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라도 생존이 하고 싶어! - 1편 -

타블렌 2016-11-19 1

눈을 떴다.


하얀 천장이 보인다. 낯선 천장이다. 그렇지만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수도 있으니까.

여기는 나의 집도 아니고, 10년동안 지내온 고아원 숙소도 아니다.

위상능력자로서의 전투 능력을 서둘러 배양하기 위한 훈련 기관. 즉, 훈련소다.

수마에 물들었던 머리를 크게 흔들어 깨우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듯 생활관 문이 열렸다.

하얀색 디지털 전투복을 입은 빨간머리 여자애가 눈썹을 치켜세우고 들어왔다. 우리 팀 팀장, 강미희다.

그제서야 훈련이 있다는 걸 떠올리고 얼른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다행히도 늦지는 않았다 11분 전인가.


"이한율, 곧 있으면 훈련 시간이야. 오침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미희는 고운 이마를 찌푸린 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도 위기 의식이나 다급함을 조금도 느끼지 못 했다.

어여쁜 여자애가 나를 위해 와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 그러니까 흐뭇한 기분이 솟아오를 뿐이었다.

긴장감없는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공포에 짓눌려 죽을테니.


나는 미희의 머리를 살며시 만져보았다.

어리둥절. 의문이 서린 빛을 낯에 띄우고 있지만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있다.

고아원에서 만난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은 내 친구. 그러나 나에게 미희는 친구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순수한 애를 훈련 파트너이자, 같은 팀원이며 같은 고아원에서 만났다는 건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고 행복이다.

곧 전쟁터로 향할 예정인 소년병의 처지라는 사실조차도 미희의 옆에 있으면 망각하게 된다.

나는 최대한 밝게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예쁜 모습만큼 마음씨도 곱구나. 난 미희를 만나서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자 미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쩌지. 너무 귀여워.


"뭐, 뭔 소리야? 하여튼 빨리 와! 다른 애들은 다 모였으니까!"

"그래. 그래."



○          ○          ○


온 몸을 짓누르는 피로와 아픔. 땀으로 젖은 전투복. 손과 팔에 생겨난 무수한 생채기.


그러나 나는 그 점을 신경쓰지 못 했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훈련이 끝난 지 10분이 지났지만, 아직도 녹초가 된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몸의 피로 뿐만이 아니다.

15일 뒤, 차원종이 득실거리는 전쟁터로 향하게 된다.

그 사실이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초조하고 칼에 찔린 것 처럼 마음을 욱씬욱씬 아프게 만든다.


나의 나이는 16살.

나는 위상력이 있다는 것 외에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중학생 남자애일 뿐이다.

그런 내가 병사처럼 훈련받고, 전투복을 입고 군인들처러머 생활관에서 지내면서 정**를

괴물과 싸워**다니. 이 무슨 부조리함이란 말인가.


"한율아. 계속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 힘 내야지."

"……제이."


은색 머리카락. 몹시 비현실적인, 그러나 엄연히 현존하고 있는 인상착의의 소유자.

염색 따위가 아니라 위상력에 의해 변해버린 모습이다.

석 자 이름도 없이 '제이' 라는 단어로 정체성을 대신하고 있는 동갑내기 팀원.

불안과 초조를 느낄 법도 하건만, 제이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다.


녀석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가 그 옆에 있던 두 명의 여자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머리칼을 묶어올린, 맑은 금색 눈동자가 인상적인 미희.

그리고 제이와 같은, 은색 머리칼을 늘어뜨린 자그마한 여자아이.


명찰에 쓰여있는 이름은 티나. 제이처럼 특이한 이름이다. 본명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이상한 이름이다.

티나는 이마의 옅은 상처를 그대로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이 애도 미희만큼이나 정말 사랑스럽다.


"한율 오빠, 수고하셨어요! 물 드세요!"


이렇게 밝고 귀여운 여자애의 몸에 전투복이 걸쳐져 있는 현실에 쓴웃음이 나왔다.

우리들의 몸에 전투복이 아닌, 교복이 입혀져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목을 축였다.

불과 한 달 전만해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볼 수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한 숨이 절로 세어나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쑥, 그 불안을 말로 구체화하여 팀원들에게 뱉어냈다.


"있잖아. 우리들 살 수 있는 거 겠지?"


앗차, 괜한 소리를 해버렸나. 내 한 마디에 팀원들의 낯에 어두운 기색이 떠올랐다.

복수불반분이라고 했던가. 내가 쏟아낸 차가운 물에 모두의 기분까지 차갑게 가라앉은 것 같다.

하지만 금새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티나였다.


"그럼요! 그러기 위해서 훈련 받는 거 잖아요?"

티나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 지켜주고 싶다.

왜 이런 아이를 싸움터로 내보내야하는 건가. 혼란스러운 세상이 원망스럽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여기에 와버렸으니까. 도망칠 수는 없지."

"…그래. 좋게 생각하자. 위상력이라도 있으니까, 최소한 우리는 몸을 보존할 수 있는 거야."


티나의 웃음에 모두의 낯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나 티나와는 다른, 씁쓸한 미소들이었다.

물론 내 입에 걸린 미소도 그와 같다.


차원종과 차원 전쟁.

그 폭풍에 휘말려버린 우리는 발버둥쳐도 그 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기껏해야 중학생 정도밖에 안 된 우리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이 폭풍이 무사히 지나가길 비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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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타 사이트에서 동일한 제목으로 연재중입니다.

혹시나 그 곳에서 본 것 같다고 느끼신다면, 그 작가와 동일인물이

맞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2024-10-24 23:12: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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