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티나] 뉴욕의 휴일 -1-

Maintain 2017-05-26 2

"뭐야, 왜 네가 여기 있는 거지?"
"그건 내가 묻고 싶군. 네가 여기 올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인의 휴일 일요일. 일요일엔 다들 쇼핑을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면서 소일하는 게 정석이지. 특히 이 곳 뉴욕과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라면, 아마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도 발걸음을 옮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지금 뉴욕은 복구에 여념이 없고, 그 말인즉 쇼핑몰과 영화관 같은 곳도 무사하지 못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남는 건 낮잠 뿐이었다. 거기다 신서울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사건을 숨가쁘게 달려왔으니. 다른 애들은 지금 식사도 거른 채 램스키퍼가 수리될 동안 뉴욕에서 무상으로 제공해 준 호텔에서 기절하듯이 자고 있다. 

나? 나도 마음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약을 먹어서도 이 악몽은 쉽게 가라앉지 못했다. 분명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한때나마의 정이란 건 정말 무서운 것 같다. 결국 잠도 제대로 ** 못하고 마찬가지로 뉴욕에서 제공해 준 임시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나밖에 없을 줄 알았던 그 곳엔, 뜻밖의 불청객이 있었다.

"제이, 지금의 너는 그 누구보다도 쇠약한 상태다. 몸이든 마음이든. 어서 돌아가서 쉬도록."
"그럴 수 있다면야 그렇게 했지. 근데 그게 또 쉽지가 않아... 그리고 그건 티나 너도 마찬가지일 텐데. 아직 네 몸...수리가 덜 끝났지?"
"...맞는 말이다. 거기에 노후 부품들에도 결국 무리가 간 모양이야. 걸을 수는 있지만, 그 외의 다른 활동은 자제해야 한다는군."
"...너나 나나, 몸 성한 데 하나 없는 만신창이구만. 그래서, 그건 할 게 없어서 하는 소일거린가?"

나는 티나가 앉아 있는 테이블 자리 바로 맞은편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여자아이가 갖고 놀기엔 지나치게 살풍경한 총기들이 한가득 늘어져 있었다. 티나는 그 중에 기관총을 분해해서, 그 부품을 닦고 조이고 기름치던 중이었다.

"무기의 관리는 어느 때나 필수다. 관리하지 않는다면, 정작 중요할 때 낭패를 볼 수 있지."
"맞는 말이야. 관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 그건 그렇고, 이건 차원종을 잡기 위한 건 아닌거 같은데."

권총을 집으면서 말했다. 차갑고, 약간은 묵직한 금속의 감촉. ...별로 좋아하진 않는 감촉이다.

"어느 쪽이든 대비는 하는 것이 좋다. 차원종이든, 사람이든."
"그 말도 지겹게 들었었지... 이런 걸 지겹도록 하면서."

하도 빡세게 배운 탓에 머리의 기억은 가물가물해도 몸이 대신 기억해 주는 모양인지,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능숙할 정도로 권총을 분해하고, 또 다시 조립했다. 

"...제법 능숙하군. 솔직히 놀랄 정도였다."
"위상력자라고 해서 총기를 아예 안 다룬 건 아니니까. 거기다 형도 만약을 강조하면서 나한테 이걸 가르쳐 주기도 했었고."
"형? ...아, 트레이너를 말하는 건가."
"정말 끔찍했어... 얼마나 쪼였는지, 1주일만에 30초가 나왔다니까. 그것도 느리다면서 까이는 바람에, 결국 10초대 컷까지 찍었었지. 그제서야 날 칭찬해 주더라고. 그거도 엄청 쪼잔하게."
"아마 널 걱정해서 그랬던 거겠지. 트레이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나저나, 트레이너를 형이라고 부를 정도면 둘이 꽤 가까웠던 모양이군."
"그랬었지.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분명 나한테 아주 잘 대해준 것도 사실이야. 형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젠 그럴 수도 없게 됐지만..."
"...상심하지 마라. 넌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데이비드는 너와 트레이너, 그리고 모두를 배신했어. 거기에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했지. 정이란 게 쉽게 끊어지지 못한다는 건 나도 이리나 때문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넌 분명 옳은 결정을 한 거다. 내가 장담하지."

나보다도 한창 어려 보이는 여자아이한테 위로를 받다니, 나도 참... 뭐, 겉보기만 그렇지, 실제론 나보다 살짝 나이가 더 많다고 하니까.

"...충고 고맙군. 그나저나, 형은 같이 안 온건가? 둘이 자주 붙어 있었잖아."
"트레이너는 지금 바쁘다. 신원 복구 문제도 있고, 앞으로의 일도 있고 하니까. 아마 지금쯤 김유정 요원과 한창 이야기 중일 거다."
"유정 씨랑? 하긴. 앞으로 유정 씨도 엄청나게 바빠지겠지. 너는 같이 가지 않은 건가?"
"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트레이너가 그러지 못하게 하더군. 내 수리가 끝나기 전까진 무리하게 움직일 필요는 없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여기로 오게 된 거로군. 형도 참 과잉보호가 심한 사람이라니까. 그런 건 옛날하고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맞는 말이다. 겉은 강한 척 해도, 속은 누구보다 남을 걱정하는 사람이지. 그건 내가 그에게서 훈련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너도 형에게서 훈련을 받았었다고 했지. 그럼 넌 내 선배인 셈인가?"
"추켜세울 필요는 없다. 훈련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얼마 가지 못해 결국 한 번 죽었으니까. 전쟁의 경험으로만 따지면, 오히려 내가 널 선배라고 불러야 하겠지."
"...그런 뜻으로 말할 의도는 아니었어. 기분나빴다면 사과하지."
"괜찮다.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기분나쁠 건 하나도 없어."

티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무기로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 왜 갑자기 웃는 건가."
"아니, 생각해 보니 참 신기해서 말이야. 분명 너하고 만난 적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다른 누구보다도 그런 쪽으로 말이 잘 통한단 말이지. 어디의 누구씨라는 공통분모가 하나 있어서 그런가?"
"부정할 수 없군. 나도 트레이너 말고 대화가 잘 되는 건 네가 처음인 것 같다. 같이 싸웠던 건 저번이 처음이지만, 꼭 몇 년을 같이 싸웠던 오래된 전우 같은 기분이었다."

티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보고 흐릿하게 웃었다. 왠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손이 그녀의 머리로 향했다.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화상을 입을지도 몰라."
"뜨거운 거야 이미 익숙해. 물약 만들면서 화상 입은 적이 한두번도 아니니까. 아, 혹시 어린애 취급해서 화라도 난 건가?"
"그렇진 않다. 칭찬받는 건 싫지 않아."
"그럼 뭐 상관없는 거잖아. 자."

나는 티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역시, 약간 뜨겁긴 하군.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럼, 이제 슬슬 나갈까."
"돌아가려는 건가? 잘 생각했다. 돌아가서 쉬어라. 그리고 체력을 보충하도록."
"무슨 소리야? 너도 같이 나가는 거야. 왜 사람을 자꾸 돌려보내지 못해서 안달이야?"
"...나도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아직 무기의 정비가 끝나지 않았어."
"뭐 잠깐 정도는 괜찮잖아? 가끔은 너도 쉬라고. 그리고 뭣보다 그때 한 약속, 지금 지켜야겠어."
"약속? 아이스크림을 말하는 거면 그때도 말했을 텐데. 모두와 함께 가겠다고. 나 혼자 갈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애들은 모두 자고 있을 테고, 형도 바쁘잖아? 자고 있는 애들을 깨울 수도, 바쁜 사람을 억지로 불러낼 수는 없잖아."

나는 티나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이며 말했다.

"그리고 이건 무엇보다, 전우로서 너와 한 약속이야. 난 한번 한 약속은 지키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그러니까, 부탁하지. 약속을 지키게 해 줘."
"...하는 수 없군. 하지만 이번 한번뿐이다. 두 번은 없어."

조금 강하게 나온 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티나는 마뜩찮은 표정이긴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거 알아? 티나 너도 가끔은 쉬는 편이 좋다고. 몸에 무리도 갔는데 말이야. 너도 가만히 보면 정말 고지식하다니까. 그 교관에 그 제자 아니랄까봐."
"휴식이라면 지금도 충분하다만. ...그래. 더 이상은 아무 말도 않겠다. 그러니, 안내해라, 제이."
"네, 네. 알겠습니다요."

자, 이걸로 같이 나가자고 하는 덴 성공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까...?

2024-10-24 23:15:3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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