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세하] 좀 더 자신을 사랑해주세요

루이벨라 2017-03-25 4

 처음 이야기를 들은 것은 상황이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는 공항에서였다.


 앞으로의 공동 전선을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알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얻게 된 자료 안에서였다.


 이세하. 이름 옆에 자그만 특이사항 란에 '알파퀸 서지수의 아들'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렇구나, 이 아이가 그 알파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구나.


 알파퀸의 명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모범생이 아니었고, 아카데미에 있던 기간도 짧기는 했지만 그 안에 들은 알파퀸의 명성에 대해서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 대단해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도 있고, 너무도 질리게 들었던 것도 있었다.


 실제로 만나본 이세하 군에 대해서...짤막하게 표현하자면 평범했다. 오히려 본인은 그 '평범함' 을 동경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는 한에서는 이세하 군은 평범했다. 강한 위상 잠재력이 있고, 그로 인해 어려서부터 여러 일을 겪었다는 점에서 비추어보면 본인이 '평범하다' 라는 것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을 거 같지만...내가 보기에는 평범해보였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장난을 치고, 같이 웃고 싶어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몇번 정도 말을 나눈 이세하 군은...위태로워보였다.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자신이 언제 표출될지 모를...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걸 대부분 이세하 군을 보는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가며 날 함부로 했던 나에게는 확실히 보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예전의 나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며, 타인을 더 사랑하라고 세뇌를 받으며 살아온 나는 그 삶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 좀 더 나를 아꼈더라면, 적어도 조금이라도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살았더라면 이렇게 괴롭지 않았을텐데...


 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이세하 군도 그럴 것이다.


 그걸 이세하 군 자신은 모른다. 하긴, 나도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한참 늦은 때였다.


 좀 더, 좀 더 자신을 아껴주면 좋을텐데. 저 소년은 그 사실도 모른다.




* * *




 "...세하 군."

 "무슨 일이시죠, 하피 씨?"


 소년은 지금 한창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에 열중 중이었다. 대꾸하는 목소리에서는 풀이 잔뜩 죽은 것이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뉴욕에서 터진 사태. 그리고 거기서 밝혀지게 된 유니온의 추악한 진실. 그 비밀은 알파퀸과 관련된 진실이었다. 우리 모두는 그 진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침착하게 있었다.


 침착하게...아니, 침착해 보이는 건 겉모습일 뿐. 난 보았다. 이세하 군의 두 손이 분노로 떨리고 있는 것을. 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했다. 익숙해서, 그 익숙함을 이용해 자기 자신의 감정도 속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가장 피해를 보는 게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는 걸 모르는 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와버렸다.


 "누군가의 품에 한번 안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요?"

 "무슨...하, 하피 씨?!"


 갑작스러운 백허그에 소년은 엄청나게 당황한 제스처를 취했다. 잔뜩 움츠려있는 등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세하 군..."

 "..."

 "정말 괜찮나요?"

 "네, 괜찮아요."


 괜찮긴. 완전 지목당해서 국어 교과서 지문을 읽는 느낌의 톤이잖아요. 그것도 아주 즉각적으로 나오는 이 반응. 마치 자신은 정말 괜찮다라는 걸 표현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러는 게, 더 안 괜찮아 보인다는 걸.


 "안 괜찮잖아요."

 "..."

 "세하 군은, 되도록 거짓말을 안 하는게 좋겠어요."

 "거, 거짓말이라뇨?"


 그렇게 말 더듬는 걸로 봐서는 자각 못하고 있지는 않는 모양이네요.


 "힘들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한두번도 아닌데요."

 "자기 자신을 속일수록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자기 자신이에요. 더 아파하고, 더 고통스러워지는 거죠."

 "..."


 그리고 관찰하면서 한가지 더 알게 된 점. 이세하 군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인해 나온 것이었다. 넌 그것밖에 안돼? 라는.


 그게 더 안 좋은데 말이에요.


 "세하 군은 지금도 충분히 잘 자라고 있어요."

 "...그 말...최서희 씨에게도 들은 적이 있어요..."

 "좀 더, 자신에게 자신을 가지는 게 어떨까요?"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질지도 몰라. 언제 일어설 수 있을지도 몰라.


 "익숙해지겠지...하지만 결국은 익숙해지지 않아요. 감각이 무뎌질 뿐, 상처를 받는 강도는 똑같아요. 아니, 더 강해진다고 해야할까요."

 "..."

 "그러니, 좀 더, 조금만 더..."


 소년을 안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실었다.


 "조금만 더...자신을 사랑해주세요."


 많이도 아니에요. 아주 조금만...조금만이라도. 적어도 내가 이세하 군을 좋아하는 만큼이라도.


 이세하 군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손의 온기는 따뜻했다. 그리고...


 "...고마워요, 하피 씨."


 ...그 손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긍정적인 의미로 떨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아니, 확실했다.


 "노력할게요..."


 살풋,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이렇게...안고 있어줘야겠구나.






※ 지인분 생일선물로 드린 짧막한 글, 공홈에는 안 올렸기에 올려봅니다.

2024-10-24 23:14:3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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