다. 그는 아마, 나를 경멸하겠지. 나에게 딱 어울리는 비참한 결말이다.


“.................................”


침묵, 그리고 또 침묵이 이어졌다. 시간이 멈춘 듯,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서로의 반응을 기다렸다. 세하의 얼굴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기나긴 침묵을 깬 사람은 세하였다. 세하는 자세를 고쳐 나를 바라보고, 손을 뻗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눈을 감았다. 미움 받을걸 알고 있음에도, 그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은 내가 한심해 보였다.


세하는 네게 두 손을 뻗어-


내 뺨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아아? 아으, 아, 아파!”


“아프라고 하는 거야, 이 멍청아.”


전혀 예상치 못한 고통에 앞에 느꼈던 슬픔도 잠시 잊고 몸부림쳤다. 세하는 어딘가 화가 난 목소리로 내 뺨을 더 쭈욱 잡아당겼다.


세하가 잡아당기고 있던 내 볼을 놔주자, 볼의 얼얼함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두 볼을 문질렀다. 세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넌 도대체 10년이 지났는데도 바보냐.”


나는 계속해서 볼을 문지르며 세하를 쳐다보았다. 세하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이 답답아.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널 경멸이라도 할 것 같아?”


세하는 내가 폭발하듯이 말한 폭언에 가까운 본심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했고, 오히려 갈라진 목소리에 눈물범벅이 된 나를 걱정된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에 불타오르던 격정은 조금씩 가라앉고, 슬픔과 서러움이 조금씩 차올라, 점점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다리를 끌어 모아 안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에게, 세하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분노나 슬픔을 숨긴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내가 왜 널 신경 쓰지 않겠어. 10년 전에도, 지금도, 난 너를 여전히 신경 쓴단 말이야.”


나는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세하가 하는 말을 들었다.


“네가 나를 좋아하는 것도, 나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도, 그걸 숨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그런 너의 마음에 네가 원하는 답을 말해 줄 수 없어. 나한텐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세하가 슬비를 언급했지만, 이미 다 쏟아내고 난 후여서 그랬을까? 내 마음은 놀라울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했다. 숨기려고 애쓰던 검은 감정도 내 마음을 후벼 파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결국 상처받는 건 너였기에, 나는 네가 나를 잊길 원했어. 나를 잊고 새로운 목표를 찾아 행복하게 살길 원했어... 그래서 난 너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고, 나는 그게 최선의 답일 줄 알았어...”


세하의 목소리는 점점 더 괴로운 빛을 띄어갔다. 자학적인 목소리였다. 세하가 지금 느끼고 있는 건, 자기혐오인 것이다.


“하지만, 저번에 너와 10년 만에 만났을 때, 아직도 그 어두운 모습이 사라지지 않은 걸 보고, 나는 깨달았어.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내 잘못된 선택 때문에, 너를 10년이나 상처 입혔다는 걸...”


세하의 말에 놀란 나는 세하를 져다보았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간신히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눈물샘을 빠져나온 눈물들이 세하의 뺨을 타고 떨어졌다. 세하는 손등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훔쳤다.


“그러니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나야. 미안해 유리야, 너를 혼자 상처 입게 두어서...”


“하, 하하. 그게 뭐야... 왜 너가 사과하는데...”


눈물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목소리가 갈라졌다. 나쁜 놈은 나인데, 왜 세하가 사과하는 것일까, 사과해야할 사람이 도리어 사과를 받다니. 나 뭐하는 놈이야 진짜...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서서, 고개를 들었다. 내 눈앞에는 여전히 검은 내가 서 있었다. 그저,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또 다른 나.


처음으로, 나는 나의 검은 감정 앞에 똑바로 서서, 나 자신에게 사과했다. 또 다른 나는 붉은빛 안광으로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또 다른 나에게 손을 뻗었다. 또 다른 나도 나와 같이 손을 뻗었다.


둘의 손이 닿았을 때, 또 다른 나는 천천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며 사라졌다.


왜 더 일찍 깨닫지 못한 것일까.


세하를 좋아하는 나도, 세하 앞에서 소심해지던 나도, 슬비를 질투하던 나도, 슬비를 좋아하는 나도, 밝게 보이려고 애쓰던 나도, 내가 숨기려고 했던 검고 추악한 나도, 모두 나 자신이었다.


모든 '내'가 똑같이 세하를 좋아하고, 세하 앞에서 소심해지고, 슬비를 질투하고, 슬비를 좋아하고, 밝게 보이려고 애쓰고, 검고 추악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하나가 되어, “나 자신”이 되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내가 잘못한 거야...! 미안해 세하야...!”


왜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을까. 이렇게 배려심 깊고 바보같이 착한, 그런 올곧은 남자를, 왜 더욱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했을까. 내가 지난 10년간 가져온 감정은... 사랑보다는 소유욕에 가까웠으리라

.

“유리야...”


나는 세하의 손을 잡아, 내 뺨에 갖다 대었다. 그토록 내가 피해왔고, 또 바라 마지않았던, 따뜻한 온기. 이 순간, 내가 바라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이 찰나의 온기가, 향기가, 내가 그토록 바래왔던 전부였으니까.


“세하야, 울지 마. 나는 역시-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나는 웃고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지어왔던 미소 중, 가장 순수하게 행복한 미소를…….


-널 사랑해.”




-




나와 세하는 같이 가게로 돌아갔다. 둘 다 아직 눈과 코는 울어서 빨갰지만, 뭐 어떠랴. 우리 둘은 그저 웃었다. 마음이 가벼웠다. 발걸음도 저절로 가벼워졌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슬비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를 보고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놀라움은 속상함으로 변해 화난 듯이 눈물을 흘리며 내 앞에 성큼성큼 다가왔고,


“이 바보야-!!”


내 뺨을 때렸다. 아프다. 뺨이 욱신거렸지만, 속상함의 쓴맛보다, 분노의 매운맛보다, 걱정하는 마음이 스며들어왔다.


슬비는 참을 수 없었는지, 흐느껴 울면서 나를 껴안았다. 그녀답지 않게 강한 힘이 들어간 포옹이었다.


“이 바보가! 늘 걱정이나 시키고! 난 뭐가 되냔 말이야! 10년 전이랑 변한 게 없잖아!”


내가 알고 있던 익숙한 슬비처럼, 가시가 잔뜩 돋쳤지만, 누구보다 상냥한 말이었다. 나도 슬비를 껴안으며 말했다.


“아하하-! 미안해 슬비야! 내가 잘못했어~!”


슬비와의 포옹 후, 숨을 돌리던 나에게 세리가 종종걸음으로 와 앞에 섰다. 내가 앉아서 세리와 눈높이를 맞추자, 세리는 무언가를 나에게 내밀었다.


“유리 언니! 이거 받아줘!”


세리가 건넨 건, 바로 내가 주었던 인연 반지의 다른 한 쪽이었다.


“이, 이걸? 나에게?”


내가 놀라며 세리에게 묻자, 세리는 방글방글 웃으며 대답했다.


“응! 유리 언니는 소중한 사람인걸! 쭉 친하게 지내고 싶어!”


나는 그 반지를 소중하게 손가락에 끼고 세리를 쓰다듬어 줬다. 이렇게 어린 세리조차 나를 구원해주었다.


슬비는 내손을 잡았다. 강하게 잡은 손에는 상냥함과 온기, 그리고 강한 결의가 담겨있었다.


“유리야, 네가-”


슬비는 자신의 배를 문지르며 슬하와 세리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 아이의, 그리고 슬하와 세리의 대모가 되어줄래?”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이 아이들의 대모가 된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배시시 웃었다. 그 순수한 미소가, 내 안의 상처를 깨끗이 씻어 내렸다. 세리는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그럼 이제 유리 언니도 엄마가 되는 거지? 나 너무 좋아!”


이렇게 좋아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하지만 조심스레, 망설이면서 세리와 슬하를 안으며 물었다.


“내가... 내가 너희들과 가족이 되어도 괜찮을까...?”


품 안의 아이들은 나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응-!!””


오늘 들어 몇 번째인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슬픔의 눈물이 아닌, 행복에 가득 찬 눈물이었다. 나는 이 아이들한테 몇 번이나 구원 받는지, 셀 수도 없었다.


10년 동안 내 마음 속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어느새 걷히고 햇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내일은 반드시 무지개가 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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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유리의 메인 에피소드이자 세번째 에피소드가 막을 내렸습니다! 독자 여러분들 모두 재밌게 즐겨주셨다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별히 공들여 세심히 쓴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애착이 간 에피소드 만큼 여러모로 뿌듯하기도 하고 끝내고 싶지 않기도 하네요. 사실 유리는 제가 적지않은 애정을 가진 캐릭터인데요, 2014년의 어느 날, 저는 한 동영상에서 유리의 팬아트를 보게 되었고, 그 사진 한 장에 마법같이 홀려 클로저스라는 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에 일이 겹쳐 유학을 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클로저스를 시작하게 된건 2년 후인 2016년의 가을이 되었습니다. 지금 제 주캐는 티나이지만, 꾸준히 유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언젠간 멋지게 성장한 제 유리한테 "네 덕분에 클로저스를 하게 되었고,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하다" 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다음 에피소드는 슬비가 처음으로 엄마라는 계단을 올랐던, 조금 앞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그럼 필자는 이만 다음 작품에서 만나길 기약드리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언제나 제 소설을 재밌게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4-10-24 23:17:0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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