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생각했던 대로, 그녀, 그들에게 더위는 변함없이 고달프다

Prile 2015-02-08 19






"허억.. 허억.. 이 망할 리더가.. 허억.. 사람 고생시키고 있어.. "



슬비와 15분간의 리모콘 쟁탈전을 벌이고 간신히 승리했다. 슬비는 너무 더웠던 것인지 아니면 리모콘을 뺏는 것을 포기한 것인지 탁자에 엎어졌다.


평소보다 땀이 많이 나오는 걸로 봐서는 어지간히 여름에 약한 체질인 거 같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절약해야 한다고 인간아.



"더.. 더워..."



엎어진 채, '덥다' 라는 말을 반복하며 슬쩍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면서, 슬비는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진짜 죽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죽은 듯이 엎어져 있다고 해도 이 이상 에어컨을 틀어둔다면 전기세가 차즘차즘 쌓일 게 뻔하다. 지금 엎어져 있을 때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틀어둔다면 그나마 오래 버틸테지만..



"동생. 그래도 하루에 5시간 정도는 틀어도 괜찮지 않아? 저번처럼 6명이 각자 방에서 에어컨 틀지만 않으면 그렇게 심하게 나오진 않을 거 아니야."


"하루에 5시간이나 틀만큼 지금 가계 사정이 여유롭지가 않으니까 제가 이러고 있죠."



전기세'만' 많이 나온다면 이렇게까지 비참할 정도로 절약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전기세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수도비다.


앞서 말했듯이, 여름에 들어서 남성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성진들의 샤워하는 횟수가 증가했을 뿐만이 아니라 수분을 보충하기 위해 물을 많이 마시게 됐다.


클로저 일로 인해 보급품을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사들이게 되었고, 이사비용, 에어컨 설치비용, 기타 설치비용 등 저축해 뒀었던 돈들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서 게임기도 못 샀지. **.



"하지만 확실히.. 이 날씨에 에어컨 없이 지낸다는 건 조금, 아니 상당히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선풍기를 거실에, 정확히는 슬비의 앞에 가져다 놓았다.



"야-, 이슬비. 정신차려."



탁자 주변에 놓여져 있던 부채를 들고 슬비의 얼굴 쪽으로 부채을 부쳤다.



"우으..."



아무리 불러도 깰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아마 방금 난리 친 것과 더위로 인한 스트레스로 상당한 피로가 있던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뺨을 손가락으로 찔러봐도 작은 신음소리만 낼 뿐, 일어날 기색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이건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거실에 계속 이렇게 놔두는 것도 뭣하니 방으로 옮겨주는 게 좋겠다.



"동생, 옮겨주면서 이상한 곳엔 손대지 말라고."


"안 대요, 안 대. 자는 애를 상대로 뭘.."



사람을 뭘로 보고..


잠든 건지, 기절한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슬비를 등에 업고 슬비의 방으로 향했다.


...얘 되게 가볍네.



"읏차."



깨지 않도록 조심히 침대에 눕히고, 더워서 깨는 일이 없도록 선풍기를 침대 앞에 가져다 놓았다. 아, 배 덮어줘야지. 배탈 날라.


배를 덮어주며 슬비의 자는 얼굴을 슬쩍 보고는 방에서 나왔다. 슬비의 방에서 나오자 휴대폰이 울기 시작했다.


어딨어? 너무 울리지 않아서 의식해서 두지를 않았다. 쇼파.... 쿠션을 젖혀도 없고, 탁자 위에도 없다. 물론 주머니에도.


이제 찾는 것이 귀찮아졌지만, 휴대폰은 계속 착신을 알리고 있다. 그렇게 되면 문자가 아니고 전화다. 그러고 보니, 식탁을 찾아** 않았네.


그렇게 생각해서 식탁 위를 바라보니 찾고 있던 휴대폰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세, 세하야. 잘 지냈어?]


"아, 석봉아."



휴대폰으로부터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봉이다.


설마하니 석봉이에게서 온 전화였을 줄이야. 지금은 강남에서 복구 작업을 돕고 있다고 했었던가?



"나야 잘 지내고 있지. 석봉이 너도 잘 지내고 있어?"


"나, 나도 잘 지내고 있어. 요즘 일 하는 건 힘들지 않아?"


"괜찮아, 괜찮아. 지금 휴가 받아서 쉬고 있거든."



그러고 보니, 석봉이는 우리가 휴가 받은 걸 몰랐었지 참. 진작에 말해줄 걸. 그럼 심심하지 않게 게임 한 판 붙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휴, 휴가? 그, 그럼 스, 슬비도 휴가중이야?"


"어, 그래. 걔 뿐만 아니라 우리 팀 전체가 휴가지만."


"스, 슬비는 어때? 자, 잘 지내고 있어?"


"어? 어. 더위엔 쥐약인 건지 방금 침대에 눕히고 왔어."


".........무, 뭐? 방금 뭐라고?"


"? 그러니까 방금 침대에 눕히고 왔다고."


"스, 슬비 방에 들어간 거야?! 거, 것보다 왜 세하 네가 슬비 집에 있어?!"



뭘 이렇게 놀라지?



"그게, 우리 팀 지금 한 집에서 살고 있거든."


".......무, 뭐?.. 하, 한 집?"



석봉이와 통화를 하고 있을 때 세탁기에서 다 돌아갔다는 알람이 울렸다. 세탁기 돌렸다는 걸 깜박했네.



"아, 석봉아 미안. 세탁기 다 돌아간 것 같다. 나중에 다시 통화해."


"아, 아니 잠깐만 세하야!"



뚝.



뭔가 석봉이 다급한 목소리였던 거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오후 4시 15분.


덜컥.



"다녀왔어요, 혀엉!"


"다녀왔어."



테인이와 유정이 누나가 돌아온 모양이다.


"어서와. 어서오세요."


"어서와, 유정씨. 짐 이쪽으로 줘. 가져다 놓을 테니까."


"아, 고마워요 제이씨."



제이 아저씨는 유정이 누나의 가방을 받아들고, 쇼파 옆 쪽에 가져다 놓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보통 가져다 놓는다고 하면 방으로 가져다 놓지 않나요 아저씨..



"형! 오늘 진짜 더워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럴 거 같더라. 오늘은 평소보다 더 더웠으니까."



테인이는 땀 범벅으로 된 겉옷을 벗고 새하얀 팔이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언제봐도 여자애가 아닐까, 하고 의심된단 말이지..



"형?"



너무 오래 쳐다봐서 그런지 테인이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아무 것도 아냐. 덥지? 뭐라도 좀 마실래? 유정이 누나도요."



유정이 누나도 오늘같은 더위에는 별 수 없는지, 입고 있던 요원복을 벗어던지고 안에 입고 있던 와이셔츠만을 걸치곤 쇼파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와이셔츠가 땀으로 젖어서 이것저것 비치는데요 누나.. 본인은 전혀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어, 어? 그럼 시원한 콜라 한 잔만 가져다 줄래?"


"아, 형! 저도요!"


"그래, 알았어."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에 있던 콜라와 얼음을 꺼내고, 컵에 넘치지 않을 정도로 따랐다.


여러가지 비친다는 걸 말해야 하나.. 눈을 둘 곳이 없어.. 콜라 2잔을 가지고 거실로 향하자, 마침 제이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



제이 아저씨도 유정이 누나가 어떤 꼴인지 본 모양이다. 이걸로 활로가 열릴려나..



"....유정씨. 지금 그게 무슨 꼴이야?"


"네? 제 꼴이 뭐가 어떤데요?"


"하아.."



역시 눈치 못 챈듯 하다. 제이 아저씨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한숨을 내뱉으며 자신이 입고 있던 반팔 와이셔츠를 유정이 누나에게 걸쳤다.



"됐으니까, 얼른 방에 가서 갈아 입고 와."


"아, 알았어요."



....회피했구만. 나같아도 그렇겠지만. 진짜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지금 셔츠가 땀에 젖어서 여러가지 비친다구★?' 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말하는 사람도 고문이고 당사자는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할테니까.


유정이 누나는 자신의 가방과 겉옷을 가지고 2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자, 테인아 콜라."


"고마워요, 형."



테인이는 두 손으로 콜라를 받아들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한 모금 한 모금씩 삼켰다. 어지간히 목이 말랐는 지, 금세 잔에 있던 콜라를 비웠다.



"우와~ 진짜 살 것 같아요."


"그거 다행이네."


다 마신 잔을 주방에 가져다 놓고, 해맑게 웃으며 벗어뒀던 겉옷을 들고 테인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나와 아저씨만이 남았고, 



[하아... 지친다..]



지친 기색의 한숨은 공중에서 겹쳐, 울려퍼졌다.


에어컨... 역시 틀까..
















8시가 지나자, 여름의 석양은 한층 더 깊어진 모습을 보였다. 하늘은 높고, 뺨을 어루만지는 바람도 미지근해지기 시작했다.


유리와 정미도 돌아왔고, 지금은 저녁 준비로 한창이다.



"이세하. 뭐 도울 거 있어?"



잠에서 깬 슬비가 접시와 음료수를 나르며 물어왔다.



"아니, 괜찮아. 금방 되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어."


슬비는 접시와 음료수를 가지고 뒤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거실에서 먹기엔 냄새가 안 지워질 것 같으니까 뜰에서 먹는 게 낫겠지.


손질한 야채와 고기를 가지고 나도 뒤뜰로 향했다.



"예이~! 바베큐다, 바베큐~!"


"야채도 제대로 먹어."


"알고 있어~!"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저번에 카레를 먹을 때도 고기 대부분은 유리 이녀석이 다 먹어치웠지 아마..


꼬챙이에 버섯, 피망, 고기, 브로콜리 순으로 차례대로 끼우고 컵에 음료수를 따라갔다.



구울 준비를 하려는 내게, 제이 아저씨가 다가왔다.


"동생, 오늘은 내가 구울 테니까 먼저 먹고 있어."


"아뇨, 괜찮아요. 아저씨야 말로 유정이 누나랑 같이 드세요."


"...거기서 왜 갑자기 유정씨가 나와."


"글쎄요, 왤까요. HA HA HA."



제이 아저씨를 자리로 돌려보내고, 고기와 야채를 꽂은 꼬챙이를 판에 올려 하나 둘씩 구워 나갔다.


테인이, 슬비, 유리, 정미, 제이 아저씨, 유정이 누나의 접시에 하나씩 올리고 나도 하나 입에 넣었다.



"맛있어! 고기 최고!"


"맛있다니 다행이네."


"응, 응! 진짜 최고야! 세하 엄마 최고!"


"누가 엄마야, 누가!"



은근슬쩍 멋대로 홀어미로 만들지 마라. 그리고 성별도 틀렸거든?



"하지만 정말 맛있어, 세하야."


"기름진 음식은 끊었지만.. 가끔씩은 괜찮겠지."


"뭐, 먹을만 하네."


"아! 유리야! 그건 내 몫이야!"


"형도 얼른 와서 드세요!"


"그래. 금방 갈게."






시끌벅적 하네. ...당분간은 에어컨 틀어둘까, 손님도 몇명 올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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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24 22:23:0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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