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OLOGIC_TOPIA Operation 0.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

가슴이부조캐 2015-02-08 2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리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이미 동쪽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든, 완연한 저녁의 풍경에 순간적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고 말았다. 말 그대로 일순간일 뿐이라 금방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차린 정신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는 정신을 잃고 있는 게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의식이 부상한 장소는 바로 학교 교실. 이 시간까지 학교에서 퍼질러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엄마가 뭐라고 하실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고 만 것이었다. 분명 화내시겠지. 아니, 그 이전에 집의 문이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은 아무리 찾아봐도 310원. 누구 놀리는 것처럼 애매하게 들어있는 동전으로는 저녁은커녕 벌써부터 출출해지기 시작하는 내 배를 충족시키기마저 어림도 없는 금액이었다. 500원이기만 했어도 기쁠 갈색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 이 10원을 어디에 쓰나, 라고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요즘 세상에 300원이면 어찌어찌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같잖은 군것질 거리 하나는 나오기야 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니 남은 10원이 아쉬웠다. 왜 있어가지고.


투덜투덜 거리면서 분명 책상 옆으로 손을 뻗었다. 가방을 잘 뒤지면 엄마가 용돈이라도 좀 넣어놓은 게 있을지도 모르지. 가능성 0%에 도전하는 희망을 품고 뻗어진 손은 허공을 갈랐다.


“아.”


또 그걸까. 언제나처럼 있는 일이기야 했지만 오늘은 기분이 특히 꿀꿀했다. 이렇게 집에 가봐야 엄마에게 혼날 뿐이지, 거기에 가방마저 열심히 청소하고 가지 않으면 받아봤자 하등 쓸모도 없는 걱정만 끼칠 뿐이었다. 한층 무거워진 발걸음을 떼어 쓰레기통 앞으로 간 뒤 역시나 있는 가방을 꺼냈다. 자는 사이에 또 누가 이런 짓을 해놓은 거겠지. 용의자는 학교 학생 전원. 친구라는 이름으로 용의선상을 벗어날 녀석은 완전히 없음.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며 가방을 열자 누가 선물로 넣어놨는지 과자 봉투 쓰레기와 거기서 흘러나온 가루들로 가방 안이 장식되어 있었다. 거 참 고마운 녀석들일세.


어이가 없어 흘러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은 채로 내 옆자리 친구의 자리에 과자 가루를 털었다. 내 가방에 이런 쓰레기를 넣었다는 사실을 방관했거나 저질렀거나 하지 않았다는 걸 어필하려면 나한테 직접적으로 욕하지 못한다. 뒤에서 씹는 건 내 알 바가 아니지. 전에 한 번 대놓고 저지른 녀석을 경찰 아저씨와 상견례 시켜드렸으니 내 앞에서는 티도 못 낼 것이 분명했다.


옆자리였다는 사실에 피해를 입은 불행한 녀석을 애도해주면서 좀 깨끗해진 가방을 메고 아마도 문이 잠겨 있을 집을 향해 출발했다. 엄마가 아무리 차가운 클로저라고 해도 초등학생 아들에게는 따듯하겠지. 자기 전에는 문을 열어줄 거야. 그렇게 믿으며 걷는 거리는, 이미 하늘에 달만이 빛나고 있었다.




TOPOLOGIC_TOPIA Operation 0. 웃으면 된다고 생각해.




쾅, 하는 소리에 강제로 의식이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 소리 탓이라기보다는 동시에 머리에 울린 충격 때문이겠지만. 반쯤 감긴 눈을 억지로 뜨고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키자 눈앞에 익숙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익숙하고 자시고 이전에 같이 살고 있는 엄마였지만. 그 옆에 보이는 알람시계의 시간은 6시 반. 이 시간에 깨우다니.


“어이, 아들. 일어나셔.”

“어이, 엄마. 일어났어.”


그러니까 그만 때리라고. 그렇게 툴툴거린 뒤 화장실로 비척비척 걸어갔다. 어젯밤에 뒤숭숭한 공포 게임을 하다 잔 탓일까, 기분 나쁜 옛날 꿈을 꾼 것 같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선잠을 잔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머리에 아직도 울리는 고통을 생각해보면 엄마의 충격요법으로 상실된 것일지도 모른다.


“아들, 빨리 준비하고 나와!”

“나 아직 세수도 못 했다고!”

“지금까지 뭐했어!”

“화장실에서 볼 일 봤다, 왜!”


확실히 어제 엄마가 ‘내일 급하게 나갈 일이 있으니까 일찍 일어나야 된다.’라고 한 기억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급하게 재촉할 이유가 있는 걸까. 어젯밤에 늦게까지 게임하다 잔 내 잘못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너무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주말 아침에 나가는 것도 싫어 죽겠는데 이렇게 폭력적으로 재촉을 하면 뭐라고 할까, 반항심이 든다. 빨리 나가야 한다는 건 알겠지만 어쩐지 몸이 느릿하게 움직인다든가, 어쩐지 노곤해서 움직이기 싫다든가 그렇게 된다.


“아드을! 이세하!”

“아, 알았다고!”


화장실 문 너머에서 들리는 분노의 음성과, 분위기만으로도 느껴지는 위상력의 압력이 ‘늑장을 부린다면 너는 처형이다.’ 라고 외치고 있는 게 리얼타임으로 감지되고는 있지만 아직 시간이 걸리는 건 사실. 침대에서 일어난지 5분만에 샤워를 마치고 양치질까지 끝낸 나를 칭찬해야지 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엄마 면전에 대고 말할 용기는 없지만.

드라이기로 머리 모양을 포기하고 대충 말려버린 뒤 아무 옷이나 막 꺼내 입었다. 방 문을 부술 기세로 닫고 뛰어나온 뒤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자 6시 37분. 샤워 한 것 치고는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간이기는 했다. 7분이라.


“아들.”

“응?”

“나는 아들이 그렇게 애국심이 깊은 지는 생각도 못 했네.”


이게 무슨 소리지.


“빨강 저지에 파랑색 트레이닝복. 거기에 검정 양말까지 신으니까 아주 태극기구나.”

“아 잠깐. 진짜로?”


너무 세게 닫은 탓에 잘 열리지 않는 방문을 반쯤 걷어차듯이 열고 들어가 거울을 보자 상상 이상으로 촌스러운 패션의 소유자가 보였다. 아무리 친구가 거의 없다고는 해도 이렇게 나가는 건 좀 무리다. 머리 모양도 엉망이라 조금 정신에 문제가 있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트레이닝복 먼저 청바지로 갈아입고 저지는 검정 라운드 티로 완전히 갈아입었다. 머리 모양은 너무 대충 말린 탓에 답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좀 사람다워 보이는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음, 원판이 나쁘지 않으니—라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인간처럼 보일 정도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들아, 거울 앞에서 심취해있는 건 아무리 가족이라도 역겹단다.”

“누가 심취해 있다는 거야.”


어느 새 방 안으로 들어와서 어깨에 손을 탁 얹은 엄마가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평소 생활 태도가 더 역겹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걸 입 밖으로 냈다가는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설마,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엄마는 서지수다. 누가 뭐래도 ‘대량살상 마녀’ 서지수란 말이지.


“좋아. 늦잠을 자기는 했지만 빨리 준비해줬으니까 시간은 넉넉하네. 천천히 가자.”

“잠깐. 그럼 대체 왜 그렇게 재촉을 한 건데?”

“그야 당연히 그렇게 안 하면 게임기를 손에 쥐고 느릿느릿 움직일 게 뻔한 아들내미니까. 게임기 그새 챙긴 거 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 그래서 오늘은 어디 가는데.”

“아들아. 할 말이 없다고 주제를 돌리면 인기 없단다.”

“상관없어.”

“게임 속의 여자랑은 법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한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고!”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게임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게임이라고 대답할 수 있지만 그 정도로 게임에 빠진 사람은 아니다. 게임 속의 여자라니, 물론 좋기야 하지만 결혼은 무슨 결혼입니까.


“그래 그래. 알았으니까 빨리 타기나 해.”

“하아.”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는 건 얼마만일까. 통학 중에는 그럴 이유도 없이 버스를 타고 다니는 입장이었고, 그 이외에는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게임 소프트 사러 나가는 게 전부. 그 이외의 일로 나가는 경우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도 없는데 뭘.


청은색으로 도색된 승용차 문을 열고 타자 얼굴을 찡그리게 하는 냄새가 났다. 차 외관은 멀쩡하게 생긴 주제에 이게 뭐하는 짓일까. 과자 부스러기가 가죽 시트 사이사이에 빼곡하게 박혀 있고, 쓰레기로 추정되는 봉투들이 여기저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집 정리도 안 하는 인간이 차 청소를 할 리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엄마.”

“…응?”


자신도 잊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한 박자 늦게 되돌려준 대답. 여기서 할 말은 하나밖에 없지.


“청소는 내가 할까?”

“…고맙습니다, 아드님.”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을까. 내가 잡은 약속도 아니건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덤으로 엄마의 인생도.


===


“좋으아! 달리자!”


트리거 해피. 방아쇠만 잡으면 정신이 날아가는 인간들을 칭하는 단어다. 일반적으로 총을 쏠 때 반동과 무게감, 그리고 그 발사음으로 발생하는 고양감을 마약과 같이 느껴서 방아쇠만 잡아도 정신이 천국으로 날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것과 마찬가지로 드라이빙의 쾌감을 느끼고 핸들만 잡으면 정신이 약간 운전하기에 부적합해지는 사람 또한 있었다. 그 장본인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은 출발하기 전까지 이세하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물론 서지수의 행태로 인해 약속 시간—7시까지는 상당히 촉박하기도 했고, 그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빨간 불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것은 상당히 운전자로서 아웃인 행동이었다.


—옆에서 끼어들기를 시도하면 엑셀을 더 밟는다든가.

—신호등이 바뀌기 직전이면 꼬리 물기를 감수하고 질주한다든가.

—앞에 차가 없으면 국도에서 100km/h를 돌파한다든가.

—커브에서 핸들을 꺾으면서 엑셀을 밟아서 굳이 스키드 마크를 남긴다든지.


조수석에 타고 있는 사람이 손잡이를 필사적으로 부여잡게 하는 운전 실력을 선보이고 잇었다.


“어, 엄마! 과속 카메라!”

“필요 없어! 돈 많다고!”


일정 속도를 넘으면 면허 정지까지 가는 게 과속 운전이지만, 벌금형만이 머릿속에 들어있는지 서지수는 아들의 말을 무시하고 질주하고 있었다. 내일 죽을 것 같이 살아라—!라고 외치는 시점에서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조수석에 탄 세하는 그런 걸 생각할 틈도 없이 상당히 쏠리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흐하하하하하하!”

“대량살상 마녀…, 우욱.”


운전에서 클로저의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면 어떨까 싶었지만, 세하는 어머니의 운전하는 모습에서 그녀의 클로저 생활이 보이고 있었다. 아마 이렇게 웃으면서 차원종들을 전부 죽이지 않았을까. 아니, 분명해.


“좋아아아았쓰아! 도착했다!”

“….”


양손으로 창문 위에 달린 손잡이를 부여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 못한 것인지, 애써 무시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지수는 양손으로 치켜 올리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거칠게 문을 열어제끼고 나온 그녀는 차에 시체처럼 얽혀서 손을 놓으려 하지 않는 세하를 강제로 끌어내고 목적지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들아, 아들아. 정신을 차려라. 차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엄마가 구우면 다 타겠지.”

“어머, 아들. 엄마도 요리는 할 줄 알, 알, 알게 될 거 거든?

“제발 할 줄 알아줘.”


간신히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부들부들거리면서도 대답은 제대로 하는 세하를 건물 입구 옆에 있는 의자에 던져둔 뒤 서지수는 카운터로 향했다. 지갑에서 자격증을 보여주자 간단히 패스. 빈사 상태로 시체처럼 널브러진 세하의 목덜미를 잡고 천천히 건물 지하로 내려갔다.


“으어어어어.”

“아들, 말을 하려면 제대로 해.”

“으어어어으얽!”


계단을 끌려내려가면서 고통을 느꼈는지 정체불명의 기성을 내지르는 세하를 무시하고 서지수는 계속해서 내려갔다. 목을 부여잡고 신음성을 내던 세하는 간신히 균형을 잡았는지 서지수의 손을 떨쳐내고 기침을 했다.


“콜록. 엄마, 뭐하는 거야! 여긴 어디고!”

“아들의 장기를 떼어서 팔러 왔지.”

“웃기지 마!”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화를 내는 세하를 보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을 거는 서지수를 보며 세하는 열이 끓어올랐다. 아빠는 대체 이 막가파 여자를 어떻게 참고 견딘 걸까. 세계구급 미스터리라고 생각하면서 참기는 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들어오면서 반쯤 나간 정신으로 슬쩍 본 간판은 ‘UNION’. 생각조차 하기 싫은 다섯 글자였다. 싫어하는 걸 알면서 데려온 속셈이 대체 뭘까.


“여기는 왜 온 거야.”

“아들 장기 떼러 왔다니까.”

“장난할 기분 아니야. 적어도 나는 성인이 될 때까지 올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

“…생각보다 빨리 알아챘는데.”


쳇, 운전이 좀 덜 거칠었나. 무서운 소리를 흘리며 불만 섞인 소리를 내는 자신의 어머니, 서지수를 본 세하의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라는 속담도 있고, 좋은 일은 빠를수록 좋다—라는 일본 속담도 있으니까. 어차피 마주할 일이면 빨리 끝내는 게 좋지.”

“…마음의 정리가 덜 됐어.”

“벌써 10년이나 지났는데?”

“아직 10년 밖에 지나지 않았어.”

“네 인생의 반이야.”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고.”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말대꾸를 하는 아들의 모습에 서지수는 미간을 잡았다. 보나마나 화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아직 뒤끝이 남았을 줄이야. 게임 폐인으로 지내는 걸 놔둔 게 독이 됐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하게 될 일이기도 하니 깔끔하고 기분 좋게 끝내면 좋으련만,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엄마는 아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시간 때우는 모습은 질렸단다.”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는 내 재량이지. 성인이 되면 어차피 강제로 소속될 곳이야. 그 전까지는 좀 내버려 두라고.”

“내버려 두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났어.”

“누구 마음대로 그런 소리를—.”

“입 다물고 있어, 이세하. 네가 무슨 소리를 하더라도 이젠 핑계라고. 애송이 주제에 징징대는 꼬라지는 내가 10년 동안 봐온 걸로 충분해.”


어머니가 아니라 요원의 한 사람으로서 네 모습은 꼴불견이다. 말이 어떻더라도, 포장을 어떻게 하더라도 이세하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이를 갈고 화를 내도 결과는 마찬가지겠지. 지금 이 상황에서 감정 싸움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포장해도 저쪽이 보기에는 하기 싫다고 징징대는 어린애의 생떼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아야만 하는 논리적 이유 따위, 있을 리 없다. 본래대로라면 훈련 가능한 나이인 5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소속된 몸이어야만 했다. 10년 전에 그만 둔 것부터 이미 어불성설. 연장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여기서부터는 네가 해야 할 일이지, 이세하. 계기를 줬으면 알아서 움직여. 움직이지 않으면 끝낼 수도 없다. 그건 게임도 마찬가지지?”

“하지도 않으면서 잘 안다는 듯이 말하지 마.”

“아들 어깨 너머로 자주 봤지. 우리 아들은 게임 폐인인 주제에 실력도 없어서 한 번 하는데 엄청 오래 걸리거든. 볼 기회도 많지.”

“돌려 까는 건 그만 해!”


마지막은 결국 장난스럽게 끝내는 걸까. 방금까지 서로 노려보던 분위기가 거짓말같이 흩어졌다. 안도감인지 허탈감인지 모를 감각에 깊은 한숨을 내쉰 세하는 계단을 자신의 발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우, 아들. 정신을 차렸구나!”

“몰라, 그런 거. 그나저나 따라오지 말라고.”


삐졌어? 삐졌어—? 라고 얄밉게 물어오는 게 짜증이 났지만 어쨌든 자신의 어머니. 잠시 무멈춰서 손을 휘휘 저어 내쫓은 뒤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혼자 괜찮겠어?”

“아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군데. 당연하지.”


뒤 돌아 보는 일 없이 세하는 말했다. 이젠 혼자 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는 등을 보며, 한층 성장한 아들의 모습을 보는 어머니의 기분을 느끼며, 서지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아들. 몇 층으로 가야 하는지 아냐고.”

“…몇 층?”


산통 깨지네. 그렇게 중얼거린 서지수는 즐거운 얼굴로 아들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훈련 요원 채용 보고서


이하 내용은 Project Name : 검은 양—Black lambs—의 관리 요원 또는 그 이상의 권한을 가진 요원만이 열람 가능합니다.



CODE : STRIKER

본명 : 이세하

나이 : 18세


인터뷰


관리 요원 Y : STRIKER. UNION에 채용된 걸 축하하지.


STRIKER : 별 말씀을. 그나저나 그 STRIKER라는 거 엄청 부끄러우니까 이름으로 불러주시면 안 되나요.


관리 요원 Y : 규정 위반이라 불가능하네.


STRIKER : 정말 싫은 규정이네요.


관리 요원 Y : 흠. 됐네, STRIKER. 먼저 물어볼 건— 그래. 업무 상에 있어서 요청하고 싶은 건 있나?


STRIKER : 충분한 게임 시간 보장?


관리 요원 Y : 조금은 생각하고 말하게나.


STRIKER : 더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관리 요원 Y : 미안하지만 그건 무리로군. 다른 건 없나?


STRIKER : 무리라고요? 큭, 그럼 대체 뭘 할 수 있는 거지….


관리 요원 Y : 평범하게 원하는 거 없나?


STRIKER : 게임 시간 이외에는…. 아, 그럼 개인행동의 범위는 어떻게 되나요?


관리 요원 Y : 당연히 임무 중에는 불가능하지.


STRIKER : …되는 게 없네.


관리 요원 Y : 더 원하는 건?


STRIKER : 없어요. 하아.



총평


태어났을 때부터 위상력을 발현한 것에 비해 현재 실력은 부족. 그러나 잠재력은 높은 편이며, 가열, 방출이라는 특성 상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5세 당시 UNION에 입사한 경력이 있으나 3년만에 퇴사. 본래는 불가능하나 트라우마로 인한 위상력의 불안정과 모친 ‘알파 퀸’의 압력으로 인해 이뤄진 경우다.

10년이 지난 현재 위상력은 안정되어 있으며, 시뮬레이션에서 확인한 정보에 따르면 전투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단 게임에 보통 이상의 집착을 보이며,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이 사항을 개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이, 이게 뭐지. 진짜 못썼네! 너무 긴 시간에 걸쳐 써서 그런가...


아니 뭐 어쨌든 꽤나 장편 예정인 잡글. 세계관 키우기에 영혼을 걸고 창조해낸 물건이라 기묘하기 짝이 없음. 용량도 부족하고 이게 뭐니. 그나저나 이거 *로 막히는 거 정말 귀찮다...

2024-10-24 22:22:5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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