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Good bye, my sister

히키레사 2022-01-02 5


 이리나는 유니온 타워 옥상에서 홀로 견디고 있었다. 데이비드의 힘이 정신을 장악하려 들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잡은 채 앞을 바라봤다. 허공에 허수공간이 생기더니 로프가 내려갔다. 로프를 잡고 티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나는 순간적으로 활을 겨눴다. 티나 또한 총을 겨눴다. 일출과 비슷한 정적 속, 활을 잡은 손이 떨렸다. 이리나는 다른 쪽 손으로 활을 잡았다.


 ‘복종하라.’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이리나는 천천히 활을 내렸다. 티나는 여전히 총을 든 채 이리나를 경계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바로 머리를 꿰뚫어버릴 기세였다. 이리나는 티나의 눈을 마주보았다. 초점없는 다홍색 눈. 감정따위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눈에 자신을 쓰러뜨리겠다는 각오가 새겨져 있었다. 이리나는 힙겹게 입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 악령.”


 티나의 총구가 흔들렸다.


 “이리나. 정신이 든 건가?”


 “아니. 지금은 잠시 억누르고 있을 뿐이다. 나의 몸은 아직도 그 남자의 수중 안에 있어. 그러니 네가…….”


 순간 머리에서 반복되던 명령이 강하게 이리나의 정신을 공격했다.


 “네가 나를 쓰러뜨려다오……!”


 이리나가 활을 들었다. 등에서 검붉은 위광이 펼쳐졌다. 티나는 허수공간을 활용해 거리를 벌렸다. 이리나의 활은 티나를 놓치지 않았다. 티나가 착지한 지점을 향해 화살이 날아들었다. 티나는 즉각 냉장고 안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여러 적의 공격을 막아낸 냉장고조차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날아갔다. 중간에 뛰쳐나오지 않았더라면 냉장고와 함께 타워 밑으로 떨어졌으리라. 티나는 총을 잡았다. 이제 망설임은 없다.


 “이리나 페트로브나. 너를 구해주겠다.”


 방아쇠는 당겨졌다.



                                                                                                     * * *



 화살이 미간을 노리고 날아왔다. 악령은 즉각 총을 발포해 궤도를 틀었다. 화살이 아슬아슬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디까지나 훈련이기 때문에 위상력은 담지 않았다. 악령은 기둥 뒤에서 뛰쳐나갔다. 화살이 날아왔다. 악령은 공중제비를 돌아서 공격을 피하고 이리나를 향해 미끄러졌다. 이리나는 넘어지는 와중에 한 손을 바닥에 대었다. 다른 손으로는 컴뱃 나이프를 꺼냈다. 이리나를 노리고 쇄도하던 악령의 나이프와 이리나의 나이프가 부딪혔다. 티나는 이리나의 팔에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했지만 이리나가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둘은 무기를 들었다. 총구와 화살이 서로를 마주봤다. 이리나가 먼저 활을 거뒀다.


 “여기까지다.”


 “알겠다. 훈련을 중단하겠다.”


 이리나는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과연. 소문대로 대단한 실력이군.”


 악령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리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깐. 그 이상 다가오지 마라. 훈련은 끝났지만 기습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대로 안전거리를 확보해주길 바란다.”


 “그렇군. 알겠다.”


 이리나는 악령의 말대로 발걸음을 멈췄다.


 악령. 클로저를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탐난다. 이리나는 악령이 베리타 여단의 일원이 된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악령과 자신의 양각. 분명 그로부터 도망칠 클로저는 없으리라. 


 “앞으로 함께 작전을 수행할 날이 많았으면 좋겠군.”


 “마찬가지다. 만일 훈련이 아니라 위상력을 담은 전투였다면 내가 이길 확률은 현저히 낮아졌겠지.”


 악령은 기계적인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이리나 페트로브나. 너는 훌륭한 사수다. 네가 함께 한다면 작전의 성공률이 높아질 거다.”


 이리나는 자신의 칭찬에 기분이 좋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너무 띄워주지 않아도 된다.”


 “띄워준다?”


 악령은 띄워준다는 표현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다. 곧바로 질문하려 했지만 무전기를 통해 교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악령. 훈련이 끝났다면 돌아오도록.”


 “알겠다. 교관. 신속히 아지트로 복귀하겠다.”


 멀리에서 같이 온 동료 테러리스트가 손짓하는 게 보였다.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다음에는 훈련이 아니라 작전에서 만났으면 좋겠군.”


 악령은 달려가려다 뒤를 돌아보았다.


 “나도 기대하고 있겠다.”


 이리나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기대한다라…….”




                                                                                                    * * *



 훈련과는 다르다. 위상력이 담긴 공격이 오갔다. 티나는 허수공간에서 와이어를 꺼내 이리나의 앞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이리나의 깃을 잡고 뛰어 올라 컴뱃 나이프로 목을 노렸다. 이리나는 힘으로 티나를 뿌리쳤다. 티나는 이리나의 뒤로 빠져 샷건을 발포했다. 이리나의 몸이 앞으로 밀려났다. 


 “아악!”


 이리나가 순간 모습을 감췄다. 주위가 어두워졌다. 티나는 무기를 집어 넣었다.


 “목표 확인 불가능. 경계한다.”


 티나는 침착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붉은 빛이 반짝였다. 티나는 빠르게 옆으로 굴렀다. 티나가 있던 자리에 화살 서너개가 꽃혔다. 티나의 반응속도가 아니었다면 피하지 못했으리라. 이리나의 저격은 계속 되었다. 티나는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하다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에 총을 발포했다.


 “큭……!”


 이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이리나는 고통스러워 보였다. 티나는 컴뱃 나이프로 다시 이리나의 목을 노렸다. 이리나는 활로 티나의 공격을 막았다.


 “나는 복종한다…… 방해하는 자는 죽인다!”


 “복종이라. 얼마 전까지의 나라면 너의 말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겠지.”


 티나는 거리를 벌렸다. 컴뱃 나이프에 달빛이 감돌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기다려라. 금방 편하게 해주겠다.” 



                                                                                                    * * *



 ‘틀림없군. 저 여자가 이리나 페트로브나야. 베리타 여단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어.’


 클로저는 2주 전에 데이비드 부국장에게서 한 가지 임무를 하달 받았다. 


 ‘요즘 러시아 북부 쪽의 테러리스트들이 은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네. 게다가 이 마크는…….’


 데이비드는 인상을 찡그리며 테러리스트들의 전투복 일부를 바라보았다. ‘므‘ 모양의 붉은색 마크. 베리타 여단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 녀석들은 이미 몇 년 전에 괴멸 했을 터……!’


 데이비드가 파편을 내려놓았다.


 ‘잔존 세력이 남아 있었나 봐. 미안하지만 자네가 베리타 여단의 본거지를…….’


 ‘잠깐 기다려보세요.’


 옆에서 듣고 있던 김기태가 끼어들었다.


 ‘저런 승급한지도 얼마 안 된 애송이가 일을 제대로 처리할 리 없잖아요?“


 김기태의 말에 클로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기태는 하찮게 바라보고는 말을 계속했다.


 ‘제게 맡겨주신다면 B급 요원 김기태의 B급 임무처리 능력으로 빠르게 임무를 완수하고 오겠습니다.’


 데이비드는 웃으면서 답했다.


 ‘자네에게는 따로 맡길 일이 있네. 추가로 저 요원을 너무 얕** 말게. 이래뵈도 감이 굉장히 좋은 친구거든. 오만함이 자네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클로저는 데이비드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꼈다. 김기태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찼다. 데이비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의 무기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김기태가 데이비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데이비드는 김기태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너무 서운해하지 말게. 자네에게 맡길 임무도 이에 버금가게 중요한 임무니 말이야. 어쩌면 이번 임무로 A급 승급 심사 자격이 생길지도 모르겠군.’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이번에는 저 애송이한테 양보하도록 하죠.’


 ‘고맙네.’


 데이비드는 클로저를 바라 보았다.


 ‘이제 자네의 차례군. 솔직히 위험한 임무야. 포기하고 싶으면 포기해도 좋네.’


 클로저는 일말의 고민없이 대답했다.


 ‘맡겨만 주십시오.’


 ‘정말…… 고맙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퇴각하게. 자네는 감이 좋으니까.’


 데이비드는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이리나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클로저는 건물의 벽에 최대한 몸을 밀착시킨 뒤 이리나를 바라보았다. 심장의 울림이 뇌까지 전파되는 느낌이었다. 이리나 페트로브나는 강하다. 클로저는 침을 삼켰다. 목이 말라 있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리나가 코너를 돌았다.


 ‘지금이다.’


 이리나와의 거리를 좁히려 하던 때였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소리가 들렸다. 클로저는 숨을 삼켰다. 천천히 자신의 뒤를 돌아보았다. 분홍색 나시차림의 여자아이가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클로저는 코너 쪽을 슬쩍 바라보고는 무릎을 굽혀 여자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꼬마야. 이런 데에 있으면 안 돼. 애초에 여기는 민간인 통제 구역일텐데…….”


 클로저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눈이 자신을 바라본다. 초점없는 눈에는 무엇도 비치지 않았다. 악령이 신속하게 컴뱃 나이프를 뽑아 클로저의 목을 노렸다. 


 “……!“


 클로저는 가까스로 나이프를 잡았다. 컴뱃 나이프가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네놈이 소문으로만 듣던 악령인가.”


 악령이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허수공간에서 어썰트 라이플을 꺼냈다.


 “이런 어린아이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클로저의 손에서 불꽃이 타올랐다. 악령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악령은 즉각 발포했지만 클로저의 능력 앞에 전부 녹아내릴 뿐이었다.


 “이동 사격 개시.”


 악령이 반원을 그리며 기관단총을 난사했다.


 클로저는 끄떡없었다. 비록 지금은 B급이지만 실력만큼은 A급 수준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 그였다. 악령은 다시 거리를 벌리고 허수공간에서 로켓을 꺼냈다.


 “락 온. 전탄 발사.”


 수십 개의 로켓이 클로저를 노리고 쏟아졌다. 악령의 전방에는 자욱한 연기가 생겼다. 악령은 허수공간에서 다시 어썰트라이플을 꺼내들며 말했다.


 “표적의 생사여부 불명. 동체 과열의 위험이 있다. 거리를 벌린 뒤 경계를…… 큭!”


 한 순간이었다. 연기 속에서 클로저가 뛰쳐나오더니 악령의 머리를 붙잡고 땅에 내리 찍었다. 악령이 반응하기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클로저도 아예 대미지가 없는 건 아닌지 호흡이 꽤 흐트러졌다. 


 “이걸로 끝이다. 악령!”


 클로저가 능력을 발동하려 하려던 때였다. 둘의 위로 그림자가 졌다. 클로저는 고개를 돌렸다. 하늘에는 태양 대신 찬란하게 빛나는 날개가 보였다. 동시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 시야가 검게 변했다.


 클로저는 비명을 질렀다. 순간적으로 위상력을 발휘해 즉사까지는 면했지만 한 쪽 눈을 잃었다. 바닥을 구를 틈도 주지 않고 악령이 녹아내린 나이프의 단면으로 다른 쪽 눈을 찔렀다. 죽음의 공포가 클로저의 발목을 타고 기어 올라왔다. 클로저는 어둠 속을 해맸다.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인생은 이 어둠 속에서 끝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저격.”


 이어서 들리는 총성. 클로저는 땅바닥을 굴렀다. 악령과 이리나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데이비드 부국장님.’


 클로저는 자신의 몸을 중심으로 큰 폭발을 일으켰다. 이리나는 위광을 펼쳐서 피했으나 악령은 폭발에 휩쓸리고 말았다.


 “악령!”


 이리나는 폭발이 끝난 자리로 하강했다. 눈앞에는 냉장고가 있었다. 이리나는 냉장고에 다가갔다. 냉장고의 문이 열리더니 악령이 굴러나왔다. 이리나는 안도하며 숨을 내쉬었다.

 “작전 종료. 표적의 사망을 확인했다.”


 “무사하니 다행이군.”


 이리나는 악령의 컴뱃 나이프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제는 쓰지 못하겠군.”


 악령은 이리나의 시선을 따라 컴뱃 나이프에 시선을 옮겼다.


 “상관 없다. 지금부터 아지트에 복귀해 지원을 요청하면 그만이다.”


 이리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컴뱃 나이프를 악령에게 건넸다. 악령은 컴뱃 나이프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내게 이걸 주는 이유가 뭐지. 너에게는 아무런 득도 없을 텐데.”


 악령이 의심스럽게 노려보았다. 이리나와는 벌써 다섯 번째 공동 작전이었지만 아직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하는 듯 했다.


 “이유는 없다. 단지…….”


 이리나는 말을 멈췄다.


 “아니. 아니다. 어쨌든 그 나이프는 네가 갖도록 해라. 악령.”


 “분석 결과. 평범한 나이프인 모양이군. 알겠다. 감사히 사용하도록 하지.”



                                                                                            * * *



 이리나의 화살이 세 갈래로 나뉘어 티나를 공격했다. 티나는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티나의 군용 자켓이 살짝 찢어졌다. 이리나는 티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피해라……. 악령……!”


 말이 끝나자마자 이리나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티나를 향해 수백의 화살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티나는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다. 몇 초도 버티지 못하고 냉장고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냉장고가 파괴 되고 남은 화살들이 티나를 향해 떨어졌다.



                                                                                            * * *



 “다음 단독 작전은 포기해라.”


 이리나는 악령에게 말했다. 악령의 다음 표적은 벌처스 처리부대의 일원이었다. 


 “처리부대의 대장이 직접 행동에 나섰다고 하는군. 위험요소가 크다. 우리는 아직 너라는 전력을 잃고 싶지 않아.”


 티나는 여전히 초점없는 눈으로 대답했다.


 “거절한다. 너는 나의 명령권자가 아니야. 나는 교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이리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가. 너의 뜻은 잘 알았다. 나도 더 이상 말리지 않겠다.”


 “나를 호출한 이유는 이게 전부인가. 그렇다면 다음 작전을 대비하기 위해 신속히 아지트로 귀환하겠다.”


 “……잠깐 기다려라.”


 이리나는 부하를 시켜서 옷을 들고오게 했다. 악령의 사이즈와 비슷해보이는 군용 자켓이었다.


 “듣자하니 열에 약하다지? 이 옷이 조금은 도움이 될 거다.”


 이리나가 어릴 적에 입었던 전투복이었다. 방수는 물론 방화의 기능까지 갖고 있었다. 악령은 옷을 받아들고 말했다.


 “저번부터 너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군. 나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이리나는 악령의 질문에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악령은 이리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대답에따라 언제든 옷을 내려놓고 떠나겠다는 시선이었다. 이리나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너와는 여러 작전을 함께 수행했지. 솔직히 나는 너를 자매처럼 느끼고 있다.”


 악령은 더욱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어졌다. 악령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자매? 너는 나의 자매가 아니다. 애초에 나에게는 피가 흐르지 않아.”


 “의자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


 “들어본 적 없는 말이군. 검색해보겠다.”


 악령은 잠시 제자리에 서서 의자매에 대해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검색 완료. 의리로 맺은 여자 형제를 뜻하는군. 대표적인 행위로는 술잔을 부딪히는 행위가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자매라고 하기 어렵겠군. 너와 나는 술잔을 부딪힌 적이 없다. 의리라는 감정도 이해하기 힘들군.”


 옷을 가져 온 부하는 이리나의 눈치를 봤다. 이리나는 익숙하다는 듯 대답했다.


 “굳이 술잔을 부딪힐 필요는 없다. 대신 그 옷을 받아주지 않겠나. 명령이 아니라 권유다. 너에게도 손해는 없을텐데.”


 “확실히 네 말 대로군. 알겠다. 너의 권유를 받아들이도록 하지.”


 악령은 군용 자켓을 입었다. 매번 분홍색 나시차림으로 싸우다가 자켓을 입으니 약간은 전투 요원 같아보였다. 이리나는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령의 무전기를 통해 아지트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이리나 페트로브나.”


 “그래.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군.”


 돌아가려던 악령이 몸을 멈칫했다. 악령은 이리나를 돌아보았다.


 “생각해보니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군. 고맙다. 이리나 페트로브나.”



                                                                                                       * * *



 이리나의 맹공이 끝났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기를 들었다. 정적이 이어졌다. 이리나의 손에 힘이 풀렸다. 이리나의 활이 바닥에 떨어졌다. 틈을 놓치지 않고 티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이리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티나의 저격을 정통으로 맞은 이리나는 제자리에 무릎 꿇었다. 시야가 흐리다. 이리나의 눈이 수명을 다한 전구처럼 깜빡였다. 이리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뻗었다. 잡아주길 원해서 뻗은 게 아니었다. 필사적으로 뭔가를 잡으려고 허공을 휘저었다.


 “일어서라. 이리나.”


 차고 흰 손이 이리나의 손을 맞잡았다. 순간 시야가 선명해졌다. 이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악령의 모습이 있었다. 악령은 이리나를 부축해주었다. 이리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옥상의 끝으로 향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악령의 모습이 바람에 흩어져 사라졌다. 이리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뒤에는 한 명의 클로저가 서 있었다.






 “과연…… 이제 악령은 없다는 건가.”

 

 이리나는 손가락으로 티나를 가리켰다.

 

 “작별이다. 클로저.”

 

 이리나는 두 팔을 벌리고 천천히 몸에 힘을 뺐다. 오늘따라 바람이 시원하다. 이리나는 편안하게 안개 속으로 몸을 던졌다.

 

 

 “임무 완료. 작전을 종료한다.”

 

 티나는 어깨에 총을 맸다. 회색 군용 잠바를 휘날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작별이다. 나의 자매.”

 

 

 

 

 

 ――――이리나 페트로브나.








 작품을 쓰고나서.


 티나와 이리나의 마지막 결전. 뒤에 숨어 있는 서로의 과거에 대해 한 번 풀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조사해보려니 자료가 별로 없더군요. 티나의 메인 스토리를 다시 한 번 정주행하면서 얻은 정보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봤습니다. 데이비드가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될 인물들을 악령을 통해 없앴다던가, 이리나와 데이비드는 원래 알던 사이라던가, 이외에도 이것저것 머리가 쑥밭이 되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부디 예쁘게 봐주시길 바라며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결전요원 퀘스트에서 이리나가 나올 줄은 생각 못 했네요.


2024-10-24 22:09:5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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