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15. 승급심사 종료 -

Articulus 2016-10-23 4


국제공항부터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국제공항 에피소드까지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BGM과 함께 감상을 원하실 경우, 네이버 UNION 카페나 작가의 블로그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다소 잔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읽으실 때 주의하세요.

 





  ◆ 15-1

  어둠과 붉은 빛으로 휘감긴 이계, 심연의 왕좌.
  이곳에 선 이슬비는 특수요원이 되기까지의 마지막 임무만을 남겨두고 있다.

  『임무…표, …환된 차원종으로부… 생화…ㄴ하십…오.
  주의. 요원ㄴ…의 기억을 보ㅈ…하십시오.
  차원종을 쓰러…리거나 30분을 버ㅌ…면 임무는 성공합니다.
  요원님의… 무사ㄱ…환을 빕니다.

  분명히 같은 시스템의 음성이지만, 너무나도 이번에는 노이즈가 많이 끼어있어 온전히 의미를 알아듣기 힘들었다. 어떤 내용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통신불량에 괜히 꺼림직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중간에 들려온 말, '주의. 기억을 보ㅈ…하십시오' 라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곧 이질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귀로 들려왔다.


  "이곳까지 찾아왔구나, 어리석은 인간이여."
 
  머리를 울리는 음성의 끝에는 고대 악마의 형상을 한 차원종이 우뚝 서 있었다.
  그 거대한 몸집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이슬비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고 있었다. 그녀는 양손에 쥐고 있는 나이프를 더욱 꽉 쥐고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차원종과의 시선싸움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이 너무나도 가소로운 것인지 악마는 크게 웃었다. 

  "으하하하핫! 네 녀석들이 아무리 저항한다고 하더라도 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이곳은 나의 세계, 이 심연까지 스스로 들어온 너희는 나의 종들이 되겠지."
  "웃기지마, 차원종 따위에게 지지 않아!"
  "재미있군. 과거 네가 심연에서 나와 대결하였을 때 그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물러나주었거늘, 인간은 아직까지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이 땅을 밟았는가?"
 
  아마 저 악마 - 메피스토 - 는 현실의 본체와는 또 다른 허상의 존재일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과거의 일을 알고 있다는 듯 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가상공간은 그녀의 기억에 의존하여 생성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과거에 있었던 기억대로 모든 일이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일은 기억들이 얽혀서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말인가?

  "날 허상이라고 생각했는가?"
  "… 어떻게?"
  "몽매한 인간들이, 감히 나의 허상을 만들어 장난질을 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내 형상을 모방한 모든 존재에 깃들 수 있다. 곧 너희가 만들어낸 이 허상은 또 하나의 나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너희와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좋아. 이해했어. 하지만 너는 나에 의해 쓰러져야 하는 존재야, 현실의 너를 쓰러뜨리고 승리했던 것처럼 여기에서도 너를 쓰러뜨리고 나는 승리하겠어."
  "좋은 기세로군. 과연 내가 재미있게 보았던 인간들이로다. 상으로 네가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지."

  악마는 그렇게 말하고 계속하여 이슬비를 향해서 뿜어대던 살기를 거두었다.
  자신을 향하던 응축된 살기가 가라앉자 이슬비는 한숨을 내쉬며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이것도 적의 계략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방비를 풀지는 않았다.

  "너는 나를 쓰러뜨리고 원대한 힘을 얻기를 원하고 있지."
  "남의 사생활까지 다 알고 있는거야?"
  "정신은 나의 것, 따라서 이 세계는 곧 나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 세계를 만들어낸 너의 기억은 그대로 나의 기억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가 너를 읽을 수 있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이다."
  "좋아, 들려주려던 이야기 계속 들려줘."
  "군단은 너의 연인이 군단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에 기쁨을 표했다. 참모장…, 그는 결국 원수의 자식을 군단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지. 군단은 벌써부터 승리의 착각에 빠져 있다. 나 역시 그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기에, 그의 의식을 살핀 적이 있었다."

  이세하의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메피스토의 말을 듣자, 그녀는 자신에게 또 다시 이곳에서 겪은 나쁜 기억이 새어들어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세하에 대한 감정을 애써 지웠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고, 또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지금도 여전한데, 어떻게 그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쉽게 지울 수 있을까. 결코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악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군단 속에 있는 그의 정신에서는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허탈감과 공허함, 그리고 그리움이 느껴졌지.
  그가 겪고 있는 박탈감과 상실감은 사랑을 잃어버린 까닭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에 들어온 너를 보고선 그것이 옳은 것이었다고 나는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너는 과연 원대한 힘으로 참모장의 의식을 그에게서 떼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해** 않고서는 모르는거야. 무엇보다도, 난 그 가능성을 믿어."
  "의지는 누구에게나 있지. 하지만 그 의지를 이룰 힘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않다. 네가 아무리 원대한 힘을 가질 수 있더라도 그것은 필히 인간의 한계에 도달할 터, 그렇다면 그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

  슬비의 마음에 일순간 불신의 마음이 들었다.
  정말로 그녀가 그를 구할 수 있을까, 라는 할 수 없던 의심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아니다, 그녀는 분명히 칼바크 턱스의 말을 신뢰하기로 했다. 그녀가 발견한 유일한 답은 그녀가 특수요원이 되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시도해** 않고서는 모른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불가능을 확신할 수 있을까?
 
  "설령,"
 
  가정의 접속사로 악마는 말을 잇는다.

  "네가 그를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없다."
  "무슨 말이야, 그게?"
  "나는 군단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군단이 되어가는 그를 보건대, 그는 머지않아 군단의 일원이 된다. 고작해야 일 주일도 걸리지 않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슬비는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을 찾아서 외부 차원을 탐사 중이었던 그녀에게 그는 자신의 머리를 보라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너도 알겠지? 더 이상 나는 희망이 없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너무나도 우울하게, 그리고 슬프게. 하지만 그것에 굴할 그녀는 결코 아니다.
  그녀는 자기 입으로 말했다,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세하의 모습이 머리에 그려진다. 지금까지 그와 보냈던 추억이 다시 한 번 그에게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경험한 부정적 감정이 또 다시 밀려들어올까봐 애써 감추고 있었지만, 도저히 그에 대한 생각은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와 경험했던 모든 추억이,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너무나도 그리웠기에, 그리고 그 추억을 다시 만들어가고 싶기에.

  너와 단 둘이 임무를 나갔던 날,
  너와 남산타워에 같이 갔던 날,
  너와 손을 잡았던 날,
  너에게 고백을 받았던 날,
  너와 데이트를 하던 날,
  너와 가로수 아래서 사진을 찍었던 날,
  너와 처음으로 입을 맞췄던 날.

  이 모든 추억 끝에서, 그녀는 눈을 질끔 감아버리고 말았다.
  생각하기도 싫은 부정적 감정이 기쁨의 자리를 대신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끝에 상상되는 건, 너무나도 어두운 차원의 한 구석에 널부러져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었다.

  재와 먼지의 색으로 물들은 색감 없는 너의 머리,
  생기 없이 우울한 너의 얼굴,
  차원종의 위상력으로 물들은 너의 눈동자,
  한 없이 차가울 것 같은 너의 창백한 손,
  어둡고 음울한 갑주에 둘린 너의 몸,
  그리고 그런 너를 감싸고 있는 빛 잃은 그림자...

  뚝 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이, 마치 비가 처음에 내릴 때 아주 조금씩 계속해서 더 많이 내리는 것과 닮게, 그는 울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누구 하나 닦아주지 않았고, 너무나도 차갑고 시릴 것 같은 건틀렛으로 그는 겨우 자신의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왜 울어, 네가?
미치도록 울고 싶은 건 난데.
나도 울고 싶지만, 안 울고 있는데,
왜 울어, 이 바보야.
그러니까 왜 바보같이 이런 선택을 했어?
슬플 거라고 생각 한 번 안 해본거야?
왜 내 말을 안 들은거야?
너는 항상 너 밖에 몰라,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쭉.
울지말라니까, 바보야,
나도 울고 싶잖아.
 
  마치 진짜 그의 모습을 눈 앞에서 보기라도 하듯,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의 모습에 그녀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울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서 슬픈 감정에 정신을 지배당하게 되면, 분명히 그녀는 무너진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결코 울지 않기로 다짐했다. 감정을 꽉 억눌러야만 한다.
  그 다짐을 할 때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목소리로 악마는 속삭였다.
  "반드시 구하겠다는 결심으로군."
  "세하를 반드시 건져낼거야, 절대 그 어두운 곳에서 혼자 있게 두지 않겠어."
  "후후, 눈 앞에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에 무너지지 않았는가? 내가 너의 '의지'를 과소평가한 모양이로군."
 
  의지.
  그렇다, 여기는 의지의 시험장이다.

  "덤벼라. 너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 나 메피스토가 친히 너를 시험해주겠노라."

 
  ◆ 15-2

  "후우, 슬비가 잘 마무리해야 할텐데."

  계속되는 안 좋은 상황에 축 늘어진 유리가 잠시 대책실 밖으로 나왔다. 너무나도 어두운 내부 분위기는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전환해볼까 하는 생각에 그녀는 밖으로 나온 것이리라.
  대책실 밖에는 왠지 모르지만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고, 그녀는 왠지 모를 갈증을 느껴 음료수를 뽑기 위해 스커트의 주머니 속에서 꿍쳐놓은 잔돈을 꺼내서 자판기에 넣었다.
 
  먼저 500원 짜리를 넣고 그 뒤에 100원 짜리를 더 넣는 그 순간, 600원이 되어야할 자판기 내의 돈이 여전히 500원에 멈춰져 있었다. 동전이 나왔나 반환구를 찾아보았지만 동전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 내 돈! 안 돼애앳!"
  
  반환 레버를 계속해서 내려보았지만 500원만 나올 뿐 100원은 안에서 나오지 않자, 그녀는 사정없이 자판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누가보면 자판기를 때려 부순다고 오해할 정도로 그녀는 앞뒤로 사정없이 자판기를 흔들었다. 한참을 흔드니 자판기가 삼켜버린 줄만 알았던 100원 짜리가 반환구로 빠져나왔고, 앞으로 살짝 누여진 상태의 자판기에서 떨어져 또르르 어디론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앗, 내 100원! 멈춰!"
 
  또르르 굴러가던 100원은 어느 수풀 사이로 들어가 멈추었다.
  놓치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던 서유리는 멈춰선 100원 짜리를 손가락으로 들어올려 움켜쥐고선 무척이나 기쁜 표정을 지었다. 돈에 관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엄격한 그녀이기에 가능한 표정일 것이다.

  그 때, 그녀는 낯선 인기척을 느꼈다.
  오랫동안 검도를 하다보니 생긴 육감과 같은 것으로, 사람의 움직임이 이 근처 어디선가 느껴졌다. 이 근방은 분명히 특경대에 의해서 통제되는 곳인지라 민간인은 들어올 수 없는 구역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근처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일까?

  그녀는 우선은 몸을 숨기기 위해 수풀 아래로 앉았고, 가만히 주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분명히 근처에서 작은 소리지만,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들어올려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았다. 

  완전히 다는 보이지 않지만, 몇 명의 얼굴은 보인다. 
  남자들과 여자들로 구성된 이들인데, 모두 제복으로 맞춰입은 것 같이 짙은 색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스타일의 정장인지라 조금 더 자세하게 보자, 그들 중에서 왠지 낯이 익은 얼굴이 있었다. 분명히 그녀가 본 적이 있는 남자이다, 그런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어디서 봤지, 저 사람을. 기억해, 기억해, 서유리."
 
  최근의 기억을 뒤지던 그녀에게 일순간 그 얼굴이 보였다.
  플레인 게이트의 폐쇄를 위해 찾아왔던 세 명의 정부 소속의 공무원 중의 한 명이었다. 분명히 일반적인 공무원과는 다른 느낌이었는데, 바로 그들 중의 한 명이 저 남자이다. 게다가 그 남자 주위로는 완전히 다 알 수는 없어도 적어도 7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듯 했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설마 동료일까?

  저들이 왜 이곳에 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그의 근처에 있던 한 여자가 담배를 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팔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아 라이터를 꺼내나 싶었는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녀의 오른손의 검지 끝에 갑자기 불이 생긴 것이다, 분명히 라이터와 같은 점화기기는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것을 본 유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조심히 말했다.

  "위상력이지, 저거?"
 
  자신이 본 것이 틀림없다면 저것은 위상력이다.
  과거 차원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이능력은 마술로나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차원전쟁이 발발하고 몇몇의 사람들이 위상력에 각성한 이후로는 흔히 볼 수 있는 능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 대상은 분명히 위상능력자로 한정되므로, 도저히 위상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이가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마도 저 여자는 그녀가 알고 있는 저 남자의 동료일 것이다, 비슷한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면 저 여자 외에 다른 이들도 똑같이 위상능력자일까?

  "분명히 정부 소속이라고 했는데."

  유니온은 국가 간의 위상능력자를 이용한 싸움을 막기 위해 모든 위상능력자를 태어날 때부터 자라서 죽을 때까지 직접 관리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정부 소속이라고 밝힌 이들이, 위상능력자인 것일까?
  그녀가 알기론 유니온에 소속되지 않은 위상능력자는 벌처스가 전부다. 그나마 현재 벌처스는 위상능력자를 더 이상 보유하지 않기로 했고. 그런데 저들은 도대체 어떻게 위상능력자인 것일까?

  너무나도 이상한 느낌에, 그녀는 이 일을 빨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들키지 않게 몸을 낮춘 채로 재빨리 대책실 안으로 들어갔다. 과거 플레인 게이트 때처럼 저들과 충돌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만약 저들이 위상능력자일 시, 큰 일이 벌어지고 만다. 
  저들의 머릿수는 이 안에 있는 이들보다 더 많다. 뭔가 조치를 당장이라도 취해야 한다.

  대책실의 문을 닫자마자, 유리는 급하게 김유정에게 뛰어가며 소리쳤다.
  "언니, 유정 언니! 바, 밖에…!"

.
.
.

  "둥지, 여기는 뻐꾸기. 요원 전원 집합 완료했다. 이상."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음성은 김현우 요원의 목소리이다.
  강북 일대에 파견된 팀원들은 그들보다 선임인 이 남자의 현장지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요원의 집합을 보고하는 것도 이 남자일 것이다.

  "관리관 님, 들으신 바와 같습니다."
  은발의 여성은 지시를 기다린다. 그들보다 더 높은 직급에 있는 안경을 쓴 남성은 잠시 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신서울의 한 거리, 다행히도 차원종의 침략을 받은 곳은 아닌 듯 하다.
  조용히 밖을 응시하던 그는 그녀의 물음이 끝나자마자, 직접 휴대폰에 대고 답을 주었다.

  "정부에서 나왔다고 말하고, 프로그램의 중대한 오류가 발견되어 하드웨어를 수거해간다고 말하세요.
  물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부할 것이고, 저항하려고 하겠죠. 그렇게 된다면 쪽수로 밀어 붙이세요. 그리고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시고요. 그 일대로 다른 클로저들이 향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이쪽에서 손을 쓰기로 하겠습니다. 부디 빠른 처리를 부탁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드웨어는 수거조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입감. 처리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이상."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정말로 곧 싸움에 들어가는 것일테지.

  "후, 잘 되어야 할텐데 말이죠? 뭐, 잘 하겠지만."

  남자는 그렇게 웃음 지었다.

.
.
.

  쉬이잉.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무척이나 수상한 사람들이 안으로 들이닥친다. 하나같이 맞춰입은 것 같은 짙은 색의 정장을 입은 남녀는 모두 8명, 그 중 가장 직급이 높아보이는 사람이 그들 전체보다 한 발자국 앞서 나와 있었다.
  이 8명 전체의 통솔자로 보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걸어온다.

  "다시 뵙는군요, 검은양 팀. 절 기억하시나요?"
  "플레인 게이트에서 보았던 얼굴이군. 물론 그 때는 말 없이 있었지만."

  제이가 그의 말에 답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남자는 말했다.

  "네, 그렇죠. 그렇다면 저희가 누구인지도 아실테니, 긴 설명은 필요 없겠군요."
  "무슨 일로 여기에 온 거지, 그것도 저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말이야."
 
  제이는 남자 뒤의 다른 이들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고 묵묵히 다른 이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어떤 감정의 동요나 발로도 보이고 있지 않다. 제이는 그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분명히 어떤 훈련에 의해 단련된 이들이라는 것도 눈치챘다.

  제이의 질문에 남자는 답한다.
  "정부에서는 새로 유니온이 도입한 저 승급심사 장비에 큰 하드웨어적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저 장비를 수거해오라는 업무 지시가 있었습니다."
  "참 빨리도 찾아왔군. 하지만 어쩌지, 지금 저 기계 안에는 승급심사를 위해서 사람이 들어가 있거든? 그것도 우리 팀의 리더가 말이야."
  "그렇다면 강제 셧다운 기능을 사용해서 지금 당장 승급심사를 멈추시죠. 최대한 빨리 이 기계를 수거해야하거든요."
  "곤란하게 됬는걸? 지금 이 기계가 우리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서 말이야. 승급심사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요원의 말에 따르면, 대장이 저 안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때까지는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하더군. 그러니 우리 대장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줘야 하겠어."

  제이의 반박은 이미 예상했던 바이다.
  분명히 검은양 팀은 이와 같은 조치에 반발할 것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무력 사용 뿐이기에, 남자는 자신들의 팀원 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인을 보낸다. 그것은 왼손을 세 번 폈다 오므렸다 하는 것으로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사인을 인식할 수 있는 건 오직 그와 미리 이야기를 나누었던 팀원들 뿐이다.

  사인을 인식한 이들은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리고 통솔자의 지시만을 기다린다.

  "저희가 한 번 기계를 보도록 하죠. 분명히 구해낼 도리가 있을 겁니다."
  "아니, 그만 둬.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이 함부로 만지도록 놔두진 않겠어."
  "하하, 같은 공무원들끼리 왜 이러시나요? 소속기관만 다를 뿐이지, 우리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

  남자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김유정이 끼어들어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은 계속해서 그 남자가 숨겨왔던 본모습을 드러내게 하는데 충분한 말이었다. 그녀는 어떤 공문 하나를 꺼내어 들며 말했다.

  "행정자치부에 당신들에 대한 기록을 의뢰했어요. 돌아온 답은 다음과 같아요. 본 기관 내 신상정보 없음."
  "덮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제히 8명의 남녀가 달려들었다.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건 이곳에 남은 세 명의 검은양 팀 요원들이다. 전투요원이라고는 세 명 뿐인데, 너무나도 머릿수가 부족하다. 남은 인원은 비전투요원인 오세린과 일반인들이 전부인 이 상황에서 타개책은 도저히 발견할 수 없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건대, 분명히 이들은 이런 일에 스페셜리스트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있을 것을 이미 예측하고 미리 어떻게 상황을 대처할지 맞춰보고 온 것 역시 틀림없다.
  그들은 두 명씩 붙어 각각 제이, 미스틸테인, 서유리에게 다가갔고, 나머지 두 명은 기계 쪽으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나머지를 담당하는 모양이다.

  김유정은 코트 안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내어 다가오는 두 명을 향해서 겨누었다.
  그러자 다가오던 두 명은 움찔거리며 잠시 자리에 멈추었다.

  "다가오지마! 쏠거야!"

  김유정의 위협어린 말에, 기계로 다가가던 두 명 중 한 명이 제이를 상대하기 위해 다가간 이들 중 한 명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 현우 씨, 어쩌지?"
  "… 저항하면 똑같이 죽여. 나머지는 모두 기억소거를 하면 되니까."
  "오케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한 명의 모습이 순간 사라졌다.
  김유정은 눈 앞에서 놓친 사람의 모습을 살폈지만 시야가 닿는 곳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오세린이 그녀에게 소리질렀다.

  "부국장님, 위에요!"
  "에..?"
  "얌전히 죽어주시지!"

  미처 피할 틈도 주지 않고, 상공에서 김유정의 머리 위로 자유낙하하는 여자는 그녀의 머리를 노린다. 아마 그대로 목을 꺾어 그녀를 한 방에 잠재울 생각인지, 팔을 벌려 그녀의 목을 붙잡을 준비를 한다. 아마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몇 초 후면 김유정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 몸놀림은 일반인이 아닌 위상능력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이기에, 일반인인 그녀가 상대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죽음의 공포 때문인지 김유정은 자리에서 한동안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가 늦게라도 몸을 돌려보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몸놀림은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녀를 노리는 여자는 그녀의 회피가 헛된 수고라고 비웃음이라도 흘리듯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 때 그녀의 옷자락을 누군가 옆에서 거칠게 붙잡았다. 그리고 거기에 그녀는 아무런 저항없이 끌려나갔다. 그덕에 그녀는 아주 간만의 차이로 자신에게 들어오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김유정을 공격하던 여자는 자리에 착지하였고, 눈 앞에 있는 한 남자아이를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방해꾼이 끼어들었네."
  "헉... 헉..."

  김유정은 안도의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손에 들고 있는 권총으로 반격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저 땅에 주저앉은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교복 차림의 안경잡이 소년, 한휘성이 김유정 옆에서 꼿꼿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침입자를 향한 적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김유정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그에게 말을 한다.

  "피해…, 이 사람들, 정말로 위상능력자야."
  "아녜요! 서유리 선배도 저렇게 맞서 싸우고 있는데, 남자인 제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요!"
  "아아… 제발,"

  그녀가 무어라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의 바로 앞으로 그 여자는 다가왔다.
  그리고 김유정의 손에서 가만히 권총을 거두어가더니, 그녀의 복부에 정권 한 대를 날렸다. 가격당한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고, 적대감을 거두지 않는 한휘성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여자는 그에게도 다가오며 말했다.

  "넌 어떻게 해줄까? 어차피 기억을 다 잃겠지만."
  "당신들 아무리 이렇게 날뛰어도 소용없어요! 램스키퍼가 지금 이곳 상공에 있으니까요!"
  "… 유니온의 그 공중전함을 말하는건가? 그래서?"
  "예?"
  "그걸로 이곳을 초토화시킬 생각이기라도 하나**? 하지만 그걸 사용한다면 우리와 함께 너를 포함한 모두가 불길에 스러지겠지. 그런데도 쏠 생각이야?"
  "큭!"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서유리의 우연치 않은 정찰 덕분에 김유정이 이미 늑대개 팀에게 연락을 해놓은 상태이다. 트레이너는 램스키퍼를 이곳 상공에서 비행하고 주포가 이곳을 향하도록 설정해놓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효과가 없는 대응책일 수도 있다. 이 여자의 말처럼 램스키퍼의 주포라면 이곳 전체를 날려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화력 앞에는 아군과 적군의 구별이 없으므로 함부로 이곳을 공격할 수 없는게 정설이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기에, 한휘성은 그들의 양심에 호소해보기로 했다.

  "당신들, 정말로 사람인가요!"
  "…… 보다싶이."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저 기계를 강제로 중지시키면 이슬비 선배가 영원히 식물인간이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럴 거예요?!"
  "너는 아직 꼬마라서 세상이 돌아가는걸 모르구나."
  "꼬마, 아니예요!"
 
  소년의 반발에 여자는 웃음을 지을 뿐이다.
  그리고 그에게도 똑같이 정권을 먹여 기절시킬 생각인지, 오른손에 주먹을 꽉 쥔다. 그리고 다가오며 말하기를,

  "세상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란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들이 사는 곳이지."

  그리고 그에게도 주먹을 날린다.
  김유정과 마찬가지로 복부에 정권을 맞은 그는 금방 정신이 흐릿해지는게 느껴진다. 아픔보다는, 정신이 금방이라도 나가버릴 것 같은 어지러움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했다. 아마도 그가 생각하기론 이것은 위상력일테고, 위상력에 대한 면역이 전혀 없는 그로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옆으로 쓰러지면서도 완전히 눈을 감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왠지 낯 익은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입고 있는 옷과 머리색은 분명히 다른데, 얼굴은 너무나도 비슷했기에 같은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가 알기론, 그는 여기에 없을텐데.
  마지막으로 눈에 들어온 창백한 백색의 머릿카락을 휘날리는 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는 정신을 잃었다.


  ◆ 15-3

  "꼰대, 놈들은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야!"
  "나도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만 한다."

  사이킥 무브를 사용하여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다섯 명의 위상능력자들이 있다.
  이들은 김유정의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고 구로를 향하는 길이었다. 티어매트 대책실에서 지금 큰일이 일어나서 자신들이 습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은 곧바로 늑대개 팀을 움직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하지만 형상복제자 처리 임무로 인해 강북의 동쪽으로 나와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구로까지 움직이는 것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신서울의 동쪽에서 서쪽 끝으로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을 대비하여 램스키퍼는 구로 상공 위를 비행하고 있도록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도착했겠지. 다만 램스키퍼의 주포라면 그 일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안에 아군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차별적인 사격을 가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들이 구로구의 경계에 도착하기까지는 앞으로 10분 정도 남았다.
  과연 그 남은 시간동안 무사히 버텨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의문이다. 지금의 트레이너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그들이 그 시간만큼은 버티기를 비는 것 뿐이다.

.
.
.

  "헉… 헉…"
 
  땀을 닦을 새도 없다. 또한 숨을 고를 새도 없다.
  이슬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악마의 공격을 피하는 것 뿐이다. 아무리 강한 공격을 가하고 그녀가 출력해낼 수 있는 최대의 위상력을 밀집하여 공격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악마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악마를 쓰러뜨리기를 포기했다, 대신 30분 동안 생존하기로 결심했다. 즉, 모든 능력을 회피에만 쏟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세 쌍의 붉은 위광을 등 뒤로 강하게 뿜어내는 악마는 간혹 공중을 부유하기도 하면서, 화염 광선을 그녀에게 쏘아대기도 하며 그녀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었다.
  공격은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계속되는 공격 앞에 그녀는 악마를 상대할 의지마저 꺾여가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이겨내기로 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결코 '그'를 구해낼 수 없다는 그 생각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을 견뎌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그녀의 한계를 알아차린 악마는 그녀의 가까이로 다가왔다. 그리고 오른손을 뻗어 그녀를 낚아채 천천히 들어올렸다.

  "으, 큭..."
 
  온 몸이 강한 악력에 조여온다.
  악마의 손에 붙잡힌 그녀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남은 시간은 5분 가량, 기나긴 20분의 회피는 이걸로 끝인 듯 싶었다.

  "후후후,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너에게 남은 시간은 5분. 내가 너를 쓰러뜨리고 너의 의식을 흡수하는 데에는 5분이면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다. 20분 동안 이리저리 잘 도망쳤다만, 이제 그것도 이것으로 끝이로구나."
  "이것…, 놔아…"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구나. 그토록 나의 정신에 뜨겁게 와닿았던 감정이었건만,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어떤 감정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도 '사랑'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녀는 지금까지 그것 하나만을 의지해서 버텨왔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끝나다니. 더이상 그녀는 그것에 모든 것을 맡기지 못했다.
  그렇다, 그녀는 악마의 말대로 허무한 끝을 맞았다.

  "세하야, 미안해…"
  그녀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그에게 미안했다. 그를 구하겠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그녀는 그를 구하지 못했다. 그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녀는 스스로 나약한 의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이것은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그 죄책감 때문에 너무나도 미안해서, 그녀는 울어버리고 만 것이다.

  "흥미를 더 이상 둘 수 없구나. 이대로 나의 일부가 되거라."
 
  악마의 거대한 입이 열린다.
  그리고 오른손에 붙잡힌 이슬비는 저항하지도 못하고 그 안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그 때였다.



  『슬비야, 정신 차려!』
  "오세린, 선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목소리의 주인의 이름을 불렀다.
  악마는 자신의 세계에 침투해 들어온 침입자의 의식을 향해 소리쳤다.

  "이 녀석! 감히 또 다시 심연을 들여다보느냐!"
  『슬비야, 이걸 봐!』

  보이는 것이 없는데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무언가가 분명히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바로 밖의 상황이었다. 분명히 티어매트 대책실의 모습이었다. 오세린의 능력은 정신 간섭이고, 그것을 생각해볼 때 이곳에 있는 이슬비의 의식과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그녀 뿐이다. 그렇다면 이 모습은 오세린의 눈에 비추는 바깥의 상황일 것이다.

  그곳에는 낯익은 이들과 낯선 이들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낯선 사람들은 모두 한 팀인 듯 짙은 정장을 맞춰입고 있었는데, 그들은 낯익은 이들과 한바탕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봐! 너를 지키기 위해서, 모두가 싸우고 있어!』

  저기서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랜스를 자유자재로 휘두르고 있는 저 아이는, 미스틸테인.
  저기서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적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는 저 소녀는, 서유리.
  저기서 적들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강인한 체력과 힘으로 전체를 압도하는 저 청년은, 제이.
  그리고 날선 위상력을 곳곳에 흩뿌리며 그 누구보다도 더 처절하게, 그리고 더 아름답게 검무(劍舞)를 흩날리는 이 남자는,

  "세하야…"
  "윽! 뭐냐, 이건! 네 년, 감히 나의 의식을 조종하려드느냐!"

  악마는 고통스러워하며 이슬비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일순간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를 놓치지 않고 슬비는 그 손아귀를 빠져나갔고, 악마를 향해 다시 단검을 겨누었다.

  "동료들이 모두 싸우고 있어. 나도, 포기하지 않을거야."
  『그래! 잘 하고 있어, 슬비야! 힘내! 나도 여기서 너를 도울게!』
  
  메피스토의 말을 듣고 추측해보건대, 그가 그녀를 놓아버린 건 아마도 오세린의 정신 간섭에 의한 것인가 보다. 그리고 오세린은 계속해서 메피스토의 정신에 간섭하면서 그녀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겠지.
  악마를 향해 자신감으로 가득 찬 얼굴로 이슬비는 말했다.

  "남은 시간은 3분이야. 과연 그 안에 네가 날 잡을 수 있을까?"
  "크으으윽, 이 녀석드으으으으으으을!"
 
  메피스토의 온 몸이 화염으로 둘러싸이더니, 붉은 색으로 빛나던 그의 몸이 일순간 검붉은 색으로 뒤바뀌었다. 흉측한 악마의 모습을 그대로 복제해놓은 듯 하다.
  악마는 이슬비를 향해 화염광선을 쏘았고, 그녀가 피하는 궤적을 계속해서 따라가며 그녀의 뒤를 쫓는다. 아마도 남은 3분 동안은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에 짓눌릴 그녀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깨달았다.
  사랑의 감정이면 모든 것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거기에 한 가지가 더 포함되어야만 했다. 그녀는 그것을 동료애, 우정이라고 결론지었다.
  모든 이들, 바로 검은양 팀이 자신을 위해 싸우고 있다. 리더인 그녀가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도 동료들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같이 싸워주는 그녀의 사랑에게도.
 
  그녀는 이렇게 속삭였다.

고마워, 세하야.

.
.
.

  "어디서 나타난거야, 이 녀석은!"
  "이, 이게 설마 제3위상력?"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아…"
  "현우 씨, 어떻게 할거야! 빨리 결정해!"

  동료 팀원들의 공격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능원의 에이스들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공격은 이세하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인간과 차원종의 위상력이 공존하고 있는 꿈의 힘, 바로 제3위상력이 그의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세하는 날이 아닌 칼등으로 자신의 적들을 하나씩 유린했고,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검은양 팀 전원이 공격을 이어갓다. 그리고 마침내 네 명 정도만이 멀쩡한 상태로 남아있다. 이제는 수적으로 밀리지 않고,  1대 1로 대등히 싸울 수 있을 정도이다.
  상황이 이렇게나 나쁘게 흘러가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 그들은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 쓰러지지 않은 네 명 중의 한 명 - 현장 통솔자 - 에게 나머지 세 명의 시선이 모이자, 그 남자는 겨우 분을 억누른 표정으로 말했다.

  "**… 아, 씨… ***, 퇴각! 퇴각!"
 
  네 명 모두가 일제히 땅을 향해 무언가 던졌다. 그리고는 쓰러진 자신들의 동료를 한 명씩 부축하더니, 대책실의 출입문을 향해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뒤를 쫓으려고 하자, 땅에 던져진 무언가에서 연기들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금세 대책실 안을 가득 메워버렸다. 앞과 옆, 그리고 뒤에 누군가가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시계(視界)가 엉망진창이 된 것을 보고서, 검은양 팀은 추격하기를 포기했다.

  대책실의 환풍기 전체가 가동되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연기가 걷혀 앞이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정체불명의 남녀들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아쉽지만 그들을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불리한 조건임에도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들이 승리하였다는 것 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승리는 한 사람 덕분에 가능했다.
  바로 이 초대받지 않은 남자 - 이세하 - 덕분에.

  그에게 무엇이라 감사를 표해야할까?
  공식적으로 그들은 분명히 적이다. 유니온의 클로저로서 검은양 팀은 이세하를 체포해야만 한다. 그런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그가 보여주었던 행동은, 결코 인류의 적으로서 보여준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어라고 말이라도 걸기 위해, 그나마 그와 정말로 친한 관계를 맺었던 서유리가 그에게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세, 세하야…"
  "고맙다는 말 들으려고 너흴 도운게 아니야."
  "어? 으, 응."

  그렇게 차갑게 말을 던지더니, 그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검을 허공에 놓았다. 그리고 그의 검은 그대로 모습을 감췄다, 아마도 이차원으로 옮겨진 것이리라.
  그가 검을 놓은 것을 보아, 그는 검은양 팀과 싸울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정말로 그는 이곳에 어떤 이유로 왔던 것일까?

  그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대책실의 한 중앙에 있는 승급심사 프로그램 기기 옆에 누인 분홍빛 머리의 소녀가 있다. 그는 그녀가 누워있는 곳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모습에서는 전혀 위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그의 움직임을 말리지 않았다. 아니 제지할 수 없었다.

  김유정 역시 정신을 차리고 나서 이세하의 활약을 똑똑히 보았기에, 시선만 겨우 피하며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슬비를 향한 그의 접근을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비는 침대와 같은 기계의 위에 마치 헤드기어와 같이 생긴 무언가를 머리에 쓰고서 누워 있다. 눈을 감은 채 마치 잠들어버린 공주처럼 있는 그녀에게, 그는 잠을 깨우는 왕자처럼 다가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짧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길지도 않게, 그는 그녀의 따스한 볼에 메마른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잠시 떨어져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싱긋 웃더니,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매만지며 그녀의 머릿카락을 잠시 어루만졌다. 잠자고 있는 연인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는 남자의 모습이다. 지금의 이세하는 정말로 그러했다.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슬비는 이것을 전혀 모를테지만, 세하는 이것을 따스한 추억으로 가질 것이다. 정말로 그리운 그녀의 얼굴을 매만진 남자는 자신의 원을 다 풀었다는 듯, 그녀의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잠시동안 얼굴을 바라보기만 한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 흘러가고, 그는 슬슬 자신이 떠나야 할 때임을 알아챘다.
  애쉬와 더스트의 시선이 슬슬 그를 향할 때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 손을 뻗어 강제로 공간을 찢고 차원의 균열을 생성했다. 눈부신 보라색의 섬광이 빛나더니, 섬광 사이의 짙은 어둠 속으로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그가 잠깐 멈춰서더니 가까이에 있던 오세린의 이름을 불렀다.

  "세린 선배."
  "어, 어? 어, 세하야."
  "슬비가 깨어나면요,"
  "응."
  "승급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부탁해요."

  할 말 만을 남기고, 그는 정말로 차원의 균열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버렸다.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곧 보랏빛 섬광이 그치고 본래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그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서 그가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에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서유리는 생각했다.
  세하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 그건 위험에 빠진 그의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 15-4

  "용케도 버텨냈구나, 인간."
  "후우…"

  30분이 모두 지났음을 알리는 종료음이 바로 방금 전 울렸다.
  그것은 이슬비에게 뿐만 아니라 메피스토에게도 역시나 들렸나보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집요하게 그녀를 뒤쫓는 것을 멈추고, 우뚝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이렇게 시스테밍된 모양이다.
  기나긴 회피를 마치고 이슬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거친 호흡을 고르면서 이후에 펼쳐질 일을 기다렸다. 아마도 시스템이 합격 판정을 내리겠지.

  "너의 의지를 인정하마. 그리고 이 몸을 이겼으니, 네게 선물로 몇 가지를 알려주겠다."
  "그게 뭐지?"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는 앞으로 5일 후, 완전히 군단이 된다. 너는 그 안에 그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를 인간으로 되돌리지 못하리라."
  "너는 세하가 있는 곳을 알고 있지? 말해줘!"
  "그곳은 군단의 영지 중에서도 아주 깊은 곳 중의 하나, 재와 먼지의 영지이리니."
  "거기가 어디야, 말해줘, 제발!"
  "네 힘이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다."
 
  이상한 말만 남기고서 악마의 형체는 일순간에 빛의 가루가 되어 흩어져버린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어떤 형상이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는다. 그렇게 홀로 심연의 왕좌에 남겨지려고 할 때,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세 번째 임무 결과. 클리어.
  임무완수에 소요된 시간. 30분.
  축하드립니다, 요원님.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5초 후 본래 세계로 의식이 복귀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시스템의 음성이 끝나자 그녀의 일대가 다시 검은색으로만 가득한 공간으로 변했고, 그녀의 앞에 카운트다운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숫자는 5에서 1까지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고, 이제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그녀는 본래 세계로 되돌아가겠지.

  이 안에서의 경험은 절대 못 잊을 것이다.
  특수요원으로의 승급, 너무나도 어려웠지만 그녀는 해냈다. 이 어려운 도전을 모두 이겨냈다. 결코 그녀 혼자서였다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옛날처럼 독불장군과 같이 혼자서 합리적 방법을 생각하고 혼자서 임무를 수행했더라면, 결코 그녀는 이 자리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해준 사람들, 그녀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녀는 이렇게 모든 심사를 완료할 수 있었다. 그녀는 모두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생각할 즈음, 그녀의 의식은 이질적인 이 기기 안의 공간과 점점 멀어져갔다.

.
.
.


  "으음…"
  "슬비야? 괜찮아?"
  "음, 네에. 괜찮은 것 같아요."
  "하아, 정말 다행이야. 정말 걱정했어."

  슬비가 깨어난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김유정이 그녀의 안부를 물었고, 그녀에게서 괜찮다는 답이 오자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정신을 되찾자, 곧바로 그녀가 누워있는 기계 위로 서유리가 뛰어들었다.

  "슬비야아아아아앗!"
  "서, 서유리! 하, 하지마아!" 
  "우리 슬비,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걱정 됬는데!"
  "그, 그래, 알았어, 그러니까 이건 놓고 말해, 유리야…"
  "꺄아아아, 슬비야아아아아!"

  서유리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서야, 이슬비는 이곳이 진짜 세계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현실의 서유리는 이렇다. 언제나 이렇게 활기차고 남 걱정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그녀의 푹신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힌 채 있는 이 느낌, 평소 같았으면 마구 떨어지라고 그녀를 구박했겠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즐겁기에 그녀는 그냥 이대로 있는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승급심사 프로그램의 옆에 있는 프린터가 작동되며, A4 용지에 어떤 문서가 출력되었다.
  그 옆에 있던 오세린이 그것을 받아들고 잠시 읽어보더니, 방긋 웃음을 지으며 슬비에게 다가왔다.

  "슬비야."
  "네, 선배."
  "승급심사 모두 통과한 거, 정말 축하해. 김유정 부국장님, 여기 결과 보고서에요."
  "어디보자, 클로저 넘버 P3719, 유니온 신서울지부 정식요원 이슬비.
  1단계 심사, 합격. 2단계 심사, 합격. 3단계 심사, 합격. 상세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정말 성공했구나, 슬비야."
 
  김유정도 보고서를 읽으며 방긋 웃는다.
  오랫만에 보는 그녀의 미소이다. 그녀가 미소짓는 것을 보고서 슬비 역시 기쁜 듯이 웃음지었다.

  김유정은 잠시 흠흠, 하며 목을 가다듬더니 이슬비에게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히 그녀가 공적인 자리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함께 있었다.
  "이슬비 요원?"
 
  평소와 다른 호칭에 그녀는 김유정이 무언가 공적인 지시를 내리려는 것임을 그녀는 단박에 이해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다르게 김유정의 관등성명을 분명하게 말하며 응답했다.
  "네, 김유정 부국장님."
  "본 보고서의 결과에 따라, 나 김유정은 유니온 신서울지부 요원관리국 부국장의 권한으로 이슬비 요원을 정식요원에서 특수요원으로 진급하도록 명합니다."

  말을 마치고 김유정은 자신의 오른손을 뻗어 슬비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말하기를,

  "슬비야, 진급 축하해."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슬비 역시 말했다.
 
  "고마워요, 유정 언니.
  그리고 저를 지켜준 모두, 정말 고마워요!"

  어두침침한 대책실이지만, 이 안의 분위기는 정말로 화기애애했다.
  이 안에 있는 모두가 그녀에게 진급을 축하하는 말을 건네며 웃음 짓는다. 뒤늦게 이곳에 도착한 늑대개 팀도 그녀의 진급사실을 듣고, 그녀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 이런 축하나 하려고 급하게 달려온건가?"
  "나타, 축하할 일은 분명히 축하해**다."
  "알아, 안다구. 그래서 축하도 해줬잖아?"
  "흠, 그러면 그런 말은 하지 말도록. 그런 말을 하면 축하를 안 한 것만 못하니까."
  "역시 꼰대 기질은 어디 안 가는군? 난 저쪽에 가서 좀 쉬겠어, 너무 피곤해."
  "마음대로 하도록."
 
  모두에게 축하를 받고 있던 슬비에게 오세린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양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잡아주면서 말했다.

  "슬비야, 정말 축하해."
  "고마워요, 선배. 선배가 없었으면 전 절대 세 번째 심사를 통과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니야.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저기에 있는 제이 씨나 유리, 미스틸테인이 아니었으면, 나도 너를 도와주지 못했을 거야."
 
  그녀의 말은, 이곳에 침입한 이들과 맞서 싸운 다른 팀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에는 세하의 이야기가 쏙 빠져있다. 어떻게 된 거지?

  "저기, 선배."
  "응?"
  "세하, 는요?"
  "아, 그렇지."
  "세하가 왔었죠?"
  "응. 세하가 우리를 살렸어. 세하가 오지 않았다면, 아마 우리는 모두 죽거나 기억을 잃었을 거야."
 
  이슬비가 본 그 모습은 분명하다.
  다른 팀원들과 함께 적들과 맞서 싸우던 그 남자는, 분명히 세하였다. 머리색과 입고 있는 옷은 예전의 그와는 다를지라도, 분명히 그의 얼굴 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그 사랑스러운 기척,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세하가 너한테 전해주라는 말이 있었어."
  "세하가요?"
  "응. 여기 있는 우리 모두보다 더 먼저, 너한테 진급 축하한다고 말했다? 진급 축하해라고 전해달랬어." 

  왜일까?
  그렇게 힘들었는데, 이 말 한 마디에 그녀는 보상받는 것 같았다.
  슬비의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고, 그녀의 눈가에는 어느새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너무나도 고마워서, 그저 말로는 못하고 눈물로만 이 전해지지 않는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말 못하고, 슬비는 그대로 고개만 숙인채 조용히 흐느꼈다.

  멀찍이 떨어져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티나가 옆에 있던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트레이너."
  "뭐지, 티나?"
  "그 - 이세하 - 에 대한 나의 판단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 너의 판단이 옳았다, 티나. 그는 정말로 인류에 대한 적대감이 없는 모양이로군."
 
  그렇게 대답하고서, 트레이너는 잠시 이세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고, 오직 그가 이곳에 왔었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의 모습을 감히 생각해보건대, 그는 분명히 차원종이 아닌 인간이다.

  그는 조용히 혼잣말을 내었다.
  "좋은 아들을 길렀구나, 지수야."





  반갑습니다! 거의 일 주일 만입니다.
  오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이번 주는 그렇게 바쁘지 않아 연재를 할 수 있었네요.
  그래도 다른 작가님들의 연재속도만큼은 아니니, 더욱 분발해야겠습니다.

  저번 화가 명전에 갔더라고요.
  이렇게 저를 좋게 봐주시니 뭐라고 감사드려야할지요. 더욱 좋은 내용과 흐름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화에서 뵈어요~

  p.s. 특요세하 키우느라 소설 약간 늦어졌...읍읍!!!


2024-10-24 23:11:5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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