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 리프(Riff)

루이벨라 2017-02-26 14

※ 어느 글존잘님과 같이 단편 내기한 글로, 투표 기간이 끝나서 따로 올려봅니다.

※ 주제는 '세하의 꿈' 입니다.(정확히는 과거의 자신을 만나는 세하의 꿈입니다.)

※ 유니온 임시 본부 챕터1 중반부가 배경입니다.

※ 캐릭터 성격 및 대사의 날조가 있습니다!

※ 조금 다크다크하니 이런 분위기를 싫어하시는 분들은 뒤로 가기를 꼭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리프 (riff) [리프]                                        

[명사] < 음악> 두 소절 또는 네 소절의 짧은 구절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는 재즈 연주법. 또는 그렇게 되풀이하는 멜로디.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꿈을 꾸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목을 그러쥘 때의 상대방의 핏줄이 뛰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내게 목을 졸리고 있는 사람은, 반항은커녕 움직임조차 없다.

 

 그런데 내가, 왜 졸리고 있는 사람처럼 숨이 갑갑할까. 가슴은 100m를 전력질주 한 것처럼 뛰는 걸까.

     

 누군가의 목을 조르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내가 목을 조르고 있던 자리는...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다.

 

 

 

* * *

 

 

     

 무언가가 타는 냄새는 언제 맡아도 역하다. 지쳐버렸는지 몸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쉬기로 하며, 한때는 뉴욕의 명소라고 불렸을 번화가 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철 등이 타는 냄새, 피어오르는 연기, 여기저기 망가진 건물과 자동차, 도저히 뉴욕의 유명한 번화가였다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지금 내가 주저앉아 있는 곳도 내가 처리한 안드로이드 위였다. 거리 정리를 위해 몰려있던 안드로이드를 몇 번이나 베었을까. 수도 없이 베었고, 심지어 태우기 까지 했더랬다.

 

 "...!"

 

 따로 가져온 물병에 든 물을 마시는데 몸이 너무 지쳐버렸는지 목구멍 뒤로 넘기기 힘들다. 억지로라도 삼키려고 하는데 몸에서 거부 반응부터 보인다. 겨우겨우 몇 모금 마시고서 잠시 한숨을 골랐다. 몇 시간동안 타는 냄새를 맡아서인지 아직도 타는 냄새가 계속 따라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

 

 지금까지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 같은 일들을 수없이 겪어보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힘들었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조용히 눈을 감으니 과거에 들었던 몇몇 말들이, 내 주위를 맴돈다.

 

 -알파퀸, 서지수의 뇌 말이다.

 -네가 믿고 의지하는 유니온이 그런 더러운 짓을 했는데도, 너는 정녕 유니온을 위해 너의 힘을 쓰겠다는 건가?

 

 이 말을 나한테 하던 자는 조롱이 한껏 담긴 미소를 지어보였다.

 

 -세하야, 진정해!

 -이번 사태가 끝나면 이 일에 대한 책임자를 찾아내겠어...!

 

 이 말을 나한테 걸었던 자는, 날 진정시키기에 급급했다.

 

 “진정하라고...? 웃기고 있네...”

 

 이리나로부터 그 말을 들었을 때...엄마가 떠올랐다. 늘 밖에 나가고 싶어 하는 엄마. 하지만 유니온의 감시로 인해 마음대로 외출도 못하는, 심지어 5분 거리의 편의점을 가더라도 늘 감시가 붙어 다녔다. 엄마는 내 앞에서 늘 활기찬 듯 웃고 계셨지만, 난 알았다. 엄마는...억지로 참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그건 어쩌면 때문일 수도 있다고.

 

 -어차피 난 클로저 따위 되고 싶지 않았다고요!

 -그럴 바에는 클로저를 관두는 게 나아요!

 

 “...”

 

 입술을 나도 모르게 세게 깨물었다. 그 때의 분노를 지금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리며 당장이라도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시고 있던 물병을 반대쪽으로 던져버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무슨 짓이라도 안 하면 감정이 폭발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심장은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분노하듯이 계속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책임자를 당장 불러오라는 말을 했을 때 나는 숨이 가빠졌다. 내가 나의 감정에 이끌리는 상황은...무척 오랜만이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나쁘게만 적용된다는 걸 깨달은 이유로 늘 감정을 억제해왔다. 그리고 그 직후 내가 꺼낸 무시무시한 한 마디.

 

 -내가 직접...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까...!

 

 내가 내 입으로 직접 꺼낸 말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한 말인 마냥 이질감이 들었다. 그 이질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내 안에 있던 악마가 나한테 내리는 하나의 계시와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가를 치르게 하라, 대가를 치르게 하라, 대가를...!

 

 “...복귀나 하자.”

 

 억지로 생각을 다른 곳으로 전환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는 모르지만 사람의 어깨에는 한쪽에는 늘 옳은 길만 알려주는 거인과, 그 반대쪽에는 늘 나쁜 길로 가게 하려고 꼬드기는 난쟁이가 싸우고 있다, 라고. 지금의 나한테는 그 난쟁이의 목소리만 들리나보다. 아니, 난쟁이보다는 악마라고 해야 할까...?

 

 마음이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 있던 건블레이드를 집어서 일어났다. 임시 본부 천막으로 복귀를 하려고 발걸음을 한걸음 내밀었다. 내딛는 순간...

 

 “...?”

 

 휘청- 내 몸이 휘청거렸다. , 요새 너무 무리를 했나...하지만 이렇게 무리를 하지 않으면, 잠시라도 쉬고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내가 무슨 일을 벌일지 두려워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눈앞이 흐려진다. , 설마 나 이대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건가...잠도 그 이후로 제대로 자 본 적이 없다. 꿈속에서라도 그 악마가 속삭인 대로 내가 행하는 걸 볼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정신을 잃는다면 십중팔구 잠이 들 게 분명했다. 그리고 잠을 자면...꿈을 꿀 것이다.

 

 그러니까...정신을 잃으면...안 되는데...

 

 안...되는데...

 

 ...

 

 

 

* * *

 

 

 

 저녁노을이 눈앞에 보였다. 난 방금 전 쓰러졌을 텐데 멀쩡하게 서 있는 날 보며 이게 꿈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분명 손에 쥔 채로 쓰러졌을 건블레이드도 지금의 나는 들고 있지 않았다. 꿈이었다, 100%.

 

 저녁노을...그렇게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다. 항상 저녁노을을 볼 때마다 쓸쓸한 기분이 몰려온다. 특히 지금 내가 이곳에 서 있는 놀이터에서의 저녁노을이면 더더욱 그러했다.

 

 놀이터, 저녁노을. 이 두 단어의 조합이 나의 눈을 저절로 찌푸리게 했다. 어렸을 때 가끔씩 혼자 놀이터에 가곤 했다. 집에만 있는 엄마에게 나가자며 투정을 부려도 엄마는 항상 집에만 있었기에, 나 혼자라도 놀이터에 가야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끔 나갔다 왔다. 어쩌면 그 때부터 유니온의 감시가 붙어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놀이터에 가면 항상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같이 놀자고 다가가도 아이들은 언제나 내 눈이 이상하다며 피해 다녔다. 먼저 다가오는 아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 아이들의 엄마의 손에 그 아이들은 끌려가, 난 또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랑 절대 놀아서는 안 된다고 당부를 하며 나를 쳐다보는 그 경멸 어린 표정과 말투.

 

 -저 아이는 괴물이야.

 

라고. 괴물...? 어린 마음에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단어였다. 놀이터에 나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난 점점 고립이 되어갔다. 아이들이 저녁을 먹기 위해 가는, 저녁노을이 질 때에서야 나는 겨우 놀이터 안에서 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이들이 가면 난 미끄럼틀이며, 그네며, 모래사장 같은 곳으로 가 나 혼자 놀고는 했다.

 

 결코...좋은 추억은 아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어디서 들리는 낭랑한 곡조 한 가닥. 한 아이가 저녁노을을 등진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었다. 새카만 머리, 아마도 저 머리는 아이 엄마가 억지로 염색해 준거겠지...그리고 영롱한 금색의 눈동자를 가진, 그 아이는...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는지 내 쪽을 빤히 보며 물었다. 보석 같이 예쁘다고 느껴지는 금안에는 두려움이 담겨져 있었다.

 

 “-...형은 누구야?”

 

 ...나였다. 10여 년 전의 나, 이세하였다. 아이들이랑 그 부모에게 괴물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음에도 그저 어울리고 싶었기에, 그렇기에 많은 상처만 받은 그 시절의 나였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아이는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라는 걸 모르는 듯 했다. 아이는 날 찬찬히 뜯어보았다.

 

 “-형 눈도...금색이네?”

 

 이렇게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작은 환희가 담겨져 있는 게 느껴졌다. 아이가 지금 얼마나 기쁜지는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알고 있었다. 잘 알고 있기에...

 

 “-...?!”

 “...”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서 자신을 넘어뜨리면 누구나 다 당황스럽겠지. 게다가 그 사람이...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다면 더더욱.

 

 “...”

 “-...”

 

 떨린다. 손이 벌벌 떨렸다. 왜지...?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싶다는 꿈, 꾸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데. 하물며 그 대상이 어린 시절의 나라니.

 

 “...”

 “-...”

 “...”

 “-......?”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날 **도 말라고. 울고 싶었다. 아니, 이미 울고 있는 거 같았다. 아이의 뺨으로 눈물 몇 방울이 툭툭 떨어지고 있는 걸 보면.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 꿈이 분명할 텐데도 목 아래에서 뛰고 있는 상대편의 맥박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체온도, 현실인 것 마냥 따스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선명한 꿈이었다.

 

 아이가 자신의 목을 조르고 있는 나의 손을 꼭 잡았다. 아이는...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 어디 아파...? 울고 있어...”

 

 아니, 안 아파. 아니...아프던가? 잘 모르겠다. 그저 난 지금 내 상황이...너무도 참을 수 없었고, 그리고 이 아이가 나와 똑같은 걸 겪게 된다는 것이 더욱더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받고 있을 그런 일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일들이 이 아이 앞에는 기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그걸 이미 다 겪고 지금 이 자리까지 왔기 때문이다.

 

 “...많이 힘들지?”

 “-...”

 “많이 아프지...?”

 “-...”

 

 아이의 금안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보였다. 말은 안 하지만 내 말에 작은 긍정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프겠지. 그리고 또 많이 힘들겠지. 앞으로는 그래도 괜찮아지겠지, 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는 있겠지만...그런 일 따위는 안 일어날 거야. 내가 다 겪어보았으니까. ‘희망이나 기대를 가지면 더더욱 상처받기 쉽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걸 이 아이가 겪어**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져 왔다. 아이의 목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실었다.

 

 “앞으로는 더 힘든 일이 일어날 거야...네가 바라는 것들은...”

 

 ...이루어지지 않아. 이 뒷말은 차마 잇지 못했다.

 

 “그러니...”

 “-...”

 “여기서...”

 

 그만두는 게 어때...? 난 그만두고 싶어. 여기서 멈추면 이제 모든 게 편안해지지 않을까?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아이의 표정은 애처로웠다. 이때까지 참고 있던 모든 것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표정이었다. 젠가는 커다란 움직임이 아닌 미세한 움직임으로도 잘 무너지는 법이었다. 그것이 현재의 나였고, 그게 미래의 너겠지. 그리고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던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위치 정도가 바뀌어있다는 거.

 

 

 

-이루어지지 않아. 그러니,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아...

 

 

 

 희미하게 남아있던 기억의 한 순간이 떠올랐다. 떨리는 입술을 움직이며 나한테 그 말을 했던 사람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은 분명 울고 있었던 거 같았다. 지금의 내가 의 목을 조르며 오열하고 있는 것처럼.

 

 아, 그렇구나, 이것은...환상이나 꿈 따위가 아니었던 거구나...그렇다면 정말로 여기서 그만두게 할 수 있었다. 아이의 안색이 새파래지기 시작한다. - 아이의 눈에서도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진다. 아아, 그래...

 

 ...이제 모든 게 멈춰지는 시간이구나. 너도, 나도. 이세하라는 사람의 시곗바늘은 이제 멈춰질 시간이었다.

 

 “......!”

 “...?”

 “...세하야...!”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울림의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를 가진 자가 누구인지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나의 심정,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던 자의 목소리였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멈추어버리면...나와 이 아이는...

 

 “...”

 “-...”

 

 천천히 목을 감싸고 있던 손을 풀었다. 손을 풀자마자 아이는 연신 괴롭게 콜록거렸다. 그 모습을 무심히 보며 생각했다. 아아...결국 해내지 못했다. 마침표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내 귀에서 아까부터 자꾸 내 이름을 부르던 - 세하야...!” - 노이즈가 점차 커지고 있었다. 아이가 나한테 뭐라고 중얼거리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릴 정도였다. 그래서 깨달았다.

 

 ...이제, 이 지독한 도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 * *

 

 

 

 “세하야...!”

 “...”

 

 돌아오고 말았다. 의식을 차린 순간, 지금 내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작게 오열했다. 오른팔을 들어 눈 위에 올렸다. 우는 거...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대충 들어보니 내가 누적된 피곤으로 작전 지역에 쓰러져있는 것을 나타와 하피 씨가 발견해서 여기 의무실로 데리고 왔다고 하는 거 같았다. 당분간은 조금 쉬라는 유정 누나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지금의 내 모습이 꼭 울고 있는 모습 같다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그냥...”

 

 대답을 하는 내 목소리는 마치 내가 목이 졸린 사람처럼 꺼칠하게 나왔다. 감고 있는 눈꺼풀 뒤로 혼자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거 같았다.

 

 “...슬픈 꿈을 꾼 것뿐이에요.”

 

 이제는 더 이상 꿀 수 없을 거 같이 달콤하면서도 슬픈 꿈을 말이에요.






[작가의 말]


http://cafe.naver.com/closersunion/227131


네, 많이 다크다크한 편입니다.

'꿈' 이라고는 표현했지만 세하는 실제로 과거를 잠시 다녀와서 어렸을 때의 자신을 만나는 거죠.

이번 임시 본부 챕터1에서의 세하의 절규를 보고 한번은 써야겠다고 느낀 세하의 심정, 마음을 써봤는데 아직은 많이 미숙한 거 같습니다.

끝으로, 저와 같이 단편 내기를 기꺼이 해주신 존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올립니다.


2024-10-24 23:14:1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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