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of Striker-이세하 Ep-2 소집, 검은양 팀(수정)

Sehaia 2017-07-13 2

사람은 어째서 먹어야 하는가. 그것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먹기 위해서 산다라는 미식가 같은 말을 뱉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중 태반은 농담이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


그래, 우리는 먹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여차할 때 싸울 수 없으며, 힘이 빠져버려 도망갈 수도 없어진다. , 먹는 다는 행위와 음식에는 숭고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심부름으로 장보러 가는 것과 요리하는 건 도대체 왜 그리 귀찮은 거지?”


누구나가 만족할 만한 음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면 요리할 필요도, 장을 보러 갈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야. 엄마가 오늘 저녁 찬거리 좀 사오라며 심부름을 보낸 탓에, 컴퓨터로 게임을 하지도 못하고 집에서 나와 이렇게 터덜터덜 걷는 신세다. 또 무슨 음식을 하시려는 건지 대형 마트에서나 구할 만한 식재를 사오라고 하시는 바람에 졸지에 꽤 먼 거리를 오게 됐다. 돌아오시는 길에 사오지 그러셨어요, 어머니.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컴퓨터 게임 대신에 이 격투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간만에 나온 시리즈 작품인데, 타격감도 괜찮고 캐릭터들의 조형도 잘 뽑은 지라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위상력이라는 흔해빠진 소재를 사용하지 않은, 순수 격투게임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어 의외로 오래 붙잡고 하게 되는 게임이다.


한창 게임에 몰두해서 길을 가던 중,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가 가는 길을 막았다. 나긋나긋하지만 그 안에 굳은 심지가 느껴지는 당당한 목소리다.


안녕. 네가 이세하지?”


누구더라. 이 분홍색 머리는 본 기억이 있는 거 같은데. 하지만 머리속 어딘가에서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경고 메시지로 보아, 엮여서 좋을 것이 없을 것 같다.


난 이슬비야. 이번에 검은양 팀의 리더를 맡게 됐어. 같은 팀이라 길래, 인사차 와 봤어. 앞으로 잘 부탁해?”


데이터베이스 검색 완료. 아아, 그래, 그 수료식이었군. 그 때 수료생 대표를 하고 있던 녀석이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하네. 같은 팀이라고? 웃기지도 않아.


싫어, 비켜.”


순간 할 말을 잃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그저 바라본다. 알 바냐. 지금 AI따위한테 지게 생겼는데. 거기다가, 최근 들어 더욱 자주 걸려온 전화의 진상이 파악되기 시작함에 따라 머리에 열이 솟는다.


잠깐만, 난 아직 아무 말도 안했어.”


최근 김유정이란 사람이 계속 전화를 걸더니 이것 때문 이었나 본데, 난 그런 거 할 생각 없어.”


, 혹시 단순한 훈련 팀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검은양 팀은 그 실력을 인정받은 유소년으로 구성될 실전 팀이야. 충분히 능력을 인정받은 거니까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괜찮아.”


그게 아니라고, 이 답답아. 모든 사람이 너 같다고 생각하지 마. 끊임없이 반복될 것 같은 대화에 분명한 거절의 의사를 끼워넣는다.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열심히 하면 되겠네. 난 안 할 테니.”


어째서?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리 위상 능력자가 할 일이잖아?”


어차피 어른이 되면 대단하신 유니온께서 멋대로 데려가실 거잖아. 난 가능할 때까진 이 평범을 최대한으로 누리며 살 거야.”


사고방식의 핀트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파악했다는 듯이 얼굴의 조형이 웃음 성분을 서서히 거둬간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당황과 궁금, 그리고 이해 불능이었다.


도대체 클로저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건데?”


이유야 많고도 많지만, 굳이 입 밖으로 뱉고 싶은 이유라곤 하나 밖에 없다.


위상력 쓰는 거, 재미없잖아.”


내 대답이 심히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안색이 점점 어두워져간다. 하지만 내가 얘 눈치를 볼 이유가 단 하나라도 존재하나? , 개인적으로도 둘러대기 위한 이유니까 정말 변변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더더욱 변변찮은 말이 심장을 덥썩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래, 이걸로 좀 알 것 같네. 네가 우리 팀에 선정된 건 뭔가 착오가 분명해. 그저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에, 단지 그것밖에 안 되는 무능력자일 뿐이야.”

.......아아.

 

이것밖에 안 되니?’

다시 한 번. 착오가 있었던 걸게야.’

 

그래. 이런 점이 마음에 안 들었어.

더 이상 나한테 관여하지 마. 너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지 마.

나한테 그 시절을 상기시키지 말고 조용히 사라져.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 입 다물어. 난 이딴 거 필요 없으니까.”


낮게 깔린 목소리로 위협하고 어깨를 밀친 순간에 눈이 마주쳤다. 나를 일직선으로 쏘아보는 눈이 걸리적거린다. 뇌수까지 들었다놓았다하는 더러운 감각이 내 눈을 좀먹기 시작한다.

그 이상 상대하기도 싫어져 돌아선다.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그렇.......”


.......거슬려. 뒤를 돌아봐도 이미 주인을 잃어버린 목소리가 홀로 남아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요즘 들어 그 시절을 다시 상기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 분명 내가 15세였던 건 3년 전인데, 아직까지도 그 감성을 누르기는커녕 점점 더 억제하기 힘들어지는 요즈음. 그에 따라 한 동안 잊고 있던 기억들이 수면 위로 스멀스멀 해파리마냥 떠오른다. 막아보려고 해도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기에 반쯤 포기하고 지내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 돌부처 같은 자신이지만, 방금 전처럼 심장을 쿡쿡 찔러오는데 터지지 않는 가슴이 있으랴. 사람 정신을 이렇게나 술렁이게 만들다니, 클로저를 하는 것보다 지뢰 제거반이나 하지 그러셔 라고 마음속으로 태클을 건다.

 


위상력. 클로저. 재능. 노력. 현실. 인명.

이 모든 것에서 발을 한 발짝 빼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뒤로 슥 빠져서 아아, 힘들겠네.’라고 관찰하듯 내려다보는 자신이 있다는 걸 안다.

지금 손에 들려 있는 게임기 속 캐릭터가 AI따위에게 이긴들, 진들 아무 상관없다는 걸 안다.

이 모든 것에는 눈물만큼이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안다.

그래봤자, 정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얘기지만.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다. 괜히 집 밖으로 나갔다간 또 무슨 권유를 받을지 모르니 얌전히 게임이나 하자. 상대를 해서 승리를 따낸 캐릭터는 아직 적다.


이 게임의 묘미는 승리를 따낸 캐릭터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많아지면 커맨드도 알아야 할 게 늘어나니 성가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점점 상대 캐릭터가 강해지면 기존의 약한 캐릭터로는 상대하기가 벅차지니 새로운 캐릭터를 익히는 것이 좋다. 캐릭터가 꽤 많으므로 그 중에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 하나 정도를 잡으면 승리를 근근이 따 낼 수 있다.


물론 세상은 넓다. 한 캐릭터로, 그 중에서도 튜토리얼 캐릭터로 끝까지 이겨나가는 영상 정도는 인터넷에 떠돈다. 이길 수 있을 리가라고 생각해도 진짜 이겨버리는 그런 영상을 보면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런 되도 않는 기분으로 시작을 했는데, 역시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캐릭터 별 상성 차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성능 차이가 심하다. 어찌어찌 체력을 다 깎아 놓아도 내 체력은 더 줄어들어있는 마술이다. 역시, 집중을 더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우우웅. 우우웅. 우우웅.


권유를 피하기 위해 집 안에 틀어박혔건만, 전화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그냥 해지 해 버릴까보다. 도대체가 그 만큼 거절을 했으면 정도를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말했잖아요, 할 생각......”


이세하군! 부탁할 게 있어. 당장 발전소로 가줘. 차원종이 나타났어!”


그건 무슨 소리야, 라고 하기 전에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발전소라면, 삼일 전 예보기에서 본 그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유니온 녀석들, 효율적인 전력배치니 뭐니 하면서 신나게 자랑했잖아. 역시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어.


, 그런 건 특경대에게 연락하세요.”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야! 오늘 너와 만난 여자애가 위험해. 이대로 전력이 끊어졌다간, 그 애는 영영 가상프로그램에 갇히게 될 거야.”


그거, 나쁘지 않은 거 아닌가? 다시는 이 현실과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니, 꽤나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그러나 그 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 나와 위치를 바꾸는 게 상부상조하는 길이다. 그런 능력자는 어디 없으려나.


애초에 내가 그 앨 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삼일 전 처음 마주쳤을 뿐이고, 그 쪽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그 쪽 기준 첫 만남인 오늘은 완전 최악. 자신의 생각에서 한 걸음도 뒤로 물러나지 않고 말싸움이나 했다.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리 위상 능력자가 할 일이잖아?’


그런 말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정의감은 튼튼하지 않다. 오히려 굳이 따진다면 약한 편이라고 자각하고 있다. 위상력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난 이 머리는 정의를 수용하기엔 너무 딱딱하다.


그런데도 어째서.


그렇지만, 절박한 사람이 있으니까.’


잔향처럼 남았던 말이 어째서 내 주변에 아직 머물러 있는가. 그 당당한 성격으로 나올 말이라곤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약한 소리였다. 스러져가는 초에서 연기가 나오지 않게 부드럽게 감싸듯 나온 따뜻하고, 애달픈 목소리. 그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맴을 돈다.

거슬린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처음부터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런 헛소리도 전부 다 날려버릴 정도로, 절박하게 울려 퍼진 마지막 말은 솔깃했다.


곧 사람이 그 쪽으로 갈 거야. 이번 한 번만 도와주면, 더 이상 권유하지 않을게.”


딩동, 딩동, 딩동.


이세하 군, 듣고 있니? 하늘색 머리에 붉은 머플러를 한 사람이 곧 갈 건데, 그 사람이 널 태워다 줄 거야. 부탁할게, 한 번.......”


굳이 그런 말을 반복하지 않아도 돼요. 적당히 나갈 이유가 생겼네. 더 이상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허리를 세운다나가는 건 싫고 마음에도 안 들지만, 이대로는 집중이 안 돼서 게임도 하기 힘들다.


이번으로 끝, 맞죠?”


말을 끝내고 멋대로 전화를 끊는다. 인터폰에 나타난 사람의 인상이 얼추 비슷해 보이니, 저 사람이 태워다 준다는 그 사람이겠지.


도대체 클로저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는 건데?’


, 뭐가 마음에 안 드냐고?

이유는 많고도 많지만, 너 같이 짜증나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것 하나로 충분해.

머릿속을 가득 울리는 목소리에 멋대로 대답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무래도, 전 캐릭터 클리어는 다시 또 늦어질 모양이다.

 


오오.......이세하, 맞지.......? 난 선우 란이야......여기 타......”


.”


오토바이네. 무슨 개조를 했는지는 몰라도 제 시간 안에 도착할 수나 있을까 의심된다. 오토바이의 시속이 그렇게 빠른 건 아니었을 텐데. 유니온도 참 빈곤하구나. 겨우 이런 오토바이를 운송수단이랍시고 던져놓다니.


거기에 이 사람, 운송이란 것과는 인연이 없어 보인다. 몸은 깽말랐고, 눈은 축 늘어져 방금 전에 무덤에서 파 올린 것 같이 썩어있다. 사태를 어떻게 하기엔, 시작부터 늦은 감이 철철 넘친다.


그럼, 가자......캬하하핫! 꽉 잡으라고, 소년! 손 놓았다가는 행선지가 저승으로 바뀔 테니까! 이번에야말로, 음속까지 넘어서 간닷!”


손잡이도 없는데 잡긴 뭘 잡아, 아니 그 전에 동일인물맞으어아아아아아아?

바람에게 따귀를 맞아본 사람? 그거, 꽤 아프더라.

오토바이는커녕 스포츠카보다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속도에, 나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 한계였다.

역시, 그 제안 따위 받아들이지 말 걸 그랬어.

 


붸에에에에엙


안 돼, 이거. 몸이 못 버텨. 위상력 덕에 일반인보다 몸이 튼튼한 편인데도, 바람에 쓸린 얼굴, 손이 죄다 쓰리다. 지독한 속도 때문에 온몸이 요동쳐서 멀미가 올라오는 건 덤이다. 운전을 할 때 사람이 이렇게 바뀌나? 다시는 이 사람 뒤에서 오토바이 타나 봐라.


무슨 운전을 그렇게.......”


저기.”


내 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손 끝으로 발전소를 가리킨다. 그 끝에는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많은 스캐빈저가 있었다. , 나 돌아가서 게임하면 안 될까. 저거 수가 너무 많아 보이는데. 그와 동시에 난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다시 한 번 절규. 맨손으로 상대하기에는, 수가 너무 많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금방 해결되었다.


어이, 이거..............!”


무심코 날아온 물건을 손으로 붙든다. , 누군지는 몰라도 센스 한 번 좋으시네. 건블레이드라, 확실히 나한테 가장 잘 맞는 무기긴 하지. 어릴 적에 이걸로 한 훈련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쓴 웃음이 번진다. 이런 것 까지 떠넘겨버리면 도망칠 명분조차 모자라다.


얼추 스캐빈저는 스무 마리. 통일된 움직임이 없고 파괴에만 열중인 모습을 보아하니, 스캐빈저 중에서도 저급한 놈들이다. 조직적으로 훈련이 된 놈들이라면 스캐빈저라도 귀찮아지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럭저럭 할 만해 보인다. 일대다의 전투는 가급적 피하는 편이 낫지만, 이 정도는 혼자서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들어가 볼까. 10년간 만에, 짜증나는 사람 하나를 구한다는, 정말 짜증나는 의미 있는전투다. 그 나름대로의 예우를 가지고 대할 생각 따위 추호도 없다. 빨리 끝내기나 하자.

다리에 위상력을 집중하고 질주한다. 바람처럼 눈 끝으로 지나가는 풍경의 끝에 단 둘이 있는 스캐빈저를 먼저 노린다.


내 기척을 눈치 챈 녀석의 머리를 건블레이드로 후려쳐 반격의 싹을 짓밟고, 나머지 한 녀석을 발포하여 뼛속까지 녹여버린다. 그 뒤, 쪽에서 나를 보고 경계를 하고 있는 녀석의 옆 속을 파고든다. 다리를 쳐서 균형을 무너뜨리고 배에 발포하여 다시 한 마리를 소멸시킨다.

오랜만에 하는 것치고는 나쁘지 않다. 가장 익숙한 무기인 건블레이드를 사용해서일까,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까. 위상력도 오랫동안 사용한 적 없는 것 치고는 그럭저럭 부드럽게 몸을 타고 흐른다. 무엇보다, 머리가 몸이 요구하는 스텝을 제대로 밟고 있다.

 

기세를 몰아 홀로 고립된 스캐빈저에게 재돌진한다. 스캐빈저 한 마리가 손톱으로 건블레이드를 튕겨내려는 노력이 무색하게, 폭발해서 덧없이 스러진다. 그와 동시에 뒤를 돌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자 네 마리가 폭발에 휩쓸린다.

발화라는 능력은 사용하기가 상당히 편한 계열이다. 위상력 없이 싸울 줄 안다면 거기에 폭발을 덧입히는 정도만 익혀도 충분히 차원종에게 타격을 줄 수 있다. 물론 위상력에 숙달되면 새로운 싸움 방식을 익힐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녀석들에게는 이 정도로도 통한다.


다리에 힘을 실은 도약 끝에 가볍게 베어내거나, 그걸 페인트로 사용한 내려치기. 여기에 소소하게 폭발을 일으키면 위상력에 저항이 크지 않은 스캐빈저 정도는 가볍게 터뜨릴 수 있다.


키이이이.....”


그러나 중과부적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니겠지. 어느 새 내 주위로 원을 그리듯이 몰려들기 시작한 녀석들 사이로는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뚫고 지나가는 게 불가능해보이진 않지만, 그건 그 나름대로 저항을 할 준비를 하는 듯하다. 이거, 조금 다치겠네.


이럴 때는 먼저 달려드는 녀석을 잘 노리는 것이 낫다. 정신을 집중하고 스캐빈저들의 움직임을 살핀다. 오른쪽에 서 있는 녀석이 먼저 공격해 올 준비를 하는 것이 보인다. 건블레이드를 세워 곧 올 공격에 대비하자.


온다.......!


눈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날아온 손톱을 건블레이드의 옆면으로 흘려 넘긴다. 그와 동시에 앞쪽으로 밀어내어 무력화시킨다. 대열이 무너져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개미 같아 보인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그거야말로 상황을 볼 줄 모르는 바보다.


방금의 반격으로 넘어진 녀석의 머리와 배를 한 번씩 터뜨려 재로 만들어 버리고, 폭발을 일으켜 몸을 살짝 띄운다. 가장 방어를 허술히 하고 있는 녀석을 향해 하강해서 기습적으로 녀석의 목을 찌른다. 내 팔을 찌르는 스캐빈저를 손에 응축한 화염으로 태워버리고, 그대로 날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오는 녀석들을 차례대로 터뜨린다.


일대다는 이래서 싫다. 도와줄 사람 하나도 없이 싸우는 건 견제해야 할 것도, 공격을 가해야 할 상대도 너무 많고 우선순위를 잘못 세우면 공격받기 일쑤다. 방금 전에 찔린 팔에서 열기가 올라온다.


안 그래도 오늘은 짜증나는 일이 많았는데, 니들까지 날 화나게 하지 마.


공중으로 뛰어오른 뒤, 폭발을 일으킨 건블레이드를 그대로 뭉쳐있는 녀석들의 중심에 꽂아버린다. 충격파로 흩어진 녀석들을 각각 쓰러트리러 다리를 움직인다. 뭉쳐있다면 흩어놓고 일대일로 싸우는 게 훨씬 편하다.


마지막 한 마리를 지구에서 지워버린 후, 일어난 참상을 확인한다. 다행이도, 건물이 살짝 무너지고 전선이 좀 끊어진 정도로 끝난 듯하다. 주변에 푸른 불꽃이 조금씩 남아있는 걸로 보아 내가 입힌 피해도 좀 있는 것 같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너무 간만에 한 전투라서 그런지, 끝나자마자 이유모를 탈력감에 다리가 풀린다. 열심히 일 했으니 이젠 나머지는 유니온이 알아서 해 줄 것이다. 건블레이드를 질질 끌고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선우 란에게 간다.

그러고 보니, 이 운송수단이 날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전투하는 것보다 무서운 운송수단이라면 그걸 운송 수단이라고 불러야 할까?

 


수고했어, 세하야! 정말, 이걸 어떻게 고맙다고 해야 될지......”


아니, 그건 됐고, 운송 수단이나 어떻게 해 봐요.

기껏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나 했더니, 유니온에게 배달로 보내져 강제로 감사인사를 듣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전화상으로 종종 듣던 이 김유정이란 사람, 당장이라도 뿌리치고 싶지만 이렇게 감사인사를 하는 걸 쳐내기도 그렇고, 어떡한담.


, 이번만이라곤 했지만, 정말 검은양 팀에 들어올 생각 없니? 그다지 큰 부담도 안 될 거고, 관두고 싶으면 언제든 관둬도 좋아!”


방금 했던 말 취소. 이거 낌새가 이상해. 당장 안한다고 말하고 나가야겠어.

입을 열려던 그 때, 갑자기 뒤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 슬비야! 괜찮니? 어디 아프진 않고?”


, , 언니. 전 괜찮아요. 그보다, 훈련 프로그램은.......”


걱정 마, 걱정 마! 저기 세하가 다 해결해 줬어!”


내 말에 귀를 의심하기라도 하는 듯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크게 뜬다. , 그거 의외로 기분 묘하다. 하지 마. 분명히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오후에 보였던 반응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좋은 얘기는 못 듣겠지. 매몰차게 제안을 거절했던 나고, 그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녀석이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른 반응이 뇌에 이상신호를 전달한다.


............구해줘서......고마워.......”


뭐야, 그 반응. 오후에 봤을 때완 사뭇 분위기가 다른데. 훈련프로그램에서 무슨 경험이라도 했나, 무슨 이렇게 반응이 휙휙 바뀌어? 잠깐, 볼 붉히지 말라고. 내가 부끄러워지잖아. 딱히 너 구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간만에 몸 좀 풀고 싶었을 아니 이번만 도와주면 된다는 말을 들어서 그게 맞긴 한데 괜히 나까지 얼굴 붉어지게 만들지 말고 어으......아 몰라.


볼을 살짝 붉히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게 나까지 왠지 모를 열이 살짝 올라온다. 눈이 오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맑아 보인다고 할까, 눈물이 살짝 보이는 것도 같고, 입은 할 말을 머금은 채로 살짝 벌렸지만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살짝 앙 다문다.

아무래도 전투 때문에 위상력을 너무 많이 썼는지 머리가 살짝 멍한 것 같다. 전투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럴 거야.


그러니 세하야, 네가 도와준다면 정말 큰 도움이 될 거야. 해 보/지 않을래?”


, .......언제든 그만둬도 괜찮다면야.”


?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정말로? 이야, 고마워, 고마워! 큰 도움이 될 거야!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할게! 난 김유정이라고 해. 유니온의 관리직이지. 유정 누나라고 부르면 돼!”


나도 모르게 어마어마한 걸 수락해 버렸다!

당장이라도 취소해 버리려고 했으나,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여 버리면 아무리 나라도 , 말실수입니다라고 말하기는 좀 힘들다. 거기에 승낙을 한 순간 뒤에 침대에 누워있는 녀석이 띄운 어벙한 표정이, 왠지 모를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초콜릿을 한 입 크게 깨물은 것 같이 달콤하고 알싸한 분위기에 머리가 취해버린다.


이래서야, 잠자리채에 걸린 매미나 다름없다란 생각이 든다만, . 언제든지 관둬도 된다고 했으니, 적당히 간만 보고 나가자.

 

 

, 이세하! 브리핑 중에 뭐하는 거야!”

, 이슬비! 아직 세이브도 안 했는데 그게 뭔 짓거리야!”

알 게 뭐야! 적당히 해야지, 앞으로는 그냥 몰수해 버릴거야!”

그럼 하나 더 꺼내면 그만이지! , 잠깐, 그것도 뺏어가냐!”

얘들아......?브리핑 할 때는 집중을.......”

, 이세하!”

아아. 난 왜 아직까지도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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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losenea입니다. 이번 편은 애니메이션 1화를 적당히 각색해서(그래봐야 거의 똑같지만) 써 본겁니다. 세하의 과거가 어느정도 많이 밝혀진 화였죠. 개인적으론 그때 '얘도 고생 꽤 했구나'라는 감상이 들었기에, 이렇게 써 보게 됐습니다. 빨리 2화가 나오면 좋으련만, 나오진 않으니까 이후 내용은 진짜 순수하게 직접 짜게 되겠네요. 그래봤자 인게임 스토리 라인 시작하면 다시 따라가겠지만요! 

모자라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재미있으셨다면 댓글이나 추천 부탁드려요! 문체 지적이나, 글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 이런 지적 환영합니다~.


7/13 세세한 묘사가 좀 모자라다 싶어서 수정했습니다. 지난 번에 올린 건 좀 빈약했네요;; 이세하의 '반격' 스킬 다시 내줬음 재밌겠다.


Ep-1 아무래도 좋은 일들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2210


Ep-3 진흙 속에 맑은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2280



2024-10-24 23:16: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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