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필연 - 10
비랄 2017-02-1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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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니온 대책 본부에선 한창 만찬이 벌이지고 있다.
주역 매뉴는 마도 세계의 용의 고기를 기계 제국의 배합 향신료로 양념해 만든 오븐 구이. 국물 요리로는 마도의 본 슬라임의 뼈와 이곳의 야채로 우려 만든 스프. 샐러드 역시 이곳의 야채를 내 특제 드레싱에 버무렸다. 비록 빵같은 탄수화물은 원래 먹던 것으로만 준비할 수 밖에 없었지만 평소에 그들이 먹던 밋밋하고 맛없던 인스턴트와 비교하면 신의 만찬과도 같으리라.
참고로 나는 그 만찬에 참여하지 않고 누워있다. 한계 상태에서 다루기 무척이나 까다로운 재료들로 요리를 했더니 지치기는 엄청 지치고, 아주 오랜만에 열과 성을 다했더니 이젠 머리가 새하얗다.
'내가 뭐 하려고... 아.. 나는 대체..?'
아예 하얗게 되는 것을 넘어서 무의 저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할 때.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재주도 좋은 이 머리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돌아왔냐. 너희 몪은 저기 있으니까 가서 먹어. 내 특제라고?"
그들을 보거나 별 다른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힘을 실어서 날린 목소리는 그 자체가 완벽한 의사 전달 수단이다. 이를 듣고는 환호성과 함깨 달려가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에 반해서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도 느껴졌다. 이거 아무래도 무슨 할 이야기라도 있는 모양이다.
"노운 씨. 잠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지 이슬비 양? 그리 귀찮은 일이 아니기를 바라지."
"죄송하지만 그런 일이에요. 지금 이곳 상황이 매우 심각해요. 저희는 조금이라도 많은 힘이 필요하죠. 정말로 우릴 도와주실 생각이 없으신가요?"
"…갑자기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내가 전에 있던 세계엔 전쟁이 있었어. 별이 사라지고, 빛이 사라지고, 어둠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전쟁이 말이야."
문명이 발달하면 그에 따라서 부작용이 생긴다. 그리고 가장 흔한 부작용 중에 하나가 전쟁이다.
문명을 발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힘의 결집이다. 힘이 있다는 것은 갈등으로 인한 싸움이 있다는 것. 그리고 전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쟁없이 영원히 문명의 형태를 간직하며 번영하던 곳은 지금의 내가 알기로는 마도 세계와 기계 제국이 물질계에선 유일하다.
게다가 저 두 세계마저도 압도적인 힘을 통해서 그런 번영을 누린 것이다. 이것이 단순한 물질계의 법칙이자 약육강식의 섭리. 이들이 말하는 3차원 세상의 규칙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섭리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재미를 보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애시당초 너무 흔하게 봐서 그런지 지루하기 짝이 없으니까.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곳이 없었어. 이제 전쟁은 나한테 귀찮은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 나를 끌어들이지 말아줘. 귀찮음을 넘어서 진절머리가 나기는 싫거든."
이슬비에겐 말을 통해서 내가 본 전쟁의 느낌만 조금 알게 만들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얼굴은 이해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 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단하다. 설령 아주 약간이라도 그것을 느끼고 정신을 유지하는 그녀는 칭찬받아 마땅하리라.
"…하나만 더 물을 수 있나요? 노운 씨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피를 보셨나요?"
내가 전쟁을 방관한 것을 따지는 태도는 아니다. 이 질문은 내가 생명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런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순수함에 대답해주자.
"나는 모든 피를 보고, 알고 있어."
"…무슨 뜻이죠?"
"알아서 생각해. 그게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전부니까."
내 대답을 듣고는 무언가 생각하는 슬비를 보자마자 나는 자리를 떳다. 고민에 빠져서 던지는 질문을 계속 받는 것은 사양이다. 그리고 복잡하게 만드는 것도 사양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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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제국과 마도 세계.
마도 세계는 무한한 세계에서 만발하는 생명들이 모이고 이윽고 규합되는 형태를 가진 곳이다. 원래라면 영원하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멸의 길을 걷게될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모든 것의 융화와 규합이 영원하고 평화롭게 지속되는 것이 그 형태를 만든 자들의 소망이었다.
그 소망이 수 많은 자들에 의해서 영원히 규합되어 지속되는 이상이자 현실이 마도 세계였다. 각자 선악이 뭉쳐있고 탐욕스런 그들이 이상을 위해서 있을 수 없는 규합을 이루어낸 곳이나 다름 없었다.
그에 반해서 기계 제국은 단 하나의 절대적인 것이 군림하고, 다른 것은 전부 부속에 지나지 않는 세상이다. 지금 내가 그곳을 세계가 아니라 제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부속들은 모순적일 정도로 자유로웠다.
자유를 완벽히 이해하는 그들은 스스로를 통제했다. 자유를 가지면서도 어리석게 파멸하고 멈추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단지 그런 것이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그들이 말하던 훌륭한 자유가 세상 전체에 펼쳐나갔을 뿐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존재에게 그 모든게 속했을 뿐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도는 복수가 이루어낸 모순의 위업. 제국은 단일이 이루어낸 모순의 위업이다.
하지만 나는 저 모순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단지 설명하지 못한다. 모순이 현실이란 것은 나와 같은 것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저 두 세계를 즐긴다.
존재로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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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
모순들을 생각하니 잡념이 머리를 물들인다. 그것들은 정말이지 설명하기 애매하다. 그렇기에 지금의 내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의미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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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세계에도 노운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