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16. 추적 시작 -

Articulus 2016-11-21 3


국제공항부터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국제공항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16-1

  이슬비가 특수요원 승급심사에 합격한 시간은 오후 3시 32분.
  그녀가 진급하였다는 소식은 유니온 통신망을 통하여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그녀의 지인들은 멀리에서 그녀에게 축하를 전하는 메시지들을 보냈다. 승급심사 소식을 들은 송은이 경정은 멀리 국제공항에서 신서울까지 다시 찾아와 채민우 경정과 함께 그녀를 찾았고, 심지어 저녁까지 자신이 쏘겠다고 하여 당시 그곳에 있던 모든 이들이 강남의 어느 한우고기집으로 몰려가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클로저들이 엄청나게 먹어대는지라 - 특히 서유리의 활약이 대단하였다 - 만만치 않게 돈이 나왔는지, 계산을 할 때에 그녀의 표정이 싸늘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 역시 만만치않게 먹었을테니, 그다지 불만족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뒷풀이까지 끝내고 헤어진 저녁, 이슬비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꿈과 같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정말로 특수요원이 된 것이 맞은가 싶을 정도로, 평소와 다를바가 없다고도 느꼈다. 그렇기 때문일까, 약간 실망한 느낌도 없잖아 그녀에겐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다음날까지는 그러했다.

  공식적으로 이슬비가 특수요원으로 승급된 것이 유니온 총본부에 보고되고, 총본부로부터 임명장과 특수요원 신분증 등이 내려온 것은 하룻밤이 지나서였다. 꽤나 빠른 일처리 과정이었다.
  다음 날, 구로의 티아매트 대책실로 집결지로 출근하라는 명령에 따라 그녀가 출근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그곳에 그녀의 사이즈에 맞는 특수요원복과 신분증, 그리고 임명장 등이 도착해있었다. 공식적인 임명장 수여식을 위해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요원복을 갈아입어야 했고, 익숙한 정식요원복과는 작별을 고해야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기 위해 빈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상자를 열고 특수요원복을 처음 보았을 때 그녀에게 와닿은 색은 백색이었다. 흑색과 청색으로 이루어진 이전의 제복과는 다르게 백색의 자켓에 흑색의 상하의로 이루어진 디자인은 심플하면서도 이전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정식요원복의 청색과는 대조되는 적색의 넥타이가 그녀에게 지급되었다.


  백색과 흑색, 그리고 적색, 이 색의 조합을 그녀는 얼마 전 본 적이 있다. 백색의 머리, 그리고 흑색의 갑주, 그리고 목가를 뒤덮고 있는 적색의 털들, 너무나도 '그'가 가지고 있는 색과 일치하지 않는가?
  우연의 일치일까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물론 정말로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 힘을 얻은 이유가 궁극적으로는 그 남자를 위해서이기에, 저절로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그녀는 이 옷을 입고 그와 맞서게 될 것이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이 옷을 입고 네 앞에 섰을 때, 너는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
.
.

  "2020-1호. 특수요원 임명장. 유니온 신서울지부 이슬비 요원.
  귀하는 평소 직무에 투철한 정신을 가지고 임무에 임하였으며 … 또한 특수요원 승급심사에 통과하였기에, 위상능력자 관리조항 제3조제4항에 의거하여 … 귀하를 특수요원으로 임명합니다 …"

  임명장의 수여는 김유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신서울지부의 요원관리국 부국장이라는 높은 자리로 승급한 그녀이기에 임명장을 수여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이렇게 직접 수여를 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녀도 떨리는지 말이 고르게 이어지지 않았다.
  끝까지 내용을 다 읽은 그녀는 임명장을 눈 앞의 분홍색 머리의 소녀에게 건네주며,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새로운 신분증을 꺼내어 그녀의 자켓 왼쪽 가슴에 달아주었다. 이것으로 슬비는 완전히 특수요원이 된 것이다.

  비록 이곳에 있는 인원은 적었지만, 적은 인원이나마 모두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축하의 말을 건네며 박수를 쉼없이 쳐주었다. 이에 슬비는 연거푸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직접 찾아가 손을 맞잡아주며 답례했다. 그렇게 임명장 수여식은 끝이 났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위상력 리미터의 해제 과정이다. 이것은 국제공항에서 이 구로로 복귀한 정도연 박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유니온의 기술력은 세계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고, 특히 위상력에 관한 한 유니온의 기술력을 따라갈 국가, 기관은 없다고 한다. 위상력에 대한 깊은 연구 끝에 클로저들의 위상력을 일정 단계별로 나누어, 각 단계로 승급할 때에 그 구간에 잠재된 능력을 완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특수한 절차를 거친다고 한다.
  
  훈련생에서 수습요원으로 승급할 때 한 번, 그리고 수습요원에서 정식요원으로 승급할 때 한 번, 총 두 번의 리미터 해제를 받은 그녀이다. 이제 세 번째 리미터 해제가 그녀를 기다린다.
  리미터 해제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어떤 약물의 주입과 함께 몇 가지 위상력 테스트만 성공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수여식이 끝나자마자 그 일대에 도착한 유니온 소속의 어느 트레일러 안의 기계에 몸을 맡긴 그녀는 누워서 약물 투입을 받았다. 약물이 투입된 지 약 10분이 지나고, 왠지 그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뭔가 자신이 붕 뜬 느낌이 들면서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지러움이 느껴짐과 함께 식은 땀이 그녀의 이마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느낌을 눈치챈 정도연 박사는 그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좋아요. 위상력 리미터의 해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모양이군요. 먼저 위상력으로 여러 개의 단검을 소환한 후에, 그것들을 염동력을 사용해서 저 끝의 목표점에 꽂아보세요."

  그 지시에 따라 그녀는 정신이 혼란한 중에도 단검들을 5개 정도 소환하여 일제히 쏘았다. 목표점에 정확히 맞출 자신은 없었지만 그녀는 우선 감이 이끄는대로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는데, 다섯 개의 칼날이 일제히 한 가운데에 오각형의 모습을 이루듯 꽂혔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보고 정도연 박사는 무언가에 체크를 하더니 다음 지시를 내렸다.

  "좋아요. 그 다음은 염동력을 이용해서 이슬비 요원의 몸 주위로 전하들을 집중시켜 보세요."
  "그렇게 되면 이 기계들은 어쩌죠? 분명히 영향을 받을 텐데요?"
  "걱정하지 말아요. 이 기계들은 EMP 공격을 받아도 끄떡하지 않는 특수장비들이니까요."
 
  그녀의 말을 믿기로 하고, 그녀는 잠시 정신을 집중했다.
  염동력으로 어떤 물체가 아닌 전하를 집중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특히 자신의 몸 주위로 다수의 전하들을 모을 때에는 감전의 위험을 주의하기 위해 더욱 정신을 집중해야하는 것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듯이 그녀는 자신의 몸 주위를 전하들이 뒤덮는 것을 상상했고, 그대로 위상력을 발산하여 공기 중의 전하들을 일제히 그녀의 몸 일대로 끌어모은다.

  곧 지지직 하는 전류의 소리가 그녀의 귀로 들려온다. 그녀는 소리에 눈을 떴고, 눈 앞에 벌어진 놀라운 일을 보았다. 그녀의 일대로 마치 구형으로 전하들이 퍼져나가 온 몸을 감싸고 있었다. 상상한 대로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전하가 모일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였다.  
  전류의 벽 밖에서 정도연의 목소리가 곧 들려온다.

  "수고했어요. 이제 전하들을 일제히 한 곳에 쏘아보세요."
 
  지시대로 그녀는 염동력을 한 점으로 집중하였고, 그대로 그녀의 주위를 감싸던 전하들은 감히 범접할 수조차 없는 속도로 그 점을 향해 모여들었다. 마치 창을 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그녀는 염동력을 해제하여 전하들을 자유자재로 풀어놓았고, 전하들은 마치 번개처럼 곳곳으로 퍼져나가더니 곧 방전되어 사라졌다.
  그것을 본 정도연은 박수를 치며 그녀에게 말했다.

  "훌륭하네요. 두 가지만 더 시험해보죠.
  이슬비 요원, 이제 밖으로 나와보도록 해요."

  그녀의 말에 따라 그녀는 트레일러의 밖으로 나왔다.
  트레일러 밖은 드넓은 공터였다, 마치 일부러 이곳을 고른 듯 싶었다. 공터의 한 가운데에 선 이슬비에게 정도연은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이슬비 요원, 염동력을 사용해서 반경 9미터 이내의 돌덩이들을 모두 끌어오세요. 그리고 그걸 일제히 공중으로 날려버리세요."

  이 지시대로 그녀는 염동력을 일대로 뿌렸다.
  그 보이지 않는 인력의 힘은 그 일대의 모든 돌멩이들에게 벡터(vector)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수많은 방향성의 힘들이 집결하는 한 곳으로 돌멩이들이 일제히 모여들었고, 그것들은 이내 또 다시 설정된 집결점에 의해 공중으로 높이 쏘아올려졌다. 정도연이 말한 대로 이 모든 것이 성공했다.

  이전의 그녀는 염동력을 한 점으로 집중시키고 그대로 중력가속도에 자신의 힘을 더하여 나머지를 맡기는 식으로 공격을 펼치는게 고작이었지만, 이제는 자유자재로 염동력이 집속하는 점을 중력과 무관하게 설정할 수 있었다. 중력의 힘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염동력의 힘이 강해진 것이다. 이것은 그녀의 힘이 분명히 강해졌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놀라워하면서 동시에 기뻐하는 슬비를 보며 정도연 역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린다.

  "아주 좋아요. 이제 마지막 테스트를 해보죠.
  이슬비 요원, 이곳 구로에는 과거 칼바크 턱스가 난동을 부릴 때에 파괴된 위상력 억제기차가 곳곳에 방치되어 있어요. 이 전동차들은 한 대 당 모두 10량의 차량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바로 그 10량의 차량으로 구성된 한 대를 정확히 저 끝의 목표에 충돌시켜보세요."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그녀는 정도연을 쳐다보았다. 정도연은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그녀의 반응에 응답했고, 그녀는 직접 말을 함으로써 이 말도 안 되는 테스트에 곤란을 표했다.

  "저기 정도연 박사님, 제가 알기로는 그런 부류의 지하철은 중량이 400톤에 가깝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어요. 자신의 힘을 믿어요, 이슬비 요원."
 
  언젠가 TV에서 지하철에 대한 갖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는 슬비는 이 지하철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다. 특히 구로역은 차원전쟁 당시 신서울 지하철 구1호선이 지나가던 곳이기에 지금처럼 경량화된 지하철이 아닌 상당히 무거운 질량의 지하철 밖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한 번은 작전 중에 그녀가 우주에 부유하고 있던 폐기된 위성을 끌어와 지상에 투하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발생한 굉음과 파괴력은 그 일대를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뒤흔들어 더 이상 그런 공격을 하지 말라고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 물론 인공위성 역시 상당한 질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 때에는 지구의 중력의 힘에 자신의 염동력을 더하여 끌어온 것이었고, 이미 공중 높은 곳에 있었으므로 끌어오기만 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완전히 땅에 붙어있는 수 백 톤의 초거대질량을 가진 물체를 중력을 거스르고 공중에 띄운 후, 정확한 목적지에 명중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정도연 박사는 무척이나 간단한 것처럼 말을 하고 있으니 그녀로서는 속이 터질 노릇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의 염동력이 분명히 강해진 것을 그녀는 방금 전의 테스트를 통해 충분히 깨달았다. 그렇다면 혹시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우선은 시험해보기로 하고 그녀는 공중에 부여하여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파괴된 억제기차를 찾았다. 마침 그녀의 눈에 들어온 가장 가까운 억제기차는 근처 철로에 멈춰서 있었다. 어림잡아 그녀로부터 약 5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그 열차는 멈춰서 있다.
  그녀는 10량의 차량마다 각각 끌어당기는 힘을 부여하여, 기합소리와 함께 있는 힘껏 들어올렸다.

  "흐아아아아아앗!"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열차들이 일제히 들린 것이다. 비록 빠른 속도로 들려올려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느린 속도로 들리는 것도 아니다. 그녀는 이 감각을 분명히 새기고서 그것을 상공 1km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자 마치 억제기차가 상공을 부유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가 된다.

  슬비의 위상력 테스트를 지켜보던 다른 검은양 팀원들이 이 모습을 지켜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와, 저도 저 위에 타고 싶어요!"

  천진난만한 얼굴로 너무나도 재미있게 웃는 미스틸테인은 슬비의 거대한 염동력을 상당히 즐거운 것으로 본 모양이다. 반면에 제이와 서유리는 약간 몸을 떨면서 말하고 있었다.

  "저런 것이 내 위로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어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정말이에요. 우리 연약한 슬비가 저런 힘을 가졌다니, 전혀 상상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세 사람은 이 전동차들이 땅으로 낙하하는 것을 바라본다.
  슬비는 더욱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마치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던지듯 투척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억제기차를 공터의 한 끝에 있는 붉은 색 깃발을 향해 있는 힘껏 투척했다.

  마치 돌맹이를 던지는 것처럼, 억제기차는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 심지어 평상 시 운행하는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  던져졌고, 그대로 굉음과 뿌연 흙먼지와 함께 거대한 진동을 일으키며 깃발과 충돌했다.
  충돌한 억제기차는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고, 한껏 짙은 흙먼지를 곳곳으로 흩날리는 위용을 뽐냈다. 검은양 팀원들은 과거 그들이 작전 중에 보았던 버스 폭격이나 위성 낙하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또 다른 낙하 기술을 보고 몸서리를 친다.

  흙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것은 공터를 가로지르며 널부러진 파괴된 위상력 억제기차였고, 숨을 헐떡이며 겨우 고르고 있는 슬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왜일까, 슬비의 모습이 약간 달라져 있다. 그것을 제일 먼저 눈치챈 건, 역시 같은 여자인 유리였다.

  "어? 보세요, 슬비의 머리가 자라났어요!"
  "응? 정말이네?"
  "우와, 신기해요!"

  정말로 슬비의 머리는 자라나 있었다.
  단발이었던 그녀의 머리는 분명히 어깨를 넘어 어깻죽지까지 닿는 장발로 바뀌어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어진 정도연 박사의 말은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과연 위상력을 최대치까지 구현하게 되니, 그만큼 외형도 변화하는군요. 흥미로운 연구결과에요.
  고마워요, 이슬비 요원. 이걸로 위상력 구현 테스트는 마치겠어요. 정말 수고 많았어요."

  테스트가 끝났다는 말에, 슬비는 그대로 땅에 몸을 맡기듯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땅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약물이 투입되고 나서 느껴졌던 붕 뜨는 느낌이나 어지러운 느낌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 역시 사라졌다. 대신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시끄럽게 그녀에게 느껴졌고, 아직까지 고르지 못한 거친 숨에서 나오는 뜨거운 날숨이 시원한 공중으로 뿌려진다.
  그녀는 소리 없이 웃었다. 분명히 강해진 자신의 힘을 스스로 느꼈기에, 그리고 이정도의 힘이라면 분명히 그를 구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그녀는 웃음을 지었으리라.

  그렇게 그녀는 잠시동안 주위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 16-2
 
  "모두 앉아보렴, 이제부터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테니까."
 
  구로역의 낡은 의자에 걸터앉은 검은양 팀은 김유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하철역의 장의자는 네 명이 앉기에는 조금 길이가 부족했기 때문에 누군가 일어서야만 했는데, 리더인 슬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나머지 세 명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대신 슬비는 바로 옆에 있는 플랫폼 지붕의 기둥에 등을 기대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 향하자, 김유정은 들고 있던 자료들을 펼쳐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는 슬비가 특수요원으로 승급하는 기쁜 결과를 맞을 수 있었어.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고, 더욱이 매우 불편한 일마저 있었지."
 
  그녀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더라도 어제 있었던 일은 여기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만약에 이세하가 나타나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몇 명은 이곳에 없을 수도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끔찍한 일이고,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일이다.

  "부지부장님께 이미 보고를 드린 상태고, 그분도 꽤나 놀란 모양이신듯 해. 아마도 이 사태는 총 본부까지 보고가 될 것 같아."
  "그 사람이 놀랐다는 그 말, 이번 사건이 유니온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건가, 유정 씨?"
 

  제이의 물음에 김유정이 대답한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네, 확실하지 않지만 반응을 보건대 유니온은 이 일과 관련이 없는 듯 해요. 적어도 부지부장님은 모르고 계시는듯 해요."
  "데이비드가 사라져 부지부장이 지부장의 업무대행을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 사람이 몰랐다는 건, 공식적으로는 유니온이 이 일과 관련이 없다는 것으로 생각되는군, 공식적으로는 말이야.
  그렇다면 어제 습격한 놈들에 대한 정보도 알아본 거야?"
  "네, 알아보았어요. 우선 다시 행정자치부에 신원확인을 해본 결과, 같은 답을 해왔죠. 정부가 자기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다시 한 번 말하는 걸 보면, 사실 그들이 정부 소속이라고 했던건 위장신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아닐거야."
  "네?"

  제이의 부정에 김유정이 살짝 놀란 어투로 다시 물었다.
  "제이 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유니온은 위상능력자들을 통한 국제분쟁이 없도록 하기 위해 중앙집권적으로 클로저들을 관리하고 있지. 내가 알기론 그런 처사에 상당히 각 나라의 정부들의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어."
  "그 말은…"
  "벌처스라는 일개 사기업마저 위상능력자들을 보유하고 있었어. 정부가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지 않는다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거야. 더욱이 며칠 전 플레인 게이트 폐쇄를 하기 위해서 놈들이 찾아 왔던걸 보면 결코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겠지, 유니온의 각 국 지부들은 그 나라의 정부와 공동으로 업무를 추진하니까."
  "하지만 제가 이 점에 관해서도 이미 보고를 올렸어요. 혹시 저희가 목격했던 그 위상능력자들에 관한 데이터가 있는지, 이미 정보 조회를 요청했어요."

  김유정은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 뭉치를 몇 장 넘기더니, 어딘가를 오른손 검지로 짚은 채로 검은양 팀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유니온에서는 이렇게 정보 조회 결과가 없다고 답변했는걸요. 과거 이리나 페트로브나 같은 위상능력자라고 할지라도, 분명히 위상능력자인 이상 유니온에 정보가 등록되어 있었어요. 이건 모든 클로저에 해당되는 말이에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유니온이라면 충분히 잘못된 정보를 주고도 남아. 그럴 녀석들이니까."
  "제이 씨는 너무 조직에 대해 안 좋게 보는 것 같네요."
  "뭐, 이런 저런 일이 있어서 말이야. 한 예로 트레이너…, 베로니카…,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만 나는 그동안 알고 있었으니까."

  제이의 말에 유정은 더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니온의 어두운 측면을 이미 강남에서부터 지켜온 검은양 팀이니, 제이의 말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유니온이라면 정말로 그럴 수 있다는 생각만 말 없이 가질 뿐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이슬비에 의해 같은 주제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화제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우리 검은양 팀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방침, 즉 유니온의 지시 - 이세하에 대한 방관 - 에 대한 보이콧은 아직도 유효하죠, 언니?"
  "응, 슬비야."
  "승급심사 도중 메피스토를 만났을 때, 그가 말하는 걸 들었어요.
  그는 이제 5일, 아니 4일 후면 세하가 완전히 차원종이 되어버린다고 말했어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어요. 빨리 세하를 찾아야만 해요."
 
  슬비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세하를 보았을 때, 그는 너무나도 인간다웠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싸우고, 그녀의 앞에서 그렇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남자에게, 누가 감히 그를 차원종이라 할 수 있겠나?
  여전히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김유정은 자신의 안일하고도 어리석은 판단에 대해 부끄러워, 감히 그에게 말 한 마디 붙여** 못하고 그를 보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녀에게도 매우 후회되는 순간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를 보내고 나서, 그녀는 그가 아직도 인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반드시 그를 구해내야만 한다는 것도 말이다. 자신들을 습격했던 무리들을 찾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하를 찾아내어 그를 구해내는 것이다.

  "우리는 세하를 찾아야만 해. 늑대개 팀에게도 협조를 요청하겠어. 세하를 찾는데, 우리의 온 힘을 쏟아붓자. 이제 4일밖에 안 남았어, 시간을 아껴야만 해."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따로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같았기에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좋아. 회의를 시작하자. 그보다 먼저 자리를 강남 GGV로 옮길테니, 모두 이동하자."

.
.
.

  "미리 보고 드리지 않은 것은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알겠습니다, 국장님."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과거 왕조의 왕궁문과 국가의 위인 동상들, 그리고 넓은 분수대와 광장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광장 주위로는 많은 차량들이 통행하고 있어 혼잡하게도 보이지만, 이 사무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곳은 신서울 강북의 도심에 있는 어느 정부 청사의 사무실. 
  상당히 높은 직급의 공무원이 사용하는 것인지 업무용 책상은 이 사무실에 단 하나 밖에 없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전화를 받고 있던 공무원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지었다.

  그 외에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재민, 서나현, 김상훈. 행정자치부에 소속을 두고 있는 세 명의 공무원은 쥐 죽은듯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동마저도 못하는 모습은 마치 죽을 죄를 지은 것마냥 보인다. 이들은 전 날의 실패를 대면보고하기 위해 이곳에 찾았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서면 보고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대외협력국장은 이미 유니온 요원관리국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통화 중이었고, 그 통화가 끊어질 때까지 그들은 이렇게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다.

  "한재민 씨."
  "… 네, 국장님."
  "이능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임무에 실패한 적이 없었죠?"
  "예…"
  "그렇다면 이번이 첫 실패로군요. 그렇죠?"
  "그렇, 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당분간은 잠적하는게 좋을 것 같군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다면, 새로운 계획을 세워 검은양…"
 
  안경 쓴 남성의 말을 딱 끊는 중년의 남성.
  그리고 그 남자는 매우 싸늘하게 말했다.

  "유니온에서 당신들에 대한 신원조회가 들어왔습니다. 벌써 두 번째이고, 우리는 계속해서 모른다고 답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계속해서 움직인다면 그들은 또 다시 집요하게 물어올 겁니다.
  이미 첫 계획이 실패한 이상, 어떻게든지 유니온은 꼬리를 끊으려할테고 우리만 괜히 덤탱이 씌워질 수 있으니, 이쯤에서 포기하는게 좋을 것 같군요."
  "다음에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국장님! 기회를 주신다면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아뇨. 이번 실패는 너무 컸어요. 내가 이능원에 대해 불신을 하거나 원망을 하는건 아닙니다. 당신들은 여전히 유능한 인재들이에요. 그래서 이대로 계속 갔다간 당신들만 잘려나가게 될테니, 그걸 예방하고자 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두셨으면 합니다."

  이 공무원의 뜻은 완강했다.
  돌려말하고 있지만, 요지는 분명했다.
  검은양 팀과 관련된 업무에서 너희들은 손을 떼라. 바로 이것이 그의 요구이자 명령이었다.

  직급이 높은 자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공직사회에서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을 따라야만 한다.
  그렇기에 더 이상 요구하기보다는 잠자코 명령대로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검은양 팀에게 당한 것은 너무나도 분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기에, 그들은 잠시 물러나있기로 결정을 내렸다. 애초에 유니온의 클로저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비밀리에 존재하는 그들이므로, 어둠 속에서 조금만 더 숨어있으면 분명히 다시 기회가 주어지리라는 것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다.
  언젠가 치욕을 갚아주겠다는 다짐만 할 뿐이다.


  ◆ 16-3

  램스키퍼에 탑승하여 신서울의 상공에 있는 늑대개 팀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무런 지시 하달이 없다면 그들은 자유의 몸이다. 적어도 다음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는 말이다. 이 넓은 램스키퍼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칼바크 턱스가 개발한 최첨단 인공지능 쇼그와 늑대개 팀 뿐이다. 수백 명은 충분히 배치할 수 있을만한 이 넓은 함정을 10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 독차지하고 있으니, 그들로서도 이 함정 안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이곳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는 레비아는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반응을 싫어하지만 않는 트레이너도 함교의 지휘실의 어느 의자에 앉아서 간만의 자유를 만끽하며 휴식을 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있지만 자고 있지 않은 그에게 하피가 다가온다. 그녀의 인기척을 느끼고 그는 눈은 뜨지 않은채 말로만 물었다.

  "무슨 일이지, 하피?"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할건가요, 트레이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있는건가?"
  "놈들을 추적해야죠. 당신은 놈들을 알고 있을 것 같아요, 어제 검은양 팀을 공격했다던 그 사람들을요."
  "아쉽지만 모른다. 유니온에 소속되지 않은 위상능력자는 벌처스 소속이 전부인줄 알았지."
  "거짓말같군요."
  "거짓말로 보이나?"

  어느새인가 눈을 뜬 트레이너와 하피의 시선이 오간다.
  그녀는 그의 시선에서 무언가를 읽어냈다. 그 메시지는 '너는 알 필요 없다'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완강하게 부정하는 이상, 그저 느낌만으로 그를 몰아세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은 잠시 물러나서 그가 스스로 움직이기를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알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부정한다면, 더 이상 캐묻지 않아주겠어요."
  "고맙군."

  트레이너가 다시 눈을 감으려던 찰나, 이번에는 레비아가 그의 근처로 다가와 물었다.
  "저기, 트레이너 님."
  "무슨 일이지, 레비아."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정말로 유니온의 명령대로 이세하 님을 죽여야만 하나요? 아니면 유니온의 명령에 거부해야 하나요?"
  "레비아…"
  "트레이너 님, 저는 이세하 님을 죽이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을 것 같아요. 도저히, 할 수, 없어요."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특히 마지막 말은 정말로 겨우 말했다. 그녀는 비록 차원종일지라도, 그 마음은 정말로 깨끗하다. 그 순수한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 않은건 트레이너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의 질문은 이후 늑대개가 취해야할 방향성이기도 하다. 이미 그의 마음 속으로는 가닥을 잡았지만, 정말로 모두에게 공식적으로 말을 해야할 때이다. 분명히 그들의 노선을 공표하기 전, 그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어 주었다.

  자신의 머리에 올라온 큼직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레비아는 울음을 그쳤다.
  그 부드러운 손길은 분명히 그녀가 원하는 대답이 올 것이라는 확신을 그녀에게 준다.

  "분명하게 말하도록 하지. 우리 늑대개는 검은양 팀과 협조하여, 이세하를 구해낸다.
  이 과정에서 유니온과 겪는 마찰은 우리가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모두 충분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도록. 혹시 의문이 있는 사람 있나?"

  돌아오는 답은 없다. 모두가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음에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무언의 동의를 보내는 것이리라.
  이것으로 늑대개의 행동 방향은 확실히 정해졌다. 모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누구도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

  이제 그들은 검은양 팀과 공조를 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그들의 담당자와 향후 방향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그는 램스키퍼 함수의 지휘실의 시스템을 이용하기로 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컴퓨터 앞에 다가선 그가 명령 입력을 위해 모니터의 화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려고 할 때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트레이너의 말이 끝난지가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그의 자켓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휴대폰이 울었다.
  그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전화기의 가장 기본적인 벨소리는 그가 전화를 받아듦과 함께 그쳤다.

  "트레이너요, 말씀하시오."
  『검은양 팀을 지원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을텐데, 또 다시 임무를 드리기가 매우 죄송하지만.』
  "괜찮소. 말만 하시오."
  『검은양 팀이 완강히 보이콧을 선언한 이상, 당신들이 그들이 할 일을 대신 해주어야겠어요.
  또 다른 차원종이 역삼동 일대에 출현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그곳으로 이동해서 특경대와 함께 차원종들을 처리해주어야겠습니다. 그리고 차원종들의 샘플을 종(種)별로 수집해서 근처에 있을 저희의 차량으로 가져와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소. 최대한 빨리 가보도록 하지."

  전화가 끊어지고, 트레이너는 다시 자신의 자켓 속으로 휴대폰을 넣는다.
  그리고 함교에 있는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은 유니온의 지시에 따르기로 한다. 먼저 역삼동 일대에 출현한 차원종들부터 처리한다."


  신서울 상공에 부유하고 있던 램스키퍼가 함수를 동쪽으로 돌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도 이 정도의 속도라면 목표지 상공까지 도착하는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겠지.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차원종들은 처리될 것이다.
 
  또 다시 차원종의 샘플을 수집할 것을 명령하는 것을 보아, 유니온은 여전히 이세하에 대한 의심을 풀고 있지 않은 것일까?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늑대개 팀은 당장은 지시한대로 움직일 뿐이다. 당장은 명령으로부터 자유하지 않다고 느낄지라도, 머지않아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으리라.

.
.
.

  강남 GGV에 속속들이 모인 검은양 팀의 앞에 김유정이 자신의 전용차를 끌고 나타난다. 예상 도착시간보다 그녀가 늦게 왔기에 그 이유를 모두가 궁금해했지만, 그녀의 차 안에서는 그녀만이 아니라 정도연 박사와 채민우 경정도 같이 내리는 것을 보면 그들을 데리고 오기 위해 도착시간이 늦어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우선적으로 복구가 끝난 클로저들의 집결지인 이 길거리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검은양 팀이 모두 모였을 때처럼 회의를 시작했다.
  이번 회의처럼 검은양 팀 외의 사람들이 와서 참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기에, 그 중요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회의의 주제가 그들의 동료 - 이세하 - 와 관련된 것이기에, 중요성을 느끼지 않을래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 그러면 바로 회의를 시작하겠어요. 정도연 박사님, 연구 경과를 보고해주세요."
  "저는 김유정 부국장의 지시에 따라 이세하 요원이 검은양 팀을 이탈한 그 날로부터 그를 구할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해왔어요. 그리고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얼마 전에 도출되었죠."
 
  그 방법은 결코 실행할 수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잊혀지지 않았고, 미스틸테인이 그 방법을 입에 담았다.

  "위상변환엔진을 이용하는 방법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하지만 그 방법은 이세하 요원의 목숨도 같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반대했었죠. 그 방법을 대신해서 이슬비 요원이 칼바크 턱스에게 전해들었다던 방법을 사용하기로 우리는 결정했었고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을 위해 이슬비는 특수요원이 되었다.

  "다만 문제는 이슬비 요원이 이세하 요원과 조우했을 때, 과연 그에게 위상력을 제대로 주입할 수 있을지에요. 같은 성질의 위상력이라고 하더라도 퍼스널 컬러가 다른 위상력들은 서로 반발하기 때문에, 이슬비 요원의 위상력이 주입되었을 때 이세하 요원에게서 거부반응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10중 8은 이세하 요원이 분명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또 다른 위험이 되겠죠, 두 사람 모두에게. 그리고 최악의 경우,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을 수 있어요."
  
  생각해 볼만한, 아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사실 위상력의 반발성에 대해서는 일전에 제이가 일찍이 이야기한 바가 있다. 그 때에 이슬비는 그저 잘 될 것이라는 말로 가볍게 넘겼지만, 위상력에 대해 연구하는 전문가의 말을 들으니 또 다르게 들린다. 그녀가 상정한 최악의 상황은, 둘 모두가 목숨을 잃는 것이다.
 
  슬비에게는 왠지 알 수 없으나, 그 모습이 상상되는 것만 같았다.
  악몽의 세계에서 보았던 세하의 죽음이 문득 그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고,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애써 그 기억을 잊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결코 그런 일 따위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긍정적인 결과만 남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정도연의 말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결론은 기존의 입장대로 이슬비 요원이 자신의 위상력을 이세하 요원에게 투입하는 것으로 가되, 이세하 요원의 반발을 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 추가되어야 해요."
  "그 방법으로 생각한 바도 있으시겠죠?"
  "있긴 있어요. 하지만…"

  김유정의 말에 답한 정도연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선 잠시 검은양 팀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서 왠지 그녀의 주저함을 느낀 서유리가 물었다.

  "뭔가 있는거죠?"
  "…"

  그녀는 검은양 팀 중에 있는 한 사람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자신에게 시선이 향한 것을 느낀 건, 바로 이슬비. 정도연은 그녀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괴로운 이야기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제 말을 듣고 그대로 해줄 수 있나요, 이슬비 요원?"
  "말해, 주세요."
  "실은 바로 어제, 유니온의 제 동료로부터 들은 이야기에요. 어제 강북 일대에 출현한 차원종에게서…"

.
.
.

  "클로저 이세하 요원의 위상력이 검출된 데에 이이서, 방금 늑대개 팀이 가져온 잔해에서도 어제와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오히려 그 농도가 더 진해지면 진해졌지, 연해지지는 않았군요."

  바로 어제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유니온의 연구원이다.
  스스로를 이세하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입장이라고 밝힌 그 남자는 이번 검사의 결과를 보고서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트레이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그에게 담담히 물었다.

  "공식적으로 보고를 올릴 생각이시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보고는 올려야겠지요."
  "예상되는 유니온의 반응은 어떻소?"
  "트레이너 씨가 예상하신 대로 흘러가겠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기계가 내는 미세한 소리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다시 들려온 목소리는 트레이너의 것이었다. 그는 그의 옆에서 커다란 메인 모니터에 나타난 이세하의 사진과 신원정보를 바라보고 있는 연구원에게 말한다.
 
  "보고에 앞서, 물어볼 것이 있소."
  "말씀하시죠."
  "차원종들에게서 그 아이의 위상력이 검출되는 이유가 무엇이오? 단순히 그가 인류를 적으로 돌렸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소?"
  "가설에 불과하지만… 제 동료의 말에 의하면, 이세하 요원이 스스로 자신이 정말로 차원종이 되어간다고 밝힌 바가 있다더군요. 아마도 그 때문에 그의 위상력이 차원종의 군단에 섞여 들어갔고, 결국 이러한 결과가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잠시 트레이너가 생각에 빠진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연구원은 머리를 한 번 긁적이더니 자신의 개인 컴퓨터로 보이는 것이 있는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자판을 두들기는걸 보면 아마도 유니온에 보고할 공식 문서를 작성하는듯 싶었다. 아마도 이 문서의 작성이 완료되어 유니온에 올라가게 된다면, 현재 검은양 팀이 이세하를 찾으려고 하는 노력도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절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그이기에, 그는 연구원에게 제안을 건넸다.

  "그 보고, 잠시만 미뤄줄 수 있겠소?"


   ◆ 16-4

  정도연이 이슬비에게 꺼낸 이야기는 도저히 그녀가 납득할 수 있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완전히 그녀의 상식을 박살내는, 그런 이야기에 그녀는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그렇죠?"
  "받아들이기 힘들겠죠. 하지만 받아들여야해요."
  "어떻게… 어떻게 세하가 완전히 차원종이 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이에요!? 절대 못해요, 아니 안 할 거예요!"
  "위상력 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선 차원종의 위상력이 주도권을 잡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고집을 부린다고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요.
  이슬비 요원의 증언에 의하면 이세하 요원이 완전히 차원종이 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해야 4일. 힘들겠지만, 딱 4일만 기다려줘요. 부탁이에요."
 
  그녀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이슬비는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흥분한 채로 숨을 고르고 있는 그녀는 잠시의 침묵을 끊고서, 감정을 억누르며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러다 실패하면요?"
  "…"
  "실패한다는 가정은 안 해보셨어요?"
  "…"
  "안 해보셨냐고요!"

  정도연은 말을 아꼈다.
  격해진 슬비의 반응을 그녀는 잘 이해하고 있다. 애초에 그녀가 제시한 방법을 쉽게 이해해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이미 예상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유리가 옆에서 슬비를 안아주며 토닥인다. 그녀를 안정시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까, 확실히 더욱 안정된 느낌이다. 그녀는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끊어진 회의의 흐름을 잡기 위해, 김유정이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세하의 행방을 찾아**다는 거에요. 세하를 되돌리기 위해선 반드시 그와 슬비가 만나야하죠. 하지만 우리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먼저 세하의 행방을 추적하는게 중요할 것 같아요."
 
  김유정의 말이 옳다.
  먼저 세하를 찾는 것이 제일 시급하다.
  전에 우연히 외부 차원에서 그를 마주한 일이 있었지만, 그건 그가 직접 찾아와 준 것에 지나지 않기에 그가 있는 곳은 여전히 불명이다. 그를 찾는데 과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알 수도 없다.
 
  모두가 침묵할 때, 채민우 경정이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1시간 전 역삼동 일대에 출현했던 차원종들을 퇴치한 특경대의 보고에 의하면, 그 차원종들이 일반적인 차원종과는 확연히 다르다더군요."
 
  그의 말에 김유정이 답했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일반적으로 강남에 출현하는 차원종들은 강남 사태 이후 일반적인 스캐빈저 종류가 대부분이었습니다만, 이번에 출현한 차원종들은 처음보는 신기한 형태의 차원종과 크리자리드 타입의 차원종들이 대다수였다고 하더군요. 특히 처음보는 신기한 형태의 차원종은 완전히 인간과 같지는 않지만, 팔과 머리가 있다는 점에서는 인간과 닮았다고도 했고요."
  "크리자리드 타입이라고 한다면, 예전에 아스타로트의 영지에서 출현했던 그 차원종들일텐데. 아스타로트의 수하들은 모두 강남에서 몰아냈을텐데, 어째서 그런 차원종들이 갑자기…"
  "이유는 잘 알 수 없지만, 좀 전에 정도연 박사님께서 이야기하신 이세하 요원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로운 정보이다.
  크리자리드 타입의 차원종과 인간의 형상을 닮은 차원종.
  인간의 형상을 닮은 차원종… 인간의 형상을 닮은 차원종… 인간의 모습을 한 차원종들이 출현하는 곳…

  "Ach so! 붉은 차원이에요!"

  미스틸테인이 기쁘게 소리쳤다.
  처음에 나온 말은 독일어 같지만, 뒤에 나온 말은 분명히 한국어였기에 알아듣는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의 말 덕분에 뭔가 실마리가 잡혀가는 것 같았다. 서유리가 채민우에게 묻는다.

  "채민우 아저씨, 혹시 그 신기하게 생겼다는 차원종이 혹시 어떻게 생겼는지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실 수 있어요?"
  "그 녀석들이 뭐라고 했더라… 아마 한 손에는 창과 같은 길쭉한 무기를 들었고, 몸 한 가운데가 마치 알파벳의 O처럼 비어있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형태의 차원종들이 대다수였고, 그 중에서도 높은 위험도를 가진 차원종들은 마치 고대 종교의 신관과 같은 느낌을 가졌다고도 했습니다." 

  그 말에 확실히 모두에게 감이 잡혔다.
  분명히 그가 말한 차원종은 차원경계병 타입의 차원종들일 것이다. 특히 신관의 느낌을 하는 차원종들은 붉은 차원에서만 볼 수 있는 차원종이 맞다. 일전에 이세하를 만났던 것도 붉은 차원의 탐사 중이었음을 생각해보자면, 결코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어렵다.
 
  뭔가 퍼즐이 맞춰져가는 것만 같았는데, 무언가 몇 개의 조각이 빈 느낌이다.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정도연 박사가 설명했다.

  "하지만 1시간 전에 출몰한 차원종이 이세하 요원과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없어요.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죠."
 

  그렇다. 빈 조각은 여기에 있었다.
  이미 채민우 경정도 인정했지만, 역삼동 일대에 출현한 차원종이 이세하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아무런 곳에도 없다. 정도연 박사의 말대로, 그들은 연관이 있을거라고 믿고싶을 뿐인지도 모른다.
  다시 회의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만 간다.

  그 때,
  "회의가 한창인 듯 한데, 끼어들어 미안하오."

  초대받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트레이너의 목소리이다.
  모두는 소리가 난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거기에는 트레이너와 함께 연구원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같이 있었다. 정도연 박사는 그를 알고 있다는듯 이름을 불렀다.

  "닥터 민성진? 당신이 왜 이곳에?"
  "이번에도 역시 차원종 잔해의 검사를 위해 파견됬죠. 그리고 방금 전의 그 퍼즐, 제가 하나는 맞춰줄 수 있을 것 같군요.
  1시간 전 역삼동 일대에 출현한 차원종들에게서 이세하 요원의 위상력이 검출되었습니다, 저번보다 더 진하게 말이죠."
 
  정말로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모두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정도연 박사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 붉은 차원과 가까운 곳에 이세하 요원이 있을 것이라는 명제의 반증만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이세하 요원이 붉은 차원 근처에 있다는 명제는 저절로 참이 되겠군요."
  "그렇죠. 플레인 게이트의 붉은 차원이 아닌 나머지 차원에서 출현한 차원종에게서 이세하 요원의 위상력이 검출되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두 전문가의 말을 듣자마자 서유리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유정 언니, 당장 플레인게이트로 가겠어요! 당장 보내주세요!"
  "잠깐만 기다려 유리야. 플레인게이트는 며칠 전부터 폐쇄 수순에 들어갔어. 아직 외부차원으로 들어가는 장치는 완전히 파괴되지 않았겠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폐쇄를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아니, 방법이라면 있지."

  김유정의 말에 다시 분위기가 침울해져갈 것 같았지만, 트레이너의 말 덕에 분위기는 다시 고조되었다.
  "걱정마시오, 그거라면 이미 벌처스에서 손을 썼을테니."
  "벌처스요?"
  "못 믿겠거든 벌처스 사장에게 전화해보시오. 유니온이 정부가 아닌 벌처스에 그 업무를 맡겼다고 하니, 그 남자라면 당신들을 위해서 며칠이고 몇달이고 폐쇄 작업을 늦출 수 있겠지."


  희소식이다.
  외부차원을 열 수 있는 클로저는 아무도 없다. 차원종의 위상력을 가진 이들만이 외부차원을 열 수 있다. 그렇기에 외부차원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단 하나다, 바로 플레인게이트. 그렇기에 이곳은 폐쇄되어선 안 된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궁극적으로는 폐쇄되어야 할 곳이겠지만, 이세하를 구출하기 전까지는 결코 폐쇄되어선 안 된다.

  이제 그들의 방향성은 정해졌다.
  그들이 이제 모일 곳은 플레인 게이트.
  이슬비는 직감했다, 그곳에 가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일전에 그녀가 가** 못했던 미탐사 구간에 가면, 분명히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플레인 게이트로 가기에 앞서, 구체적인 방법을 먼저 정하고 가도록 하죠.
  과연 4일을 더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곧바로 세하를 찾을 것인지."

.
.
.

  "크으으윽, 끄으아아아아아아!!"

  너무나도 불쾌하다.
  미칠 것 같이 불쾌하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친다.
  정말로 견디기 힘들다.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어둠이 내린 외부 차원의 한 구석에서 고통을 참아내면서도 비명을 지르는 남자에게 재와 먼지의 이름을 한 고위급 차원종은 조소의 시선을 흩뿌렸다.
  자신들의 원수의 자식이 자기들의 눈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이 모습이 너무나도 즐거운 것일까?
 
  "그만 인정해, 이세하. 너는 군단이라는 것을 말이야."
  "그래, 애쉬의 말대로 인정하는게 더 좋아. 그렇게 저항해도 소용없어. 이슬비 그년은 절대 너를 구하지 못할테니까~"
  "후후후, 고통에 일그러진 네 모습을 보니, 마치 네 어미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너무 기분이 좋은걸?"
  "그러게 뭐하러 이슬비를 도우러 갔어? 거기서 그년이 죽었으면 네가 이렇게 고통스러워할 필요도 없을텐데~?"

  번갈아가며 흘리는 도발에 이세하는 크게 소리질렀다.
  "입 **! 슬비와 엄마한테 그 딴 소리 하지마!"
 
  하지만 그의 분노는 애쉬와 더스트에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두려움이라곤 전혀 그에게서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테고.

  이세하의 고통을 특히나 비웃는건 애쉬였다. 그는 처음부터 이세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는 감정이다. 한참이나 비웃던 중 그가 뭔가를 생각해내고, 자신의 누이에게 이야기를 걸었다.

  "누나, 재밌는게 떠올랐어."
  "재밌는거? 꺄아~ 그게 뭐야?"
  "여기로 이슬비 양을 불러오는거야. 눈 앞에서 처절하게 애인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거지. 그리고 이 녀석이 완전히 군단이 될 때, 녀석과 이슬비 양이 싸우게 만드는거야. 이번엔 저번처럼 도망갈 수 있는 여지따위 남겨두지 않을테니, 더욱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되겠지."
  "완전 기대된다, 그거!"

  개구쟁이의 웃음소리를 내며 더스트는 애쉬의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의견은 너무나도 달랐다.

  "너희 따위에게, 지지 않을거야…"
  "네 꼴이나 보고 말씀하시지, 이세하."
  "그러니까. 깔깔깔! 정말 웃긴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의지를 잠식해가는 무언가와 싸워가며 버틸 뿐이다.
  그리고 제발 바라기로는, 이슬비가 이곳으로 오지 않기를. 단지 그것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매우 오랜만에 찾아뵈었습니다.
  12월 초까지는 시간이 매우 안 나네요. 일이 왜이리 많은지요..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늦은 연재에 정말 죄송할 뿐입니다.

  다음 화는 아마도 12월 초가 지나야 올라올 것 같아요. 시험만 합격하면 정말 일사천리일텐데, 시험이 문제에요 시험이...
  빨리 이 소설의 결말을 내고, 달달한 세하슬비를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현실은 시궁창... 소설 속 내용도 당장이라도 이 커플이 깨질 것만 같은걸요 ;ㅅ;
  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이번 화에 등록된 표지 그림은 네이버 유니온 카페의 카제로스 님께서 그려주셨어요.
  바쁘고 몸이 안 좋으신 와중에서도 좋은 그림을 그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소설을 여기까지 읽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리고,
  제가 못 미더우시겠지만 다음 화까지 기다려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빠른 시일내에 다음 화로 찾아뵙기를 바라며 인사를 남깁니다.
 

 
2024-10-24 23:12: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