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일상

츤츤데레데레나타데레 2017-03-27 2

흑막이었던 데이비드의 최후 이후 검은양과 늑대개 팀은 통합되고 관리요원 김유식의 자비로 몇 일간의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기는 미스틸과 옆에서 같은 컵 다른 내용물을 즐기는 하피. 조용히 게임에 열중하는 세리. 강철의 일방적인 수다에 영혼없는 호응만 계속하는 강우. 노트북을 끌어안고 꾸준히 성장 보조제를 검색하고 있는 제이나. 한쪽 구석에서 시대착오적인 투구를 닦는 라오비아.

각자 나름의 평화를 즐기고 있는 이때 문 밖에서 배려없는 발소리가 울리고 쾅! 소리와 함께 방문이 거칠게 열였다.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문쪽에 집중되고──


"모두 주목! 통제불능의 치와와 나타샤님이 돌아왔다고!"


순식간에 대부분이 흥미를 잃고 각자의 일로 돌아갔지만 강철만은 화색하며 나타샤를 맞아주었다. 동시에 해방된 강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멀찍이 자리를 옮겨앉았다.


"사부 어서와! 소혁이 형하고는 잘 만나고 왔어?"

"너, 너 그걸 어떻게?! 아니 이 나타샤님은 아침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누가 그런 놈 만나러 갈 거 같아?"

"응? 근데 옷에 검게 얼룩졌는데 그거 간장아니야?"

"......"


강철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시선으로 따라간 나타샤는 자신의 목둘레에 묻은 검은 얼룩을 발견했고 수치심과 분노에 이를 악물며 몸을 떨었다.


"소혁 그 놈..... 입가에 묻은 건 닦아줬으면서 여기 묻은 건 왜 한 마디도 안 한 거야!!"


나타샤의 목소리가 방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림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됬다. 미스틸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고 하피는 휘파람을 불었으며 제이나는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어린 놈들이....."


세리는 짧은 조소만을 남기고 다시 게임기에 시선을 고정시켰고 강우는 짧게 감탄 마지막으로 강철은 소리내어 환호했다.


"사부하고 소혁이 형, 벌써 그런 관계였어?"

"으, 으으으....."


자기 스스로 자신을 궁지에 몰았다는 것을 깨달은 나타샤는 얼굴을 새빨갛게 하며 뒷걸음질 쳤다.


"몰라! 다들 닥치라고!! 말 걸지 마!!"


그리곤 갑자기 소리를 빽지르며 등을 돌렸다.


"마음에 둔 여자의 동정은 남자에게 있어선 최대의 굴욕!"

"뭐라는 거야 이 근육돼지는!!"


어느세 손질하던 투구를 뒤짚어쓴채 소리도 없이 자신의 뒤를 잡은 라오비아를 보며 나타샤는 신경질적으로 발을 굴렀다.


"지금 이 권왕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건가?"


손가락 끝에서 빔이라도 쏘아낼 기세로 자신을 가리키며 강렬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라오비아를 보며 나타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곧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등에 맨 쿠크리를 꺼내들었다.


"좋아 덤비라고! 너 따위가 통제불능의 치와와님의 상대가 될 것 같아!"

"흠, 나는 권왕! 권왕은 결코 무릎따윌 꿇지 않는다!"

"함의 훈련실로 따라와! 지금 당장!!"


방금 전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던 소녀는 온데간데 없고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투쟁심에 불타오르는 한 명의 전사였다. 그렇게 순식간에 불 붙어버린 둘이 방을 떠나고 잠시 흥미깊게 지켜보던 방안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일로 돌아갔다. 


"저건 라오비아 나름의 배려일까요?"


컵에든 액체를 홀짝이던 하피가 시선을 돌리지 않고 홀로 중얼거렸다.


"음, 그럴지도 모르겠네."


누군가를 향한 물음은 아니었지만 미스틸은 천천히 티컵을 테이블에 내리며 하피의 물음에 답했다. 그 이후 희미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하피와 마찬가지로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통제불명의 치와와..... 마음에 든 것 같네."

"후후, 칭찬이라고 알고 있는 거겠죠."


마찬가지로 미소지은 하피는 컵의 액체로 다시 한 번 목을 축였다.


"이런 조용하고 잔잔한 일상.... 가끔은 나쁘지 않네요."

"그렇지? 저 아이들도 나름 즐기고 있는 것 같고."

"아버지.... 아니 어머니의 마음씨일까요? 꽤나 인자한 표정을 하고 계시네요, 미스틸 씨. 하지만 슬슬 당신도 나이에 맞게 즐기셔야하지 않으시겠어요?"

"성희롱이라면 사양할게."


눈웃음과 함께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미스틸의 시선을 피하며 하피는 실없는 웃음만 계속했다.


"이거 실례했네요. 정말 신경쓰지 않으면 계속 잊어버리니..... 머리를 기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충분히 미인이실 것 같은데."


하피의 말을 듣고 자신의 짧은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는 미스틸은 조금 고민하고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곧 고민을 떨쳐낸 듯이 어딘가 후련해보이는 미소와 함께 하피에게 답했다.


"역시 됐어. 아직 나에겐 클로저로써의 일이 더 중요하니까 말이야. 긴 머리는 임무수행에 방해될 뿐이야."

"완고하신 분이네요."


하피는 짧은 감상을 말하고─

그 후 미스틸에게도 들리지 않을 목소리로 작게 덛붙였다.


"그런 점도 나쁘진 않네요."





"....."


게임에 열중하는 세리의 뒤에서 강우는 안절부절 못한채 제자리에서 마른침만 계속해서 삼키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것은 화면이요, 검은 것은 게임인데 아무리 봐도 그 이상 세리의 관심사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불과 몇 일 전까지 계속됬던 전투였다. 스트레스는 해소되지 않고 계속 쌓이기만 했던 터라 별 것 아닌 이유로 말다툼도 많이 했으니 길지 않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지금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보고 싶은 것이 강우의 바램이었다. 하지만 세리의 관심사에 대해 아니 세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하는 강우는 도저히 말을 붙을 엄두를 내지 못했고 약 5분 전부터 제자리에 선 채로 고민과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여어! 강우야 뭐 보는 거야? 세리?"

"우아아아악?!


세리에게 다 들릴정도로 크게 폭탄발언을 하며 어깨동무를 하는 강철의 탓에 소스라치게 놀란 강우는 결국 꼴사납게 비명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강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상체를 숙이며 세리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세리야, 무슨 게임하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붙이는 강철을 바라보며 강우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동시에 가까워진 세리와의 거리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했다.


"이거? 그냥 평범한 RPG인데."

"알피지? 미사일 날라가는 그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전혀 엉뚱한 것을 말하는 강철에게 고개를 돌리며 세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자신을 멀뚱멀뚱 바라보는 세리를 뚫어져라 쳐다본 강철은 얼마가지 않아 얼굴을 붉히고 눈을 굴리며 시선을 피하는 세리를 향해 외쳤다.


"으으, 역시 귀여워! 세리야 우리 사귀자!!"

"뭐어?!"


갑작스러운 강철의 고백에 놀란 것은 세리가 아니라 오히려 강우였다. 마치 혼이 빠진 듯 자리에 무너저내리는 강우를 보며 강철은 짓궂게 웃으며 세리의 답을 기다렸다.


"바보같은 소리하지 마. 최근에 뜸하다 했더니만..... 너 그 말만 벌써 몇 십 번째잖아."


몇 십 번째라는 말에 강우는 다시 한 번 머리 위로 수 톤의 추가 떨어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끼며 자리에 쓰러져버렸다. 하지만 세리는 침착하게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곤 저리 가라는 듯 강철에게 손짓했다.


"장난치지 말고 저리 가. 난 연애에는 관심없어."

"또, 또 그 소리한다! 그런 꽃다운 나이에 연애 한 번 안해본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내 마음이야.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저기 가서 라오비아하고 놀라고."


얼른 사라지라는 듯 손을 휘젓는 세리를 보며  강철은 아쉬워하며 등을 돌렸다.


"으으, 매정하구만. 하지만 난 언제든지 열려있으니 마음 바뀌면 언제나 말해달라고!"

  

물론 마지막에 자신의 친구를 위해 한 마디를 덛붙이는 것은 잊지 않았다.


"아참! 강우는 게임에 관심있는 것 같던데?"

"어? 어!"


예상치 못한 강철의 말에 얼빠진 표정을 하는 강우였지만 곧 정신차리며 크게 대답하곤 몸을 일으켜 세리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 저기 있는 애들 스케빈저하고 닮지 않았어?"


수십 분 같이 느껴지는 수 초 동안 머리가 터져라 고민한 강우는 결국 게임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해내고 화색하며 외쳤다.


"응, 그래서 이 게임 이름이 클로저스야."

"클로저스? 설마 우리들 이야기야?"

"정확힌 차원전쟁 때 이야기를 멋대로 각색해서 내놓은 게임이지."

"아, 그렇구나.... 시, 신기하네......"


그 짧은 대화가 끝나고 강우는 다시 진땀을 빼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화재는 방금 대답으로 그 생명을 다해버렸다. 이제 무엇으로 세리와의 대답을 이어나가면 좋단 말인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강우는 용기를 내어 강철이 던진 화재를 잇기로 결심했다.


"세, 세리야. 연애에 관심이 없다는 거 진짜야?"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세리의 손이 그대로 굳어서 자신의 캐릭터가 죽어감에도 불구하고 방향키 한 번 누르지 못했다. 그리곤 고개를 푹 숙여 자신의 양팔 안쪽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세, 세리야....?"

".....니"

"응?"


무언가 작은 목소리가 들린 듯 했지만 제대로 듣지 못했던 강우는 세리에게 되물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강우는 자신이 실례되는 것을 물은 것이라 자책하며 사과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제이나는 노트북을 덮고 강우를 대신해 세리의 옆으로 향했다.


"우으으으으으....."


특유의 작은 키를 이용해 고개를 숙인채 신음하고 있는 세리의 얼굴을 확인한 제이나는 팔을 안쪽으로 넣어 세리의 이마를 짚었다.


"동생 열 나?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누누히 말하잖아. 이렇게 오랜시간 게임만 하는 건 좋지 않다고. 가끔은 밖에 나가서 놀고 그래야지. 예를 들면 강우라던...."

"아줌마 정말!!"


제이나의 말을 끊으며 고개를 든 세리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제이나는 푹, 깊은 한숨만 내쉴뿐 별다른 화는 내지 않은 채 답했다.


"너희 둘을 보니까 내가 답답해져서 그래. 것보다 언니라고 불러라."

"으윽...... 아, 몰라요!"


진지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제이나를 견디지 못한 세리는 결국 게임기를 챙겨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곤 뒤도 돌아** 않고 성큼성큼 방을 가로질러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아아......"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남자가 한 명.


"역시 내가 괜한 걸 물은 걸까? 으으..... 바보같이 진짜."


애꿎은 테이블만 주먹으로 내리치며 강우는 자책을 계속했다. 매번 속으로만 생각하고 정작 중요할 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세리가 단단히 화난 것은 아닐까. 이제부터 자신을 모르는 척 하진 않을까. 그런 쓸모없는 상념에 사로잡히며 강우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푸흐흐..... 흐하하하하....."


그리고 엇갈리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강철은 홀로 폭소를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음? 세리가 아닌가."


훈련실에서 돌아오던 길에 라오비아는 자신의 친우 이세리를 바라보며 인사를 건냈다.


"으응....."


힘없이 라오비아의 인사를 받은 세리는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아니 정확힌 도중에 어깨에 매달린 푸른 무언가에 시선이 쏠렸다.


"나타샤?"

"음, 30분 전까지 분명 그러한 이름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단순한 패배자일 뿐이다."


라오비아의 말을 듣고 대강의 상황을 짐작한 세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나타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왜 방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이지?"

"아니 생각할게 있어서..... 라오비아는 먼저 들어가. 나타샤도."


누가봐도 명백히 문제가 있어보이는 세리의 모습에 라오비아는 가만히 자리에 멈춰서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곤 "알았다."라고 짧게 답하며 등을 돌렸다.


"강해져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그런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라오비아는 멀뚱멀뚱 자신의 등을 바라보는 세리를 뒤로 했다. 성큼성큼 발을 내딛을때마다 마치 송장 같은 푸른 무언가가 그에 맞춰 흔들렸다.


한적한 복도에 다시 홀로 남게 된 세리는 벽에 댄 등을 미끄러뜨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방과 다르게 난방이 돌지 않는 복도의 바닥은 차가웠다.

손에 쥐고 있던 게임기를 옆쪽에 내려놓고 무릎을 세워 감싸앉았다.


"강해져라..... 인가."


라오비아의 말을 곱씹어보고, 실없이 웃으며──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


그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세리는 고개를 떨구며 생각에 잠겼다. 가슴 한 켠이 신경에 거슬리게 조여오고 있었다.

2024-10-24 23:14:4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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