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13. 승급심사 시작 -

Articulus 2016-09-17 4


국제공항을 포함한 시즌 2의 스토리의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국제공항 에피소드부터 클리어하지 않으신 분들 중 스포일러를 보기 원하지 않으시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클로저스의 기존 설정에 기반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이와 마찬가지로 국제공항 이후의 스토리는 완전히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하므로, 본작의 에피소드와는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BGM을 들으며 감상하고 싶으신 경우, 네이버 유니온 카페의 글이나 작가 블로그의 글을 이용해주세요.

 

 

※ 신지역 군수공장 상공의 스토리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기 싫으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13-1



  "슬비야! 너 이렇게 계속 단독행동할거니?"

  "……"

  "김가면 씨가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으면, 넌 분명히 그 세계에 영원히 갇혀지내야만 했을거야. 도대체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벌이는 거니?"

  "……"

  "후우. 세하를 생각하는 네 입장도 이해하겠지만, 너희의 관리자인 내 입장도 생각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무엇보다도 정말 무모했어, 플레인게이트 탐사는 기본 4인 1조로 이루어지는데, 그곳을 아무리 익숙하다고 하더라도 혼자 들어가다니."

  "걱정 끼쳐드려 죄송해요, 언니."

  "아픈 사람을 앞에 놔두고 이렇게 뭐라하는 것도 보기는 좋지 않으니까, 내일 계속 이야기하자. 오늘은 푹 쉬도록 해."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김유정은 잠시 슬비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슬비는 그저 그녀가 자신에 대해서 많이 원망해서 이러나보다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녀는 곧 몸을 돌려 병실의 문을 향해 움직였다.

  하이힐의 굽이 병실의 바닥을 때리는 발자국 소리가 잠시 문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곧 김유정은 몸도 돌이키지 않고서 말했다.


  "대충 유리와 미스틸테인에게 상황은 들었어. 세하와 싸웠다면서."

  "…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싸웠다던데, 그게 사실이니?"

  "사실이에요, 언니."

  "아예, 세하에겐 공격이 통하지 않는거니?"

  "완전히 통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통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 그래. 듣고보니 정말 무모했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구나."

 

  그런 여운이 남는 말을 남기고서, 정말로 김유정은 병실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겨진 슬비는 이불을 자신의 목 부근까지 끌어올려 덮고선, 잠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생각은 그녀가 정신을 잃기 전에 하던 그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더욱 강해져야만 해. 세하보다 약해선, 세하를 구할 수 없어."

  

  그녀의 혼잣말, 이것은 그녀가 이미 생각했던 것이었다.

  정말로 세하를 넘지 못하는데, 그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세하에게 힘을 준 이는 다름아닌 애쉬와 더스트. 그들은 차원종 중에서도 최고위급 차원종이다. 아무리 지금의 그녀가 처음 그들과 만났을 때보다 많이 성장하고 강해졌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힘의 차이를 느낀다.

  하물며 그들에게 힘을 받은 세하가 그녀를 못이길까?


  세하는 위상잠재력, 구현력 등의 모든 수치에서 그녀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우위에 있다. 특히 잠재력만큼은 그녀가 넘을 수 없다. 그런 그가 최선을 다해 싸우게 된다면, 그 어떤 정예 클로저 요원이 달려들어 그와 싸울지라도 그를 이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까의 전투에서는 이세하가 최선을 다해 싸우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분했다. 자신을 그렇게 있는 힘껏 싸우고도 이 모양인데, 그는 그러하지 않았다니. 그가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라는 그 사실에 그녀는 너무나도 분했다.

  그와 싸우던 당시에는 나름대로 그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것은 그녀가 마음대로 한 생각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만 할까?

  어떻게 해야, 그와 동등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싸울 수 있을까?

  그가 최선을 다하더라도 그와 최소한 막상막하로 싸울 수 있을 힘을,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을까?


  그녀의 생각이 과거 그녀가 아카데미에 있을 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녀는 한 가지를 생각해냈다.


  유니온이 보유하고 있는 최정예요원들이 있다. 그들의 수는 전체 클로저 수에 비하면 극히 소수이지만, 그들의 힘은 모든 클로저의 상위권 전체를 아우르며 그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위상력의 질은 일반 요원과 급을 달리하는데, 유니온이 위상력의 3차 리미터 해제 과정 중에서 어떤 기술력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정식요원에 비해 몇 배는 강화된다고 한다. 즉 더욱 위상력을 강하게 구현해낼 수 있다.

  그들의 직급은,


  "특수요원."


  그 이름을 내는 순간, 이슬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그 다음으로 행할 것이 무엇일지 정해졌기 때문이리라.

  특수요원이 되면, 분명히 이세하의 바람대로 그녀가 위험해지는 일은 없겠지.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 칼바크가 말한 대로라면 말이다.


  "세하가 데이비드를 쓰러뜨리도록 놔두지 않는다면 데이비드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렇다면 세하가 그를 쓰러뜨릴 때까지 그를 잠자코 놔두어야 하는걸까? 하지만 데이비드가 쓰러졌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갑자기 밀려든 고민에 그녀가 얼굴을 찌푸릴 무렵,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답을 완전히 주지도 않았거늘, 스스로 최선의 답을 찾아낸 것인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인간은 놀랍구나. 너희라면 그를 구해내고서도, 그 남자를 물리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를 구하여라. 너희가 손을 맞잡으면, 능히 그 남자 역시 상대할 수 있으리라.

 

  익숙한 목소리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이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녀는 알고 있다.
 
  되물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되물을 시간도 주지 않고 목소리는 사라져버려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목소리는 그녀의 고민에 끝을 내었다. 그녀가 그를 구해야하는 당위성이 이것으로 증명되었다.
 
.
.
.

  신서울 강북 도심의 어느 정부 청사.
  밤이 늦은 시간임에도 이곳 청사는 불이 꺼질 줄 모른다. 이 나라 공무원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는지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수많은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 중에서도 어느 한 사무실, 이 사무실은 상당히 높은 직급의 공무원의 사무실인지 사무실 안에는 집무용 책상이 하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은 상당히 높은 직급을 가지고 있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자신의 직급과 이름이 쓰여진 고급 명패를 가지고 있다. 명패에 쓰인 직급은 대외협력국장이다. 이 정도 위치라면 상당히 높은 직급의 고위 공무원이다.

  그는 전화를 하고 있었는데, 그의 앞으로는 몇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묵묵히 이 높은 직급의 공무원이 전화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아하하, 걱정 마십시오, 국장님.
  이미 계획을 세워두고, 그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순간도 미소를 잃지 않고 간간이 너털웃음을 지어내는 이 공무원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하핫! 역시 국장님이십니다, 벌써 그렇게 손을 써주셨다니.
  걱정마십시오. 100번 중 1번일지라도 그 한 번의 시퀀스를 저희가 파악해낸 이상, 결코 빠져나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플랜 B 역시 준비되었으니, 제거는 어렵지 않겠죠."

  잠시 말을 멈춘 뒤, 그는 곧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놈들은 우리의 것입니다."

  곧 전화가 끊어지고, 이 고위 공무원은 집무용 책상 위에 놓여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 미안하네. 유니온의 요원관리국장에게 전화가 와서 말이지.
  어디보자, 우리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었지, 한재민 씨?"
  "이번 '희생양' 계획의 중반부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아, 맞아맞아. 그랬었지. 나이가 이렇다보니 금방 잊어버린단 말야. 하하하, 그러니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보고해줄 수 있겠나?"
  "…… 네에…, 그렇게 하지요.
  현재 개발되어 유니온에 양도된 가상현실을 이용한 신규 승급심사 프로그램의 심각한 결점을 이용해서, 검은양 팀 전체를 와해시켜 버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계획은 드렸던 계획서를 계속해서 참고해주시면 되겠고, 중요한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보고를 받는 고위 공무원은 남자의 말에 따라 계획서를 넘겨가며 말 없이 계속해서 그의 말을 들었다.
  "이슬비 요원은 프로그램에 참가시켜 제거, 이슬비 요원의 제거가 끝나면 서유리 요원은 타 부서로의 전근, 미스틸테인 요원은 독일지부로 재발령, 제이 요원은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는 것으로 완전히 검은양 팀은 해체될 것입니다."
  "흠... 유니온이 그들의 처리를 우리에게 맡겼을지라도, 언제 등 돌리지 모르는 조직이네. 우리가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유니온은 바로 꼬리를 끊고 도망치겠지. 그러니 절대 실수가 있어선 안돼, 알겠지?"
  "온갖 더러운 일을 다 맡아온 저희입니다. 실수란 없죠. 저희 팀 외에도 다른 팀의 요원들에게도 이미 상황은 전파해두었으니, 아마도 원내 전체 요원의 합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선배들에게 이능원의 문제 해결력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만, 막상 일을 맡기게되니 매우 듬직하군.
  그나저나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왜 굳이 그녀를 테스터로 사용하려는거지?"
 
  안경을 쓴 남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미소가 잘 어울리는 남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 미소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싸늘하였다.

  "가족이 없어야, 뒤탈도 없거든요."



  ◆ 13-2




  다음 날 아침, 말끔하게 새 정식요원복을 입은 이슬비는 평소와 같이 강남 GGV 근처의 아지트에 출근했다. 다행히도 심하게 입은 줄 알았던 화상은 하룻밤만에 금세 회복되었고, 지금은 완전히 말끔하게 나았다. 이것도 아마 세하의 배려였을까?

  전날의 싸움의 흔적이라고는 손을 감싸고 있는 붕대와 얼굴에 붙이고 있는 반창고 몇 개가 고작이었다. 며칠이 지나면 이 상처들도 곧 아물 것이다. 위상능력자의 회복력은 일반인에 비해서 월등하니까.
  검은양 팀은 최근들어 강남 일대의 순찰을 주 임무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커다란 출동명령은 없다. 이 안락함은 아마도 커다란 전투를 이미 치른 이들에 대한 보상일수도 있겠지만, 사실 유니온이 그들에게 일을 떠맡기지 않았을 뿐 강남 사태만큼이나 커다란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늑대개 팀은 여전히 이세하, 코드명 스트라이커의 출현을 감시하고 있고, 여차해서는 그를 제거하려고 까지 하고 있다. 아무리 한 번 이세하를 풀어주듯이 놓아주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나타의 목숨을 살려준 검은양 팀에 대한 답례일 뿐인지라, 이미 빚을 갚은 이상 더이상 그들의 호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유니온은 이세하를 제거하는데 성공하면 그들의 수배령을 완벽히 없애주겠다고 해둔터라, 늑대개 팀이 그를 놓아주리라는 계산은 아예 제외시키는 게 옳다.
  그에 비해 검은양 팀은 일선에서 물러난 후 후방 감시 업무나 담당하고 있으니 어처구니 없을 일이다.


  슬비가 출근했을 때에는 이미 다른 팀원들이 모두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고, 김유정마저도 그곳에 와있는 상태였다. 자신이 제일 늦게 출근한 것을 알고서 약간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말을 대신한 후 이슬비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평상시와 같은 나른하게 앉아있기만 해야하는 하루가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오늘은 약간 다른 모양이다. 임무가 있을 때처럼 김유정의 브리핑이 시작된다.

  "슬비가 왔으니 이야기를 시작할게. 슬비를 빼고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우리 검은양 팀은 세하에 관한 한 유니온의 기존 명령을 모두 불복하기로 했어. 우리의 의견은 이미 총 본부에 알린 상황이고, 총 본부는 아직 이렇다할 답을 주지 않고 있지. 아마도 총 본부의 의중은 우리에게 알아서 하도록 할 생각인듯 하고."

  유니온은 그들에게 이세하와 관련한 모든 업무에서 손을 뗄 것을 명령했지만, 김유정은 이에 대해서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이다. 유니온의 공식적인 답은 없었고 아마도 이대로 그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재량권을 부여할 생각인가보다, 아니면 소용없으니 진이나 빼다가 절망해라 라는 식이든지.

  "우리는 기존의 유니온이 말한 대로 세하의 목숨을 거두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을거야. 어떻게 해서든 세하를 구할거야. 그렇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과는 또 다른 방법이 필요해. 이미 정도연 박사에게 새로운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상태이고, 그동안 우리는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그리고 플레인 게이트는 예정대로 폐쇄 수순을 밟을 예정이니, 참고해두고."
  "유정 언니."
  "슬비야. 칼바크 턱스가 말한 방법은 논외로 하자. 그 방법대로 했다간 네가 위험해져. 세하를 구하려다가 너를 잃으면, 그것은 세하를 구하지 못하는 만 못해."
  "아뇨, 저와 세하 모두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정말이니, 슬비야?"
 
  김유정의 질문에 슬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었다.
  "지난 밤에 칼바크가 말해줬어요, 아무 걱정 말고 세하를 구하라고.
  제가 생각한대로 움직이라고 그는 말했어요."
  "칼바크? 그것보다도 슬비 네가 생각한게 뭔데?"
 
  김유정의 말에 그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매우 정중하고도 절제된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유정 언니, 유니온에 특수요원으로의 승급심사를 요청해주세요."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와서인지 김유정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것은 제이 역시 마찬가지였나보다.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해서 다리를 떨면서 오늘자 신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그 역시 놀라며 유정과 함께 물었다.


  "승급심사?"

  "대장, 그거 엄청 힘든건 알고 말하는거 맞아?"


  김유정과 제이가 한 마디씩 돌아가며 묻는 말에 슬비는 대답해**다.

  물론 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긍정이었기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금세 고민에 빠지는 김유정을 대신해서 제이가 다시 물었다.


  "정식요원으로서는 기가 안차는거야?"

  "아뇨, 더 강한 힘을 얻기 위해서에요."

  "이유는 뭐야? 내 생각에 대장은 충분히 강한걸."

  "세하와 싸울 때 깨달았어요. 아직도 저는 세하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걸요. 지금의 힘 만으로는 세하를 구할 수 없어요. 따라서 제가 세하에게 위상력을 주입할 때에도 지금의 저로서는 정말로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만 겨우 세하를 구할 수 있겠죠. 하지만 특수요원이 되면 위상력의 리미터가 더욱 해제될테니, 완전히 위상력을 쏟아붓지 않더라도 세하로부터 차원종의 위상력을 떨어뜨려놓을 수 있을 거예요."

  "음… 특수요원의 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서도…"


  말 끝을 흐리는 제이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고민에 빠져있던 유정도 쉽사리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저 유리와 미스틸테인만이 슬비의 말을 듣고 그녀의 말에 찬동할 뿐이었다.


  "언니, 언니! 칼바크도 그렇게 말했다고 하잖아요? 분명히 가능할 거예요."

  "슬비 누나가 특수요원이 되면, 분명히 세하 형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말을 듣고서도, 김유정은 당혹스런 표정을 여전히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는 것처럼, 그녀는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놓칠리 없는 슬비가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뭔가 있나요?"

  "으, 응? 사실 그게…"

  "무슨 일이에요, 언니?"

  "슬비 너라면 충분히 공적이 있으니, 특수요원으로의 심사를 건의할 수는 있어. 하지만 걸리는 문제가 하나 있어서 그래."

  "문제요?"

  "사실 최근들어 유니온에서는 특수요원으로의 심사 과정에서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 같아. 혹시 정식요원으로 승급할 때 사용되었던 큐브를 기억하니?"


 

  절대 그 끔찍한 악몽을 그녀는 잊을 수 없다.

  검은양 팀원들 모두가 겪었던 그 악몽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다시는 생각하기 싫었던 그 악몽을 다시는 생각하기 싫어서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었다.


  "기존의 큐브는 질량을 가진 입체영상과 교전하는 과정 중에서 클로저가 부상을 당연히 입을 수밖에 없도록 고안되었어. 그래서 유니온은 심사자가 부상을 입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상현실을 이용한 새로운 심사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여기에서 안정성의 문제가 유니온 관계자들로부터 나오고 있어."

  "안정성의 문제."

  "안전성이 충분히 검토된 이후라면 가능해. 하지만 그 전까지는 절대…"


  띠리릭- 띠리릭-

  아주 심플하고도 평범한 휴대폰 벨소리이다.

  어디에서 전화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김유정은 잠시 말을 멈추고 전화를 꺼내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잠시 그녀의 표정이 달라지더니,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요원관리국 부국장 김유정입니다.

  네? 슬비를요? 안 됩니다, 안전성이 검증되지도 않았다고 소문이 파다한 그 프로그램에 슬비를 보내겠다니요?"


  우연의 일치일까?

  김유정의 입에서 나온 말을 바탕으로 추론해보았을 때, 분명히 이것은 특수요원으로의 승급심사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특히 슬비의 이름이 나온 것으로보아, 아마도 그녀가 갑작스럽게 심사대상이 된 모양이다.


  『이렇게 계속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곤란하네, 김유정 부국장.

  이미 자네가 관리하는 검은양 팀은 명령에 불복종한다고 선언했어. 그래서 우리는 이세하 군과 관련된 사건에 한해서는 자네들의 재량권을 인정하기로 한 발 물러서줬는데, 이렇게 또 다른 명령에도 불복종한다니. 이래가지고 어디 조직이 굴러가기나 하겠어?

  그리고 승급 프로그램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말은 자네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야. 다른 요원들은 특수요원 승급심사의 기회를 얻지도 못해서 아쉬워하고 있는데, 이렇게 자네의 사견으로 이슬비 요원의 승급을 가로막으면 과연 그녀라고 해서 좋아할까?』


  "……"

 

  『자네는 데이비드 전 지부장의 배신을 일찍이 눈치채고 대응한 능력있는 직원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나올 경우, 우리도 어쩔 수 없어. 조직의 규정대로 명령불복종의 책임을 물어 검은양 팀을 해체하는 수밖에.』

 

  "말도 안돼……"


  『그러니 우리의 말을 들으란 말이야. 안전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니까?

  테스트와 관련하여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을 약속하지. 자세한 사항은 전자 문서를 확인해보시게. 그럼.』


  전화가 끊어진다.

  김유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유니온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표정, 그리고 전화 상의 분위기, 그리고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했을 때, 이슬비는 특수요원의 심사를 받게될 모양이다.

  하지만 김유정이 이렇게 완강하게 반대한다는 것은,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맞는 모양이다. 유니온에서 이를 이유 없이 강행하려는 것만 보더라도, 분명히 구린 무언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언니, 무슨 일이에요?"

  "슬비야, 미안해!"


  김유정이 갑자기 이슬비를 껴안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마도 슬비가 짐작한 바가 맞는 모양이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슬비는 자신에게 안긴 유정을 토닥여주며 위로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상황은 정말 최악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13-3


  "이봐, 꼰대.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있어야 하는거지? 빨리 놈을 썰어버리고 싶다고." 


  강북의 어느 번화가에 있는 커피숍 안에 있는 늑대개 팀은 평화로운 일상과 마주하고 있다.

  어제 아침, 그들은 코드네임 스트라이커 라고 불리는 차원종이 된 이세하를 격퇴하고, 그의 무기까지 파괴하는데 성공하였다. 늑대는 언제나 함께 공격한다는 트레이너의 방침대로 협공을 하자, 그는 그 이전에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도 쉽게 격파되었다.

  물론 그를 짓누를 수 있었던 건, 무지막지한 위상력을 가진 트레이너의 기량 덕분이었겠지만.

 

 

  음료를 시키고 그것을 마시면서 시간을 대충 떼우고 있는 지금은, 나타에게는 무척이나 시시하고 재미없는 것인가보다. 그래서 투덜거리는 것이겠고.

  장난기가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하피가 말했다.


  "나타~ 이 얼마나 평화로운 일상인가요? 싸움도 없고, 아무도 우리를 쫓지 않아요. 이 정도면 정말 꿈과 같은 자유가 아닌가요?"

  "**! 이딴 나른한 일상 따위 바라지도 않았다고!"

  "적어도 자유를 쫓아 도망다니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말이죠? 심심하면 저랑 춤이라도 한 곡 추실래요? 일전에 못 춘 것도 있으니 말이죠."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절대 당신과는 안 출거야, 이 주정뱅이 여자."

  "숙녀에게 그렇게 말하면 꽤나 미움받을 텐데요?"

  "헹! 미움 받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매우 일상적이면서도 유치한 말다툼을 하피가 한창 즐기고 있을 무렵, 눈 앞에 놓인 아이스크림을 완전히 다 먹어치운 티나가 트레이너를 바라보며 말했다.


  "트레이너, 차가운 아이스크림의 재보급이 필요하다."

  "흠, 티나 벌써 세 개째다. 너무 많이 먹는것 아닌가?"

  "이렇게 더운 커피숍에 있으면 체내열이 축적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나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차가운 것이 필요하다."

  "알겠다. 대신 아이스크림보다 차가운 음료를 가져다주도록 하지."

 

  트레이너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곧 말 없이 앉아있던 레비아가 무언가를 말하려는듯 트레이너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알아챈 트레이너가 먼저 묻는다.


  "말할 거라도 있나, 레비아?"

  "트레이너 님, 사실…"

  "사실?"

  "너무, 배고파요…… 점심 때가 가까워진 것 같은데…"

  "음, 미안하지만 아직 점심이 되기까지는 2시간 정도 남았다. 아침을 너무 부실하게 먹은 건가, 레비아?"

  "그런 모양이…"


  레비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타가 끼어들었다.

  "뭐야, 네 녀석, 밥 맛 없다고 안 먹은 내 것까지 먹어놓고선?"

  "……"

  "나타~ 숙녀에겐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말했죠?"

  "당신한테 들을 말은 아니거든?"


  다시 티격태격 말싸움에 들어가는 나타와 하피, 그리고 레비아는 나타의 말에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라 답해주어야 좋을지 고민하던 트레이너는 자신을 향해서 계속해서 차가운 음료를 가져올 것을 요구하는 티나의 눈치를 살피고, 카페의 빵이라도 사다줘서 상황을 무마시키는게 좋겠다고 생각하고선 계산대로 갔다.


  "뭘 도와드릴까요?"

  "커피번 2개와 망고 프라프치노 주시오."

  "커피번 2개, 망고 프라프치노로 주문하셨고요? 또 필요하신 것 있나요?"

  "없소."

  "커피번은 데워서 드릴까요, 그냥 드릴까요?"

  "데워서 주시오."

  "총 1만 3천원 결제 도와드릴게요."


  주머니 속에 있는 지갑 안에서 카드를 하나 꺼내어 건네고는, 잠시 후 다시 건네받은 뒤 그는 자리로 돌아갔다. 3분 정도가 지나고 고소한 빵 냄새가 카페 안을 가득 메울 즈음에, 직원 중 한 명이 그들이 있는 자리로 따뜻하게 데워진 커피번 2개와 망고 프라프치노가 든 큰 컵을 가져다 놓는다.

  맛있게 드세요, 라는 말과 함께 직원이 자리가 떠나기가 무섭게, 티나와 레비아는 자신의 앞으로 그들이 바라던 것을 가져다놓고선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둘의 모습을 보면서 트레이너는 조용히 혼잣말을 내었다.


  "정말 **들의 아버지가 된 느낌이군."

 

  말을 거두고 그도 남겨진 음료들을 모두 마시려던 그 때,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의 벨소리를 없애고 진동으로 놔두는 것은 언제라도 그가 전투 상황에 들어갔을 때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진동이 계속해서 이어지는걸로 보아, 분명히 어딘가에서 전화가 온 모양이고.

  형식적으로나마 수배 중에 있는 그에게 전화를 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애초에 그의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도 극소수이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전화를 걸만한 사람을 꼽을 수도 있는데, 아마도 전화의 발신처는 유니온이겠지.


  휴대폰을 자켓 안 주머니에서 꺼내어 바라본 그는 자신의 예상대로임을 알고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소."

  『유니온입니다. 당신들에게 하달된 임무가 있습니다.』

  "'목표'와 연관된 일이오?"

  『아뇨, 미확인된 차원종입니다. '목표'와의 연관성은 알 수 없지만, 갑작스럽게 출현한 것으로보면 분명히 냄새가 나는건 사실입니다.』

  "흠, 차원종의 처리인가? 그렇다면 우리보다는 검은양 팀에게 맡기는 것이 낫지 않소?"

  『검은양 팀은 현재 따로 수행 중인 임무가 있습니다. 가용 전력 중에서 믿을 만한 건 역시 당신들 뿐입니다.』

  "위치만 알려주시오, 금방 찾***다."

  『위치는 광진구 자양동의 K대입구 사거리입니다. 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니, 빠른 출동과 처리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해당 차원종의 잔해를 꼭 수집해서 근처에 있을 제게 건네주십시오.』

  "알겠소."


  통화는 빨리 끝났다.

  상황을 대충 파악한 트레이너는 이곳에서 목표지까지의 소요시간을 예상했다. 사이킥 무브로 전력질주한다면 대략 10분 정도 소요될 정도이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지만 차원종의 출현지점이 매우 번창한 곳임을 감안했을 때 빠른 처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처리업무가 주어졌다. 빨리 움직여야하니,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헹! 놈인가?"

  "아니, 일반 차원종이다. 하지만 강북 일대에 차원종이 출현하다니, 분명히 수상쩍은건 사실이다.

  해당 차원종을 처리하고 그 잔해를 수집해**다. 움직여라!"

 

  밖으로 뛰쳐나가자마자 각자 사이킥 무브로 멀찍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위상능력자다!' 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에 관심을 전혀 두지 않았다, 그들은 사냥감만을 노리는 늑대이기에.



  ◆ 13-4


  "좋아. 냉정하게 생각하자.

  기왕 이렇게 된거, 슬비 네가 특수요원이 되어버리는거야. 슬비가 특수요원이 되게되면, 더이상 유니온에서도 우리 팀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은 못 되겠지. 슬비 너는 먼저 어떤 문제가 가상현실 내부에서 발생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승급심사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요원에게 찾아가보도록 해."

  "그 분이 누구죠?"

  "오세린 요원이야. 지금 오세린 요원은 티어매트 대책실에 있을거야."

  "티어매트 대책실?"


  슬비의 회문에 잠시 이상함을 가졌던 김유정은, 이내 자신이 무언가 깜빡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머리에 살짝 주먹으로 스스로 꿀밤을 때렸다.

  그녀는 곧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아… 미안해. 너희에게는 미처 브리핑을 못해주었구나.

  티어매트 대책실은 티어매트라는 고위험 차원종이 봉인된 거대한 물체 주변에 유니온이 마련한 대책실을 말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당 차원종이 봉인된 거대한 물체가 갑자기 나타났고, 지금도 봉인을 뚫고 나오려고 한다는구나. 그렇지만 유니온의 고위 클로저들이 다수 투입되어서 계속해서 봉인을 억누르고 있고. 오세린 요원은 차원종의 정신간섭에 있어서는 유니온에서도 얼마 없는 스페셜리스트야. 그래서 그녀는 지금 그곳에 있는 것이고."

  "제가 거기에는 어떻게 가면 되죠?"

  "국제공항에서 선우란 요원을 호출했어. 지금 밖에서 기다리고 있겠지. 선우란 요원에게 티어매트 대책실로 이동을 부탁하면, 그곳까지 데려다줄거야."

  "알겠어요, 언니. 그러면 다녀올게요."


  꾸벅 고개를 숙여 슬비가 인사를 하자, 김유정은 잠시 그녀에게 멈출 것을 부탁했다.

  "아, 잠시만 기다려줘, 슬비야."

  "네, 언니. 말씀하세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물을게. 정말로 특수요원 승급심사를 받을거니? 네가 원한다면 나는 유니온에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으니까…"

  "어차피 해야 할 일인걸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멋지게 해결하고 올게요."

  "…… 그렇다면 이거, 받아."

 

  김유정은 자켓의 안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건네받은건 다름아닌 권총이었다. 하지만 김유정이 평소에 사용하던 권총과는 또 다른 것이다. 아카데미에서 총기 사격 훈련도 받은 그녀이기에 사용법을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는 총기로 무장한 위상능력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것을 건네는 이유가 무엇일까?

  슬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김유정은 곧 설명을 해주었다.


  "정도연 박사가 개발한 부무장이야. 이전부터 강력한 차원종의 위상력을 관통할 수 있는 총기에 대한 요구가 많아서 계속 개발중이었던 모양인데, 이번 기회에 슬비 네가 시험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구나."

 

  슬비는 잠시 권총을 오른손으로 들어본 후, 곧 양손으로 받쳐들듯이 들어 어딘가를 향해 잠시 겨누어보기도 했다. 무게도 그렇게 무겁지 않고, 이 정도면 부무장으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만 하다. 

  잠시 탄알집을 빼내어 보니 9mm 표준 탄환으로 보인다. 가장 심플한 무장이다. 다만 이것은 위상관통탄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일반 탄환도 아니었다. 조금 특이하다고 할까?


  "위상관통탄은 아니고, 유리가 쏘는 총처럼 위상력을 실어서 쏘아**다고 해.

  하지만 총탄에 담을 수 있는 위상력 총량이 기존에 비해 3배 정도 증가했고, 무엇보다 총 자체가 일반 위상무기와는 다르게 위상력을 더 쉽게 주입할 수 있는 구조라고 해. 우리 중에서는 유리만 기존의 무기와의 차이를 느낄 수 있겠지만, 여러모로 기존의 무기에 비해서 더 뛰어난 무기라고 하더구나.

  어제처럼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우리도 너를 뒤에서 계속 지원하겠지만, 지금부터 승급심사가 끝날 때까지는 슬비 네가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어야 해."

  "명심할게요, 언니. 다녀오겠습니다."

  "응. 조심히 다녀와. 꼭 통과하길 바랄게."


  방 안에서 슬비의 모습이 사라져가는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다른 팀원들은 저마다 슬비를 응원하며 그녀를 배웅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안 놓이는 것은 모두가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걱정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제이였다. 아무래도 차원전쟁의 경험자인만큼, 특수요원으로의 승급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리라.

  마음만 같으면 말리고 싶었지만, 슬비의 결정과 유정의 승인을 거스를 수 없는 그에게 있어서는 그저 이렇게 말로 묻는게 고작이다.


  "정말 괜찮겠어, 유정 씨? 유정 씨도 알잖아, 특수요원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걸."

  "슬비를, 믿어야죠. 우리가 믿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슬비를 믿어주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이건… 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은 없으니까.

  그나저나 우리는 오늘도 무한 대기인가?"

  "아뇨. 슬비가 그곳에 도착하는대로, 우리도 그곳으로 이동할 거예요."

  "가서 지켜보기라도 하자는건가?"

  "그 편이 여기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아니겠어요?"

 

  제이는 그녀의 말을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이렇게 있는 것보다, 현장에서 그녀의 심사 과정을 지켜보며 기다려주는 것이 더 맞겠지.

  제이 뿐만 아니라 유리와 미스틸 역시 그녀의 의견에 찬동한다는듯 밝게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것이 극도로 치밀하게 계획된 '희생양'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

.

.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한 것은 트레이너와 하피였다.

  가장 빠른 몸놀림을 자랑하는 그들인만큼,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주위의 상황을 재빠르게 살폈다. 하지만 곧 그들은 이상함을 느꼈다.


  조금 지나서 곧바로 나타와 레비아가 차례로 도착했다.

  이곳저곳에 파괴되어 있고 비명소리가 울려퍼질 것을 기대했던 나타는,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음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차원종이 출현했다면서. 잘못 온거 아냐?"

  "아니다. 광진구의 K대 입구는 여기 밖에 없어.

  … 티나, 내 말 들리나?"

  『잘 들린다, 트레이너.』

  "그 위에서 이 주위에 출현한 차원종이 있는지 확인해보도록."

  『알겠다. 그곳에서 기다려라. 발견하는대로 알려주겠다.』



  잠시 근처에서 제일 높은 빌딩의 옥상에 있는 티나와 교신을 나눈 트레이너는 주위를 살폈다.

  주위에는 평상시와 같은 서울 한복판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돌아다니는 수많은 대학생들과 일반인들, 그리고 직장인들로 붐비는 거리, 그리고 넓게 펼쳐진 사거리의 차도로는 매우 많은 수의 자동차들이 떼를 지어 신호에 맞춰 운행하고 있다.

  차원종이 출현했다고 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모습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죠? 차원종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조금만 기다려보자, 하피. 티나가 발견하는대로 알려줄테니까."

  『트레이너, 차원종을 발견했다.』

  "놈은 어디에 있지?"

  『그곳으로부터 서쪽에 있는 고가철도 아래다.』

  "서쪽이라고?"


  트레이너의 말에 모두가 일제히 서쪽을 바라보았다.

  이곳을 지나는 철로는 동과 서로 길게 늘어서있다. 두 개의 철로가 교차되는 이곳은 고가철도만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왜 하필 고가철도 아래인가?

  보통 차원종이라면 쉽게 식별할 수 있을텐데도, 놈의 모습은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 빠른 처리를 원하는 트레이너는 곧바로 티나에게 새로운 지령을 내렸다.


  "티나, 놈을 저격해라."

  『알겠다.』

 

  곧 정제되지 않은 화약의 소리가 들려왔다.

  총탄이 발사되는 소리는 매우 이질적이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갑자기 흥분한 상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발사음에 비명을 지르는 이들도 있었고, 깜짝 놀라는 이들도 있었으며,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서 총탄이 발사됬는지 찾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 중에서 몇 명의 남자들은 곧바로 몸을 엄폐하기 위해서 숨어드는 것으로 보아, 역시나 징병제 국가답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사격 결과는?"

  『…읏.』

 

  곧바로 또 한 번의 총성이 들렸다. 그리고 3초 후 다시 한 번의 총성이 들렸다.

  세 번의 총알을 쏴야할 만큼, 놈의 저격은 힘든걸까?


  "티나 보고해라. 놈의 상태는?"

  『총탄이 계속해서 빗나가고 있다.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놈은 우리가 처리하겠다. 하지만 놈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놈이 있는 곳을 다시 알려주기 바란다."

  『예광탄을 쏘겠다. 확인바란다.』


  곧 투두두두- 하고 몇 번이나 총알을 갈겨대는 연속적인 총탄발사음과 함께 초록빛과 붉은빛이 나는 궤적이 그들로부터 약 20m 떨어져있는 어느 고가철도의 기둥을 근처를 때렸다.  

  그곳으로부터 올라가니 확실히 '거기에는 없어야할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너무나도 놀라웠다. 하피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 정체의 이름을 꺼냈다.


  "티나?"

  "티나가 아니다! 저건 형상복제자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며, 그 티나의 모습을 한 무언가는 웃음을 지었다.


  그 때 그위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지하철 한 대가 지나간다. 서쪽을 향해서 가고 있는 그 지하철이 티나의 모습을 한 무언가 근처를 지날 무렵, 놈은 그 높은 기둥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더니 이내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를 보란듯이 높이 치켜들었다.

  그것이 무엇일까 모두가 궁금해하던 찰나, 그것의 정체를 알아차린 트레이너가 급히 무전을 때렸다.


  "티나! 놈이 왼손에 들고 있는 저 스위치를 저격해라! 빨리!"

  『알겠다. 바로 쏘겠다.』

 

  시끄럽게 단발의 총성이 또 한 번 울렸다. 사람들이 저마다 동요하며 늑대개 팀의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런데 놈에게 탄이 닿기도 전에 탄의 행방이 묘연해졌고, 그대로 녀석은 트레이너가 스위치라고 부른 그것을 꾹 눌렀다.


  쾅!

  바로 그 위의 고가철도의 아래에서 큰 폭발이 발생했다. 폭발이 얼마나 큰지 근처의 철골과 구조물을 아예 날려버렸다. 찢어발겨진 고가철도 위로 달리고 있는 지하철은 그대로 선로를 이탈해서 옆으로 쓰러져버렸고, 지하철의 맨 마지막 칸이 폭발에 의해 단절된 철도 아래로 떨어질듯이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모두 도망치기 시작하자, 사람과 차들이 뒤엉킨 사거리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분명히 사망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참사였다. 그리고 비틀어져 무너진 철골 구조물 사이에서 티나의 모습을 한 놈은 웃고 있었다.


  "나타, 레비아, 너희는 저 지하철의 마지막 칸에 탄 사람들부터 구조해라!

  하피, 넌 나를 따라서 놈을 직접 공격한다."

  "가요, 트레이너!"


  트레이너와 하피가 나서기 위해서 자리를 뜨려던 찰나, 나타의 쿠크리의 쇠사슬이 트레이너의 한 쪽 다리를 감아 그를 쓰러뜨린다.

  영문도 모른채 쓰러진 트레이너는 자신의 발에 감긴 쇠사슬을 보고서 이것의 주인인 나타를 쳐다봤다. 무슨 짓이냐고 묻기도 전에, 그는 바로 죽일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적잖이 당황한 트레이너가 반격을 하기도 전에, 나타는 남은 쿠크리의 한 쪽을 트레이너의 목 부근까지 들이댔다. 아마도 트레이너의 목을 그대로 날려버릴 생각인 모양이다.


  타앙- 쉬이이이익. 푸악!

  티나가 있는 건물의 옥상에서 발사된 총탄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들어와 그대로 나타의 머리에 적중했다. 그대로 나타의 움직임은 멈춰버렸고, 이내 차원종이 사라질 때와 같이 가루와 같은 빛으로 흩어져버린다. 설마 나타 역시 형상복제자에게 당해버린 것일까.


  『트레이너, 빨리 움직여라. 놈이 도망치려 하고 있다.

  레비아도 내가 상대하겠다.』 


  두두두두- 중기관총의 연사음과 함께 대구경의 기관총탄들이 레비아의 일대를 훑는다.

  먼지가 일어났지만 충분히 확보가능한 시야에서는 이미 레비아가 사라진지 오래이다. 그녀가 발견된 곳은 그들의 상공이었고, 그녀의 시야가 향하고 있는 곳은 티나가 있는 곳이었다. 


  트레이너가 내릴 수 있는 선택은 재빨리 티나의 형상을 복제한 놈부터 하피와의 합공으로 처리한 뒤, 지하철에 타고 있는 이들을 구해내는 것이다. 티나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그는 판단하고, 자신의 발에 감긴 쇠사슬을 풀어낸 뒤 곧바로 달려들었다.





  ◆ 13-5



  "도착. 어때, 오랜만에 탄 헥사부사는 즐거웠어?"

  "네, 조금 어지럽긴 했지만요."

  "여기가 티어매트 대책실이야. 음침한 곳이라서 더 이상 움직이긴 싫어.

  승급심사, 힘내."

  "고마워요."


  선우란에게 인사를 건넨 이슬비는 대책실 안을 훑었다.

  반구형의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외벽 전체가 모니터와 같았다. 그리고 이 구조물의 한 가운데에는 적어도 인간이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창' 형태의 거대한 물체가 땅에 꽂혀 있었는데, 그 주위로는 자색의 전류와 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보기만해도 이것이 바로 티어매트가 봉인되어 있다는 물체인 것을 알 수 있다.


  대책실 곳곳에는 눈에 익은 사람도 많이 있었다.

  정도연 박사, 오세린 요원, 그리고 김가면 씨까지. 플레인 게이트가 폐쇄 수순을 밟고 있었기 때문일까, 유니온의 관계자도 아닌 그가 이곳까지 와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슬비를 알아차리고 인사를 건네온 사람도 그였다.


  "어서오십시오, 요원님! 다행히 거의 나으신 모양이군요!"

  "네, 김가면 씨. 유정 언니에게 말씀 들었어요, 정말 감사해요."

  "하하하핫!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요!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거죠."

  "그런데 여기는 상당히 고위험 차원종이 봉인된 물체가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이런 위험한 곳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걱정 마십시오, 유니온이 저희 벌처스의 물품들을 이곳에서 많이 사용해주고 계셔서, 누군가 벌처스의 관계자가 이곳을 지키고 있어야 하거든요. 사실 이런 위험한 곳에 일반 사원들을 보내기도 그렇고 해서, 아르바이트 한 명과 함께 이곳에 있는 참입니다."

  "아르바이트?"

  "저에요, 이슬비 선배님!"


  칙칙하고 어두운 이곳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매우 발랄하고 생기가 넘치는 남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이다.


  "한휘성? 네가 왜 여기에?" 

  "하하하, 사장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전 벌처스의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거든요."

  "왜 하필 벌처스에서?"

  "하하, 그런 사정이 조금 있어요… 여하튼 이슬비 선배님이 이곳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정말 기뻤는데,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정말 반갑네요."

 

  해맑게 웃는 이 소년은 한휘성.

  같은 신강고등학교의 학생으로서, 학생회 서기를 맡고 있는 1학년이다. 언젠가 그녀가 학생회에 찾아갔을 때 인사를 나눈 적이 있는지라,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그가 벌처스의 아르바이트로 일한다는 것은 좀 의외였지만. '아, 저번에 세하가 전해준 벌처스 사장의 편지를 건네줬다는 그 아르바이트생이 이 사람이었구나' 라고 슬비는 가만히 생각했다.

  김가면이 다시 말을 건네왔다.


  "오세린 요원님께 말씀은 들었습니다, 조금 위험한 승급 심사를 치르게 되신다면서요?"

  "네."

  "유니온 녀석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안전성이 검증되지도 않은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클로저를 평가하겠다니.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처사입니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특수요원이 되어야만 해요, 저는."

 

  슬비의 말을 듣고 김가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곧 그가 말을 이었다.


  "사실 어제 요원님이 서유리 요원님에게 엎혀 나올 때, 대충 들었습니다. 안에서 이세하 요원님과 크게 싸우셨다면서요. 그리고 요원님께서는 이세하 요원님께 그렇게 당하셨고…"

  "세하의 본심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만약 이세하 요원님이 진심으로 요원님과 싸웠다면,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요원님의 목숨이 위험했겠죠."

  "… 맞아요."

  "그래서 이런 위험한 심사과정을 무릅쓰고서라도, 특수요원이 되려고 하시는거군요."

 

  슬비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녀는 세하를 구하기 위해서 이 길을 가야만 한다. 칼바크의 말을 들은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그저 힘을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겠죠. 이 또한 이세하 요원님을 위해서인가요?"

  "세하와 싸우면서 느꼈어요. 지금의 저로선 도저히 그 녀석과 대등하게 싸울 수 없다는걸요.

  지금의 저로서는 저를 지킬 힘도, 세하를 구할 힘도 없어요. 그래서 반드시 특수요원이 되어야만 해요."

  "요원님의 뜻을 절대적으로 저는 존중합니다. 저희도 할 수 있는 것만 있다면, 최대한 요원님을 지원하겠습니다. 비록 유니온의 관계자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고마워요, 김가면 씨."

  "아, 저기 오세린 요원님께서 요원님을 부르고 계시네요. 사소한 거라도 괜찮으니, 꼭 저희에게도 요원님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화를 끝내고 이슬비는 천천히 자신을 향해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는 오세린에게 찾아갔다.

  그다지 이곳 구조물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몇 발자국만 가면 곧바로 그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플레인 게이트의 탐사 이후로 ** 못한 그녀를 본 건 가히 몇 주 만이다. 강남 사태를 같이 해결한 그들로서 가지는 유대감은 상당히 크다.

  몇 주라는 만남의 단절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유대감마저 단절시키지는 못한다.


  "안녕하세요, 오세린 선배."

  "오랜만이야, 슬비야!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는데, 별로 도와주지도 못해서 미안해."

  "아니에요. 저희 일인걸요. 선배도 플레인 게이트에서 많이 바쁘셨을테고요."

  "아니야, 너희보다 바쁘지는 않았지.

  이야기는 들었어. 더 이상 묻지는 않을게. 슬비, 너도 충분히 힘들어하고 있을테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에게 물어오는 이야기는 정해져있다.

  특히 세하에 관해서만큼은 그녀에게 꼭 묻는다. 그녀가 세하와 같은 팀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녀가 세하를 구하려는 열심이 있는 것은 그녀가 세하의 연인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기에. 이것은 이미 퍼져있는 말이기 때문에, 그녀도 이제는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다.


  "김유정 부국장님께는 이미 들었어. 승급심사, 정말로 받는거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는데도?"

  "네, 선배. 저를 위해서도, 세하를 위해서도, 저는 이 승급심사를 꼭 받아야만 해요."

  "역시 그렇구나. 그렇다면 나도 말리지는 않을게. 하지만 승급심사를 시작하기 전에, 이 안에 대해서 설명을 해줄게."

  "네, 선배."

  "기존의 승급심사 프로그램인 큐브는 승급심사자가 직접 물질화된 입체영상과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육체의 부상을 입을 여지를 충분히 남겨두었어. 그래서 유니온에서는 이런 위험을 없애고자 몸에서 의식을 분리시켜, 의식이 가상현실 공간 내에서 심사를 받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 이게 신형 승급심사 프로그램이야.

  클로저의 안전을 생각하고 개발된 프로그램이지만, 여전히 이 프로그램에도 취약점은 있어. 클로저의 의식이 분리되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든지 클로저의 의식이 승급심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에는, 현실의 몸은 그대로 식물인간이 되어버릴 수밖에 없게 되어버려."


 

  모순이다.

  안전을 위한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니.

  오세린이 말한 바로 그 문제점, 의식이 내부 공간에서 고립될 경우 현실의 몸이 식물 인간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유니온은 숨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안전성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만 해줄뿐이었다.

  유니온이 그녀에게 승급심사를 강제적으로 받도록 강요하는 이유도, 바로 이 안전성 문제를 검증해달라는 것이겠지.


  "솔직히 말하는거지만, 나는 슬비 네가 지금 당장 승급심사를 받지 않기를 원해. 물론 네가 승급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게 아냐, 다만 이 프로그램의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이후에 승급심사를 받아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배,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하면 세하가 위험해요. 어제 세하를 보았을 때, 세하는 조금더 녀석들 - 애쉬와 더스트 - 과 같아지고 있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세하를 구할 수 있는 여지는 줄어들어요."

  "하지만 세하만큼이나 나는 슬비 너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 말에 슬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하가 없으면, 저도 없는 편이 나아요."

  "…… 두 사람, 정말로 연인이었구나."

  "네."

  "알겠어. 더 이상 말리지 않을게.

  이대로 중앙의 입장기를 통해 승급심사 공간으로 입장할 수 있어. 어떤게 안에서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너라면 분명히 이겨낼 수 있을거야. 꼭 승급심사 성공하길 바랄게, 슬비야. "


.

.

.


  "…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요. 세상에 차원종에게서 인간의 위상력이 검출될 줄이야."

  "그렇다면 이 차원종은 일반 차원종이 아니란 말이오?"

  "그런 셈이죠, 자세한 건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지만요. 뭐, 그렇다고 결과가 심하게 바뀌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저 이 위상력이 누구의 위상력인가, 유니온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만 해낼 뿐이니까요."


  오른뺨에 살짝 생채기가 나있는 트레이너는 어느 연구원과 유니온의 이동식 연구실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의 상처를 보아 꽤나 전투가 거칠었음을 알 수 있다. 어지간해서는 상처를 입지 않는 그이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나타난 차원종이 설마 셋이나 될지는 몰랐습니다. 나타 씨와 레비아 씨의 상태는 어떤가요?"

  "걱정 마시오, 지금은 정신을 차렸으니. 바보같이 당할 줄이야, 면목 없소."

  "아닙니다, 이렇게 일을 잘 처리해주셨는걸요. 늑대개 팀이 빨리 움직여줘서 다행이었습니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크게 감사할 뿐입니다."

  "그나저나 상당히 큰 사건인데, 어떻게 정보통제를 할 생각이오?"

  "정보통제를 할 필요가 없죠. 오히려 저희에겐 잘 된 일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오?"

  "이런 큰 사건이 벌어질수록 우리 유니온의 중요도가 더욱 올라갈테니 말이죠."

  "정규 클로저를 사용하지 않고 사건을 해결했는데도 말이오? 차라리 검은양 팀에게  다른 임무를 수행중이더라도 잠시 미루게 한 뒤에 직접 처리하도록 만드는게 나을 뻔 했소."

  "글쎄요. 아, 결과가 나온 모양이군요."

 

  중앙 모니터에 나온 검사 결과는 흥미로웠다.

  흥미롭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이것 참, 우연의 일치인가요? 검은양 팀에게 차라리 맡기지 않은게 잘된 일일 수도 있겠군요."

  "……"


  데이터베이스에서 조회된 클로저.

  클로저 넘버, P3721.



신서울지부 정식요원, 이세하.










  즐거운 한가위 되셨는지요? 모두들 즐거운 추석 되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집에도 못가고.. 흑흑...


  그래도 이렇게 쓸 수 있어서 좋네요.

  늑대개 팀의 전투씬을 과감히 생략!! 하고 대화씬으로 넘어갔는데, 늑대개 팀의 전투를 원하시는 분들의 반발이... 그런데 정말로 당분간은 전투씬이 많이 없을 예정이에요. 양해부탁드려용...


  저번화도 즐겁게 봐주시고, 이번화를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주 정도 지나서 올렸네요. 에고... 분량도 많이 못 뽑고, 죄송합니다.


  특요슬비 VS 광휘세하 라인을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실행에 옮기네요. 후후

  둘은 사랑싸움을 해도 예뻐요 헿


  슬비는 세하거, 세하는 슬비거.

  세하슬비는 진리입니다.


  다음 화에서 뵈어요!






2024-10-24 23:11:2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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