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왕의 육아 이야기〉 -한 연산장치가 망가져 가는 과정-
설화묵환 2022-01-16 2
Ep 1
‘아이’‘들’을 ‘제작’하자.
그것은 임무 수행의 원활함을 위한 아주 작은 발상이었다. 창조주가 내린 명령을 수행하는데 지장이 되는 ‘따분함’이라는 감정을 없애기 위한 대책의 일환이었다.
그래서 그 왕은 아이들을 만들기로 하였다.
재료는 자신의 부품으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반적인 생식 활동으로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는 만큼, 자신의 일부를 물려받은 아이를 만들고 싶었다. 아이는 기본적으로 둘 이상 만들 생각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스페어(spare). 그가 전에 만든 함선 관리용 인공지능처럼 무수한 스페어 보디를 준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예비용으로 하나쯤은 더 만들어둘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기능의 저하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그의 몸에서 빼낸 부품은 딱 두 개의 톱니바퀴였다.
아이들을 인간형으로 제작하는 데는 먼 차원에 기거하는 어느 군주의 소문이 영향을 미쳤다. 그의 창조주인 위대한 존재의 벗이자, 괴짜로도 이름이 높은 그 군주는 근래 들어서 인간 애호가가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왕 역시 ‘애호가’라고 할 만큼은 아니지만, 평소 인간 세계를 관측하면서 그들에게 약간의 흥미는 가지고 있던 참이었다. 성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일단 자신과는 반대인 여성형으로 성장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나중에 아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바꾸면 되겠지. 그 정도의 기술력은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령. 여기서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다른 군주나 군단장들이라면 어린 모습이라 해도 손이 크게 갈 필요가 없는 아동~청소년기의 모습으로 제작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굳이 아이들을 영아 단계에서부터 키우는 길을 선택하였다. 그 스스로도 영아를 키우는 데 필요한 자원에 대한 연산은 이미 끝낸 상태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영아를, 군단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키우는 데는 막대한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이 들어가야 한다. 연령의 설정이 가능한 상황에서 그의 결정은 두말할 것 없이 비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기계왕, 인과율의 관측자, 나태의 군주. 승리를 위한 최단경로만을 연산하는 연산장치인 그라면 생각할 수도 없는 비효율적인 결정이었다.
‘평소’의 그라면.
그리고 지금, 그는 갓 제작된 영아 둘을 품에 안고 황량한 중추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Ep 2
‘탄생의 기쁨’ 같은 것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완성되기도 전부터 왕은 기계적으로 연산을 시작하였고, 이미 영아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성장 경로를 도출해둔 상태였다. 하루를 기준으로 영아 둘에게 투입해야 하는 영양 자원의 배분도, 수면 주기의 설계도, 피복의 할당도 계산을 마쳤다.
자,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물끄러미 아이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때 그는 한 아이의 얼굴에서 위화감을 발견했다. 먼저 제작한 1호기였다. 1호기의 뺨이 볼록했다. 그리고 오물오물 움직이고 있었다. 망연히 아래로 시선을 옮기자, 제복에 달려있던 금장 단추 하나가 사라진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뭐지.
갑자기 연산 결과에 없는 데이터가 들어오자, 왕의 머릿속에서는 가벼운 오류가 일었다. 단추를 먹다니, 금속을 먹는 차원종의 속성은 집어넣은 적이 없다. 배가 고파서? 제작할 때 하루분의 영양소와 열량은 모두 주입하였으니 벌써 배가 고프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이유 때문에? 그렇다면 왜 하필 입 속에 집어넣는단 말인가? 작은 오류였지만, 그것을 해결하려 하는 왕의 머릿속에서는 수백, 수천 개의 알고리즘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였다. 1호기는 계속 단추를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왕은 일단 ‘아이가 단추를 먹는 이유’에 대한 알고리즘은 제쳐놓고 단추의 유해성에 대한 새로운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일단 잔병치레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도록 설계했지만, 금속 재질의 단추가 아이의 뱃속에 들어가면 어딘가 걸리거나 소화가 되지 않아 문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거기다 함선의 내부에는 영아들에게는 아직 위험한 힘이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전기력과 자기력이었는데, 둘 모두 생체 내부의 금속에 반응해 아이를 위험하게 만들 힘이었다.
그는 그 외에도 간단한 경우의 수를 몇 가지 더 생각해 본 후, 역시 빠른 제거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중력을 조절해 2호기를 허공에 띄워 두고 1호기의 입에서 단추를 빼내려 하였다.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어 보았지만 장갑을 낀 그의 손가락은 아기의 입에 넣기에는 너무 굵었다. 장갑을 벗고 다시 시도했으나, 이번에는 힘의 계산이 부적절했던 탓에 1호기를 울리고 말았다. 악전고투 끝에 그는 염동력을 사용하여 겨우 1호기의 입에서 침 범벅이 된 단추를 빼낼 수 있었다.
그가 한숨 돌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2호기가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기저귀는 멀쩡했고, 몸에서도 큰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왕의 머릿속에는 또 다른 오류가 발생하였다. 표면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원인이 아무것도 없는데 아이가 보채다니. 찡찡거리며 짜증을 부리던 2호기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잠깐 울음을 그쳤던 1호기도 다시 울어댔다.
그는 새롭게 발생한 오류도 해결되지 않은데다, 한 아이가 우는데 왜 아무 상관 없는 다른 아이가 따라 우는지도 몰라 멍청히 서 있었다. 울음을 그치게 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는 결과에 도달하는 연산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버둥거리는 아이들을 한 번 떨어뜨릴 뻔하고는, 앉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 하나만을 겨우 도출하여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울다 지친 아이들은 그의 품 안에서 잠들었다. 그는 잠든 아이들을 바닥에 살짝 눕혔으나,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아이들은 잠이 깨서 다시 보챘다. 연산도, 인과의 관측도 불가능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만들어진 목적으로서 부여받은 기능을 하나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더없이 흥미로웠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그동안 왕은 기저귀 가는 법, 분유 타는 법, 젖병 소독법 등 많은 것을 익혔다. 분유를 먹인 다음 트림을 시켜 주지 않으면 애써 먹인 분유를 토한다는 사실도, 화려한 제복에 선명히 남은 토사물 자국으로써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제복의 촉감을 싫어해서 인간 세계를 관찰하여 알아낸 부드러운 재질의 옷을 입고, 아이들에게도 같은 옷을 입혔다. 아이들이 기어다니게 되면서 딱딱하고 차가운 중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푹신한 카펫도 구해 깔게 되었다. 인간 세계를 좀 더 관찰하여 블록이나 인형과 같은 장난감도 만들었다. 그 가운데서 아이들이 가진 기호의 차이도 알게 되었다. 1호기는 곰 인형을, 2호기는 토끼 인형을 좋아했다. 1호기는 머리를 땋거나 묶어주면 좋아했고, 2호기는 머리를 푸는 것을 선호했다. 왕에게는 그러한 사소한 차이도 흥미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왕은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2호기는 카펫 위에서 낮잠을 자는 중이었고, 그는 1호기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가 책을 읽어주는 방식은 말 그대로 시각정보를 음성정보로 기계적으로 변환해서 들려주는 것이었기에 단조롭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그는 1호기마저 곰인형을 안고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보고 책읽기를 멈추었다.
“아우?”
소리가 멈추자 1호기가 반짝 정신을 차렸다. 왕은 그런 1호기를 카펫에 눕히고 일어났다. 1호기와 2호기가 자는 동안 군단의 사무 처리를 할 생각이었다. 그때 그의 청각기관에, 1호기의 옹알이가 날아와 꽂혔다.
“압… 쁘아.”
누가 지금의 그를 ‘나태’의 왕이라 생각하겠는가.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1호기에게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라고 했지?”
1호기는 꺄르르 웃으며 곰인형을 붕붕 휘둘렀다.
“바아, 아브아, 아부. 꺄아!”
역시 잘못 들은 것인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방금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의아해하였다. 자신이 그 정도로 ‘그 단어’를 듣고싶어할 줄은, ‘그 단어’를 듣고싶어하게 되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압바아, 압뿌, 압빠.”
그는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강렬한 전율을 느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 단어’였다. 그는 멍하니 1호기의 입에서 나온 단어를 되뇌었다.
“아빠?”
1호기가 꺅꺅 소리를 내며 좋아했다. 1호기는 그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한 번 더 분명히 말하였다.
“아빠!”
울음과 옹알이를 거쳐 그가 처음으로 들은 말, ‘아빠’였다. 그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그의 다리를 붙잡고 일어섰을 때보다도 더욱 큰 감정을 느꼈다. 처음으로 느낀 것은 놀라움이었고, 그 뒤를 이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이대로 가슴이 벅차올라 터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그 순간에 ‘마음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까지 잊고 말았다. 위대한 존재가 그에게 삽입한 제어코드조차 그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기능장애 발생으로 착각할 만큼 격렬히 날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잠시 열을 식힌 그는 마침내 자신에게 생겨난 이 서투른 감정이 무엇인지 규정지을 수 있었다.
즐거움, 그리고 기쁨.
아이의 첫 말을 들은 즐거움, 아이에게 아버지로서 처음 인정받는 기쁨.
즐거웠다. 그는 진심으로 즐거웠다. 지금까지 이 정도로 즐거운 적은 그의 삶에 없었다. 위대한 존재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는 ‘따분함’을 없애는 데는 무척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도움을 준 것은 자신의 발 밑에 누워있는 작은 아이, 자신의 딸이었다.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감정이 ‘애정’으로까지 뻗어나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왕은 자신의 아이에게 무한한 애정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고,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몸 속에서 어떤 소리를 들었다. 틱, 하는 작은 잡음. 어떤 물체가 내는 가벼운 소리. 무엇인가에, 금이 가는 소리.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왕은 발뒤꿈치라도 물린 것 같은 섬뜩함을 느끼고 손을 멈추었다.
그 작은 소리는 자신의 육체적 한계에 대한 냉혹한 현실을 되새겼다. 자신의 육체는 루틴을 벗어나면 오류를 일으킨다. 그리고, 아이들이 생긴 후로 지금처럼 오류가 많이 쌓인 적은 없었다. 오류의 축적은 손상으로 이어진다.
이 즐거움은, ‘따분함’ 이상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 즐거움은, 언젠가 반드시 자신을 파멸시킬 것이다.
자신은 아버지이기 전에 무기이자 기계로 태어났다. 자신이 두 딸의 아버지라는 길을 선택한다면, 그래서 계속 망가져 가는 것을 선택한다면 위대한 존재의 무기로 만들어진 자신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그는 감히 그럴 수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1호기가 그에게 “아빠, 아빠.”라고 부르며 손을 뻗었지만, 그는 그 부름을 외면했다. 대신 그의 입에서 무거운 한 마디만 흘러나왔다.
“마스터라고 부르도록.”
Ep 3
이제 아이들은 손을 잡아주지 않아도 혼자서 잘 걸었다. 말도 제법 잘 했다. 대체 어디서 배우는 것일까. 과묵한 왕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하루 종일 놀고 웃고 싸우고 떠들었다. 스스로 갈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지고 아는 것도 많아지면서, 아이들은 세상에 점점 더 많은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에 왕은 자신이 머무르는 함선의 안은 자유롭게 놀러 다닐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숨을 곳도 많고 뛰어다닐 수 있는 곳도 많은 거대한 함선은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물론 여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군단의 주요 병기의 구조를 익히고 자연스럽게 관련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려는 왕의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날도 아이들은 함선의 수많은 방을 탐색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둘은 함선의 최상층에서 지금껏 본 적 없던 방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둘은 지금까지 탐색했던 어떤 방보다도 엄격한 인증절차를 거쳐 방으로 들어섰다.
“힘들어~ 여긴 어디야?”
“지도에는 지휘통제실이라고 돼 있는데…”
둘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거대한 스크린 앞에 서 있던 새하얀 기계인형이 고개를 돌렸다. 둘을 발견한 인형의 눈이 순간 붉게 번득였다. 둘에게 다가온 인형은 한쪽 무릎을 꿇고 장난스러운 푸른 눈으로 1호기와 2호기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마스터의 함대를 관리하는 인공지능이에요. 지휘통제실에 온 걸 환영해요! 당신들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요. 1호기와 2호기죠? 만나서 반가워요! 저도 마스터의 손에 의해 창조된 존재랍니다. 당신들보다 먼저 만들어져서, 당신들이 만들어진 후에도 쭉 지켜봐 왔죠. 세상에, 언제 이렇게 커버렸을까?”
자신들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자 2호기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우리보다 먼저 태어났으면 우리 언니예요?”
“맞다! 언니라고 부르면 돼?”
2호기와 1호기가 묻자 인형은 호들갑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 호호호! 저 같은 것이 감히 어떻게요. 같은 창조주를 두고 있긴 하지만, 여러분 1호기와 2호기는 저와는 달라요. 마스터께서 직접 당신의 톱니바퀴를 꺼내 만드신 존재랍니다. 저보다 훨씬 격이 높으시니, 저를 부르는 칭호 같은 건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저는 그저 함대관리자나 함선관리자면 족하답니다.”
2호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1호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비록 어렸지만,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함선관리자의 목소리는 분명 웃음기가 묻어나는 밝은 목소리였으나 그 뒷면에는 열등감과 질투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2호기는 천진난만했다.
“그럼 함선관리자는 마스터하고 우리가 사는 함선의 관리를 하는 거예요? 함대관리자면 군단의 함대도 관리하는 거죠?”
“그런 셈이죠. 참, 함선 관리자로서 말씀드리자면, 이 함선도 전투함에 해당하거든요? 그러니까 지휘통제실과 무기고는 함부로 들어오면 못써요. 위험한 게 잔뜩 있으니까요. 아, 오늘은 이미 들어와 버렸으니 어쩔 수 없지만요♡”
내 눈에 띄지 마. 1호기는 함선관리자의 답변에서 그녀의 의중을 순식간에 꿰뚫어보았다. 1호기의 안에서 작은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다.
“아닌데? 아빠는 그런 말 안 했어. 함선 안 어디서든지 놀아도 된다고 했는걸?”
‘아빠’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함선관리자가 고개를 홱 돌렸다. 표정 없는 하얀 인형의 얼굴이었지만, 만일 그녀에게 표정이 있었다면 지금 그녀는 1호기를 무시무시하게 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아빠?”
“응, 그랬는데?”
함선관리자의 목소리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1호기? 마스터께 그따위 무례한 명칭을 써서는 안돼요. 그리고 말투도요. 당신이 그분의 톱니바퀴로 만들어지긴 했지만…”
“왜? 왜 안 돼? 우리 아빠인데?”
“1호기! 우리에게 ‘왜’ 같은 건 없어요! 우리는 그냥 그분을 마스터라고 부르면 되는 거예요!”
함선관리자가 짜증스럽게 소리쳤지만, 1호기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 날 만든 사람이면 아빠잖아? 그럼 난 아빠라고 부를거야! 너희도 아빠라고 부르면 되잖아!”
“이… 이 결함품이 정말!”
함선관리자의 눈이 분노로 붉게 물들었다.
“…그만.”
“마, 마스터!”
당장에라도 1호기에게 덤벼들 기세던 함선관리자가 움찔하며 물러났다. 1호기와 함선관리자, 기계왕을 번갈아 바라보던 2호기가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저기, 아빠…”
“마스터라고 불러라.”
왕이 차갑게 말하자 2호기는 흠칫 몸을 움츠리고 “네, 마스터.”라고 작게 말하였다. 1호기는 옆에서 심통 가득한 표정으로 볼을 부풀리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아빠. 우리는 왜 아빠라고 부르면 안 돼?”
왕은 말없이 1호기의 맑은 보랏빛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무감정한 붉은 눈동자와 잔뜩 토라진 보랏빛 눈동자는 한동안 서로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안에 있는 무엇인가 미세하게 맞물리지 않는 것을 느꼈다. 작은 불편감, 혹은 이물감. 전에 느껴본 듯하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다.
“응? 왜 대답 안 해줘? 아빠는 우리를 만들었는데 왜 아빠가 아니고 마스터인 거야?”
답답해진 1호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한 번 더 물음을 던졌지만, 그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그의 미묘한 불편감은 급속히 커졌다. 자신의 몸을 이루는 수많은 부품들이 빠른 속도로 어긋나기 시작했다. 선택, 자신이 두 아이의 아비라는 자아보다 위대한 존재의 무기로서의 자아를 선택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오류, 그녀가 자신에게, 임무 수행에 악영향을 미치는 오류를 일으키게 한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하루하루 커가면서 자신에게 주는 감정들이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럼 1호기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무슨 말을 해야 저 아이가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을 멈출까. 아무리 연산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끊임없이 연산하는 그의 몸 안의 톱니바퀴들이 연신 잡음을 내었다.
“그야 답변할 가치도 없으니까 그러시는 거죠.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가 주저하는 사이, 함선관리자가 톡 끼어들었다.
“마스터께서 무엇을 위해 당신 같은 걸 만드셨는지 생각해보세요. 저처럼 병기로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1호기와 2호기 당신들 역시 우리 군단의 일원으로 창조된 존재죠.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역할을 부여받고,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군단의 번영을 위해 힘써야 하는 존재라는 뜻이에요! 그런 존재가 조금 특별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감히 마스터를 ‘아빠’ 따위의 친족어로 부르려 하다니, 언어도단이죠! 자기 주제를 알도록 해요!”
함선관리자가 냉랭하게 쏘아붙이자, 1호기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저 말이 사실이냐고 묻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군단장이자 무기로서의 자신이 입을 막았다. 1호기의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그리고 그런 1호기를 보는 그의 몸 안에서는 삐걱거림이 커져만 갔다.
“저기, 마스터는 아빠라고 하면 싫은가봐. 그냥 마스터 하자. 응?”
함선관리자에 이어 2호기마저 그녀를 설득하려 들자, 겨우 참고 있던 1호기의 눈물이 마침내 터져 나왔다.
“싫어! 마스터 안 해! 아빠 할래! 아빠 할거야!”
1호기는 서럽게 엉엉 울면서 뛰어갔다. 멀어져가는 1호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왕의 가슴 속에, 방금 전까지의 불편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한 감각이 엄습했다. 이 이상 지체하면 자신의 몸이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는 연산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려 기존의 경험과 비교를 시작하였다.
기쁘다, 이상하다, 불편하다, 거슬리다? 어느 것도 맞는 것이 없었다. 애정? 비슷하지만 그것보다는 저릿한 느낌. 기능장애가 발생한 듯 답답한 느낌. 1호기가 마침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엉망이 된 연산의 결과값을 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망가진 왕은 그때까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호기의 울음소리를 삼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적막한 지휘통제실에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불꽃이 퍽 튀더니, 몸 안을 도는 전류의 흐름이 뚝 끊어졌다. 창조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그의 연산이 완전히 멎는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자신의 안에서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애정이 아니라면,
애정에서 생겨나는 것?
그는 그제야 그 낯선 감각의 정체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또한 그것이 전에 느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이유도 알게 되었다. 애정. 애정에서 비롯된 ‘슬픔’. 그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사랑이 크기에 슬픔도 큰 것이다.
슬프다, 슬프다, 슬프다…
“마스터?”
함선관리자가 의아한 기색으로 그를 불렀지만, 그는 대답 없이 지휘통제실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2호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1호기의 울음소리가 계속 그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억지로 다른 연산 기록을 불러와 겨우 ‘슬픔’을 억눌렀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한 존재의 의지가 전해졌다. 딱 그에게 전달할 정도로 작지만,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중압감을 가진 의지, 그의 창조주의 의지였다. 그는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
그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이상 없습니다.
그의 창조주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태산같이 무거운 기운이 그를 덮쳤다. 위대한 존재의 침묵. 그는 그것에서 그의 창조주가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위대한 존재의 무기로 태어났고, 위대한 존재의 무기로서 사는 것을 선택했다.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기쁨을, 이 슬픔을, 이 모든 감정을, 이 모든 마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그는 무엇인가 결심하고, 잠든 두 아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힘껏 끌어안았다. 두 아이에게 자신이 품은 귀중한 선물을 전해주기 위한 그의 새로운 연산이 시작되었다.